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50화 (350/577)

< 민도우 7 >

[어쨌거나 제가 보여드린 그림에 대해서 알아보셨다니 이야기는 쉬워지겠군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와플에서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있다는 건 알아냈지만 여전히 이게 그렇게까지 큰 이익을 낼 사업 분야라는 점에는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나를 바보로 아나. 어디서 먹히지도 않을 뻘 소리를 한데?’

빌 게이트의 말이 거짓말인 이유는 간단하다. 정말로 저런 결론을 내렸다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가 득달같이 시애틀에서 LA까지 날아온 이유는 나와의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말보다는 상황을 믿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비즈니스에서의 대화는 번거롭지. 뻔한 둘러대기인 줄 알면서도 거기에 맞춰서 얘기해야 하니까.’

내심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차피 큰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건 직접 모바일 기기를 제작하는 우리입니다. 마이크루야 OS만 제공하는 정도이지 크게 고려할 사안이 아닐 겁니다.]

[이런··· OS는 그렇게 가볍게 말할 문제가 아닙니다. 특히나 윤 회장께서 말씀하신 OS는 우리 회사의 개발진들이 총력을 다해야 할 정도로 쉽지가 않아요.]

‘그렇기는 하지.’

저건 마냥 앓는 소리가 아니다.

마이크루는 PDA 시장의 강자 중 하나다. 그런 만큼 이미 모바일용 OS를 보유하고 있는 상태인데, 문제는 내가 그 OS를 사용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딴 OS를 썼다가는 와플과 경쟁을 해보기도 전에 망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마이크루에게 ‘우리가 원하는 OS는 이런 겁니다.’라며 아주 상세하게 요구했다.

어느 정도인지는 요구사항 중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기존에 모바일에서 사용하는 민도우CE 커널이 아니라 PC에 사용되고 있는 NT커널을 요구했으니까. 이러면 처음부

터 다시 개발하는 수준의 난이도가 되고 저렇게 우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딱 그 정도일 뿐이지만 말이다.

[우리 역시 기존에 개발하던 OS의 연구 자료를 제공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개발만 완료되면 우리의 기기가 팔릴 때마다 이익을 얻게 될 텐데 뭘 그렇게 죽는소리를

하십니까?]

그때 빌 게이트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을 순식간에 지우고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힘든 점 중 하나는 시도 때도 없이 표정이 변한다는 것이다. 한없이 가벼운 얼굴로 사람을 방심시켰다가 갑자기 진중한 얼굴로 푹 찌르고 들어오곤

한다.

지금이 그러했다.

[저희 마이크루에서는 이번에 개발하는 OS. 민도우 7의 적정 가격을 35달러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OS 개발 자료를 제공하는 조건인데?’

35달러면 42,000원 수준의 가격.

초반이니 일단은 어느 정도 높게 부른 후 협의를 통해서 낮춰나갈 거라는 것 정도야 예상했지만, 이건 정말이지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가격이다.

OS에 그 정도 돈을 주고 구매할 거라면 힘들더라도 그냥 우리가 어떻게든 개발하고, 피할 수 없는 특허의 문제만 그냥 로열티를 지급하는 게 낫다고 할 정도다.

또한, 스마트폰의 특성상 OS의 가격이 비싸다는 건 그만큼 제조원가가 올라가는 셈이다. 당연하게도 비싼 제조원가는 휴대폰 자제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며 그만큼 판매량

이 저조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렇다고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서 가격을 낮추면 수익성 악화의 우려를 떠안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림은 내가 그려놓고, 돈은 마이크루가 벌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

다.

이럴 때는 무조건 강하게 나가야만 한다.

[저의 귀가 의심될 지경이군요. PC도 아니고 모바일입니다. 게다가 협약을 통해서 이번에 출시될 기종에 대해서는 무조건 민도우 7을 필수 설치하는 조건인데 35달러? 정말

로 이걸 적정가격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일단 우리 회사에서 판단하는 적정가격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 가격에 거래하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협력관계이니만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조건을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격 협상이 아니라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소리군.’

저 말은 ‘우리에게는 다른 요구 사항이 있으니 가격을 낮추고 싶다면 우리의 새로운 요구를 들어봐라.’라는 의미다.

‘들어야 할 타이밍이기는 한데, 호락호락 넘어갈 수는 없지.’

마이크루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애초에 그렇게 휘둘리기 시작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주도권이라는 걸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제안인지 들어는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꼭 말씀드리고 싶군요.]

[어떤 거죠?]

[우리는 꼭 마이크루가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뭐라고요?]

빌 게이트 정도 되면 자신의 회사에 자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지금 이런 말보다 모욕적인 말은 없을지 모른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사업의 주도자는 마이크루가 아닌 GF라는 점을 명확하게 짚기 위해서였다.

[대략적인 자료는 이미 보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어떤가요? 우리가 개발한 OS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 보이십니까?]

[OS의 문제보다는 특허에 문제가 있지요. 윤 회장님이 손을 내민 것도 우리 마이크루가 특허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루가 독점으로 보유한 특허는 아닙니다.]

마이크루와 동업하면 여러모로 편리한 점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나 냉정하게 짚으면 편리한 점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표현하면 ‘편리한 것은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없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와플보다 먼저 출시하거나 발표하는 거? 그까짓 거 포기해버려도 돼. 시간이 더 소요될 뿐, 그들을 추격할 자신도 있어.’

나는 지금 빌 게이트에게 이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주제도 모르는 조건을 제시한다면 이대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서 말을 해야 할 겁니다.’

단호한 내 말에 천하의 빌 게이트가 고심을 한다.

‘분명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가져와서 혼란스럽게 하고 그중에서 자신이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열매를 챙기려고 했겠지.’

그러나 지금의 단호한 말 덕분에 쓸데없는 잔가지를 마구 뿌려서 나를 현혹하는 것에 부담이 생긴 것이다.

[좋습니다. 저도 제안을 꺼내기 전에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안일 뿐이라는 것을 짚고 가겠습니다.]

좋은 시그널이다. ‘조건’에서 ‘제안’으로 단어가 바뀌었다. 이는 흐름이 빌 게이트에게서 내게로 넘어왔다는 증거였다.

[이미 한창 개발에 들어간 이 OS는 우리로서도 굉장한 노력을 쏟고 있는 제품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팔릴지 모르는 레이컴의 신제품에만 OS를 독점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제품에도 OS를 공급했으면 합니다.]

‘예상 범위 내로군.’

와이폰처럼 우리 폰에만 독점으로 공급한다면 좋겠지만, 마이크루가 이걸 쉽게 이해하긴 어려울 거다. 이미 예상하는 범위였다.

‘이건 들어줘야 해. 단, 전부는 못 들어준다.’

그가 조건을 추가하면 나 역시도 추가한다.

[본래 마이크루와 GF만의 계약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말고 다른 곳에 스마트폰을 맡긴다 해도 원하는 수준과 형태의 스마트폰이 바로 나오기는 어려울 텐데요?]

[알고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이야 금방 따라올 테지만, 개념적인 부분에서는 어려움을 겪겠죠. 그래도 1년이면 무난하게 따라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레이컴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자 회사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 그러나 유명하다고 해서 기술력이 세계급이라는 것은 아니다. 신생회사인 레이컴은 특별한 기술

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대단한 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디자인과 아이디어로 선점 효과를 얻어서 인기를 누리고 있을 뿐이다. 이는 레이컴에서 만들 수 있다면 다른 유명 전자 회사들에서는 조금만 연구하면 금방 비슷한 기

기를 개발해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점을 마이크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자기들이 직접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인간관계가 필요로 시작되듯 파트너십 역시 필요해야 유지된다. 내가 다 해먹을 수 있는데 이를 양보하는 순수함은 사회에서 얼간이로만 비칠 뿐이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내가 이쪽의 칼을 보여줄 차례다. 만만하게 보면 너도 베일 수 있다는 칼을!

[1년이면 기술이야 금방 따라잡을 수 있겠죠. 사실 대부분 부품은 이미 시장에 다 나와 있는 상태고, 그냥 조립만 잘해도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혹시 잊

고 계신 건 아니시겠죠?]

[무엇을 말입니까?]

[MP3 플레이어 역시 우리 레이컴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기기를 개발하는 회사들은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점유율이 어떻습니까?]

MP3 플레이어의 시장은 와이팟과 스텔라가 완벽하게 시장을 나눠 먹는 중이다. 두 회사의 점유율을 합치면 70%를 넘기는 것이 현실이었는데 여기에서 손꼽는 기술력은 해

당사항이 없다. 그렇다고 제품의 단가가 다른 기기보다 저렴한 것 역시도 아니다.

선점 효과이며 이를 보다 정확하게 해석하면 요인은 두 가지다.

인지도와 취향이다.

[GF에서는 우리가 민도우 7을 독점 공급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우리는 마이크루와의 독점을 생각하고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그런데 독점이 아니라면 곤란하다는 말이지요.]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루는 OS를 개발하는 회사이며 우리는 단 한 번도 OS를 어느 한 기업에 독점으로 공급한 적이 없습니다.]

도스부터 M 그리고 민도우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세계의 수많은 컴퓨터가 자신의 OS를 가지길 원했다.

당연하다. 닫힌 시장보다 열린 시장이 더 큰 수익을 보장해주니까.

그렇다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빌 게이트는 자신들의 조건을 굽히기는 어려우니, 추가 조건을 붙여주려 했다.

‘그래봤자. 우리에게만 조금 싸게 공급한다느니 어쩐다느니 그딴 조건만 제안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마이크루에는 민도우 7을 기기당 12달러에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거 봐. 이놈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곤 이것밖에 없지.’

12달러는 본래 우리 측에서 생각하고 있던 OS의 가격이다. 그러나 원하던 조건을 들었으니 이쯤에서 협상을 마칠 때라고 보면 곤란하다.

‘양보를 얻어낸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출발선에 비로소 서게 된 거야.’

착각하지 말자. 상황을 보며 현실을 판단해야 한다. 나는 아직 그에게서 얻어낼 것을 얻어내지 못했다.

[가격은 괜찮네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습니다.]

[저야말로 귀를 의심하고 싶어지는 말이로군요. 35달러의 OS를 12달러에 공급하겠다고 했는데 안 된다? 이런 파격적인 조건에도?]

[35달러는 우리에게 독점으로 제공하겠다고 하셨을 때의 가격입니다. 타 사에는 얼마에 공급하시려는 계획입니까?]

[······.]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다 보면 우리를 벗어난 기업들과 거래를 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큰 수익을 내줄 수 있는 기업들이 살아남아야 할 텐데.

그들에게 비싼 가격으로 OS를 넘긴다면?

과연 그들이 레이컴과 경쟁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15달러에서 18달러 정도에 넘길 생각이었을 거야.’

그러다 우리가 무너지면 천천히 OS의 가격을 올리는 수법을 쓸 것이다. 이는 대단한 통찰력도 필요 없는 전형적인 대기업의 수법이다.

[우리가 독점을 포기한다면 그건 추가 조건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서 우리를 만족시켜 주셔야지요.]

‘나를 호구로 보지 마라, 코 큰 놈아.’

낯을 딱딱하게 굳힌 그가 내게 물었다.

[원하는 게 뭡니까?]

[애플리케이션 마켓.]

[절대로 안 됩니다.]

미간을 찌푸린 그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세상 어떤 플랫폼 기업이 애플리케이션 마켓을 넘겨줍니까?]

단호하기가 철벽같다. 하지만 괜찮다. 찔러볼 구석은 있다.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조금 전에는 OS 개발기업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플랫폼 기업입니까? 좋습니다. 그럼 OS를 공짜로 주십시오. 그리고 애플리케이

션 마켓에서의 수익을 다 가져가시면 모두에게 행복한 결론이 됩니다.]

당연하게도 빌 게이트가 내 말 대로 할 리가 없다. 마이크루는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불법복제에 관한 문제도 꽤나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회사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이 만

든 OS를 공짜로 뿌리는 회사는 절대 아니다.

일견 ‘무료로 OS를 뿌리고 기기마다 12달러 이상의 수익을 얻으면 어차피 이득이잖아?’라고 여길 수 있으나, 사실 폰으로 결제를 하지 않는 사람은 평생 가도 12달러 수준의

결재를 할 일이 없다.

‘그런 걸 다 떠나서, 결국 유료로 판매하고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인데 이걸 포기할 사업가는 어디에도 없고.’

어찌 나올지를 알면서 한 말이니 상관없다. 이건 블러핑이자 미끼다. 마이크루가 35달러라는 가격으로 자극적인 선제공격을 나에게 했듯이 나 역시 자극적인 것으로 먼저 공

격을 해서 흔들려는 것뿐이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민도우 7은 우리 기업에서 총력을 다해 개발한 소프트입니다. 이걸 무료로 제공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제게 어떻게 들리는 줄 아십니까?]

[그건 모르겠군요.]

[‘너희의 아이디어고 너희가 제안한 사업이지만 이득은 우리가 얻겠다. 너희는 알아서 폰을 잘 만들어서 성공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제 귀에는 이렇게 들립니다.]

[그렇게 오해하실까 봐 귀사에는 특별히 OS의 가격을 낮춰서 제공하겠다고 배려한 겁니다.]

[지금 우리의 협력관계는 고작 그런 조건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그렇다고 애플리케이션 마켓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타이밍이군.’

대화가 너무 길어지면 힘이 빠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앞서 주었던 충격의 효과가 반감된다.

이제 진짜 조건을 제시했다.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어떤 거죠?]

[애플리케이션 마켓 전부는 필요 없습니다. 마켓에 딱 하나만 더 추가하죠.]

[말씀하세요.]

[우리가 퍼블리싱한 게임과 음악을 판매하는 마켓을 추가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 마켓은 전적으로 저희가 운영하고 그 수익도 우리가 가지는 거죠. 마이크루가 개발한 OS

에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마켓이 배치되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 민도우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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