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49화 (349/577)

< 민도우 7 >

“지금까지 출하된 사이버 쇼크는 총 100만 장이고, 판매 집계된 수량은 60만 장입니다.”

사이버 쇼크를 발매하고 2주째가 되었을 무렵, 김상윤 사장이 상기된 얼굴로 보고다.

유통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서 미국에 온 그는 고무적으로 일한 결과에 자랑스러워했다. 당연한 노릇이다. 고작 2주 만에 30만 장 돌파라는 성적을 이루지 않았던가!

“올 한 해 동안 100만 장을 팔면 많이 팔리는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만, 기분 좋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주 좋은 성과군요. 행사의 효과가 좋았나 봅니다.”

“네, 회장님. 하지만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우리 게임의 행사 이후로 ZBox의 판매량이 80만대를 넘어섰고 이러한 콘솔의 판매량 증가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다고 판단됩

니다.”

‘영리한 파트너 같으니.’

마이크루가 자신들의 이익을 단단히 챙겼다.

“어쩐지 행사장의 위치나 구도가 게임 대회보다는 전시회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했는데 이런 노림수가 있었군요.”

“말이 좋아 사이버 쇼크 행사였지 속을 들여다보면 마이크루의 ZBox 전시 행사와 다름없었습니다. 이건 자기들 콘솔 홍보하면서 저희에게 생색을 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세계 제일의 기업다운 행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질투하거나 배 아파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우리도 성공했고 파트너도 성공했을 뿐이니까. 이걸 가지고 ‘나보다 네가 더 잘됐네.’라며 비교하는 건 멍청한

짓이며 파트너십마저 무너질 뿐이다.

어차피 ZBox가 많이 팔려야 우리 게임도 많이 팔리는 법이니까.

‘그런데 인간이라는 게 완벽히 이성적인 동물은 아니거든. 남이 내 예상보다 훨씬 잘되면 괜히 배가 아프단 말이야. 그것도 같이 있으면서 나보다 더 돋보이려고 수를 쓴 결과

라면 말이지.’

장군을 받았으니 멍군으로 대응해주고 싶었다. 과연 무슨 수를 써야 하려나, 고민할 즈음 김상윤 사장이 말했다.

“현재 준비 중인 본선도 철저하게 ZBox의 홍보에 목적을 두고 기획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발매 행사는 예선전이다. 각 지역의 우승자들은 이제 곧 LA에 마련된 특별 경기장에서 진정한 최강자를 가려내기 위한 경기를 진행하게 된다.

‘가만있자. 경기장이란 말이지? 우리 쪽에서 넷플렉스를 통해 방송한다고 하면 마이크루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지.’

소소하지만 마냥 당하지는 않는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나는 짐짓 대인처럼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지역 행사 수준이 아니라. 북미 전체의 행사입니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진행하는 만큼 그들에게도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할 테죠.”

윗사람은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지시나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김상윤 사장에게 불만스러운 감정을 보이면 그는 사업의 성공보다 마이크루를 엿 먹

여서 내 마음에 드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아부나 일삼는 못난이가 아니라 그것이 회장의 의중으로 비치는 탓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얻었으니 좋게 생각합시다.”

“예, 회장님.”

*

각 지역 대회였던 예선과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야 지역에서 가장 큰 유통망을 활용해서 전시 겸 대회를 열 수 있었지만, 본선은 모든 우승자가 LA로 오게 된다.

LA라면 모를까 다른 지역에서는 오프라인에서의 이익을 얻기가 힘들어진 만큼 이번에는 넷플렉스를 보유한 우리의 장점이 훨씬 강하게 드러날 것이다.

‘···라는 사실을 마이크루도 알고 있지. 그런 만큼 대응하려 할 테고.’

그 결과, 사이버 쇼크의 본선 행사장은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자체가 되었다. 나는 짐짓 놀란 양 휘파람을 가볍게 불고는 물었다.

“여기 분위기가 왜 이럽니까?”

“아! 회장님. 오셨습니까?”

이곳은 분명히 사이버 쇼크 발매기념 대회의 본선이 진행되는 행사장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광경은 경기장이 아니라 그냥 시장바닥처럼 정신없다. 공사가 한창이기 때문

이었다.

“지금 왔습니다. 그건 그렇고, 오늘 본선 진행되는 거 맞는 겁니까? 도대체 왜 이렇게 어수선하지요?”

“저희 넷플렉스는 넷플렉스 나름대로 퀄리티 있는 방송을 만든다고 난리고, 마이크루는 걔들 나름대로 ZBox의 마케팅이 제대로 될 수 있게 난리를 치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되고 말았습니다.”

“쟤네들이 이렇게 나올 것을 알고 미리부터 넷플렉스에 이야기를 다 해뒀던 거 아니었습니까?”

“네. 하지만 저럴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 보시겠습니까?”

사이버 쇼크의 개발사는 GF이지만 대회의 주최자는 마이크루 소프트다. 당연히 대회를 방송으로 제작할 경우 마이크루에게는 사전에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선

택을 아주 빠듯한 시점에 했으며 저들에게 알려주었다.

행사 준비를 예정대로 마무리한 타이밍!

여기에서 선택지는 두 가지다.

물러나는 것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세트를 다시 만드는 것.

그리고 억만장자이시자 욕심 있는 우리 빌 사장님의 마이크루는 시원하게 선택하셨다. 기존의 무대를 모조리 해체해버리고 자신들이 돋보이는 구성으로 새롭게 제작한 것이

다.

“패기 넘치네요. 지금 싹 다 새로 올리는 게 맞지요?”

“네. 저 정도까지 하리라고는 정말 예상 못 했습니다.”

“세계 1위는 과연 다르군요. 놀라운 추진력입니다.”

막대한 자본에 회장이 내리는 확실한 지시가 더해지면 저런 손해쯤은 얼마든지 감수한다. 하지만 저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이 방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책상머리에서 머리를 굴리는 것에 한계지.’

나는 자연스레 지어지는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권문수 상무에게 물었다.

“오늘 대회가 진행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겁니까?”

“네. 보아하니 그때까지는 전부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문제는 다른 부분입니다. 보시다시피 지금 경기장의 전체 상태가 ZBox 홍보로 도배되고 있습니다. 어떤 각도

에서 어떤 방식으로 촬영하든지 무조건 방송으로는 ZBox의 홍보가 잡힐 겁니다.”

마땅한 우려다. 사이버 쇼크를 홍보하려고 제작하는 방송인데 정작 콘솔 홍보만 기막히게 해주는 상황이 되면 어쩌랴! 기회를 거머쥐면 집요하리만큼 물고 뜯어버리는 초거

대기업의 위력이니 우리도 뭔가 대처해야 한다!

이런 의사표명인데, 의외로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

‘맞다. 하나는 신경 써야지.’

체크 포인트를 잘 기억해 둔다.

“우리는 객석 뒤쪽 자리만 꽉 붙들면 됩니다.”

“그것 만요?”

“권문수 상무님은 게임 방송을 안 보셨죠?”

“그게··· 네.”

“저 대공사는 조금도 신경 쓰지 마세요. 우리는 오늘 대회가 무사히 진행되고 그것이 방송으로 잘 만들어지는 일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여기저기 도배 된 ZBox 광고? 마이크

루? 그런 건 고민하지 마세요.”

제아무리 세계 1위의 기업이고 인재가 넘치는 마이크루라고 해도 이제 태동하는 게임 방송을 어찌 알랴.

“장담하건대 우리의 멋진 파트너는 전체 방송 시간의 1%도 안 나올 겁니다.”

내가 느긋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게임 방송은 게임을 보여준다. 경기장을 보여줘 봤자 그 빈도는 턱없이 낮다. 즉, 우리가 보여줄 것은 경기가 진행 되는 게임 속 세상이지 지금 이 눈앞에 보이는 진짜 현실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저거 새로 고치느라 못 해도 수억은 쓴 거 같다만, 돈이 워낙 많으니 별 피해는 없겠지. 대신 기분은 꽤 멜랑콜리 할 테고.’

아!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걸 하고 싶었으면 우리에게 미리 상의를 하던가. 왜 괜한 짓을 사서 해서 돈 날리고 시간을 날리는지.’

나는 훌륭한 파트너이니 물어봤다면 친절하게 알려줬을 것이다. 게임 산업의 특성을 비롯한 이런저런 노하우에 대해 전부 말이다.

‘진짜라고. 진짜야.’

크게 웃으며 흐뭇하게 공사 현장을 구경했다.

마이크루에서 돈을 허공에 붓는 동안, 대회는 계획대로 진행됐다. 넷플렉스에서 미리 준비한 카메라들은 선수보다 관객이 얼마나 있느냐에 더 집중했다.

‘선수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찍어봐야 누가 관심이 있겠어?’

어차피 프로게이머들처럼 전문적인 선수들도 아니다. 프로게이머들이라면 그들의 데뷔라 할 수 있는 오늘이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이건 그냥 이벤트 대회일 뿐이다.

이를 보며 권문수 상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 객석 뒤쪽이면 충분하다고 하신 거였군요.”

마이크루가 무대를 중심으로 ZBox에 대한 홍보를 준비했다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그들의 관심이 적은 관객들의 등 뒤에 사이버 쇼크의 홍보를 마련했다.

사람의 눈은 앞에 달렸다.

관객들은 당연히 등 뒤에 있는 사이버 쇼크의 광고를 볼 일이 없다. 그 결과, 마이크루가 보기에는 정말 비효율의 끝을 달리는 광고였을 테지만 우리 카메라는 현실을 비출 때

마다 ZBox가 아닌 사이버 쇼크의 광고를 보여주게 된다.

물론, 빌 게이트의 기분이 너무 상해버리면 곤란하니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중간 중간에 ZBox의 로고를 보여주기로 했다. 딱 감질나는 정도로 말이다.

“선수들 나오네요. 오. 저기 저 선수죠?”

권문수 상무가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에는 LA 지역대회에서 우승하고 본선에 진출한 피터 선수의 모습과 이름이 전방 스크린에 잡히고 있었다.

“개인 카메라 붙었죠?”

“네. 나머지 51명은 다 합쳐서 1개 카메라인데, 저 선수만 혼자서 카메라 1대를 사용하고 있답니다.”

대회의 흥행을 위해서는 스타가 배출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저 선수는 충분한 자질이 있음을 확인했다.

‘이런 걸 보면 역시 기회는 운만으로 잡는 게 아니야. 알건 모르건 재능이었건 간에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잡을 수 있어.’

사적으로 알아본 결과, 피터는 딱히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거나 다른 큰 꿈이 있어서 참여한 이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레이컴의 신형 MP3P가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뿐

만 아니라 아예 ZBox조차 없는 이였다.

하지만 현실은 불공평한 법. 어쩌다가 친구 집에서 잠깐씩 해본 게 고작인 피터의 실력이 저들 중에서 단연코 돋보인다.

‘저런 재능꾼들 때문에 일반인들이 우울해지는 거라고. 그런데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기는 한가?’

재능을 뛰어넘는 엄청난 행운을 시작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을 보면, 역시 억세게 운 좋은 놈이 최고인 것 같다.

136. 민도우 7

LA 지역 예선에서 두각을 보였던 피터는 본선에서도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ZBox 유저들 사이에 새로운 스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피터의 스타성과 함께 리뷰어

포럼 94점이라는 높은 점수에 힘입어 사이버 쇼크는 예상했던 판매량을 또 빗나가게 했다.

‘이제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지.’

여기서 축배를 들고 안주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신문 기사나 읽으며 ‘누가 부자가 됐데.’ ‘우와 부럽다’라는 말로 소비하는 부류가 아니라 주도하고 성공을 일구어나가는 이들

이다. 성공은 앞선 준비와 실천으로 이룩하는 것이기에 나는 LA에서 새로이 회의를 시작했다.

여기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 중 하나라 분명한 빌 게이트 사장까지 참여했다.

[정말 굉장한 게임이라는 이야기가 저희 회사 내에서도 자자합니다. 축하합니다.]

사실 내가 부른 게 아니라 굳이 이 사람이 찾아왔다.

‘고맙기야 무진장 고마울 테지. 우리보다도 훨씬 XBox가 어마무시하게 팔려나고 있으니.’

사이버 쇼크로 대박 난 콘솔의 판매량을 정작 우리가 못 따라잡고 손가락만 빨게 된 이유는 여러모로 치밀하게 준비한 내가 한 가지를 간과해서였다.

‘멍군으로 잘 응수했는데 물량이 딸릴 줄이야!’

수요 예측 실패!

너무나도 잘 팔린 덕분에 없어서 게임을 팔지 못했고 고객들은 일단 사이버 쇼크가 추가로 출하되길 기다리면서 ZBox를 먼저 구매한 것이다.

상품만 준비해서 내보내면 그만큼 더 팔릴 것이니, 크게 상심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콘솔 판매량이 사이버쇼크보다 훨씬 많이 팔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괜히 배가 아

파진다.

‘대범하게 굴어야 하는데 아직 내가 소시민이라 그런가. 쓰리다, 쓰려!’

아직은 남보다 내가 더 잘되고 싶은 욕심이 더 큰가 보다. 이게 다 무소유의 이치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인간이 야망이나 욕망 없이 살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

으랴.

나는 그냥 이렇게 살련다.

[아직 한참 부족합니다. 축하는 1,000만 장을 돌파한 후에 받도록 하죠.]

[1000만 장이라니. 굉장하군요.]

억 단위로 판매되는 마이크루의 OS와 비교하면 1,000만 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빌 게이트는 예상외로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까지 팔릴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좋습니까?]

[저야 확신합니다만, 아무래도 제 자식이니 가산점이 붙은 평가겠지요. 그래도 직접 해보시면 아마도 저와 같은 결론이 드실 겁니다. 그리고··· 우선 지금은 일에 대해 이야기

를 하도록 하죠.]

컨소시엄은 단순하다. GF의 레이컴은 스마트폰을 개발하고, 마이크루는 그에 맞는 OS를 개발한다.

아주 심플한 협력관계다. 그러나 필히 해결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문제가 존재했다.

수익 분배?

‘아니지.’

이미 우리와 마이크루가 협력을 시작한 상태인 만큼 일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협의가 끝난 상태다. 마이크루는 OS의 개발과 꾸준한 관리를 담당하는 대신에 GF는 그들의

OS를 사용하고 그들에게 합당한 가격을 지급하기로 협약했다.

그러므로 오늘은 구체적으로 이 OS의 가격이나 마켓과 같은 분야에 대한 이야기해야 한다.

먼저 빌 게이트가 말했다.

[나름대로 정보망을 통해서 알아봤더니, 와플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까지 개발이 완료 된 모양이더군요. 저도 힘들게 알아내야 했을 정도로 극비리에 준비가 된 것 같은데

윤 회장님은 이런 정보를 어디서 구하시는 겁니까?]

빌 게이트는 ‘좋은 거 있으면 같이 좀 알자.’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마치 십 대 개구쟁이들 같아서 괜히 웃음이 날 뻔했다.

[그냥 저만의 비밀 정보망이 있다고 해두죠.]

[네. 어차피 함께하기로 했으니, 그 부분은 차차 알아갈 수 있겠죠.]

전혀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굳이 그걸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예지몽으로 알았어요.’라는 말을 하는 순간 나를 미친놈이나 약물 중독, 허언증, 과대망상자, 신흥종교에 빠진

얼간이로 보이리라. 이래서 세상은 솔직하게 살지 말라고 하는 것일 게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를 믿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합리와 이성의 세계인 사업에서 이런 건 의미 없다. 그렇게 객쩍은 생각을 마치고는 내가 되물었다.

< 민도우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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