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44화 (344/577)

< 넓은 세계를 보라 >

뭐든지 상대적인 거라서 그보다 내가 더 높은 직위에 있어서 딱히 이분들이 높으신 분들이라는 게 상관없긴 하지만, 저 두 사람이 내게 다가온 데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러니 알버트도 빠져주는 거였고 말이다.

[우리 게임은 재미있으니까 가서 좀 즐겨보고 그래.]

[알았어. 여러분도 반갑습니다. 나중에 다시 인사해요~]

유쾌하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를 벗어나는 알버트.

그의 동작과 인사가 너무 빠른 탓에 길남주 대표와 임학규 대표가 잠시 벙 찐 표정이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가 혀를 내둘렀다.

“이번에 라이언 맨의 주연을 맡기로 했던 그 배우 맞죠? 많이 친해지신 모양입니다.”

“뭐, 저 사람이 인간의 범주를 한참이나 뛰어넘는 사교성을 가지고 있어서요.”

“그래 보이네요.”

“그나저나. 회장님. 와이온 온라인의 영상은 보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긴장하며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이고.’

와이온 온라인 때문에 제법 긴장한 것 같다는 말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 이건 긴장 수준이 아니라 매우 심하게 경계하는 표정이다.

“왜들 그러십니까? 얘네가 우리처럼 게임 개발 소식을 최대한 숨기고 숨기다가 다 개발하고 발표하는 회사도 아니고, 고작 지금 실기도 없이 영상 발표만 한 건데요.”

이제 한창 개발하고 있는데 경계까지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넷젠이야 와이온이 출시될 때면 현역 시절이 끝나겠지만, 저희 정령의 숨결은 아직 현역이 아닙니까?”

“아니 고작 3년 만에 저희를 현역에서 내리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임학규 대표의 말에 길남주 대표가 울컥한 모양이다. 괜히 목소리가 커질 것 같아 바로 중재했다.

“왜 우리끼리 싸우고 그러세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들을 보니 자존감을 높여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설명 대신 질문으로 풀어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이너스티는 지금 국내 매출이 얼마나 돼요?”

“지난 1분기는 220억으로 집계됐습니다.”

월평균 70억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확실히 국내 게임시장도 그 규모가 상당히 커지긴 했다.

‘뉴 온라인 때는 경쟁할 게임이 몇 개 없기라도 했지.’

지금은 RPG계의 최강자라 할 수 있는 월드 오브 워드래프트가 월 100억을 벌어가고 있고 플레지2가 60억, 플레지1이 45억, 뉴 온라인이 15억이라는 매출을 올리면서 갈라먹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70억이라는 매출이 발생할 정도로 시장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은요?”

“1,914억입니다.”

물론, 이 매출은 올해 초 해외 진출을 한 덕분에 초기 패키지 판매량으로 말미암은 매출일 뿐이다. 이미 패키지는 팔릴 만큼 팔렸고 다음 분기부터는 저 절반 수준까지 매출이 떨어질 것이다.

‘이를 다 감안해도 절대로 적은 돈은 아니지.’

굉장한 매출이라는 데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무려 5,000억에 가까운 매출을 해외에서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뉴 온라인은 어떻죠?”

“요즘은 중국에서도 그래픽 좋은 게임들이 조금씩 모습을 보이고 있긴 해서 매출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1분기 매출은 총 139억 원입니다.”

역시 세월에는 장사 없다. 지금의 GF가 있도록 만들어준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뉴 온라인의 매출이 이렇게까지 쪼그라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139억을 우습게 볼 이가 몇이나 있으랴.

“아시겠습니까?”

“네?”

“알다니요?”

애석하다. 아직도 모르는 것 같으니 직접 알려줄 수밖에.

“그저 국내 피시방 점유율 1위를 해보고 싶어서 만든 게임이 있습니다. 잠깐의 헤프닝도 겪었던 그 게임이자 지금 피시방 점유율 1위인 게임이 어떤 거던가요?”

“LON 온라인입니다.”

아직 압도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하게 부동의 1위 자리를 잡고 있는 우리 게임이다.

“이겁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국내 순위?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두 분은 싸우실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겁니다.”

다이너스티는 철저하게 서구 게이머들의 입맛에 맞춘 게임이다. 해외에서의 수익도 대부분 북미와 유럽에서 발생하는 수익이다.

‘뉴 온라인에서 상당한 재미를 보았기에 중국에도 빠르게 진출했지만 여기서는 그다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

그러나 다이너스티와 달리 정령의 숨결은 서양이 아닌 동양에 많은 포커스를 잡은 게임이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에서 굉장한 인기를 누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서로가 주력하는 나라가 다른 만큼 우리끼리 싸울 필요도 없다.

이런 내게 임학규 대표가 말했다.

“이번에 엠씨소프트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 국내와 해외 수익이 각각 50%씩을 차지할 거라고 자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해외에서도 먹힐 거라는 자신을 가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기서는 경각심을 느낄 게 아니라 한숨을 내쉬어야 한다.

“임학규 대표님.”

“네.”

“오대 오라고요?”

“네.”

“이미 그 말부터가 우리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직 모르시겠습니까?”

“······.”

“우리는 9대 1. 최악의 경우라도 6대 4 정도의 비례는 나오고 있습니다. 5대 5의 수익을 만드는 것이 그들 관점에서 성공이라면 GF에서는 실패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아···!”

“그러니 작은 국내 시장 점유율에 목매는 다른 회사처럼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갑시다. 아셨죠?”

사람의 사고방식이 변하는 게 이토록 어렵다. 국제적으로 놀자고 자주 강조하는 데도 이토록 더디게 변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니 하는 수 있으랴, 반복 학습으로 계속 주지시켜줄 수밖에 말이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 게임이 어떤 호응을 얻는지 봅시다.”

근심걱정을 털어낸 이들이 자리를 이동했다.

*

이제 곧 있을 사이버 쇼크의 발표를 맡게 될 김현섭 실장은 얼마나 긴장을 한 건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것 같아 보였다.

“저기··· 회장님. 이거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입술이 바르르 떨릴 지경이다. 한껏 기대하고 환호해줄 마음의 준비가 잔뜩 된 관객을 보면서도 저러는 걸 보면 담이 약한 사람 같기도 했다.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습니까? 그냥 가서 ‘우리 게임은 이렇게 훌륭합니다! 빨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으시죠? 저기 데모를 플레이할 수 있는 기기가 준비되어 있으니 발표가 끝나고 재미있게 즐겨 주십시오! 출시 후에 재빨리 구매해 주시고요!’ 이렇게 하고 오면 끝인데요.”

“그게··· 저희가 이런 게임은 처음 만드는 거라서······.”

“그래서요? 우리가 언제는 만들었던 게임을 또 만들고 그랬습니까?”

나는 욕심이 많다. 그 욕심 때문에 지금은 기존 게임의 후속작보다 새로운 IP를 확보하는 것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다양한 게임의 성공을 이루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속편들을 제작하면서 조금 더 여유롭게 게임사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그 탑을 쌓고 있는 중이라서 늘 새로운 도전 위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지만···”

“김현섭 실장님.”

“네.”

“저는 사이버 쇼크가 2006년 최고의 게임이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본래라면 2006년 최고의 게임으로 뽑히는 건 앤 더 스크롤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마이크루에서 ZBox 360을 출시하면서 ZBox의 판매량을 견인할 게임으로 선택받은 이 게임은 개발이 늦어지면서 ZBox의 출시와 시기를 맞추지는 못했지만, 원래의 역할만큼은 지금 톡톡히 해내고 있는 중이다.

“앤 더 스크롤이 벌써 300만 장이나 출하됐다고 하던데요······.”

연초에 출시된 게임이 벌써부터 올해 최고의 게임을 받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 신작을 준비하는 게임사들에게는 그만큼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자신 없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앤 더 스크롤 때문에 우리 게임이 망할 거라면 저 사람들이 여기까지 몰려와서 우리의 신작 발표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그런데. 뭐가 그리 걱정입니까?”

“그게···”

겁먹은 모습에 응원을 보내는 일도 한두 번이다. 계속되면 서로 지칠 뿐이니 이제는 당차게 내보내기로 했다.

“자. 시간 됐습니다. 심호흡 크게 한 번 하고! 가슴에 힘 빡 주고! 출발!”

“네? 넵! 추··· 출발!”

확 떠밀자 강제로 근육에 힘을 주고 걷는 김현섭 실장이 무대에 기묘한 포즈로 올라갔다. 마치 행군할 때 오른팔과 오른 다리가 같이 올라오듯 걸음걸이가 너무나도 어색해서 객석에서는 웃음소리가 벌써부터 터져 나왔다.

그 가운데 연체동물같이 흐물흐물한 자신 없음이 섞여 있으니 정말 대단한 행위예술가의 면모가 엿보인다.

‘괜찮은 양 내보내기는 했는데, 사실 아깝기는 해.’

앤 더 스크롤4가 2006년 최고의 게임으로 꼽히는 건 단순히 재미있는 RPG라서가 아니었다. ‘진정한 오픈월드 RPG가 어떤 게임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가져온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이 게임을 필두로 그전까지 RPG의 주류로 게임계를 이끌었던 일본의 RPG가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게 된다.

‘생각할수록 아쉬워.’

원래는 드래곤 소울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를 바라며 개발했었다. 하지만 액션과 조작감. 그리고 타격감 같은 부분에서는 최고라고 인정을 받으면서도 오픈월드의 진정한 게임성 부분은 조금도 조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만해도 괜찮다.

“애초에 자유도를 외치지만, 사실 진짜 자유도가 높은 게임을 만든 건 아니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그 이상은 욕심이야.”

타이틀을 얻으면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지나간 일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 드래곤 소울은 충분히 성공한 게임이다. 이걸 잘 알면서도 은근히 아쉬운 것을 보면 역시 내가 욕심 많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올해는 파이널 어드벤쳐 12, 파트 오브 워, 앤 더 스크롤4, 링크의 전설 황혼의 공주 정도가 경합을 벌이려나? 아니야. 파이널 어드벤쳐는 빼자. 그건 그냥 많이 팔리기만 했을 뿐 수작으로 인정받을 게임이 못돼.’

그리 생각할 즈음, 사이버쇼크의 테마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시작했군.”

드래곤 소울처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스케일의 음악이 아니다.

재즈 풍으로 만들어진 사이버쇼크의 테마곡은 밝고 경쾌한 느낌 가운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게 만드는 곡이다. 관객들은 그 덕분에 묘한 긴장감 속에서 영상에 더욱 집중했다.

[분위기가 샤이닝 로드랑은 완전 딴판인데?]

[샤이닝 로드 후속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신작인가 봐.]

[에이. 난 팬더그램의 신작이라기에 샤이닝 로드를 기대하고 왔다고!]

일부 관객들은 팬더그램의 간판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샤이닝 로드의 신작을 내놓으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그런 그들조차 영상이 주는 묘한 분위기에 점차 빠져들고 있었다.

[어딘가 좀 으스스한 느낌이 들지 않아?]

[그러게 팬더그램은 밝은 게임을 만드는 회사잖아? 분위기도 밝은데 왜 이렇게 으스스하냐?]

밝고 명랑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라는 오해. 그리고 그 착각을 이용한 반전을 더더욱 노린 게임.

사이버 쇼크는 호러의 장르에 포함될 정도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드래곤 소울 그 이상으로 호러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다.

『1945년. 전쟁이라는 거대한 악마에게서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평화를 되찾은 인간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그 숫자가 증가했고, 결국. 세상은 더 빨리 종말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렇다.

평화라는 달콤한 향기에 취한 인간들은 결국 스스로를 무너트리고 세계는 멸망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불안전한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가 있는 낙원을 만들어야만 했다.

생존을 위해······.』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고 그곳에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인물, 매튜 게이트먼.

그의 독백과 함께 영상은 평화롭고 즐거운 현실과는 동떨어진 정말 아름다운 세계를 비추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테마곡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 덕분에 이 묘한 평화가 더욱 불안하게 느껴졌다.

[팬더그램이 이 정도로 그래픽이 좋은 회사였나?]

[왜? 샤이닝 로드도 그래픽 좋았잖아?]

[그래도 드래곤 소울에 비하면 그래픽도 아니었잖아. 근데 지금 이거 봐.]

[하긴. 전작이랑 비교하면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좋긴 하다.]

[근데 이렇게 아름다운 게임에 배경음이 왜 이래?]

[그러게. 뭔가 튀어나올··· 으아악!]

[히익! 뭐··· 뭐야?]

그리고 저들의 실체 없던 불안감이 드디어 실체를 갖추었다. 거대한 스크류 드라이버를 들고 있는 괴상한 모습의 괴인들이 영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 넓은 세계를 보라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