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급 시계 >
[우와······]
[어떤 의미론··· 대단하네···]
[어마어마해···]
이 양반이 어떤 양반이냐면 과거 닌텐두가 정점에 있던 시절에 ‘닌텐두의 이전 콘솔이 성공했으므로 이번 콘솔도 성공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에 엄청난 반발을 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간이 지금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도 다 까먹고 똑같은 소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서 있는 자리가 바뀌면 사람도 달라진다는 말은 명언이었다.
‘경영인이야? 정치인이야?’
아무튼 두 번의 불편한 질문 때문일까.
쿠사나기 켄은 더 이상 내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만세를 부르고 난리 치지 않는 바에야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리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하필 그쪽에 열혈기자님 한 분이 계시네?’
자고로 열성팬을 실망시켰을 때가 무서운 거다. 게임 스테이션에 기대했던 인물인지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쿠사나기 켄을 보며 손을 들고 있었다.
「큼. 크흠. 네, 거기 손드신 분. 질문 딱 한 가지만 받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목받은 기자의 입이 열렸다.
그는 내가 말한 가격 부분은 충분히 대답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부분을 건드렸다. 그리고 그 질문 역시 내가 꼭 나오길 바랐던 질문 중 하나였다.
[게임스테이션3의 컨트롤러를 보니 작년에 발표했던 컨트롤러의 형태가 아니라 게임스테이션2의 컨트롤러와 비슷한 형태로 돌아왔더군요. 그 이유가 있습니까? 혹시 제거하겠다고 하셨던 진동 기능이 다시 돌아온 겁니까?]
「진동은 구시대의 유물일 뿐입니다. 그것을 다시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젠장.]
[그걸 왜 빼냐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진동기능을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못을 박아 버리는 쿠사나기 켄의 태도는 안 그래도 가격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일부 기자들은 소미의 콘퍼런스는 가치가 없다고 느낀 것인지 일찌감치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ZBox가 차세대 기종으로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 상태다. 닌텐두의 vvii는 같은 7세대라고는 하지만 모션센서가 중심이 되는 장르가 다른 게임기다.
그런만큼 게임업계의 관계자들은 이번 게임스테이션3 발표에 누구보다 크게 집중하고 있었다. ‘이미 선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ZBox의 자리를 절대 강자인 게임스테이션이 누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을 일찍부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뜨거운 전쟁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한쪽의 자폭이었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정말 맥 빠지는 상황이다.
이런 걸 본인만 모르는지 쿠사나기 켄 사장은 정치인처럼 말을 잇고 있었다. ‘게임스테이션3는 기존의 콘솔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성능을 가졌다’를 적극적으로 피력하며 말이다.
‘쯧. 케케묵어도 정도가 있지.’
과거 게임스테이션2가 드림퀘스트와의 경쟁에서 그들을 침몰시킬 수 있었던 방법.
말도 안 되는 과장을 통해 자신들의 신규기기가 엄청난 성능을 발휘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거였는데 이 방법을 이번에도 똑같이 쓰고 있었다. 그러나 빤히 보이는 게 저 모양인데 그 말이 먹힐 리 있으랴.
소미에서 강조하고 있는 성능의 자랑은 게임스테이션2 성능의 1,000배, 게임스테이션2 능력의 35배, ZBox 성능의 2배였다.
그들의 말처럼 CPU의 부동소수 연산능력은 ZBox360의 두 배에 가까운 성능을 보인다. 하지만 사실상 그 차이로 보여줄 수 있는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즉,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다.
일반인 입장에서는 ‘둘 다 3.2GHz의 CPU를 가지고 있고, 게임스테이션은 원코어, ZBox는 쓰리 코어니까 ZBox가 더 좋네!’라고 느끼는 게 오히려 더 쉽다.
그리고 가장 황당했던 거짓말은 이것이다.
「게임스테이션3는 120의 프레임을 고정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쿠사나기 켄은 ‘120프레임!?’ ‘그게 가능해?’ ‘이게 진짜라면 정말 대단한데?’와 같은 반응이 나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120프레임이라니. 그게 말이 되냐?]
[60프레임도 유지 못 할 게임이 태반일 텐데.]
[터무니없는 소리도 적당히 해야지. 지금이 무슨 드림퀘스트와 경쟁하던 그때 그 시절인 줄 아나?]
[이건 그냥 미친 거야. ZBox는 작년부터 게임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는데 출시 게임도 적은 게임스테이션3를 누가 그 가격에 사겠어?]
과장이나 그런 것들은 결국 콘솔 자체에서 만족도만 준다면 어떻게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버린 지금, 벌써부터 기자들은 ‘7세대 콘솔 시장의 승자는 ZBox가 차지했다’라는 이야기로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결국 이전과 같은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쿠사나기 켄 사장은 소미가 가진 최대의 무기인 소프트로 지금의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서 재빨리 소프트 소개로 넘어갔다.
「게임스테이션의 새로운 기능! 모션 센서! 새로운 게임의 세계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코미디였다.
[모션센서?]
[미친 거 아니야?]
[대놓고 따라 하는 거야?]
[와··· 지금까지 이런 건 아무 말도 없다가 E3에서 이렇게 발표하는 거야?]
심지어 자랑스럽게 공개한 모션센서의 게임들은 정말 말 그대로 최악이었다. 시연자들은 마치 진짜 스포츠를 하듯 직접 소리를 내면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점입가경일 따름이다.
[어휴. 흔드는 놈 혼자만 신났어.]
시연자들은 엄청 열정적이다.
그러나 그냥 그뿐이었다.
[저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딱 연기하는 건데? 그것도 되게 못하는 연기.]
알버트가 고개를 저을 만큼 시연자들은 게임 시연이 아닌 졸작으로 만들어진 막장 연극무대를 선보였다.
[아무도 호응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니.]
[소미의 10년 팬 입장에서 이건 좀 가슴이 먹먹해······.]
[내 소미는 이런 게 아니라고···]
애착만큼의 화가 치솟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막장 콘퍼런스를 이어가고 있는 중간에도 여전히 소미를 지지하는 팬들은 씁쓸히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나 쿠사나기 켄은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보다.
「게임스테이션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출시가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위기를 이겨내고 늘 승자의 자리에 앉은 것은 우리 게임스테이션이었죠.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게임스테이션3를 구매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할 것입니다.」
‘대단하다. 대단해.’
사실 콘솔이라는 것 자체가 저렴한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콘솔을 구매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는 소비자’라는 표현은 이 시대에 그렇게 빈축을 살 표현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나 문제는 599달러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지들이 비싸게 내놓고서는 우리 제품을 사려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가져다 바쳐라 뭐 이런 거야?]
[우우! 우우-!]
[악덕기업이다! 악덕 기업 소미!]
[꺼저라! 우우-!]
엄청난 야유.
그러나 소미 역시 바보는 아니다. 저들은 이런 것들에 익숙한 베테랑들!
상황이 좋아질 경우와 나빠질 경우를 모두 대비해 두었고 재빠르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우리의 새로운 게임인 겐죠 : 데이 오브 블레이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은 차세대 콘솔만이 아니다. 차세대 콘솔에 어울리는 게임 역시 초유의 관심사였다.
소미는 빠르게 자신들이 준비한 게임으로 시선을 돌린다.
「겐죠 : 데이 오브 블레이드는 진짜 일본의 역사를 기반으로 제작 된 게임입니다. 여러분은 이 게임을 통해서 일본의 고대 전쟁에 참여하는 무사의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영상은 참으로 잘 뽑았다. 야유를 찍어 누르는 그래픽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알버트가 이번에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식. 내가 지금 귀로 들은 거랑 눈으로 보는 거랑 뭔가 안 맞는 거 같아서 하는 질문인데··· 저 게임이 분명 진짜 일본 역사를 토대로 만든 게임이라고 했었지?]
[그랬지.]
[그럼 일본은··· 대괴수로부터 세계를 구원하고 있던 국가인 거군.]
처음에야 그냥 일본 사무라이의 미화를 극에 이르게 만든 게임으로만 생각하고 사람들이 새로운 게임에 관심을 조금씩 보였지만 결국 이 게임은 엄청난 비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 상황은 겐죠라는 게임 트레일러 속에서 등장한 하나의 몬스터 때문에 발생했다.
실제 역사물이라고 열심히 떠들어댄 게임 속에서 건물 사이즈의 거대한 자이언트 크랩이 등장한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일본은 지구가 아닌 저 머나먼 차원에서 넘어온 다른 종족일지도? 박물관에 가면 저 갑각류의 껍질을 볼 수 있겠지? 한국은 어때? 이웃나라의 몬스터를···]
[그만하고 일어나자. 마이크루 하는 거 보러 가야지.]
파이널 어드벤처의 실기 영상이라도 있었으면 모를까. 그저 시네마틱 트레일러만 공개되었다는 건. 진짜 개발된 게임은 언제쯤 출시될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사람들도 슬슬 소미의 콘퍼런스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았고, 여기저기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고 있었다.
부스에서 나온 알버트는 장난기를 쏙 빼고 솔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업계 1위라더니 이건 뭐 처음부터 끝까지 엉성하기만 하고··· 소미라는 기업에 실망만 하게 되네.]
[그런데 유명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들이 소미와는 관계가 좋거든. 그래서 결국 그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때문에 1위를 유지하지. 소미가 잘해서가 아니라 게임 제작사가 잘해서 유지되는 거야.]
[그래서 콘솔을 안 만드는 거구나?]
[글세?]
[에잇! 맞으면 맞는 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글쎄는 또 뭐야? 아, 됐고! 마이크루 보러 가기 전에 간식 먹자. 저기, 저거. 핫도그 먹자!]
얼토당토않은 것을 보며 머리마저 텅텅 빌 것 같은 속을 음식으로 채웠다.
역시 먹으니까 기운이 난다. 자동차에 기름이 들어가듯 사람 역시 음식물을 채워야 잘 굴러간다.
오후 2시. 마이크루의 콘퍼런스가 시작됐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ZBox 360의 기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한 게임. 여러분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게임.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그 게임! 여기까지 말씀드리면 어떤 게임인지 다들 예상하고 계시겠죠? 다 같이 불러 볼까요?」
[테일로!]
[테일로!]
[테일로!]
[드래곤 소울!]
···마지막은 결코 내가 말한 게 아니다. 어딘가의 눈치 없는 기자가 크게 외친 거다.
정말로 내가 심어두거나 마음의 소리가 바깥으로 나온 게 아니다.
아무튼 중간에 기대와 다른 게임의 이름이 하나 들어갔지만, 사회자는 못 들은 척하며 테일로의 트레일러를 보여주었다.
마땅히 기대했던 엄청난 호응이 돌아왔고 곧 성공적으로 콘퍼런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알버트 역시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미와 비교되네. 훨씬 차분하고 안정적이야. 그리고 이 게임도 인기가 엄청 많은 거 같네?]
[그럴 만도 해. 테일로는 ZBox의 구원자와도 같거든.]
[구원자?]
[ZBox는 테일로를 하기 위해 사는 콘솔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야.]
[우리 회사 게임은?]
[테일로 하나만 보고 사는 사람들 말고 다른 게임도 있나 확인할 때 꼭 끼워 파는 정도?]
사실 ZBox에서 경쟁할 게임이 거의 없다 보니 판매량으로는 드래곤 소울이나 테일로나 막상막하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내가 알버트에게 물러서듯 말한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퍼스트 파티니까 아무래도 홍보를 통해 이미지를 굳히고 있는 거라서 이건 어쩔 수 없지.’
우리는 제 삼자고 테일로는 ZBox 소속인데, 저들이 누굴 더 밀어주겠나?
그 차이가 있기에 ZBox의 상징적인 게임은 누가 뭐라고 해도 테일로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테일로는 원래 이렇게 급히 발표할 생각이 아니었던 거 같군.’
마이크루 입장에서도 오늘 발표될 게임스테이션3가 많이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오늘 시연까지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테일로를 준비해온 것 같은데, 저들 역시 지금은 크게 아쉬워하고 있을 것이다.
게임스테이션이 저렇게 자폭할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천천히 했을 테니 말이다.
하긴, 소미가 저렇게 자충수를 둘지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 사이 기자들의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게임스테이션, ZBox, vvii 세 가지 콘솔 중에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콘솔이 어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게임스테이션3? 그걸 왜 삽니까? 599달러로 한 대 살 바에는 ZBox와 vvii 두 개를 다 사세요. 그냥.」
마이크루 콘퍼런스의 하이라이트였다.
이로서 소미는 또 1패를 적립했다.
< 고급 시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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