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33화 (333/577)

< 고급시계 >

막이 내려지고 난 뒤 재평가받은 영화가 섞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100%의 타율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내가 100%의 선구안을 가졌다고 명성이 자자해진 것은 실패한 작품들이 전부 소액투자라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를 거론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영화는 잘 만들어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입니까?]

‘당연하지.’

그 정도 눈치는 있는 모양이다. 나는 설득하기 위한 미끼를 던졌다.

[우리가 영화의 실패를 대비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그게···]

[2차 상품으로의 가치라도 있어야 영화가 망한 후에라도 회복할 여지가 생기는 겁니다.]

[하지만, 회장님. 지금 저희 상품 중에서 2차 상품으로의 가치가 높은 것들은 다들 타 회사로 영상판권이 넘어갔습니다.]

가장 큰돈이 되는 스파이더 가이를 비롯한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캐릭터들 중에서 골라야죠. 이제 우리는 장난감 가게와 연계해서 이벤트를 할 겁니다.]

[이벤트요?]

[아이들이 가장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고르라고 하는 거지요. 라이언 맨, 캡틴 실드, 천둥 군주. 이렇게 세 개의 슈퍼히어로를 두고 ‘어떤 장난감이 가장 가지고 싶냐’고 물어보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뽑힌 장난감이 우리의 이번 영화 주인공입니다.]

이건 원래 바벨에서 생각하고 결정했던 방법이다.

애초에 아이들은 무언가 변신하거나 로봇이라거나 그런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법이다. 그런 것들을 극복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캐릭터는 영화로 만들 수 없으니 라이언 맨이 아닌 다른 것이 걸리는 불상사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찍어누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말씀이지.’

강압적으로 지시하여 이루는 성공은 이루더라도 불만이 쌓일 수 있으니 이것마저도 해소하는 최적의 결과물이라고 자부한다.

‘이거야말로 부드러운 카리스마. 따뜻한 리더십이지~!’

나만큼 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부드럽게 소통하는 회장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리고 제가 분명히 지시를 내렸던 거 같은데요? 일단 제게 먼저 보고를 하시라고?]

[그게···]

머뭇머뭇하는 케인 파이기에게 긴장 풀라며 웃어 보였다.

[의견이 합쳐지면 그때 보고하려고 했겠죠. 맞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의견 충돌이 있다는 사실까지 보고받기를 원합니다. 아시겠지요?]

[네!]

[파이기 사장. 저는 당신을 믿고 충분한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에 맞게 일 처리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경직된 기색이 풀리지 않는 것을 보면 친해지기 위해서는 만남을 더 자주 가져야 할 것 같다.

케인 파이기 사장과의 대화를 마친 후, 다시 최종인 대표와의 시간을 가졌다.

“이야기는 잘되셨습니까?”

“애들이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뭔지 투표하게 해서 그거로 고르라고 했습니다.”

잠시 고개를 갸웃했던 그가 이내 손뼉을 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수가! 정말로 훌륭한 방법입니다!”

‘사실 경쟁자들이 다 떨어져 나가서 가능한 방법이지.’

솔직한 말로 판권을 바벨이 전부 가지고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라이언 맨이 아니라 거미나 덩치의 장난감을 선물 받고 싶어 할 테니까. 단지 라이언 맨이 선택받는 건 캡틴 실드나 천둥 군주보다는 변신 로봇이 훨씬 나아서였다.

‘이를 고차원적으로 표현하면 상대성원리라고··· 하면 안 웃기려나. 회장님 개그니까 다들 웃어주기는 할 텐데.’

아무튼, 정말로 그걸 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아있는 고만고만한 애들 중에서 괜찮은 장난감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토록 매력 없는 캐릭터인데도 라이언 맨이 대성공을 이루게 된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지.’

라이언 맨의 캐릭터 빨은 그다음에 생겼다.

“아마도 아이들은 라이언 맨을 고를 겁니다. 그러면 영화는 라이언 맨으로 정해지는 거죠.”

“이미 어떤 거로 영화를 만들지 다 정해두신 상태셨군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내가 무언가 지시를 하려는 것을 느낀 최종인 대표가 진중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라이언 맨의 1년 판매량이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2만 부 정도 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네. 심각하죠.”

본래도 바벨 최고의 인기 캐릭터였으며, 최근 영화의 흥행으로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스파이더 가이는 한 달에 20만 부가 팔린다. 그런데 라이언 맨은 고작해야 1년에 2만 부가 조금 안 되는 수준으로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밀립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아는 사람이 없는 캐릭터예요.”

“무언가 방법이 있으신 겁니까?”

물론이다. 그리고 본래 바벨에서 했던 방법이니 확실하게 성공하는 보증수표이기도 했다.

“넷플렉스 애니메이션을 제작해야겠습니다.”

“애니메이션이요?”

“15분짜리 8편이면 됩니다. 너무 퀄리티가 좋을 필요도 없어요. 적당한 퀄리티로 8편입니다.”

“주인공이 라이언 맨 이고요?”

“그렇죠.”

어떻게든 라이언 맨 이라는 캐릭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작전이다.

“마이코닉스에서 제작하고,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바벨 코믹스에서 도움을 받으세요. 중요한 건 도움만 받는 거고 제작은 마이코닉스가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마이코닉스가 주체적으로 제작한다’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이유는 바벨이 영화는 잘 만들지만 그 외에 TV시리즈나 애니메이션은 폭망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기 때문이었다.

‘참 이상하지.’

원래도 코믹스가 메인인 회사인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을 정말 못 만든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엄청 공들여서 좋은 퀄리티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스토리와 액션은 좋게 만들되 굳이 그 퀄리티가 대단할 필요는 없어요. 속전속결이 중요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최종인 대표와의 이야기를 마쳤지만, 성공을 위한 조치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는 다시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지도가 떨어진다면 강제로 그 인지도를 가지게 해주면 돼.’

올해 안에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인디게임 수준으로라도 라이언 맨 게임들이 쏟아지게 할 것이다.

GF는 충분히 그럴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133. 고급시계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멀리서 볼 때는 무한히 복잡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차분하게 바라보면 단순한 조각들의 이어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 보면 단순한 사건들이 고리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이다.

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추진하고 있는 바벨의 신작 영화가 라이언 맨으로 결정하는 작은 매듭을 지었고 이제 그 줄이 다음의 얽힘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우왕좌왕하다 보면 복잡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저앉는 것이지만 잘 대응하면 잘 짜인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게 된다.

지금의 얽힘 중 가장 큰 논란이 생기고 있는 부분은 배우 캐스팅에 내가 직접 관여하겠다는 의향을 보인 부분이었다. 이 목소리를 곽지원 부사장이 내게 전달해 주었다.

“회장님께서 직접 캐스팅을 한다는 것 때문에 영화사에서 말이 굉장히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케인 파이기에게는 사장이라는 타이틀만 달아주고 아무런 권한도 없는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답니다.”

‘괜한 오해를 하고 있기는. 쯧.’

BCU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착실하게 설계가 된 것이 아니라 꽤 어설프게 시작한 것이 대박을 터트리는 바람에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고 이후에 그것을 아주 훌륭하게 연결해서 성공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하려는 건 이들이 그 초반에 하게 되는 어설픈 것들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려는 것이다. 안타까운 실수를 범한 게임들을 다잡으며 더 큰 성공을 이루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진심은 역시 마음만으로 전달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논란이 일어난다면 방법을 바꿔야겠지.’

첫 영화로 라이언 맨을 선택할 때 강압이 아니라 마치 투표를 통해 선택하는 모양새를 만들었듯, 이번 캐스팅 역시도 저들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방법이 있었다.

“하는 수 없군요.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나온 마당이니 제가 가서 깔끔하게 풀고 올 수밖에요.”

“아무래도 미국은 한국이랑 비교해서 사람을 다루는 게 쉽지 않죠?”

“그러네요.”

한국이라면 이런 거로 딱히 사내 논란이 일어나거나 하지 않았을 거다. 미국이니까 일어나는 문제다.

‘덕분에 마일리지는 풍족하게 쌓이는군.’

비행기가 택시 수준으로 정말 익숙해진다.

*

[반갑습니다. 이번에 바벨을 인수한 GF 그룹의 오너, 윤태식입니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바벨의 영화를 위해서 모인 바벨 영화 제작위원회 멤버들이다. 바벨의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모인 인원이니만큼 바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인원들로 채워져 있었다.

[제가 ‘캐스팅에 관여하겠다’라고 말한 부분 때문에 큰 우려를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래서 이렇게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굳이 이렇게 자리를 만드셨다는 것은 저희의 소문이 오해라는 겁니까?]

부드럽게 시작하려고 했는데 저들의 반응이 제법 예민했다.

‘이봐요. 이러면 나도 마음 상한다고.’

두루두루 원만하게 해결할 생각이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대놓고 숙여주다가는 무시당하기에 십상이었다. 나는 살짝 태도를 바꿔서 단호하게 대응했다.

[오해는 없습니다. 전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군요.]

정말로 일어나려는 기색이었다. 이건 대화 의사가 전혀 없고 자신들의 주장만 받아들이기를 강요하는 모양새와도 같았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직이 말했다.

[여러분은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요.]

[착각이라니요?]

[바벨의 영화 제작 위원회는 영화 시나리오의 완성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그게 아니다 싶을 정도군요.]

애초에 이들과 캐스팅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중에서 캐스팅에 관계가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케인 파이기 혼자다. 이런 내 말에 저들이 아니라며 대꾸했다.

[원작의 느낌을 영화에 살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그렇다면 원작과 가장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 것 역시 저희의 역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견 타당한 의견이기는 하다. 그러나 마냥 수긍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라이언 맨은 본래 1996년에 영화로 만들어질 계획이었지. 그것도 저예산으로.’

대관절 무슨 생각으로 그런 계획을 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라이언 맨의 초기 구상은 진짜로 저예산 영화였다. 이게 왜 얼토당토않으냐면 여타 히어로맨들과 달리 라이언 맨은 하이테크 히어로라는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미래적이고 첨단을 달려야 하는데 예산은 확 줄이고 시기마저도 한참 컴퓨터 그래픽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시대였었다.

‘기구한 흐름은 여기서 그치지 않지.’

다행스럽게도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계획이 엎어지고 20세기 맥스가 영화의 판권을 이어받아서 2000년대 초에 제작을 계획했었다. 그리고 당대 최고 흥행 배우 중 하나인 콘 크루즈가 토리 스타키의 배역을 맡기로 하면서 영화로 제작이 될 뻔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차했던 이력이 있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굳이 이 이력을 떠올리는 이유는 저들의 판단 기준으로는 원작에 가장 어울리는 배우를 찾는다면 무조건 콘 크루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코믹스로 출간되는 라이언 맨의 얼굴이 죄다 콘 크루즈를 빼다 박았으니까.’

원작과의 일치율이 우연하게도 딱 맞아떨어졌다?

애석하게도 그게 아니었다. 이건 과정과 결과가 바뀐 거다.

당시에 라이언 맨의 주역으로 콘 크루즈를 낙점한 이후부터 코믹스는 대놓고 콘 크루즈의 얼굴로 라이언 맨을 찍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괜히 개입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놔뒀다가는 우리 알버트 다우니 주니어 배우는 아예 나가리가 되어버린다고.’

성공하는 미래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팬심으로서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 고급시계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