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31화 (331/577)

< 미디어 네트워크 >

마이코닉스와 합병한 넷플렉스는 이제 바벨보다 한참이나 비대해진 자본 규모를 가지고 있는 회사다. 나름대로 명성을 얻고 있던 회사라서 합병이 꽤 알려진 상태였기에,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이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다.

‘심지어 우리와 만나는 자리이니 조사를 안 했을 리가 없··· 어라? 뭐야. 모르는 척이 아니라 진짜로 모르는 기색인데?’

뚱한 표정으로 자료를 넘겨보던 담당자들의 얼굴이 차츰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이 변화가 대놓고 드러나는 정도라서 정말로 이들이 넷플렉스와 마이코닉스의 합병. 그리고 최근 넷플렉스의 성장세 등에 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진짜 미국 패권주의 때문이냐? 아시아는 깡그리 무시하는 거였어?’

이 자리에 있는 투자사들은 돈이 흐르는 것에 관한 정보라면 세계 최고의 정보망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를 듣도 보도 못한 잡놈 수준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지금 상황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면 무슨 이유가 있으려나··· 젠장. 내 생각이 맞건 틀리건 그게 지금 뭔 상관이겠어.’

나중에는 중요한 요소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더 중요한 바벨의 인수합병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로소 핀잔이 가신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섰다.

[넷플렉스가 이전과 다르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이유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군요. 오히려 지분율만 떨어지니까 바벨에 대한 지배력만 더 내려가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투자를 통해 이득만 보면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여러분은 기업을 지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투자자들로 알고 있었는데요?]

[그거야 사업이 잘될 때 이야기지요. 사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우리가 가진 지배력이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면 합병을 한다고 해도 20% 수준입니다. 절대로 그 힘이 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말씀하신 대로 사업이 잘될 때에는 힘이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미국인들은 알지 못하는 한국의 프로그램 흉내를 내며 말을 잠시 끊었다.

‘이것이 알고 싶다라고 너희는 전~혀 모르겠지.’

별일도 아닌데 괜히 으쓱해진 기분으로 말했다.

[과연 바벨의 사업이 앞으로 잘 될까요? 그들은 영화에 대한 경험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심지어 인기 있는 캐릭터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넷플렉스는 경험과 능력, 인기 있는 캐릭터를 두루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물론입니다. 아시겠지만 넷플렉스가 보유한 마이코닉스는 세계 2위의 성적을 내는 애니메이션 회사입니다. 게다가 컴퓨터 그래픽에 관련된 기술력도 세계 최상위라 자부하고 있지요.]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는 비슷하지만 또 완전히 다른 장르입니다.]

[바벨이 보유한 캐릭터들은 슈퍼히어로입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과연 정말로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영화는 점점 컴퓨터 그래픽의 비중이 엄청나게 높아진다. 결국,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 사이의 벽이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이들 역시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일리가 있습니다만, 실패에 대해 과장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군요.]

[글쎄요. 바벨의 영화가 흥행에서 실패하면 어떻게 될까요? 몇 번의 실패 후에 영화를 완전히 포기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더 도전했다가 회사가 넘어질 겁니다. 그러나 넷플렉스는 영화가 실패한다고 영화 제작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째서죠?]

[고작 영화 몇 편 만들어내는 거로 무너질 자본도 아니고, 실패한 영화라도 꾸준히 스트리밍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을 이미 보유하고 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우리는 영화로 수익을 내기보다 넷플렉스의 고객을 더 크게 확보하고자 영화를 제작하는 겁니다.]

투자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리스크다. 그리고 넷플렉스는 그들에게 바벨과 비교해서 최악의 상황에도 자신들의 투자금이 휴짓조각이 되는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저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짧게 흔들며 의사를 나누었다. 뒤이어 담당자가 내게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측은 수락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입니까?]

[우선 경영권을 먼저 보유하세요. 그리고 합병은 본래 주가를 회복한 후에 진행하도록 합시다.]

바벨의 주가가 내려가고 합병을 할 경우 이들이 가질 수 있는 넷플렉스의 지분이 그만큼 적어지게 된다. 기왕이면 넷플렉스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건 승낙해야겠지.’

하지만 무조건 ‘오케이!’할 수는 없다.

[완전한 회복은 얼마나 걸릴지 모릅니다. 영화를 제작하고 그것이 개봉한 후에 수익을 내는 과정까지 너무 오래 걸리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안 된다는 겁니까?]

[85%로 합시다. 본래 주가의 85%까지 회복 후에 합병하겠습니다. 또한, 분명히 말씀드리는 데 넷플렉스는 지금 아주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70%에 합병하더라도 충분히 이득입니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후에도 여전히 고민을 하는 얼굴.

결국, 다시 나와 눈을 마주친 그 담당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우리는 이 건에 대해서 찬성합니다.]

가장 먼저 찬성표를 던진 곳은 모반 스탠리. 바벨에 대한 지분율은 낮은 곳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회사들보다 큰 규모를 자랑하는 투자은행이다.

[저희도 찬성합니다.]

그런 모반 스탠리에서 찬성표를 던지자 다른 투자사들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듯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런 조건을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겠군요. 좋습니다. 저희도 찬성하도록 하죠. 대신에 바벨을 확실히 인수한다는 계약은 하셔야겠습니다.]

우리가 바벨을 인수하지 않으면 문제로 삼겠다는 건데, 이건 전혀 상관없다. 나는 진심으로 세상 그 누구보다 바벨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서로 만족스러운 대화를 마친 우리는 처음의 딱딱한 분위기는 완벽하게 걷어내고 마지막으로 악수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일으킨 강력한 바람은 바벨 엔터프라이즈를 그대로 강타했다.

***

[제이콥! 제이콥!]

[왜? 무슨 일인데 이른 시간부터 난리야?]

바벨 엔터프라이즈의 회장실의 문을 이렇게 예의 없게 열고, 들어오자마자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제이콥 펠무터의 오랜 동료 하비 하라드다.

하품마저 하며 주는 핀잔에 그는 웃어넘기지 못했다.

[큰일이야!]

창백한 낯빛으로 다급히 말했다.

[대출받은 모든 은행에서 전부 대출금 납부 연장을 거부했어. 심지어 원금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곧 독촉이 시작될 거야!]

[뭐?]

제이콥은 갑자기 한기를 느꼈다. 정신을 바짝 차린 그가 되물었다.

[그놈들이 갑자기 왜?]

[그걸 모르겠으니까 더 큰 일이지!]

[···빌어먹을!]

GF의 넷플렉스와 투자사들 간의 협약이 기분 좋게 마무리된 만큼. 그들은 발 빠르게 바벨의 모든 자금 흐름을 막아버렸다. 당연하게도 직격타를 맞은 그들은 속수무책일 따름이다.

[그래도 우리 아직 그거 갚을 돈은 있지?]

[무슨 소리야? 우리한테 돈이 어디 있어! 완전히 씨가 말랐지!]

[뭐야? 너! 그렇게 영화를 직접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영화 몇 편 망한다고 문제가 생길 일 없다고 그러더니! 이제 와서 뭐? 씨가 말라?! 영화를 제외하고 벌어들이는 수익이 얼만데 씨가 말랐다는 거야!]

[그··· 그건··· 은행들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을 못 했으니까 한 말이었는데···]

도저히 분을 삭일 수 없었기에 얼굴이 활화산처럼 타오른 펠무터였지만, 지금 하라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대로 하라드와 드잡이질을 한다고 답이 나올 것은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은행에 찾아가서 상황을 파악해야만 했다.

[하라드! 일단 직원들 입단속 시켜! 이거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하란 말이야!]

[아··· 알았어······.]

펠무터는 대충 슈트를 챙겨 입고 은행으로 바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었다. 담당자들은 이전처럼 반갑게 그를 맞아주지도 않았고 도대체 왜 이렇게 단체로 자신을 압박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자금 압박에 대한 소식이 빠르게 월가에 전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자금이 막힌 기업!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은 재빨리 바벨의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바벨의 주가는 빠르게 떨어지고 말았다.

해결책은 없었다.

“젠장! 어째서 갑자기 이러는 거냐고!”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지만 그는 이 의문마저도 해소하지 못했다.

그리고 윤태식이 때를 노려서 움직였다.

“지금까지 얼마나 떨어졌지요?”

“20% 정도 내려갔습니다.”

슬슬 기다리던 때가 왔다.

“좋군요. 헤이스터스 대표에게 슬슬 찾아가 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바벨이 윤태식의 존재를 모르도록 숨겨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얼굴을 보여줄 차례였다.

‘기왕이면 인수 협상을 하는 그 직전까지도 몰랐으면 싶었는데, 이건 위험부담이 너무 커.’

가장 맛있을 때를 위해서 뜸을 오래 들이가다는 혹시나 모를 기업이 갑자기 등장해서 바벨을 낚아챌 우려가 있었다. 그래 버리면 말 그대로 죽을 쒀서 개 주는 꼴이 되기에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시점은 지금이 제격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라드 헤이스터스와 바벨.

[뭐? 우리 지분을 다 팔라니! 바벨을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키운 줄이나 알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안 팔면 어떻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방법은 있으십니까?]

[그건······.]

펠무터는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위기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그러나 이성의 소리를 그저 받아들이기에는 돌아가는 상황이 너무나도 억울했다. 회사를 통째로 그냥 넘겨줄 수밖에 없는데 막을 수가 없는 무력감이 가슴을 짓누른 것이다.

그는 목이 찢어지게 높였던 언성을 낮추고 부탁하기로 선회했다.

[이보게. 꼭 인수를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 우리가 증자하고 투자를 하는 건 어떤가? 그러면 우리도 지금의 위기를 회복할 수 있고 또 당신네들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제작해서 맡기면 되는 일 아닌가?]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라드 헤이스터스는 대리인일 뿐 전권을 쥐고 있는 인물은 윤태식 회장이다. 아울러, 그가 아는 윤태식은 결코 이런 불완전한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폭군이지. 전권을 쥐고 흔들어야 만족하는 인물. 문제 아닌 문제점은 그렇게 휘두르는 전권에 능력마저 출중하다는 것이고.’

강력한 카리스마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리더가 뛰어나면 일사불란한 GF식 기업문화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그가 무능하면 피해는 더할 나위 없이 커진다. 다행이랄 점은 그룹의 우두머리가 치매로 골골거리는 연령대가 아닌 전성기의 나이대라는 점이었다.

‘그는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니까.’

생각을 마치며 라드 헤이스터스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증자를 해요? 당신들 투자자들이 그걸 용납할 거 같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영화 몇 편 받아내려고 당신들 지분을 사려는 게 아닙니다. 당신들의 경영이 낡아 빠져서 우리가 체질 개선부터 완전히 다시 하려고 하는 거지.]

[뭐야? 이 사람이! 말이면 다인 줄 알아?]

[이런. 도저히 협상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시군요. 시간을 더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건 아셔야 할 겁니다.]

툭툭.

손목시계를 두드리고는 여상하게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의 가치는 더욱 떨어질 겁니다.]

이로서 그는 자신의 임무를 100% 완수했다.

‘망해가는 회사라서 혹시나 먼저 팔겠다고 나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괜한 생각이었어.’

기실 처음부터 오늘 인수에 대한 협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라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은 어떻게든 거절을 받아야만 했다.

윤태식 회장의 주문이 그러했으니까.

‘만나서 거절을 당하고 올 것.’

앞으로 가치가 더 떨어질 거라는 경고를 전달하고 오는 일 더 멀리 내다보는 포석이다. 이렇게 한 번 경고를 받고 그것을 무시해야 이후의 협상에서 더 떨어진 가격표를 보고 정신적인 타격을 입게 될 테니 말이다.

< 미디어 네트워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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