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28화 (328/577)

< 미디어 네트워크 >

하긴 지금도 넷플렉스나 마이코닉스와의 소통에서 답답할 때가 왕왕 있으니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문제는 더욱 늘어날 것 같았다.

‘확실히 사고가 발생하고 그제야 조율하겠다고 나서면 부담이 더 커지겠지. 지금처럼 애초에 시작할 때 구조를 미리 개편해두는 게 맞겠어.’

역시, 전문가와 경력자는 괜히 우대하는 게 아니다. 내가 몸소 겪을 시행착오를 대폭 줄여주지 않던가.

“다만,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아무래도 구조상 배급사가 가장 위에 있고, 그 아래에 스튜디오들을 배치해야 하는데 이러면 마이코닉스가 넷플렉스 산하의 스튜디오로 들어가게 됩니다.”

곽지원 부사장의 걱정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마다가스칼로 시작하여 히어로 패밀리, 레이서, 마샬 팬더 등 연속으로 홈런 혹은 안타를 치고 있는 덕분에 마이코닉스는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다. 현재 무려 30억 달러에 달하는 가치를 인정받는 상황이다. 반면에 넷플렉스는 많이 쳐줘야 3억 달러 수준의 회사다.

고작 3억짜리 회사가 30억짜리 회사를 밑에 두도록 명령이 내려온다면 불만이 없을 리 만무하다, 라고 그는 우려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내가 자신있게 웃으며 대답할 수 있다.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품는 게 문제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도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네?”

“합치면 됩니다.”

“넷플렉스와 마이코닉스를 합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바로 그거다.

“둘을 합치고 마이코닉스를 자회사로 두는 겁니다.”

이 말에 곽지원 부사장의 표정이 굉장히 어색하게 굳었다.

“회장님. 둘이 합치면 누가 대표가 됩니까?”

“헤이스터스가 해야죠.”

“그럼 지금까지 열심히 회사를 키운 최종인 대표는 기껏 키운 회사를 헤이스터스에게 그냥 넘겨야 한다는 것이 됩니다.”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고민하는 그에게 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회사를 넘긴다니요? 왜 넙깁니까?”

“회사를 합치고 대표는 헤이스터스가 되는 건데 그게 넘기는 게 아니면···”

“넷플렉스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사회는 일종의 원탁 형태로 구성하면 됩니다. 대표는 헤이스터스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사들이 그보다 아래라는 의미는 아니게 되는 거죠.”

“아······.”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고작 10분의 1 규모의 회사 대표와 동등한 입장이 되어야 하는 최종인 대표는 조금 억울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잘 설득해주십시오.”

미래의 성장성을 볼 때 이쪽이 현명한 처사였다.

“지금부터 10년 후에 마이코닉스와 넷플렉스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게 될 거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합병이 화가 아닌 복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는 바로 수긍했다. 당장은 마이코닉스가 훨씬 큰 기업일지 몰라도 이 프로젝트만 성공하면 10년 후에는 반대로 넷플렉스의 가치가 마이코닉스의 10배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모를 사람이 아니니까.

“그럼 저는 이만 기업의 구조개편을 위해서 작업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최종인 대표를 설득하는 부분은 걱정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는 회장님의 지시를 거스를 사람이 아닙니다.”

‘···응?’

잘 설득하는 방식이 회사 이익과 프로젝트의 성공에 따른 보상을 설명해 주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회장님이 시켰음~’으로 끝내려던 거였나 보다.

*

마이코닉스는 온전히 GF에 종속된 회사다.

규모가 상당하고 나스닥에 상장마저도 되어 있으니 계열사로 취급해주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계열사보다는 자회사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그런 만큼 내가 결정한 합병건에 대해 그들은 딱히 큰 불만이나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곽지원 부사장님의 말대로 그냥 내 말을 잘 따라준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당장 몸집이 더 큰 마이코닉스가 이리 나와주는데 넷플렉스라고 다를 수 있으랴.

딱히 업계에서 주목받지도 못하는 회사와 3D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세계 2위의 회사! 규모만 따져도 무려 10배에 달하는 회사와의 합병인데 말이다. 당연히 넷플렉스의 주주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넷플렉스와 마이코닉스의 합병은 아주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정황상 그리 보인다 해도 위로의 한 마디조차 없으면 서운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는 최종인 대표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 결정이 섭섭하지는 않으세요?”

나도 안다. 이미 합병까지 다 끝냈고 한국을 떠나서 LA. 그것도 넷플렉스의 본사 입구에서 할 말은 아니라는 점쯤은 말이다. 그래도 이 선택이 옳으니 다른 도리가 없다.

‘미안함은 별개의 문제고.’

내 물음에 돌아오는 답변을 들으니 괜히 혼자 멋쩍고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제가 섭섭할 게 뭐 있습니까? 회사를 만든 건 저였지만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지도 못했을 회사인 것을요. 거듭되는 성공작품들의 스토리 역시 회장님 아이디어였고 말입니다. 말하고 나니 그때의 아찔했던 기억이 선하게 떠오르네요. 중국 깡패들한테 협박당하려던 바로 그때가요.”

‘대표님.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에요.’

극적인 타이밍에 등장하기는 했었지만, 사실 최종인 대표는 내가 없었어도 뾰롱 뾰롱 뾰로롱으로 대성공을 이루고 회사를 대한민국 1위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만드는 인물이었다. 관심사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아마 지분 역시도 엄청 많이 가졌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30% 정도의 지분은 보유했겠지. 그럼 대충 500억 원대의 규모라고 계산하면 150억의 자산가가 될 테고. 이렇게 성공할 사람을··· 어? 잠깐만. 150억?’

생각하다 보니 빛나는 성공을 내가 가로채어 미안하다는 감정이 한결 가라앉았다.

‘생각보다 별로 안 되잖아. 오히려 나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거고.’

지금 최종인 대표는 마이코닉스의 지분을 2% 정도 보유했을 뿐이다. 꿈속 미래의 비중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 2%는 고작이 아니다. 짱짱하게 잘 나가며 한국이 아닌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만큼 작금의 마이코닉스는 2%만으로도 무려 600억이 넘는 재산가치를 가졌다.

‘에이~ 덜 미안해졌다. 하하하!’

얌체처럼 타인의 성공을 쏙쏙 빼먹는 게 아니라 나와 함께하며 대성공을 이루게 한다는 최초의 취지! 이를 훌륭하게 완수하며 착착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저도 고맙지요. 곽지원 부사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으셨을 테지만, 사실 장기적으로 보면 최종인 대표님이 더욱 크게 올라가실 기회입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럼. 들어가죠.”

비로소 나는 잔 감정을 털어내고 환히 웃었다.

넷플렉스의 본사에서도 내가 하는 일은 자리 잡고 게임을 하거나 웹서핑하는 등의 느긋한 업무가 전부였다.

‘솔직히 이쪽 업무는 정말로 내 분야가 아니잖아. 차근차근 공부해서 미래 지식이랑 껴맞춰야 하는 처지에 이리저리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GF 미디어 네트워크니 미디어 계열의 새로운 구조니 말만 거창했을 뿐, 이런 것들은 내가 직접 지휘를 할 필요가 없었다. 전부 최종인 대표와 라드 헤이스터스 대표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그냥 마지막 결재 서류나 읽어보고 효율적으로 잘 완성되었는지나 파악하면 됐다. 대신 저들이 할 수 없는 오직 나만의 업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당장 어떤 영화사를 흡수하고 어떤 영화를 제작해야 더 큰 이득을 취할 수 있을까?’였다.

‘일반인으로서 그 영화들이 언제 상영되었는지는 알지만, 제작 준비 단계 같은 건 비하인드 스토리로 유명해지지 않으면 일절 몰랐거든. 배우는 알아도 감독이나 제작사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야.’

오늘의 회의 역시도 주요 안건은 이쪽이었다.

[최근 들어서 영화계가 엄청나게 술렁거리고 있다는 것은 이 자리에 계신 분들 전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라드 헤이스터스.

그는 직접 영화를 제작하거나 배급하는 일을 해본 적은 없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 중 가장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다양한 영화와 영화사들의 이야기에 늘 귀를 기울였고 그 덕분에 내 기대 이상의 속도로 지금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잘 나가던 회사들이 줄줄이 넘어가고 또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새로이 회사를 차리고 있는 만큼 다들 새로운 지각 변동이 일어날 거라는 이야기들을 하기는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이 중에 가장 주목받는 영화사는 단언컨대 드리머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드리머스.

꿈속 미래의 지식에 따르면 시간이 흐른 후에는 만년 2인자 타이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회사였다. 일명 애니메이션 업계의 콩 라인으로 유명했는데 꿈속 미래와 달리 내가 활동하는 현재에는 마이코니스에 밀려 3인자의 자리에 앉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라이먼 일병 구하기 같은 명작 영화 제작사로 유명한 상태였다.

‘일단 다른 부분을 다 제쳐두더라도 스티브 필스버그가 만든 회사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잖아. 그런데 여기가 지금 주목받는다고? 지금쯤이면 변신 로봇 시리즈의 첫 번째 시리즈 제작을 시작했거나 준비하는 단계 아닌가?’

지금 이 회의 자리에서 거론된다는 건 드리머스가 현재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얘네가 이즈음에 한 번 망했었어?’

생겨난 궁금증이야 물어보면 바로 해결이 되겠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나만 빼고는 다들 상황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프로젝트를 밀어붙인 장본인인 내가 이런 걸 모르고 있다는 티를 내기가 곤란한 상황인 것이다.

‘궁금한데 참아야 하나?’

슬쩍 눈치 보고 있을 때 최종인 대표가 말했다.

[드리머스는 기업 규모가 마이코닉스와 비슷한 수준의 메이저급 회사입니다. 덩어리가 너무 커요. 게다가 애니메이션 부분은 우리가 딱히 탐낼만한 회사도 아니라고 봅니다.]

라드 헤이스터스 대표가 고개를 저었다.

[작년에 개봉한 영화의 참혹한 실패 덕분에 영화와 애니메이션 부분은 이미 갈라졌습니다. 영화 부분만 따로 챙기면 됩니다.]

‘나이스. 그렇게 된 거였군.’

다행스럽게도 이 말을 통해 지금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드리머스는 이 시기에 한 번 망했었던 게 맞는 모양이다. 내가 라드 헤이스터스 대표에게 물었다.

[좋군요. 혹시 문제가 될 사항 같은 건 없습니까?]

[있습니다. 현재 파이어컴에서 선수를 친 상황이며 사실상 거의 협상이 완료되어 가는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이어컴은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내에 꼽히는 미디어 그룹이다. 이런 기업과 인수전에서 경쟁하면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더 많다.

[파이어컴에서 이미 눈독을 들였으면 꽝이라고 봐야겠군요.]

파라마운틴도 이들 회사인 판국이다.

‘괜히 싸움 냈다가 앞으로 자기네 영화는 넷플렉스와 거래 안 하겠다고 해버리면 노답이잖아.’

이걸 꼭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라면 여긴 무조건 패스다. 하지만 라드 헤이스터스가 보기에는 아까운 고깃덩어리였나 보다.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바로 인수해서 좋은 영화를 만들기에는 이만한 회사가 없습니다.]

[드리머스는 인수할만한 기업이 정말 없을 때로 미루지요. 그러니 지금은 다른 영화사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좀 해봅시다.]

빈말이 아니었다. 드리머스의 변신 로봇 시리즈는 최초 1편을 제외하고는 거의 혹평을 피하지 못했지만, 흥행만으로는 대성공을 이뤄낸 시리즈다.

피를 흘릴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 고민은 조금 더 해보자고.’

한국의 영화사도 아니고 할리우드의 영화사를 인수하는 일이다. 마트에 장 보러 가서 원하는 상품들을 카트에 차곡차곡 쌓고 한 번에 구매하는 거처럼 처리할 수는 없다.

이건 백화점 명품관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되물으며 고민에 고민을 하고 가장 원하는 상품 하나를 딱 골라야 하는 그런 쇼핑이었다.

[다음으로 괜찮은 회사로는 마리맥스가 있습니다.]

기시감이 아니다. 익숙한 이름이라서 되물었다.

[어디요?]

[마리맥스입니다.]

더 들은 것도 없다.

[거긴 패스하죠.]

[네? 마리맥스가 크게 인지도를 가진 영화사가 아닌 건 맞지만, 최근 들어서 크게 조명을 받고 있는 건실한 영화사입니다.]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호비 아인슈타인이라는 작자와 직접 만난 적도 있으니까요. 아주 괜찮은 만남이었지요.]

내 말투에서 마리맥스와 나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걸 눈치채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라드 헤이스터스는 그 분위기를 재빨리 캐치하고는 바로 다음 영화사로 주제를 넘겼다.

[다음으로 추천해 드릴 영화사는 플랜 D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이건 진짜 듣보잡이네.’

꿈속의 기억에도, 현실의 기억에도 이런 영화사는 전혀 없었다.

‘그저 그런 영화사로 있다가 그냥 사라지는 그런 회사 아니야?’

모를 땐 잠자코 듣는 게 상수다.

라드 헤이스터스가 말을 이었다.

[이 회사는 브레드 포터와 제시카 애니스톤이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설립한 회사입니다. 하지만 최근 둘이 이혼하게 되면서 브레드 포터가 겨우겨우 회사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죠.]

< 미디어 네트워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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