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 네트워크 >
‘진짜? 견제를?’
사실 견제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일단 GF그룹 자체가 국내의 정치계와 별다른 연계가 없어서 그런지 일단 법적으로 국내 시장에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 상태였고 이것부터가 국내 기업들의 견제라는 것이 GF 내부에서는 거의 확신에 가까운 분석이다.
하지만 별반 신경 쓰지 않은 이유는 내수 시장에 연연하지 않는 구조 때문이었다. 국내 매출은 고작 전체 매출에서 10%도 안 되니 저들이 때려도 아프지 않았고 그냥 놔둔 것이다. 그랬는데 따지고 보면 결국 정치인들 배만 불려주고 기업인들끼리 싸움만 나는 셈이었다.
“그리고 저희 쪽으로는 견제가 이미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이미? 내가 아니라 김지애 사장한테 메시지를 보냈어?’
선뜻 추측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어떤 견제죠?”
“얼마 전에 여성부 장관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게임들이 타 게임사들과 비교해서 중독성이 크다고 판단되는바, 게임 매출의 2%를 게임 중독 치료를 위한 부담금으로 징수하길 원한다더군요.”
“···그게 무슨 헛소리랍니까?”
게임 매출액의 2%를 게임 중독 치료를 위한 부담금으로 내라는 것도 어이가 가출을 할 상황인데 심지어 모든 게임사 중에서 우리가 가장 심하니까 우리만 내라고 하다니!
이건 상식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 김지애 사장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여성부에서 그딴 소리를 정말로 했단 말입니까?”
“네.”
“하하······.”
멍청한 정치인들에게는 우리 회사가 올리는 전체 매출만 보이는 모양이다. 왜 자꾸 국내 매출의 비율은 조금도 생각 안 하는지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GF 그룹은 해외에서 돈 벌어서 국내에 돈 쓰는 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까부는 것도 적당히 까불어야지. 게임 매출의 2%?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그룹에서 1년간 벌어들이는 매출액을 다 합치면 억 단위도 아니고 조 단위다. 거기서 2%면 1년에 100억 단위의 세금을 추가로 내라는 이야긴데.
‘부모님 안부부터 민족의 얼이 담긴 쌍욕을 무진장 퍼붓고 싶어지게 만드네. 이 창의적으로 병신 같은 짓거리를 봤나. 아니 무슨 내가 정경유착이나 그런 게 있어가지고 이 나라에서 귀족이나 왕족처럼 살고 있다거나 그러면 또 몰라.’
그것도 아니면 이 나라에 무언가 뿌리가 엄청 깊게 박혀서 여기를 떠나는 순간 포기해야 하는 무형의 자본이 엄청 많기라도 한가?
국내의 부처나 공기업이 주주이기를 해?
대한민국에 상장이 되어 있기를 해?
‘개뿔! 그딴 거 하나도 없어.’
내가 이 나라를 떠나면 안 될 이유는 진심으로 단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아차. 카이닉스가 있기는 있었구나.’
큼직한 사업체가 남았으나 그렇다고 해도 고작 카이닉스 하나 때문에 한국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므로 강하게 맞서도 된다.
“김지애 사장님.”
“네.”
“여성부 장관에게 똑똑히 전하세요. 게임은 마약이나 술이 아니라고. 중독은 무슨 얼어 죽을 중독이야.”
“그래도 한 부처의 장관입니다. 문제가 될 텐데요.”
“문제는 무슨 얼어 죽을 문제입니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GF 그룹 전체가 미국으로 이전할 거라고 전하세요. 아마 전 세계의 뉴스에는 ‘대한민국 10대 기업이 자국의 여성부 때문에 미국으로 이전했다.’ 이렇게 기사가 날 거라고.”
GF가 이만큼 성장하는 동안 대한민국이 대체 무슨 도움을 주었는가?
눈곱만큼도 도운 게 없는 주제에 뭘 그리 당당하게 나오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우리 회사가 매년 내고 있고 점점 올라가고 있는 이 법인세와 근로소득세가 한 번에 사라지면 나라 꼴이 참 좋아지겠네요. 그렇지요?”
매년 발군의 성장을 하는 우리 GF 그룹은 2005년. 법인세가 1조를 돌파한 상태다.
‘아직 안 내긴 했지만. 조만간 낼 거니까.’
큰소리칠 자격이 있다.
“조 단위의 세금이 증발하는 마법을 경험하고 싶으면 자꾸 신경 건드려보라고 하세요. 재차 말씀드리는데 우리는 정당하고 부당한 권력에 숙이고 몸을 사려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습니다. 지금 언급한 말 중에 타협안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오랜만에 화가 난 것 같은 내 표정 덕분일까. 김지애 사장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을 하면서도 대답했다.
“대한민국 아니어도 우리보고 지금 자기네 나라로 오라고 영국이고 미국이고 넘쳐납니다. 걱정 말고 들이대세요. 그냥 아주 박살을 내주려니까.”
“네, 회장님.”
그녀를 추궁하는 게 아니다. 중간에 끼어서 좋게 해결하려다가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의미로 강경하게 강조했다.
기업의 오너가 이정도로 자신만만하게 말하면 그 밑의 임직원들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법이다. 나는 김지애 사장의 목소리에 머뭇거림이 없어지도록 재차 대답을 요구했고 그녀는 이내 불안감을 떨치고 밝은 얼굴로 알겠다고 다시 답변했다.
“아주 좋습니다. 그럼 대충 이대로 정리하시고, 송민호 지사장은 조만간에 제가 미국으로 갈 거라고 본사에 연락해두세요.”
넷플렉스는 참 묘한 처지다. 모기업은 한국에 있는데 본사는 미국에 있어서 모기업 회의에 CEO는 참석 못 한 채 지사장이 참석하는 회사가 되어서다.
그런 송민호 지사장을 지목하니 자신이 불릴 리가 없다고 방심하고 있던 차에 지목받고는 그가 꽤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주 잠깐 화들짝 놀랐을 뿐, 그래도 한 지역의 지사장답게 금방 추스르고 상황 파악을 했다.
“그냥 그렇게 연락만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면··· 미국에 방문하는 이유가 넷플렉스와 관계가 있으시다면 관련된 부분에 대한 준비를 전달할까요?”
“넷플렉스를 영화 배급사로 키울 겁니다.”
셋톱박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당연히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최근에도 마이코닉스에서 신작 애니메이션 레이서를 내보내긴 했지만.’
넷플렉스라는 기업을 보유하게 된 이상 마이코닉스 한 곳에서의 제작으로는 콘텐츠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본격적으로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영화에 투자와 배급을 하는 회사로 거듭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막 태동하는 넷플렉스의 규모에서 영화 투자사가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아무리 급격히 성장하는 중이라지만, 그래봤자 미디어 업계에서는 그냥 햇병아리 수준일 뿐이다. 미래의 넷플렉스가 오리지날 콘텐츠를 마구 찍어내고 넷플렉스 독점작이나 극장과 동시 개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억 단위의 유료회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야기다.
당연히 지금의 햇병아리 넷플렉스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GF에서 그룹 차원으로 투자하고 영화 배급은 넷플렉스에서 맡는 편이 현명했다.
‘두 가지 형태로 나누는 거야.’
저예산의 B급 감성이 넘치는 작품의 영화는 넷플렉스에서 오리지널로 제작해 넣어주고, 고퀄리티의 블록버스터급은 GF홀딩스에서 제작하는 형태를 구상하는 것이다.
‘잠깐만. 그런데 이렇게 되면 원래 넷플렉스의 방식인 극장과 넷플렉스 동시 개봉이랑은 안 어울리게 될 것 같은데?’
넷플렉스 자체 제작이 아니라 그룹차원이 되면 그룹의 자본금으로 제대로 된 수익을 내야 한다. 즉, 극장에 먼저 개봉하고 수익을 충분히 낸 뒤에 넷플렉스에 들어가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나는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라드 헤이스터스와 나누기로 일단락 지었다.
“어차피 사업의 구체적인 이야기는 저 역시도 아직 구상 단계입니다. 그러니 우선은 영화 제작 때문에 찾아간다고 전달하세요.”
“알겠습니다.”
그 영화 제작이 할리우드 준 메이저 배급사 수준이라는 건 상상도 못 하겠지만 말이다.
131. 미디어 네트워크
부사관의 퇴직금을 밑천으로 게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골드와 아이템이라는 게임 속 재화를 밑천 삼아서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업의 주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 안목이 비범하다고. 경영 철학이 대단하다고. 이렇듯 외부에서 볼 때 나는 나무랄 데 없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성공한 사업가이자 굉장한 투자자였다.
그러나 남은 몰라도 나는 나를 잘 안다.
‘결코 통찰력을 가진 투자전문가도 아니며 뛰어난 경영인도 아니야.’
오늘 마음을 가라앉히며 주제로 잡은 화두는 ‘나 스스로를 잘 알자’였다. 내가 이런 식의 자아성찰을 할 때는 어려운 결정을 하거나 모르는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대부분이다. 꿈속 미래의 지식으로 이룬 성공을 내 실력으로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몬텐츠 사업에 대한 투자를 앞두고 자아성찰을 마친 뒤 나는 곽지원 부사장과 따로 시간을 잡았다.
넷플렉스를 미디어 거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이를 위한 투자 방법을 구상했지만, 솔직한 말로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느냐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저 ‘영화에 투자한다.’ 그리고 ‘그 영화를 배급한다.’라는 단순한 형태를 생각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쪽 분야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실화하기 위한 조언을 구해야 마땅한 법 아니랴. 이 자문의 대상으로 곽지원 부사장은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내 설명을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본격적으로 영화 산업에 진출하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굳이 영화 산업에 진출하겠다는 생각까지 한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얄팍하게 이뤄보려는 의도죠.”
출중한 능력자들일수록 일을 크게 벌이는 성향이 있었다. 그래서 겸연쩍게 말하는데 곽지원 부사장은 그게 아니라며 내게 설명했다.
“그래서는 불가능합니다. 회장님께서 구상하신 방향대로 진행하려면 제대로 영화 산업에 발을 딛어야만 가능해요. 그게 아니라면 결국 영화를 만들어서 남들 배만 부르게 해주고 끝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까지도 영화로 꽤 돈을 벌고 있었는데?”
잠시 내가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았을 뿐, 크게 굴러가기 시작한 바퀴는 관성으로 계속 나아가듯 GF 홀딩스는 꾸준히 영화에 투자하는 중이고 수익을 알차게 내고 있는 사업체였다.
“지금까지야 단순하게 투자하고 수익 쉐어를 받는 것이 전부였지만, 넷플렉스가 영화의 배급권을 가지는 조건이라면 그 접근방법이 달라집니다. 게다가 회장님이 원하시는 건 잠깐 몇 편의 영화를 배급하고 끝내는 것도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요.”
“영화에 투자하기는 쉽습니다. 받고 싶어하는 영화는 많으니까요. 그러나 아무 영화에나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수익이 날 만한 영화에만 투자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영화는 저예산이 아니라면 사실상 이미 배급사가 정해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곽지원 부사장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면 배급사만 없을 뿐이지 이미 제작비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긴, 그러네. 나라가 다르니까 이런 것도 차이가 있었구나.’
한국 영화판은 될성부른 영화들도 돈이 없어서 돈을 마련하기까지 많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반면에 할리우드는 전혀 다르다. 영화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영화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돈이라는 총알의 장전을 끝낸 곳들이 수두룩했다.
“이래서야 안정적으로 배급할 영화를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괜찮은 영화사를 하나 인수해서 그것을 배급하는 것이 훨씬 낫지요.”
“할리우드의 잘나가는 배급사들이 괜히 수많은 영화사를 거느리는 것이 아니었군요.”
“그렇습니다, 회장님.”
듣고 보니 정말 올바른 지적이었다. 할리우드의 메이저 배급사들이 돈 자랑을 하고 덩치를 불리려는 허영심에 영화사를 보유하고 있겠는가. 사업가는 오직 돈과 실적을 보고 움직이는 이들인데 말이다.
이런 바닥에 내가 이전처럼 미지근하게 발을 들이대면 죽도 밥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영화 산업에 진출하는 거로 하지요.”
“확실하게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할 때는 보통 그 생각을 바꾸지 않잖아요?”
보고서를 바탕으로 투자결정을 내릴 때와는 달리 내가 투자하겠다고 마음을 직접 먹었을 때는 결정을 번복하는 일이 거의 없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미래를 모른다면 ‘이것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혹시나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게 아닐까?’와 같은 고민에 빠져서 확신하기 어렵다. 또한, 더 많은 자료를 구하며 다각도로 예상하며 진을 쏙 빼고 만다.
그러나 이런 면에서 나는 굉장히 유리했다. 상세하게 그 업계가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모를 뿐, 그 분야가 레드 오션인지 블루 오션인지는 또렷하게 안다. 즉, 최선을 다해도 시대가 어긋나서 망하는 일 따위는 없다는 의미다.
전력투구하면 반드시 성과를 보는 분야이며 뜨는 사업 아이템이다.
자고로 사업가가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는 이유는 ‘여기에 드는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편이 더 이익이야.’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나 하는 일. 그래서 나는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곽지원 부사장 역시 내가 이렇게 확신을 가질 때에는 그것이 성공한다는 미신 같은 것이 생겨있었기에 내 말에 바로 따라 주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기분 좋게 바빠질 차례입니다. 그에 맞는 준비를 확실하게 해야 하니 말이지요.”
“맞는 준비라니요?”
물어보는 내게 그가 푸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배급사인 넷플렉스를 중심으로 그 아래에 영화 스튜디오들이 있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GF 그룹이 있고 그 밑에 여러 스튜디오가 있으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러면 너무 복잡해집니다.”
그는 ‘구조는 단순할수록 좋습니다.’라며 재차 강조하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영화사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우리는 한국 기업이고 스튜디오들은 전부 미국 기업입니다. 이런 구조로는 정말 신속한 소통이 필요할 때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 미디어 네트워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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