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26화 (326/577)

< 프로젝트 >

“아···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대비 수익이··· 정말 그렇겠군요······.”

회심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신사업이 내 말 몇 마디에 무너지자 양도준 사장의 표정은 세상을 잃어버린 사람의 얼굴이 되어버렸다.

‘뭐. 아저씨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내가 모르는 바는 아니야. 불안했을 테지.’

레이컴은 요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매출의 9할이 MP3P 단 하나에서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그중에서도 스텔라라는 브랜드 하나가 다시 9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로지 스텔라 하나만 팔아서 연매출 10조를 달성하는 기업!

일견 멋지고 자신만의 색깔과 무기를 확실하게 가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투자법이 위험하듯 한 가지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것은 그 하나가 어긋나면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워크맨과 CD플레이어로 잘나갔던 기업들이 전부 그렇게 몰락하고 그 자리를 차지한 기업이 레이컴과 와플이니까.’

양도준 사장의 불안감이 틀리지만은 않은 게 실제로 MP3P 시장의 팽창은 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당장이야 한 해 한 해 폭풍 같은 성장을 하고 있는 시장이라서 많은 전자 회사에서 우리의 자리를 넘보고 있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내 눈에는 망하기 직전의 시장에 자리를 잡아보겠다고 되돌리지 못할 투자금을 쏟아붓는 행동으로만 보일 뿐이다.

그게 아니면 다음 세대로 보고 있는 MP4 시장 PMP에 기대하는 모양이지만, 와플에서 만든 와이팟 터치와 와이폰 이 두 가지로 혁신 덕분에 PMP시장은 채 꽃도 피우기 전에 시들어버린다.

‘10년쯤 후에는 PMP가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흔적으로 오직 내비게이션만 남는 수준이 돼. 그나마도 조금 더 지나면 태블릿 PC에게 먹혀버리고.’

굳이 이 시장에 더 투자할 가치는 없는 셈이다.

“그럼 회장님은 저희가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비슷합니다.”

“네? 비슷이요?”

“일단 게임 콘솔은 잊으세요. 몇년 만 더 있으면 mp3와 휴대폰 시장 모두 태블릿 PC 시장으로 흡수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휴대용 게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시장을 가지게 될 테지요. 다만, 넷플렉스와 레이컴이 콘솔을 통해 새로운 동반자가 될 겁니다.”

“예?”

콘솔을 잊으라더니 콘솔로 새로운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당연히 처음 듣는 이들에게는 마냥 이상하게만 여겨질 괴이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자주 그러했듯 물음표 가득한 사장단에게 느낌표를 띄워주는 게 내 일이다.

“게임 콘솔 말고 TV 셋톱박스를 만듭시다.”

“굳이 셋톱을 개발하면서 게임 기능을 배제하시려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내게서 이런 대답이 나올 때는 늘 명쾌한 답이 나왔기 때문에 다들 얼굴에 기대감이 서렸다. 나는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비밀을 알려주었다.

“가격이 차이 날 거 아닙니까.”

“네?”

“우리가 게임 콘솔을 만들면 그게 얼마 정도 할까요? 20만 원? 30만 원? 솔직히 20만 원 수준에서 콘솔을 만들면 시대에 맞는 게임도 구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매년 신제품을 낼 거도 아니고 구시대 게임으로 몇 년이나 버틸 수 있을까요?”

재차 강조하지만 사업은 돈 계산으로 하는 거다. 이윤을 보고 확장할지 말지 결정한다.

“그러니 그런 쓸데없이 가격만 올라가는 기능 말고 정말로 딱! 넷플렉스를 시청할 수 있는 기능만 넣은 셋톱을 만들자는 겁니다. 대충 판매 가격은 만 원이면 되겠군요.”

기능은 별 거 없어도 된다. 온라인, 넷플렉스 로그인, 그리고 넷플렉스 영상을 TV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영상을 고르는 건 당연히 리모컨으로 가능하도록 하면 충분했다.

거창하게 콘솔을 주장했던 양도준 사장으로서는 자신의 아이디어에서 대부분을 쳐냈기에 섭섭할 수 있을 테지만, 미래를 아는 내가 보기에 이보다 나은 선택은 없다고 자신한다.

그런데 다소 서운해할 줄 알았던 그는 오히려 반색하며 기뻐했다.

“게임 콘솔 아이디어에서 딱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만 잘라서 사업을 구상하시다니. 역시 회장님의 사업 방식은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결국 자기 아이디어가 반영된 새로운 사업을 허락받았다는 것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네.’

같은 말도 좋게 해석하거나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다행히도 그는 긍정적인 스타일이었다.

“비록 일부분이긴 하지만, 회장님께 아이디어를 내고 통과가 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굉장한 선견지명을 가진 회장님께 통과가 될 아이디어를 만들어보려고 제가 진짜 최근 밤낮으로 사업 구상만 했다는 거 아닙니까?”

‘아이고, 오래간만에 보네. 이 접대성 아부멘트.’

설핏 웃으며 대꾸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앞으로는 그런 고생보다 사업에 대한 고생을 많이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말입니까? 맡겨만 주십시오! 확실하게 성공시키겠습니다.”

“그리고 홍의제 사장님.”

“네!”

후반에 들어온 홍의제 카이닉스 대표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가장 군대 같은 각이 잡혀있는 인물이었다.

“카이닉스에서도 마찬가지로 APU의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해주셔야 합니다. 올해가 가기 전, 우리는 새로운 스마트폰과 MP3P를 발표할 겁니다.”

이 말에 모든 사장단의 얼굴이 경악에 가까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던 양도준 사장의 얼굴은 웃는 건지 뭔지 이해할 수 없는 괴상한 표정이었다.

“네? 아직 관련된 제품으로 준비를 한 것이 없는데 지금부터 준비해서 발표한다는 말씀입니까? 게다가 스마트 폰이라니··· 금시초문입니다.”

자신 없어 하는 그에게 나는 아니라며 짚어주었다.

“준비를 하신 게 왜 없습니까? 지금까지 스텔라 패드를 열심히 업그레이드하지 않았습니까?”

“그야··· 그랬습니다만······.”

“거기에 GPS, 전화, 진동, 통신망, 메시지 기능만 추가하면 끝이 아닙니까?”

‘참 쉽죠?’라는 말에 그가 난색을 보였다.

“아니. 그래도 스마트 폰이라면 더욱 다양한 기능이 추가로 있어야 하는데 아직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을···”

“그 다양성은 우리가 개발할 일이 아닙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우리의 신제품을 발표하고 이것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업체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개발하고 그들과 수익을 나눌 겁니다.”

내 말에 저들은 ‘왜 남 좋은 일을 합니까.’라는 시선을 내게 주었다.

“그냥 조금 더 미뤘다가 저희가 애플리케이션들까지 다 개발해서 공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 1년에 몇 개나 개발할 수 있을까요?”

“다섯 개 정도는 개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 세계의 개발자들이 개발한다면 1년에 몇 개나 나올까요?”

“그건······.”

정확한 대답은 의미가 없었다. 단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정도로도 충분했다.

“먼저 스마트폰을 발표하고 이후, 개발자들과 따로 자리를 만들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들에게 매력적인 시스템을 던져주면 알아서 좋은 애플리케이션들이 스마트폰 시장에 붐을 일으킬 겁니다.”

꼰대 같은 사상이지만 지금은 이 말이 딱 맞는다.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라는 식이다. 저들은 모를 테지만 꿈속 미래에서 내가 그런 스마트폰을 써봐서 진짜로 잘 안다.

“스마트폰이라는 걸어 다니는 컴퓨터를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들고 다니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MP3P보다 더 많이 팔리게 되겠지요. 즉, 다른 시장은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이 시장을 잡는 회사가 제2의 마이크루 소프트가 되는 겁니다.”

IT 업계에서 마이크루는 정말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불합리한 것들이 있었는지는 당금에 중요하지 않다.

오직 비현실적으로 성공한 기업이라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에이. 회장님~ 제2의 마이크루는 그래도 너무 가셨다~”

아무래 내가 한 말이라도 도저히 믿기 힘들었는지 결국 양도준 사장이 농담으로 받아쳤고, 그것에 다른 사장들도 함께 놀란 표정을 풀고 웃음기를 내비친다.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어하는 그런 웃음이다.

“저와 내기해 보시겠습니까?”

편안하고 가벼운 미소. 그리고 그런 미소와 함께 섞인 내기라는 단어에 사장들은 내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정말로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내 말이 진심이라는 걸 느낀 그 순간부터 사장들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나는 손뼉을 두어 번 쳐서 분위기를 환기한 뒤 말했다.

“새로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을 기업은 레이컴과 카이닉스입니다. 이 두 회사가 아주 좋은 기능의 제품을 개발해주시면 우리 GF에서는 그에 어울리는 OS를 맞춰서 계속 업데이트할 겁니다.”

마주하는 저들의 눈이 진지하게 빛났다.

“그렇게 시장이 자리를 잡게 되면 이 기기는 우리 GF의 게임도 돌릴 수 있고, 넷플렉스의 비디오도 볼 수 있게 되는, 문자 그대로 손 안의 컴퓨터가 되는 겁니다.”

“예!”

“그러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이 사업에 대한 반론은 듣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사이비 종교 같다고 생각하셔도 되니 제 판단을 믿어보십시오. 스마트폰을 국민 1인당 1개 이상 소지하는 세상은 무조건 옵니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으니까요.”

다른 말은 다 필요 없었다.

제2의 마이크루!

이 하나에 사장단의 얼굴이 몽롱해졌다.

이후, 나머지 사장들에게는 각각 새로운 미션이 주어졌다.

“레오닌 쪽도 많이 불안하죠? 요즘 들어서 PC 쪽 매출로 수익을 내기 어려울 것 같고?”

뜨끔한 표정.

오죽하면 레이컴이 콘솔 시장에 진입했을 때 유통을 담당해봤자 자신들의 파이가 딱히 커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도 함께 했을까. 그만큼 레이컴보다 불안한 살얼음판이 자신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점점 조립식 PC시장은 사양 산업으로 넘어갈 겁니다. 수익성은 점점 내려갈 테고 훗날 대형업체들은 손 털고 소규모 기업끼리의 각축장이 되겠지요. 그러니 우리 역시 슬슬 손 뗄 준비를 합시다.”

“그럼 저희는 사업을 철수하는 겁니까?”

“오해가 있나 보군요. 손을 뗀다는 건 조립식 PC사업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주변기기도 사양 산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주변기기요?”

“PC 본체의 케이스, 마우스, 키보드, 스피커, 냉각 팬 등등 많잖습니까. 앞으로 그것들에 집중하십시오.”

PC를 판매하다가 주변기기 판매로 바뀐다. 무언가 급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팔아도 어떤 퀄리티로 만드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사뭇 달라진다.

“가장 중요한 건 내구성과 디자인입니다.”

“네? 기능이나 그런 게 아니고요?”

“등급을 나눠야죠. 훌륭한 성능의 고급 제품군과 적당한 성능의 보급 제품군으로. 원래 우리는 두 가지 라인으로 나눠서 판매했었지 않습니까?”

“그렇죠.”

“즉, 고급형이든 보급형이든 디자인과 내구성만큼은 확실하게 가자는 이야기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회장님. 알겠습니다.”

“레이컴도 마찬가지예요. 솔직히 디자인만 아니었으면 스텔라의 점유율이 더 높았을 거로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을 키우시던가 그게 아니면 비싸더라도 실력 좋은 디렉터를 영입하시기를 권합니다.”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양도준 사장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탄복했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회장님이십니다. 저희끼리는 요즘 2주간 하루가 멀다고 회의하고 머리를 짜낸 게 고작 그거였는데 회장님께서는 즉시 수정안으로 이 정도까지 내다보시니··· 아! 회장님의 혜안은 날이 갈수록 맑아지고 지평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양반의 아부는 고마움을 넘어서 민망하기까지 할 정도라니까.’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그의 말을 끊었다.

“자, 그럼 전자 분야의 신규 사업은 대충 마무리된 거 같고 다른 문제 혹은 특별히 보고해야 할 것이 있는 곳은 없습니까?”

그러자 김지애 사장이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냐며 물으니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을 짚어주었다.

“레이컴에서 조사한 결과, 올봄에 발표될 재계 순위에서 우리 그룹이 5위 혹은 6위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이토록 회사의 규모가 커진 만큼 다른 기업들의 견제들도 더 심해질 겁니다.”

< 프로젝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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