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25화 (325/577)

< 프로젝트 >

“아무런 조짐도 없었습니다. 다들 2004년과 비교해서 50% 정도를 예상했으니까요. 그랬는데 무려 700%나 성장한 겁니다. 이런 판국에 생산라인을 증가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과연. 제아무리 수요가 늘어도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물 들어올 때 저을 노가 없는 격이니.”

“맞습니다. 와이팟은 1,000%의 성장을 하고 우리는 100% 성장 정도에서 그쳤을 겁니다. 격차는 더 벌어졌을 테지요.”

“역시 회장님이시군.”

양도준 사장의 말에 나머지 사장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것 그 이상으로 ‘윤태식 회장의 선견지명이 대단하구나.’를 인식했다. 김지애 사장도 그의 발언을 통해 ‘혹시’ 싶었던 음모가 아니라는 뉘앙스를 느끼고 그를 경계하던 마음을 조금은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이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 회장님의 선견지명은 잘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희끼리 회의할 게 아니라. 회장님의 생각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부끄럽지 않다면 몰래 모일 이유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양도준 사장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러면 안 된다고 봅니다.”

“왜죠?”

“지금 GF그룹이 대한민국 재계 몇 위 수준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아직 2006년도 재계 순위가 발표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작년 카이닉스와 레이컴의 성장이 두드러진 만큼 10위 이내에는 들어가지 않을까요?”

김지애 사장의 말에 양도준 사장은 고개를 기분 좋게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내부에서 조사한 내용으로는 재계 순위 6위더군요.”

“6위!”

양도준 사장의 말에 사장단 전부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애초에 재계 순위에서 8위, 9위와 7위 이내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아니 솔직히 10위 이내로 들어가는 것 자체도 정말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떤 기업인가.

다들 70년대 그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경제를 휘어잡고 있던 기업들이다. 이런 최상위의 서열에 고작 탄생한 지 10년도 안 된 기업이 들어간다는 것은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저 대기업이 작금 전설로 불리듯 GF의 축을 담당하는 자신들도 미래에는 한국 경제역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GF는 점점 더 커질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회장님이 지금처럼 하나하나 새로운 사업을 다 신경 써 주시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아마도 불가능할 거라고 봅니다. 회장님의 능력을 떠나서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가 있으니 말입니다.”

윤태식은 미래를 알고 있고 그것에 대한 짧은 지식을 툭툭 던져주는 것만으로 회사가 성장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장들로서는 태식이 어딘가에서 혼자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 엄청난 고심을 하고 있을 거라고 보는 것이 정상적이었다.

“회장님의 어깨에 모든 짐을 지우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착각을 하고 있었기에 양도준 사장의 합리적인 의견에 사장들은 다들 끄덕였다.

‘맞는 말이지.’

‘천재에게나 보통 사람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니까.’

‘우리 역시도 회장님이 손을 쓰실 때와는 달리 지금은 현상 유지만 하고 있는 형편이고.’

‘돈은 버는데 획기적인 무언가가 줄줄 쏟아져나올 때의 쾌감은 멀어졌지.’

실제로 사업의 규모가 커지며 태식이 점점 사업 전반에 끼치는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기를 기다리는 새끼 새 마냥 입만 벌리고 있는 시절이 끝나갑니다. 저희가 먼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만들어서 회장님에게 찾아갈 때가 오고 있는 겁니다.”

“···제가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

쿠데타를 위한 음모가 아니라 윤태식 회장 몰래 그의 짐을 덜어주자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풀어지는 중이다. 비로소 김지애 사장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냉랭함이 싹 사라졌다.

“그렇다면 양도준 사장님은 지금 무언가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계신다는 말씀이세요?”

“그렇습니다.”

“어떤 거죠?”

이제는 호기심이 생겼다. 레이컴과 카이닉스는 그 연결 관계가 명확한 제조사이고 레오닌 역시 그들과 떨어지기 힘든 유통사다. 진짜 억지로 쳐주면 넷플렉스까지는 레이컴의 PMP와 연결 지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 게임사들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녀를 위시한 모두에게 양도준 사장이 자신의 구상을 알려주었다.

“저희 레이컴은 MP3P가 주력이긴 하지만 그동안 PMP는 물론이고 회장님의 의견으로 시작한 태블릿 PC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은 전자제품 제조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GF그룹은 세계 최고의 게임 개발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새로운 콘솔 개발사로 시장에 뛰어들 자격이 충분한 거 아니겠습니까?”

“MP3P 시장이 충분히 성장하고 있는데, 이런 타이밍에 다른 업계에 도전을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일까요?”

“일단은 지금의 시장을 더 장악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미 PMP의 등장으로 시장이 양분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기 싸움이 끝나자 비로소 정상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

“아직까지는 MP3P의 시장이 훨씬 크긴 하지만 언젠가 이 시장도 이전 세대의 워크맨이나 CD 플레이어처럼 말라버리게 될 테지요. 그 전에 미리미리 새로운 시장을 준비 해야 합니다. 소닉도 결국 MP3P 시장에서 실패하고 콘솔로 살아남지 않았습니까?”

“에이. 그때랑은 다르지요.”

“소닉은 MP3P 말고 MD 쪽으로 밀어줬다가 망한 거잖습니까. 반면에 우리는···”

“제 견해는 다릅니다. 우리도 차세대로 주목받고 있는 MP4 시장인 PMP보다 태블릿 PC로 방향을 잡고 있지 않습니까?”

양도준 사장의 불안감은 이것이었다. 혹시나 MP3 시장이 무너지고 MP4의 시대가 왔을 때, 태블릿 PC가 아닌 PMP의 시대가 찾아오면 어떻게 될까?

사실 가격대비 경쟁력으로 보면 비즈니스맨들이나 사용하는 태블릿 PC보다는 PMP가 훨씬 경쟁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불안감 때문에 새롭게 사업 아이템을 구상했고 장고 끝에 선택한 아이템이 바로 콘솔시장이었다.

“내부에 필요한 메모리는 카이닉스에서 생산하고 콘솔은 저희 레이컴에서 개발하는 겁니다. 이후 콘솔의 유통 판매는 레오닌에서 맡으면 딱 맞지요. 여기에 클로버 스팅에서 게임계만 잘 끌어준다면 어떻겠습니까?”

듣기에 썩 괜찮은 발상이었다.

“저는 제2의 게임스테이션이 나오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뿐입니까? 요즘 콘솔은 다 인터넷 연결도 되니까 넷플렉스의 영상을 시청 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죠. 컴퓨터가 아닌 TV로 넷플렉스와 연결되는 겁니다.”

게임 개발사와 퍼블리셔들은 업계에 콘솔이라는 플랫폼을 가진 기업이 얼마나 큰 영향력과 힘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만큼 더 혹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넷플렉스의 영상을 PC가 아닌 TV로 볼 수 있다는 말은 마이코닉스와 넷플렉스 측에도 충분히 호응을 보이게 된다. 이를 듣고 김지애 사장이 옛날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까 전에 회장님도 콘솔에 관해서 이야기하신 게 기억나네요. 돈이 될 수 있는 건 다 하실 거라면서 그때 영화, 극장, 게임, 게임기 뭐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막 쏟아내셨던 적이 있었거든요.”

“오오! 그렇습니까?”

GF그룹 내에서 윤태식 회장은 거의 신앙과 같다. 그리고 사원보다 임원들이 훨씬 더 신앙에 가까운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 윤태식도 생각했던 의견이라고 하니 다들 양도준 사장의 생각에 더욱 동의하게 되었다.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저 역시도 그리 생각합니다.”

결국, 사장단은 양도준 사장의 신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찬성했고 본격적으로 사장단 회의가 오기 전에 사업에 대한 구상과 보고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LON 온라인 챌린저십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는 어느 날.

GF그룹의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

“새로운 사업이요?”

“예, 회장님.”

자신감이 가득한 양도준 사장의 얼굴을 보니 나는 괜히 간담이 서늘하고 걱정거리가 한 무더기씩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꿈속 미래의 기억 그 어디에도 MP3P를 제외한 양도준 사장의 사업 중 성공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주지 뭘 또 그리 고민을 했답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쓸데없는 명언을 되짚으며 그에게 계속 말하라고 제스처를 했다. 양도준 사장이 웅변에 가까울 정도로 패기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카이닉스가 그룹에 들어오면서 우리 기업은 이제 기술력은 물론, 모든 부분에서 어디에 내놔도 부족하지 않은 기업이 됐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새로운 제품으로 게임기를 출시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게임기? 아··· 그러니까. 지금 사장님들끼리 모여서 신사업으로 콘솔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완성하셨다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사실 대부분 기업집단의 오너들은 회장을 제외한 사장들끼리 모여서 친목이나 단합하는 행동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대규모일수록 오너가 해당 기업에 가진 지배력이 높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자칫 잘못했다가는 회사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르다. 적극 권장하는 편이다.

‘이유는 우리 회사가 찢어질 가능성은 전혀 없어서지.’

지분 대부분을 내가 독차지하고 있는 회사이지 않던가. 그러니 사장들이 제아무리 모여서 단합한다 한들 내가 밀려나거나 영향력이 감소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좋은 모임의 끝에 애써 가져온 아이템이 저 모양이라는 건 매우 곤란한 일이었다.

‘이 아저씨가 또 똥을 한 무더기 싸려고 하네. 참 갑갑한 양반이야.’

왜 하필 결론이 게임기 콘솔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내가 ‘저걸 어쩌나’하는 심정으로 고민에 잠겨 있는데 양도준 사장은 내가 진지하게 경청하는 줄 안 모양이다. 계속 뿌듯함이 물씬 전해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카이닉스와 레이컴이 합작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레오닌에서 유통을 맡는 겁니다. 거기에 모기업인 GF는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게임 개발기업이 아닙니까? 이런 우리 기업의 강점을 합친다면 게임스테이션과 Zbox에 버금가는 새로운 게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알아. 원래의 미래에서도 레이컴은 휴대용 콘솔을 개발했었거든.’

양도준 사장의 흑역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드는 의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는 게임기.

사실 게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온라인 기능도 있었고 성능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시대를 앞서나간 온라인 지향 휴대용 게임기라는 특성 덕분에 제대로 발매도 하지 못하고 사장 됐었다.

‘아이디어 자체가 똥인 건 아니야. 원래 나도 이걸 개발해서 도전해볼까 하는 발상을 해봤었거든.’

양도준 사장의 말처럼. GF는 세계 최정상의 게임 개발사이고, 레이컴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전자제품 회사다. 거기에 카이닉스는 세계 6위의 반도체 기업이니 이 조합이면 정말 훌륭한 콘솔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하지 말자’였다.

‘이런 판국에 실패의 아이콘께서 자신 있게 언급해주시니 더더욱 싫어진다는 말씀!’

양도준 사장은 그는 전체적인 사업수단이 참 좋은 사람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잘 알아보는 사람이지만 스스로 상업적인 혁신을 찾아내는 방향에는 솔직히 부족함이 있었다. 나는 거듭 이어지는 그의 말을 손을 들어 멈추게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게임기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을 겁니다.”

“네?”

게임 유통과 개발을 하고 있는 기업의 회장이니 게임기 시장에 당연히 욕심을 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양도준 사장은 확고한 내 말에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이유를 일러주었다.

“휴대용이든 거치형이든 게임기 시장이 어느 정도 규모라고 생각하십니까?”

“약 15조 정도 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거치형과 휴대용을 다 합치고 그 내부 게임의 유통수익까지 다 합쳤을 때의 규모가 15조라는 것이지요. 즉, 게임기 판매로는 연 매출 1조 원도 되지 않는 시장입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첫째로 봐야 하는게 돈이다.

“수익이 형편없지요. 게다가 새로운 플랫폼이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 수고에다가 다수의 게임사를 끌어들여서 게임을 팔아먹기까지 해야 하는데 그 노력 대비 이윤이 영 별로입니다.”

거치형은 너무 어려운 시장이니까 조금 편하게 휴대용 시장에 진입한다고 치자. 거기서 1위의 게임기를 만들어냈다고 치면 돈을 얼마나 벌 수 있을까?

< 프로젝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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