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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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LON 온라인이라는 제법 길게 끌어온 과제물 하나에 마침표를 찍었다.
‘챌린저십이나 챔피언십 모두 알아서 잘 굴러가겠지.’
LON이라는 게임 하나에 매달린 시간이 꽤 길었다.
그간 비교적 소홀했을 뿐, GF의 다른 사업들도 예외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마이코닉스에서는 새로운 영화를 개봉했고 LON만이 아니라 두 개의 게임을 추가로 중국에서 흥행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첫째는 파이어 크로스와 쏙 닮은 FPS 게임인 배틀 오브 발러다. FPS 분야에 욕심을 가지고 있던 김강철 팀장이 개발했는데 이게 중국에서 대히트를 쳤다.
게임이 달랐는데도 자꾸만 꿈속 미래의 게임인 파이어 크로스와 비교하는 이유는 중국의 폭발적인 인기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공통분모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나중에 나올 국산 MMORPG의 희망이자 기대작이 안 나오게 될 것 같지만, 그런 거야 내 쪽에서 만들어주면 그만이니 패스하고.’
본래의 미래와 현실이 여러모로 달라졌다고 신경쓰며 스트레스받을 이유가 없었다.
어쨌건 파이어 크로스는 그래픽이나 시스템 등에서 이미 뛰어난 FPS들이 국내 게이머들을 꽉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했다면, 배틀 오브 발러는 기존의 FPS에 비해서 반동 등이 훨씬 약하고 조준이 쉬운 탓에 손맛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주류였다.
중국에서 성공시킨 두 번째 게임은 본래 내가 계획하고 있던 게임인 던전&워리어다. 이 게임은 내가 어떻게든 찾아서 투자하려던 게임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서 수고로움을 덜었다.
GF는 개발사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클로버 스팅은 퍼블리셔로도 이미 잘나가고 있다. 옛날처럼 발품 팔아서 설득할 필요 없이 성공하고자 하는 후발주자들이 나를 찾아오는 형편이었다.
‘두 게임 다 월 매출이 200억을 돌파하고 있는 상황이니 이렇게 되면 무섭게 벌리는 돈을 도대체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가 더 걱정스러울 정도야.’
자화자찬해도 될 만큼 나는 아주 잘나가고 있다.
2005년 레이컴의 매출은 10조를 돌파했다. 그중 스텔라에서 발생한 매출만 무려 9조가 넘는다. 게임과 비교하자면 영업이익률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지만 애당초 매출 단위 자체가 커서 영업이익도 조 단위로 내는 형편이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할 생각은 없다. 더 미친 듯이 벌어서 무시무시한 일을 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아직 내게는 써먹을 미래의 지식이 여러 가지 남아있고 이를 방관하며 놓치는 멍청한 짓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는 게 바닥나면 하고 싶어도 못하게 돼. 그러니 딱 그때부터 펑펑 놀 각오로 지금은 할 일에 몰입하자.’
머리를 굴려 미래 지식을 다시 점검해보았다.
지금 이 시기에는 무엇을 조심하고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
“우선은 MP3P.”
2004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한 시장으로서 많은 전자 회사에서 우리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그러나 미래를 알고 있는 내 눈에는 망하기 직전의 시장일 뿐이다.
‘2년 안에 순식간에 쪼그라들게 될 거야.’
2007년부터는 스마트 폰의 시대다. 그걸 위해서 레이컴에서도 태블릿 PC는 물론이고 다방면으로 연구에 투자하고 있지만, 더 키울 필요가 있다.
‘카이닉스에도 투자해서 더 탄탄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있고.’
세계 2위 규모의 안정적인 메모리 공급처인 카이닉스는 레이컴이 와플에게 더욱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게 해준다. 이 강력한 시너지가 오래가게 만들려면 당분간 모든 수익을 시설과 연구에 투자하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저 둘의 자금이 없어도 그룹은 여전히 돈이 넘쳐나니까.’
2005년 11조의 매출을 올린 레이컴과 6조의 매출을 올린 카이닉스. 이 두 기업은 GF그룹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회사들이다. 하지만 너무 애착을 갖거나 목을 매달 필요는 없었다. 애당초 GF는 이 두 기업이 없어도 충분히 잘나가고 있다.
‘체크 완료. 여기도 당분간은 문제없어 보여.’
게임 사업도 순항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새로운 대박을 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고 아이디어도 내 머릿속에는 많이 있었다. 그러나 가능하다고 꼭 모든 일을 다 할 필요는 없다.
당장 LON 온라인, 배틀 오브 발러, 던전&워리어라는 세 작품만으로 한동안은 성과 걱정을 할 일이 없는 상태이니 내 아이디어들은 적절한 시점이 올 때까지 당분간 봉인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역시, 가장 장래가 어두운 곳은 레오닌이 되는군.’
당장은 아니지만, 곧 찾아올 멀지 않은 미래다. 게임을 발매하면서 게임에 맞는 사양의 컴퓨터를 저렴하게 보급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사업이며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저렴하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보급되는 시대가 찾아오게 될 것이다.
‘유명했던 PC 브랜드들이 전부 사라진 근거 중 하나이고.’
물론 이게 100%의 이유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단히 큰 역할을 했다는 점만큼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즉, 위기를 당면하기 전에 준비해야 성공이라는 순항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으며 그 준비는 PC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좋은 아이템 하나를 가졌다.
“주변기기 시장을 먹자.”
프로게이머들을 후원하고 있는 만큼 PC의 주변기기들을 광고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보다 좋은 기업이 또 어디 있으랴.
가장 먼저 주변기기의 시장을 치고 나가서 잠식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레오닌은 기존의 보급 사양 컴퓨터 브랜드의 이미지를 벗고 간지 나는 디자인의 컴퓨터 주변기기 브랜드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설비와 어려가지의 투자금이 꽤나 들겠지만, 이는 낭비가 아닌 필요한 투자다.
‘게다가 그까짓 거 들어가 봤자지.’
길게 3년 정도 봤을 때 많이 들면 2000억 정도 들어갈 텐데 그 정도 투자는 내 체급정도 되면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바로 미디어 콘텐츠!
‘최근에도 마이코닉스에서 신작 애니메이션 레이서를 내보내긴 했지만 넷플렉스라는 기업을 보유하게 된 이상 마이코닉스 한 곳에서의 제작으로는 콘텐츠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이걸 해결하려면 본격적으로 영화 투자사가 되어야 할 것 같아.’
넷플렉스의 매출액으로 영화 투자사가 된다는 건 어림도 없었다. 한 분야의 장인도 다른 분야에는 신출내기에 불과하듯 GF 역시 미디어 업계에서 급격히 성장하는 중이지만, 그래봤자 아직은 햇병아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객관화를 잘해야 하지.’
그러므로 이건 GF에서 그룹 차원의 지원을 해야만 한다. 한참 볼펜을 돌리며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넷플렉스에 콘텐츠를 밀어주기보다는 영화를 만들어서 극장으로 보내 이익을 내고 그 이후 넷플렉스에서 스트리밍하는 형태로 가야겠어.’
미래의 넷플렉스처럼 유료회원이 억 단위라면 엄청난 매출을 바탕으로 수백억의 영화와 드라마를 마음껏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넷플렉스는 유료 회원이 아직 천만도 돌파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니 넷플렉스의 오리지날 콘텐츠는 저예산의 B급 감성이 넘치는 작품으로 넣어주고 고 퀄리티의 작품들은 GF홀딩스에서 움직이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이렇게 제작한 영화를 넷플렉스 오리지날 콘텐츠로 넣는다는 건 천문학적인 돈을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잠깐만. 이러면 투자사가 아니라 배급사가 되는 거잖아?’
GF에서 직접 배급?
아니다. 이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GF는 투자 배급사는 넷플렉스가 되는 게 낫다. 기업의 주인은 한국인이더라도 배급사 자체는 미국의 회사를 쓰는 게 유리하니까.
부유하고 준비된 사람에게 상상은 한낱 망상이 아니라 실현할 수 있는 거창한 계획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옛날이었다면 뇌내망상으로 끝났을 이 아이디어를 붙잡고 구체화하는 데 주력했다.
“좋아. 크게 벌여보자고.”
전 세계의 모든 미디어 관계자들이 기절초풍하게 될 미디어의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 봐야겠다.
***
챌린저십이 성공적으로 열리고 본격적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을 무렵, GF그룹의 전체 매출에서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레이컴의 대표이사실에는 사장단 회의를 방불케 만드는 많은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앉으시죠? 회장님 스타일 아시잖아요? 허례허식 같은 건 생략합시다. 게다가 제가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셨는데, 손님들께서 이러시면 제 마음이 불편합니다.”
레이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양도준 사장이 주관했다. 그는 단순한 계열사의 사장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GF사장단의 대표격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 딱히 인사권이라거나 그런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윤태식 회장을 회사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별다른 선약 없이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임원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오직 양도준 사장과 곽지원 부사장, 이 둘만이 가능했고 그것이 권력의 한 축이 되었다.
“다들 바쁘신 분이니까 바로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기에 카이닉스의 홍의제 대표, 레오닌의 권민교 대표, 마이코닉스 최종인 대표, 넷플렉스 아시아 지사장 송민호, 클로버 스팅의 김지애 사장 등 대부분의 인물들이 GF 내에서 한가락 한다는 인물들이었음에도 이 자리에서 양도준 사장의 말을 듣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었다.
“제가 여러분과 굳이 이런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조만간에 진행될 사장단 회의 때문입니다.”
양도준 사장의 말에 날카롭게 김지애 사장이 반응했다.
“사장단 회의 전에 회의에서 낼 의견을 조율하자는 말씀이신가요?”
그녀는 이 자리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사장이다. 그러나 GF그룹의 창업멤버라고 볼 수 있으며 탁월한 능력을 입증했다. 그렇기에 김지애 사장은 어찌 보면 양도준 사장보다 더 실세라고 볼 여력도 있었다.
윤태식 회장의 최측근들이 서로 팽팽하게 기 싸움을 하는 양상이다.
“그렇습니다.”
“카이닉스나 레오닌 같은 경우는 레이컴과 함께 조율할 수 있는 것들이 있겠지만, 저나 다른 게임개발사가 조율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있을까요?”
김지애 사장이 날카롭게 반응하는 이유는 이 자리가 윤태식 회장 모르게 만들어졌다는데 있었다. 그래서 양도준 사장이 무언가 음모를 꾸미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심을 하고 있었다.
반면, 무섭게 기세 싸움을 벌이는가 싶던 양도준 사장의 반응은 서글서글한 웃음이었다. 그는 살짝 물러나는 제스처를 보이며 대답했다.
“김지애 사장님은 이 자리가 조금 불편하신 거 같은데, 너무 깊이 생각하실 거 없습니다. 기업 규모가 커졌고 그런 만큼 저희 내부끼리 뭉쳐서 상생할 수 있는 사업을 했으면 해서 만든 자리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업이 저희끼리 뭉치게 할 수 있느냐 이거죠.”
“다들 아시고 있으실 테지만 저희 레이컴은 2005년에 들어서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장의 배경에는 회장님의 선견지명이 있었죠.”
그의 말에 ‘셔플과 미니는 정말 대단했지.’라며 장 내의 이들이 공감했다.
와이팟과 비교해서 딱 1달 혹은 2달 앞서서 발표를 하고 출시를 해낸 스텔라의 미니와 셔플은 전부 윤태식 회장의 의견으로 개발된 제품들이다. 그리고 그의 선견지명은 늘 성공적인 판매량이 뒤를 따랐다.
이를 외부에서는 잘 모르지만, 내부에서는 뼈저리게 실감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감탄의 포인트가 저들과 양도준 사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각 제품들의 명칭을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장들과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시대에 어울리는 제품을 게임이나 다른 것들을 구상하시면서도 딱딱 맞게 구상하시는 회장님의 천재적인 아이디어는 정말 대단하지요. 하지만 진짜 대단한 건 그 부분이 아닙니다.”
“그럼 어떤 것이 진짜 대단한 거죠?”
“생산라인을 기존에 비해서 5배나 늘리게 만든 것이 진짜 대단한 선견지명이었죠.”
2005년은 MP3P의 시장이 정말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다. 대부분의 기업은 2004년까지의 누적판매량보다 2005년 한 해 동안 판매한 수량이 더 많았을 정도로 정말 굉장한 성장이었다.
그리고 그 성장 속에서 만년 2인자 레이컴이 와이팟과의 거리를 더욱 좁히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는데 이는 생산라인을 말도 안 되게 증가시킨 것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 프로젝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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