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젝트 >
“아무리 보안을 철저하게 만든 파일이라고 해도, 결국 다운로드의 형태에서는 불법 복제가 생길 겁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런 요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전부 우려하면 사업을 할 수 없지요.”
불법 복제는 한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형태로든 다 유출되기 마련이다. 극장에서만 상영해도 캠 촬영으로 퍼지고 DVD 판이 나오면 그걸 통해서 퍼지며 스트리밍만 해도 온라인 소스를 통해 다 유출할 수 있다.
모든 걸 막을 수 없다면 그냥 차라리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게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진행하십시오.”
“예, 회장님.”
2005년이 특별하게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 미래의 꿈을 꾸며 내 인생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성공 가도를 달렸고 급진적인 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처럼 바빴던 2005년이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어언, 2006년의 막이 올라감과 동시에 우리 GF의 2006년은 넷플렉스와 LON 온라인 리그의 결합으로 화려하게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LON 온라인 챌린저십 개최에 프로게임단들 주목.】
【GF 넷플렉스 LON 챌린저십 단독 중계!】
LON 챌린저십은 프로 리그가 아니라 준프로 리그라고 생각하면 된다. 1월 중순부터 2월 초까지 25일간 진행하는데 이 대회에서 제공하는 특전은 이렇다. 상위 8개의 팀에게 3월 말부터 시작될 챔피언십에 참가할 자격을 부여받는 것이다.
이 특전이 중요한 점은 정규 시즌이라 할 수 있는 챔피언십에 걸린 총상금이 무려 3억이기 때문이다.
‘이만큼 화끈하게 거는 대회가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해봐.’
현재 시기의 대회들은 대부분 고작해야 총상금 5,000만 원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의 3억을 비교하면 확연하게 보이는 차이인 셈이다.
그뿐이랴.
넷플렉스에서 최초로 스트리밍하는 이 챌린저십부터 중계권 수입이 발생하는데 이 수입은 모든 팀이 나눠 받는 것이 아니라 챔피언십 자격을 받은 팀들만 받는 제안 조건이 있었다.
보상이 이토록 달콤한데 어떤 선수가 전심전력을 다 하지 않을쏘냐.
“반응은 어떻습니까?”
“폭발적입니다. 상금의 규모가 지금까지의 다른 대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니 프로게이머들은 물론, 팬들까지도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요즘 라드 헤이스터스 사장의 얼굴이 아주 환하답니다.”
넷플렉스의 CEO인 라드 헤이스터스는 지금까지 그가 생각해온 것들과 너무 다른 행보로 이어지는 내 사업 방식에 꽤 많은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내가 회사 대부분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번 사업에 필요한 모든 투자 비용을 대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오고 있는 형편이었다.
당연히 이번 사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인데, 이런 사람조차 얼굴이 환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성공이 확실시되고 있다는 청신호와도 같았다.
“광고는 들어옵니까?”
“나쁘지 않습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LON 온라인이 만들어 낸 효과 덕분에 많은 기업이 광고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라드 헤이스터스와 내 의견이 가장 갈린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온전히 유료 고객만을 위한 퀄리티 높은 서비스만을 지향하고 나는 무료 서비스를 함께 진행함으로써 훨씬 더 노출도를 높이는 방향을 주장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무료서비스에는 광고가 포함된다.
‘답답하면 유료 결제하라 이거지.’
무료 이용자는 넷플렉스에서 제공하는 VOD들은 보지 못했다. 일반 케이블 방송을 보듯이 정해진 편성표대로 나오는 것만 그것도 광고가 포함된 방송만을 볼 수 있으며, 지난 방송을 다시보기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주로 한국에서 잘 먹히는 방식의 마케팅이었지만, 이 의도는 국외에서도 생각보다 잘 통했다. 덕분에 미국에서 200만 명의 유료회원만을 가지고 있던 넷플렉스는 지금 무료 회원을 포함해서 6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미국으로만 한정해도 한 달 사이에 400만 명의 회원이 늘어난 셈!
‘최근 LON 온라인 챌린저십이 기사화되면서 챌린저십을 독점 중계하는 넷플렉스가 또다시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유럽에서 가입한 회원도 100만 명이나 돼. 역시 넷플렉스에 숟가락을 얹는 것은 탁원한 선택이었어. 미래 정보를 안다는 건 정말 최고야.’
그만큼 넷플렉스는 가만히 둬도 대단한 성공을 할 기업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VOD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여주었다.
‘순조롭다. 아주 순조로워.’
넷플렉스라는 이름으로 유통되고 있는 해외와 달리 한국은 이미 자리 잡은 GGT를 통해서 서비스하기로 했다.
둘이 합친 것은 아니고, 표면상으로는 GGT와 넷플렉스 간에 유통 계약을 맺고 유통을 하는 형태다. 넷플렉스의 진출 허가를 받지 못한 중국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텐션에서 유통을 담당하게 됐다.
그즈음 김선일 국장이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회장님. KPGA에서 확인 요청이 왔습니다. 설마 챔피언십도 GGT에서 그대로 중계하는 거냐는 문의인데, 꽤 자주 오고 있습니다.”
“그걸 왜 물어본답니까?”
“챌린저십에 대한 반응이 생각보다 좋으니까. 그들도 걱정이 되는 거겠죠.”
챌린저십은 준프로 리그다. 2부 리그라고 볼 수도 있는 것으로 1부 리그인 챔피언십은 당연히 기존에 리그를 운영하던 방송사에 중계 권한을 줄 예정이었다. 그런데 자꾸 확답을 들으려는 이유는 불을 보듯 뻔했다.
“생각보다 파이가 커져서 우리가 욕심을 내고 있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는 거 같다는 말이군요.”
“예, 회장님.”
저들의 걱정이 이해도 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다른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괘씸하잖아. 지들이 뭐라고 감히 나를 건드려? 그것도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쪽쪽 빨면서. 내가 가뜩이나 양궁 빼고는 협회들이 죄다 못 미더운 소시민 A인데.’
세상사에 영원한 갑과 을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특히 사업에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곤란한 이유가 이쪽 자리에서는 을이던 사람이 다른 자리에서는 갑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인 영업직원의 마음가짐이 필요 없는 이들도 있다. 나 정도로 돈이 있으며 내 분야에서 높은 위치에 오른 이들이다. 이러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갑일 수 있다.
“김선일 국장님. 굳이 우리가 KPGA랑 같이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네?”
“우리가 KPGA와 함께 가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지요?”
“그야··· KPGA가 그동안 한국의 e스포츠 시장에 만들어 둔 시스템과 인맥들 때문이죠.”
한국 프로게이머 협회, KPGA!
이곳은 그 이름에 걸맞게 국내 최대의 게임 방송사라 할 수 있는 올게임넷은 물론이고 MBS 게임 채널 등의 방송국을 꽉 잡고 있으며 협회의 이사들이 전부 국내 e-sports를 쥐락펴락하는 대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도움 없이 프로리그를 진행하는 일은 어불성설이나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경우에는 말이다.
“지금 챌린저십이 끝나고 챔피언십에 참여하게 될 팀에게 배정할 수 있는 예상 금액은 얼마나 됩니까?”
“해외의 반응을 보고 국내에서도 상당히 관심이 있는 덕분에 광고가 꽤나 모이고 있습니다. 아마 50경기를 다 합치면 1억 정도가 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팀당 1억?”
“아닙니다. 8팀 합쳐서 1억 원입니다.”
바로 뇌 내의 계산기를 두드린다.
‘팀당 1,250만 원이고 팀에서 감독 코치 등을 전부 제외하고 선수 5명만 잡는다 쳐도 인당 250만 원이군.’
딱히 만족스러운 수익은 아니었다.
‘가식적인 표현은 의미 없지.’
솔직하게 말해서 이건 매우 부족한 금액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광고가 늘어가고 단가도 올라가고 있어서 점점 더 좋아질 거라고 예상됩니다.”
김선일 국장이 말을 덧붙였으나 저건 쓸데없이 입바른 소리에 불과하다. 어차피 국내 시장이 가진 규모의 한계가 있기에 여기서 단가가 더 올라간다고 해봤자 그 차액은 대단치 않은 수준일 게 자명해서다.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는 열정 페이로 많은 업적을 이루고 있단 말이야.’
비교라는 건 참 우습다. 잣대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서 엄청나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초라하기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다.
좁은 한국에서 8개의 팀을 뽑는데 유럽 전역과 북미 전역에서 뽑는 팀의 숫자도 동일하게 8팀이다.
그래서일까?
유럽의 팀들이 챌린저십이 끝나고 쉐어 받을 수 있는 예상액은 팀당 8,000만 원이고 북미는 그 두 배인 1억 6천만 원이다.
이 액수와 한국의 1,250만 원을 다시 비교해보자.
‘절반은커녕 그 이하.’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고민을 마치고 내가 말했다.
“김국장님. 챔피언십 리그는 우리 GGT에서 중계합니다.”
“정말이십니까?”
그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기대감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선일 국장 입장에서야 간곡히 바라던 너무나도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GGT에서 중계하면 챌린저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청자층이 안정된 리그를 꾸준히 방송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는 대책 없이 좋아하기만 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우려할 점을 내게 알려주었다.
“KPGA나 기존의 e-sports 관련 업계들에서 반발이 상당히 클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냥 진행하세요.”
“팀은 어떡합니까? 그렇게 되면 KPGA에 소속된 선수들은 경기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참여하지 말라고 하세요.”
“예? 회장님. 그럼 리그가···”
무슨 이야기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한국의 챔피언십은 우리 GF에서 철저하게 지원합니다. 광고 수익 쉐어를 철회하는 대신에 감독과 코치 그리고 모든 선수에게 연봉 4,000만 원 이상을 보장합니다. 당연히 우승 상금은 별개입니다.”
8개의 팀에 감독, 코치, 선수들 전부에게 최소 4,000만 원 이상을 보장한다는 것은 매년 거의 40억을 한국의 프로리그에 사용하겠다는 말이었다.
“이는 추후 메인 스폰서를 구하기 전까지 유효하며, 메인 스폰서가 생기면 광고 수익을 쉐어 하도록 합니다.”
김선일 국장은 내 결정이 자신에게 좋은 결과라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닐까요?”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단언컨대 LON 온라인은 망하는 게임이 아니며 한국의 게이머들은 최강의 위치를 잡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확고부동하게 정해놓고 찌그러진 국내의 시장을 쳐다보면 누구라도 협회에 연연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너희 없으면 안 돼’ 가 아니라 ‘너희 없어도 잘 돼’니까.
‘KPGA와 싸울 필요 없이 그냥 ‘챔피언십은 너희에게 중계 권한을 줄게.’라고 해버리면 별다른 잡음 없이 리그를 진행할 수 있어. 하지만 그러면 좁은 한국의 e-sports 시장이 발목을 잡을 것이고 훗날 좋은 선수들은 죄다 해외로 팔려나가게 되지.’
올해 말, 월드 챔피언십을 진행하고 거기서 한국이 우승한다면 자연스럽게 VOD의 수요도 많아진다. 즉, VOD를 통한 수익 쉐어를 그만큼 더 해줄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선수들이 팔려나간다면?
해외에서 한국의 VOD를 구하려고 할 일도 없을 것이고 결국 그 시장을 날려 먹게 될 것이다.
초석을 잘 다지고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 결정은 당연히 국내 e-sports의 모든 업계에서 큰 반발을 일으켰다. 이제는 익숙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인 언론을 통한 흠집 내기가 한가득 밀려왔다.
【KPGA LON 온라인 챌린저십 참가 거부.】
【참가 팀 없이 텅 비어버린 LON 온라인 챌린저 십. 앞으로의 향방은 어찌 될 것인가?】
【KPGA와의 협의 없이 선택한 GF.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
엄청난 실수라도 한 것인 양 떠드는데, 죄다 웃긴 일에 불과하다.
LON 온라인을 개발한 회사가 GF고 이 리그에 투자한 회사도 GF다. 그런데 KPGA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와의 협의를 이야기한단 말인가.
“자격도 없는 놈들이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예상했었다만, 진짜로 딱 기대한 만큼 움직여주니 살짝 당황스러운데?”
결론인즉, 쓸데없는 짓거리에 불과하다.
대충 이런 식으로 강하게 나오면 우리가 알아서 깨갱거릴 거라고 믿은 거 같은데 나는 절대로 그래 줄 생각 따위는 없다.
강경하게 대응했다.
【GF. LON 온라인은 본래 우리 것. KPGA에서 참견할 자격 없다.】
【앞으로 방송으로 송출되는 모든 LON의 대회는 GF의 허가를 받아야만 할 것.】
< 프로젝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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