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20화 (320/577)

< 프로젝트 >

김유천 부문장은 ‘중계권을 통해 수익을 만들어냄으로써 유럽과 북미의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외쳤다.

“맡겨만 주십시오! 반드시 해내고 말겠습니다!”

강력하게 의지를 보였는데 여기에는 창립 이후 최초라고 봐도 좋을 회사의 상황을 마음에 둔 것이 분명했다. 성공으로 실패사업을 반드시 견인하겠노라는 열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면 넓게 보지 못하는 법이며 맹목적으로 한 가지를 이루려 들다가는 다른 몇 가지를 손해 보는 실수를 범하리 마련 아니겠는가.

나는 김유천 부문장에게서 이 부분을 보았고 바로 짚어주었다.

“제가 뭘 하려는 건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요. 혹시, LON 온라인 리그의 중계권을 해외 방송사들에게 판매하라는 것으로 여기는 겁니까?”

“그게 아니었습니까? 어떻게든 최대한 좋은 값을 받아내는 쪽으로 분골쇄신하라는 말씀이신 줄 알았는데요?”

“아니에요. 그러시면 곤란합니다.”

“네?”

“우리는 중계권을 팔지 않을 겁니다.”

성공한 스포츠의 최대 수익원이 중계권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깨우쳤다. 어마어마한 선수들의 몸값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거대한 상품이기까지 했다. 이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걸 왜 남한테 줘? 자원봉사도 아닌데.’

내가 홀랑 먹으면 배부르게 만끽할 수 있는 음식을 왜 남한테 주고 숟가락에 묻은 밥풀만 씹고 있겠는가.

“우리가 직접 합니다.”

“직접이요? 그럼 이것도 인터넷으로 중계하게 되는 건가요?”

“그럴 겁니다.”

우리에게는 GGT라는 인터넷 방송국이 있다. 아울러 메뉴가 다양해야 취향이 제각각인 사람들을 오래 붙들 수 있는 법.

‘콜라만 사 먹는 고객도 콜라만 파는 곳보다는 콜라와 햄버거를 같이 파는 곳에서 콜라를 사기 마련이지.’

한편, 내가 포부를 밝히자 김유천 부문장은 표정에 가득 물음표를 띄웠다. 회사에서 자체 소비할 거면 자기는 왜 불렀느냐는 의문이었다. 나는 이유가 다 있다며 설명했다.

“김유천 부문장님은 이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나 해주셔야겠습니다. 여러모로 달리고 있으나 우리 GGT는 현재 한국 내에서도 콘텐츠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지요. 이런 상태에서 전 세계에 스트리밍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예.”

“그렇기에 안정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도록 대량의 콘텐츠를 보유한 업체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매자이며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일을 선행하는 거지요.”

“국내에서는 찾지 못하겠군요?”

맞다. 그래서 김유천 부문장을 부른 것이다.

“해외 나가시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출장은 삼가는 편입니다.”

“오! 이런 김유천 부문장님에게 그런 고액의 연봉을 주는 이유가 해외 출장을 제 맘대로 아무렇게나 보낼 수 있어서였는데, 이리 반응하실 줄이야. 이거 큰일이군요. 보직 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타이밍이 되었나 봅···.”

“에이! 회장님. 농담 한 번 한 걸 가지고 뭘 또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여행은 당연하면서도 여전하게 좋아하고 있습니다. 내일까지도 필요 없어요. 오늘 당장 나갈까요?”

“역시 아직 여전하시군요. 좋습니다. 오늘부터 당장 알아봐 주세요.”

함께 지내온 시간만큼 서로 ‘척’ 하면 ‘착’이랄 만큼 손발이 잘 맞았다.

그리고 김유천 부문장은 정말로 3시간 만에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떠났다.

129. 프로젝트

김유천 부문장이 미국으로 떠난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대국(大國)이니까.’

내수 시장이 한국과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광활한 국가.

그만큼 미국은 자국의 방송시장 규모만으로도 전 세계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는 큰 나라다. 2004년을 기준으로 전 세계의 방송시장이 가진 규모는 약 270조 달러였는데 이 중에서 미국이 약 160조 달러를 차지한다.

거의 60%에 육박하는 수준인 셈이다. 이러니 콘텐츠 확보를 위해 날아가야 하는 도착지는 자연스럽게 미국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의 뛰어난 인재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신속하면서도 정확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빠르게 대상 기업을 찾아낼 줄이야. 나 같은 가짜랑 진짜 능력자들은 역시 달라도 뭔가 달라.”

고작 일주일이다. 김유천 부문장은 7일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대량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그 콘텐츠를 우리에게 공급할 의지를 가진 기업을 찾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회사 이름에 나는 다시금 깜짝 놀라고 말았다.

- 회사명은 넷플렉스입니다.

‘진짜 대박이다. 이건 미쳤어. 완전 대어를 낚은 거야!’

정말 상상도 못 했다.

넷플렉스가 어떤 회사던가! 지금으로부터 10년이 흐른 후, 미디어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이 되며 잠시나마 디지니를 능가하면서 세계 1위 미디어 기업이라는 네이밍까지도 차지했던 기업이다.

이런 곳의 콘텐츠를 확보한다는 전언을 들었으니 내가 기뻐서 날뛸 지경이 된 건 당연했다.

뿐만이랴! 더 예상치도 못했던 것은 넷플렉스의 요구사항이었다.

“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넷플렉스 측에서는 우리가 넷플렉스를 인수해주었으면 한다··· 이겁니까?”

- 예, 회장님. 그렇습니다.

티나지 않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대표자가 방방 뛰는 가벼운 모습을 보여서야 쓰겠는가.

‘어흠!’

헛기침하고서는 들뜬 티를 꾹 누르며 대꾸했다.

“우리는 콘텐츠가 필요하고 그들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니··· 괜찮군요.”

넷플렉스에서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는 무려 1만 7천 편. 물론 그 중 상당수가 구작이긴 하지만, 아무리 구작이라도 이런 방대한 양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가 된다.

“물론 가격이 적당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말입니다.”

말도 안 되는 금액만 아니라면 인수하고 싶을 따름이다. 기대를 한창 하는 그때, 김유천 부문장이 말했다.

- 그게, 지분 49%에 5,00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화로 약 564억.’

넷플렉스의 작년 매출액은 2,218만 달러다. 2005년도에 들어서면서 달러가 상당히 안정화 된 지금의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250억이 조금 못 되는 매출인 셈!

김유천 부문장이 과한 액수라고 한 말의 근거가 여기에 있었다. 대충 계산하면 매출액 대비 기업의 가치가 4.6배였기 때문이다.

- 솔직히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회사가 제시하기에는 너무 과한 액수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그와 나의 식견 차이가 드러난다.

넷플렉스의 사업 분야는 DVD 대여업이다. 이들의 경쟁사는 미국 내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블랙버스터였는데 강력한 경쟁사인 블랙버스터의 작년 매출은 무려 12억 4,200만 달러다. 이는 넷플렉스와 비교하면 56배에 달한다.

즉, 말이 좋아서 경쟁사지 블랙버스터 입장에서는 ‘어디 넥플렉스를 우리랑 비교하냐? 급이 다른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넷플렉스의 기업가치가 팍팍 올라갈 가능성도 지금으로서는 보이지가 않고.’

미국은 한국과 달리 합법적인 로비가 가능한 국가다.

수익이 크다는 건 그만큼 더 적극적으로 많은 돈다발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에게 로비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넷플렉스의 입지는 좁아질 게 자명한 현실이었다.

이런 꼬락서니의 회사가 자신의 몸값으로 5,000만 달러를 제시했으니 김유천 부문장이 볼 때 어찌 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블랙버스터처럼 대형 자본이 유입되지 않으면 결국은 말라죽을 회사 주제에 말이다.

하지만 내 견해는 다르다. 합리적인 업계의 잣대를 무시하는 최고의 효율!

그것은 바로 미래 지식이다.

이 회사는 안 망했으므로 무조건 돈이 된다.

“제시한 지분이 49%인데 그럼 현재 CEO가 51%의 지분을 가지는 겁니까?”

- 아닙니다. 저희가 인수를 하게 되면 현재 CEO인 라드 헤이스터스의 지분은 7%가 되고 초기 투자사들이 3%에서 5%로 총 21%. 임원들 지분을 다 합쳐서 8%입니다. 나머지는 나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좋군요.”

생각보다 자잘하게 지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구조이니 49%라는 압도적인 지분은 내 말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다.

이보다 좋은 조건이 또 어디 있으랴. 아울러 지금이 아니라면 과연 이런 지분을 차지할 기회가 또 있기는 하겠는가.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도와주는구만. 안 그래도 요즘은 잉여자본금이 너무 쌓여서 사용할 곳이 필요하다 싶었는데 말이야.’

LON 온라인의 폭발적인 성공 덕분에 써도 써도 돈이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만 가고 있는 형편이다. 어느 정도냐면 5,000만 달러를 일시불로 지불해도 약 1,500만 달러 정도가 여유로 남을 정도다.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달러만이다. 원화와 위안. 거기에 유로까지 전부 따져보면 내 가용재산은 한층 더 늘어난다.

“곽지원 부사장님이 가실 테니 그때까지 계약을 위한 준비를 해주십시오.”

김유천 부문장을 미국으로 보낸 이유는 콘텐츠를 구매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기업에 대한 인수를 맡기려고 보낸 것이 아니니 당연하게 넷플렉스를 인수하는 일은 그 분야의 전문가인 곽지원 부사장이 가는 것이 옳았다.

- 인수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물론입니다.”

- 회장님. 제가 이 분야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바람 앞의 등불 같은 회사를 인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1억 달러가 넘어가는 거대한 규모의 회사를 인수하는 것 치고는 참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결정을 내린 셈이니, 다른 기업가들이 이런 것을 알면 입이 벌어지다 못 해서 턱이 빠질 것이다.

김유천 부문장 역시 이러한 보통 사람에 속했다.

“김유천 부문장님.”

- 네?

“저는 넷플렉스로 DVD 대여 사업을 하려고 넷플렉스를 인수하는 게 아닙니다.”

- 그건 알고 있습니다.

“DVD 대여 사업을 할 게 아닌데, 블랙버스터를 경계하고 지금 넷플렉스가 힘들고 이런 걸 따질 필요가 있겠습니까?”

- 아······.

정확하게 어떤 식으로 다른 기업에 인수되지 않은 채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관련 분야가 아니었기에 관심을 조금도 두지 않아서였다.

그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성공하는 투자를 위해 오래간만에 남이 볼 때는 ‘끼워 맞춰 설득하며 덮어놓고 질러!’의 방식을 선보일 따름이다.

“이미 대량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또 훌륭한 회원까지 보유하고 있는 넷플렉스는 제게 이번 계획에 있어서 아주 훌륭한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입니다.”

-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실 거까지는 없고, 곽지원 부사장님 가시면 확실하게 처리해 주세요. 그리고 CEO는 변경 없이 갑니다. 이해하셨죠?”

- 알겠습니다.

*

GF그룹의 넷플렉스 인수는 조용히 진행됐다. 애초에 넷플렉스도 딱히 인지도가 높은 회사가 아니었고 GF그룹도 게이머들이 아니라면 오히려 내부 계열사인 레이컴이 훨씬 유명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모든 자료가 IDC센터에 입주 되었다고 합니다.”

“좋네요. 그럼 OTT 서비스는 언제쯤부터 상용이 가능합니까?”

“한국의 경우는 지금 바로 상용화가 가능합니다.”

넷플렉스의 새로운 미래라고 할 수 있는 OTT(Over-the-top)는 top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셋톱박스를 통해서 서비스되는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서비스 등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뭐, 기술적으로 자세히 들어가면 복잡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그냥 스트리밍이라고 생각하면 머리를 조금이나마 편하게 할 수 있다.

“다만, 당장은 한국에서만 가능합니다.”

“이유가 뭡니까?”

“아무래도 한국을 제외하면 인터넷의 품질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보니 가변품질을 적용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변품질은 이미 GGT를 개국할 때 기술 개발을 완료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 덕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고, 대충 2주 정도면 완료가 될 것 같습니다.”

‘그쯤이야.’

난 또 반년씩 기술 개발에 매달려야 하고 그러는 건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정도면 일단 상용화를 합시다.”

“네? 이런 시스템은 초기에 불편함을 느끼게 되면 사용자들이 금방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닌데 기왕이면 완벽하게 준비해서 시작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쯧쯧.’

내가 기술적인 건 몰라도 이런 건 또 안다.

“어차피 가변 품질을 적용하고 시작해도 인터넷이 느린 지역에서는 답이 없습니다.”

가변 품질이라는 것은 느린 인터넷에 맞춰서 품질도 떨어트리는 형태인데, 이는 결국 인터넷이 느리면 저품질의 영상만 주야장천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곳은 스트리밍이 아니라 다른 시스템을 활용해야죠.”

“다른 시스템이요?”

“우리가 만든 압축 형태가 있잖습니까?”

“아! 클로버 플레이어 말이군요.”

클로버 플레이어는 클로버 스팅에서 개발한 새로운 동영상 압축 파일이다. GF에서 배포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만 동영상 파일을 볼 수 있으며 해당 애플리케이션은 동영상을 최대 일주일 동안만 저장하고, 이후에는 자동으로 삭제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

“이거 이름을 넷플렉스 플레이어로 변경하고 DVD 온라인 대여 시스템으로 오픈하세요.”

< 프로젝트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