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틀을 만드는 자 >
우선 틀을 짜는 초안에는 나도 슬쩍슬쩍 조언을 해주었다. 어떤 식의 추리게임이 적절한지, 스튜디오를 제작할 때 구조는 어떠한 생김새가 잘 어울리는지, 적절하게 BGM으로 긴장감을 주는 등등의 테크닉이었는데 이건 꿈속 미래의 열혈 팬으로서 아는 바가 적잖았다.
방송 보다가 음악이 좋아서 검색하여 찾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제작 시기가 너무 일러서 아직 해당 음악이 나오지도 않은 사례가 꽤 됐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멜로디 흥얼거리고 작곡가한테 악보 그리게 해서 음원을 등록해봐!?’라는 상상도 잠시 해본 건 나만의 비밀이다.
의외인 점은 뜻밖에도 출연진을 섭외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애청자로서 꼭 있었으면 하는 멤버들이 딱 내 소속 선수들이지. 얘들은 부르면 바로 달려올 테고.”
크리미널 씬의 인상 깊은 장면.
이를 위해서 김요환과 송진호는 필수다.
‘꼭 연예인에 연연하지 않아도 됐지. 일반인 중에서도 좋은 캐릭터들이 있었거든. 특히 연예인과 일반인으로 정치나 하고 남의 카드를 소매치기하는 그런 녀석은 절대로 부르지 말아야지. 뭐, 부른다고 해도 아직은 쩌리에 불과한 인터넷 방송에 섭외될 리도 없을 테지만.’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내가 막상 놀림당한 적도, 사기를 당한 일도 없다. 하지만 게이머로서 기기묘묘하게 룰을 역이용하는 일과 허락한 한도 내에서의 언변과 달리 아예 기만하고 도둑질을 하는 건 엄연히 다른 영역에 있다고 본다.
게임으로 치면 이건 핵이나 버그의 사용이니까.
‘제안부터 하기 전에 무조건 거절!’
혼자 우쭐하게 자존심을 세워본다. 그런데 고고하게 이것저것 다 지키고 따지려고 드니 정작 크리미널 씬의 진행 상태가 아주 지지부진해졌다.
“이미지에 자칫 손해가 있을 것 같다네요.”
“회장님과 한 판처럼 게임을 하는 정도면 좋다는데···”
“아무래도 머리를 쓰는 부분에서 난색을 보입니다.”
“좋은 학력으로 만든 이미지가 망가질 수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비슷한 이유가 있었는데 대동소이한 핵심은 이미지였다. 실제로도 지적인 아나운서가 플레이 도중 이기적인 면모를 보여서 대차게 욕을 먹은 일, 학벌 좋은 명석한 방송인이 정작 게임의 룰을 이해하지 못해서 쉽게 탈락하는 일이 꿈속 미래에서도 있었으니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제작진의 자신 없는 태도도 한몫했다고 본다. 저쪽에서 확실하게 책임져 줄 수 있느냐, 우리 연예인한테 도움 되는 게 맞느냐, 라는 물음을 받아도 패기 넘치게 나서야 하는데 다들 너무 솔직하고 겸손했다.
‘아! 송픈 패스를 보기가 어렵구만! 게임계의 미다스라는 내 네임밸류도 방송 쪽은 아직 미지수고.’
괜찮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은 탓이리라.
시간과 공을 들이면 차차 해결될 테니 시간을 더 두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크리미널 씬은 아직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건 이만하면 됐고 다음 프로그램이나 말해보시지요. ‘프로게이머를 보다’는 어떻습니까? 듣자 하니 이미 편성까지 다 끝났다고 하던데?”
“예, 회장님. 첫 방송이 오늘입니다.”
‘응?’
아까는 너무 느렸는데 이건 굉장히 빠르다.
“오늘이요?”
“넵!”
프로게이머를 보다는 전에 내가 대충 제목을 지었던 방송 중 하나인 ‘프로게임단 24시’의 콘셉트다. 언급했던 때가 10월 20일 경이었는데 오늘 방송한다는 건 무려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촬영을 마치고 편집에 편성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다는 뜻이다.
‘거참. 잘 나가는 것 같아도 이게 현주소네.’
입맛이 살짝 쓰다. 좋게만 보면 섭외가 쉬웠고 제작진의 역량이 출중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건 그저 ‘내 새끼 우쭈쭈’하며 편파적으로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상은 그만큼 GGT에 제대로 편성된 방송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니까. 모든 역량을 꼴랑 이것 하나에 집중해버릴 만큼 한가해.’
GGT의 방송 콘텐츠는 80%가 게임 공략이다. 게임이 메인 콘텐츠니까 게임 공략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세상일에는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 내가 괜히 프로그램을 늘리려고 발언했겠는가.
하루에 10시간씩 공략방송만 주야장천 나오는 방송사가 우리 GGT의 현실이다. 그러니 공략 하나 제외하고 새로운 편성을 하는 게 어려울 리가 없는 것이다.
‘뭐, 괜찮아.’
차차 늘려가면 된다. 우리 방송사는 돈이라는 맷집이 넉넉해서 절대로 쓰러지지 않는다.
“방송은 잘 빠졌습니까?”
“네. 훌륭합니다! 여기 보시면 사전 반응도 아주 좋아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김선일 국장이 인터넷 기사와 댓글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삐뚤어지는 10代들의 꿈. 게임 중독으로 어긋나는 청소년의 민낯】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말에 “아들아 그건 돈 벌기 힘들다”】
【‘게임만 해도 성공한대요.’를 현직 교사가 대답해준다. ‘과연 그럴까?’】
【인터넷 방송. 이제는 대놓고 아이들에게 게임의 세계를 보여주는가?】
···
‘뭐야 이건?’
대놓고 GGT라고 말하지는 않았으나 국내 인터넷 방송국 중에서 교육이 아닌 목적을 가진 방송국은 오직 하나뿐이다. 즉, 부지기수로 올라온 이 보도문들은 몽땅 우리를 저격하는 기사였다.
그중 하나를 읽어보았다.
【인터넷 방송. 이제는 대놓고 아이들에게 게임의 세계를 보여주는가?】
최근 국내 인터넷 방송국 중 한 곳에서 프로게이머의 일상을 보여주는 방송을 제작했다고 공개했다. 이 인터넷 방송국의 본사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 개발사다.
이들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직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프로게이머라는 환상을 심어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본질을 보면 답은 자명하다. 기업의 나팔수가 되어 방송을 통해 화려하게 치장된 면면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쭉쭉 이어지는 글은 정론에 입각하여 교묘하게 게이머스 포럼을 까고 나를 깎아내리다가 ‘우리 사회는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어린 학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라는 말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건데?’
내가 착각하는 게 아닐 것이다. 이건 대놓고 싸우자는 기사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신랄하기까지 한 기사는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지레짐작으로 우리 방송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을 선망하게 만들고 아름답게 치장하는 줄 안 모양인데, 결과물은 정 반대다.
방송의 목적은 게이머가 방구석 폐인이 아니라는 점. 나아가 프로게이머라는 직종이 얼마나 프로페셔널해야 될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자 함이다.
그렇기에 꿈과 환상 대신 치열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중점이었다.
‘기자의 수준이 가면 갈수록 허접해지고 있는 게 확실히 보여. 다들 나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신방과 나오고 공부 잘한 엘리트들일 텐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니까. 심층적인 탐사보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적어도 취재라는 걸 해보기는 할 거 아니냐?’
아니나 다를까, 하단의 댓글에는 기자가 의도했던 대로 치열하게 언쟁이 오가고 있었다. 이슈를 만들어서 조회수를 늘리려는 목적이었다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하겠다.
- ㅋㅋㅋ 미쳐 돌아가네. 요즘엔 게임 폐인들도 방송에 나오고 세상 참 좋아졌어.
└ 이봐요. 게임 폐인이라니. 프로게이머도 직업입니다.
└ 게임만 하는 놈들이 직업은 무슨 직업이야? 그냥 게임 폐인이지.
- 이게 직업이면 대한민국에는 백수가 없음. 모두 프로게이머로 취업한 겨.
└ 김요한 선수 연봉이 2억이 넘거든요? 당신은 연봉이 얼마나 되기에 그런 선수를 무시합니까?
└ 뭐만 하면 김요환~ 김요환. 프로게이머는 김요환 한 명만 있냐?
└ 그리고 걔가 지금 연봉 2억 넘어봤자 그거 몇 년이나 갈 거 같은데? 난 지금 직업 평생 할 거거든~
└ 네. 네. 연봉 2,000만 원으로 10년 벌어 봤자 김요한 선수 1년이면 그만큼 법니다. 근데 벌써 4년 넘게 선수하고 있네요?
댓글 창을 보니까 역시나 전투민족답게 프로게이머에 대해 찬성파와 반대파가 나뉘어서 배틀 중이시다. 낯선 풍경은 아니다.
‘이런 거야 1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으니까.’
세계가 e-sports를 진짜 스포츠로 인정하게 되는 미래에도 이런 언쟁은 끊이지 않았는데 2005년의 시점에서야 오죽하겠는가. 어쨌거나 논쟁이 과열되어가는 만큼 해당 기사 역시 일파만파로 퍼지며 높은 조회수를 견인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래서 웹진들이 한순간에 망한 거겠지.’
2004년을 넘어가면서 사람들이 점점 인터넷 기사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과거에는 게이머스 포럼을 주축으로 웹진들이 대부분의 기사를 담당했다면 지금은 굳이 그런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많은 내용들을 보고 댓글을 달 수 있게 됐다.
내 견해지만 그 결과로 2년 전까지만 해도 꽤 많이 있던 웹진들이 수익성 악화니 뭐니 하면서 상위 몇 개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문을 닫았다고 본다. 변화의 흐름에 밀리고 만 것이다.
‘포털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는 자료가 방대해지는 만큼이야. 우리 역시도 장점을 잘 유지해야 해.’
게이머스 포럼을 비롯한 상위의 웹진은 단순하게 자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유저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포털과는 굳이 경쟁을 할 이유가 없으나 그런 규모가 되지 못하는 웹진들은 견딜 수 없다.
그리 상념을 이어나가다 아차 싶었다.
‘젠장. 뻘 생각을 하고 있었군. 지금 웹진이 중요한 게 아닌데.’
의식의 흐름이라는 건가 보다. 나는 냉큼 정신을 차리고 김선일 국장에게 물었다.
“긍정적인 반응은 오직 게이머스 포럼의 글뿐이군요. 부정적인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게 정말 훌륭한 반응인 겁니까?”
“맞습니다, 회장님. 이보다 훌륭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왜죠?”
“일단 우리 방송은 회장님의 지시에 따라서 저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노선을 따르고 있습니다. 게이머에 대한 화려함 대신 현실을 보여주는 만큼 반전효과도 큽니다. 아울러, 이런 자극적인 기사들 덕분에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프로게이머의 무관심한 층위까지 우리 방송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화제가 되면서 GGT와 신규 방송이 공짜로 마케팅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거군요?”
“맞습니다. 일단 알려져야 누군가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노이즈 마케팅은 양날의 검이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사람들에게 훨씬 자극적이기에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는 충분히 훌륭하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여론이 몰린다면 인지도 상승으로 얻어야 할 것들은 하나도 얻지 못한 채 차가운 외면만 당하게 될 수 있다.
‘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게 궁극적인 목표야.’
비단 콘텐츠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 신규방송 하나를 넘어서 GGT라는 방송사. 나아가 윤태식이라는 내 이미지와 우리 그룹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물론, 회사가 휘청인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지만 이미지 개선을 위한 전략이 되려 악수가 된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이럴 때 도움 되는 게 바로 미래의 기억이다.
“알겠습니다.”
성공했을 때의 이익과 실패했을 때의 손해를 저울에 올려 두었을 때 득보다 실이 더 크다면 배팅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다. 대기업이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으려 하고 도전을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김선일 국장의 안목 이전에 내가 경험한 미래의 정보를 믿는다. 시류가 어찌 흘러가는지, 밈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는지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인바.
“전문가이신 국장님을 믿고 결과를 기다려보지요.”
“감사합니다.”
다분히 의도된 말로 감동을 안겨주며 오늘의 방송을 고대했다.
< 틀을 만드는 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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