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13화 (313/577)

< 틀을 만드는 자 >

회장님과 한판을 처음으로 시작했던 10월이 지나가고 금방 11월이 찾아왔다. 우리 역시 바빠졌다. 새로 기획하는 GGT의 새로운 콘텐츠는 사람 몇과 컴퓨터로 해결하는 단순한 방송들과 달리 준비과정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직 한창 기획단계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아주 다행이지.’

중요한 것들은 이미 보고가 끝났고 한동안은 내가 직접 GGT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이걸 다행이라고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LON 온라인 때문이다.

보고를 위해 김유천 해외사업 부문장이 회장실에 들어왔다.

“우선 LON 온라인 해외 서버의 현황부터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유럽은 최근 동시접속자가 5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전 세계 동시접속자는 100만 명을 넘어 200만 명을 바라보고 있으며 내년의 기대 매출액은 4,000억 원입니다.”

게임업계 종사자는 물론이고 GF의 직원들이 자체로 내린 빼어난 성과지만 내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욕심껏, 양껏 채우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시장성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기에 생기는 견해 차이였다.

‘LON 온라인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초대박을 일으킬 게임이거든. 4,000억이 아니라 한 7,000억까지는 성장한다고 봐야 맞다는 거야.’

그러나 이를 언급하며 ‘포부가 작군요. 훗훗.’ 따위의 퍼포먼스는 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부장님 개그에 왜 직원들이 웃어주겠는가?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추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것이 사회이며 회장의 7천억 발언은 ‘목표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사력을 다해 더 높이시오!’로 와전될 우려가 크다. 이래서 자리가 높아지고 권력이 생길수록 언행에 주의해야 한다.

‘이런 자각 없이 소싯적 하던 대로 행동하는 일을 일컬어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거겠지.’

즉, 알아서 잘하는 직원들에게 필요한 건 칭찬과 격려일 뿐이다. 성과는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간과하면 안 되는 핵심방향을 짚어준다.

“전 세계에 프로리그를 만들 수 있도록 아낌없이, 최대한으로 지원해 주십시오. 또한, 각 리그의 상위 팀끼리는 월드컵처럼 챕피언십을 진행할 겁니다. 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유럽에 시간을 투자하세요. 정말 많은 연구가 필요한 나라들입니다.”

이래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중국에 리그를 만드는 건 쉽다. 인구가 제아무리 많고 땅덩이가 무지막지하게 넓어도 어차피 하나의 나라에서 벌어지면 되기 때문이다.

북미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와 미국이라는 두 개 국가이기는 하지만 이 두 나라는 워낙에 아무렇지 않게 교류를 하는 곳들이니 크게 걱정할 게 없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국토가 얼마 되지 않으면서도 ‘나라입네’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넓은 땅덩이이면서도 인구는 막상 없는 곳 등 여간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게 아니다.

‘대륙이라기에는 사이즈도 얼마 안 되는 크기인데 나라 숫자는 참 오지게도 많다니까. 게다가 언어도 귀찮을 정도로 많아.’

달러로 퉁 치듯이 영어로 대충 해결하겠다는 안이한 발상은 곤란하다. 저들은 우리나라처럼 지나는 국민에게 여행자가 영어로 물어봤을 때 ‘죄송합니다. 제가 영어를 못 해서요.’라며 자신의 부족함에 전전긍긍하는 부류가 아니니까.

‘문화 사대주의가 이런 거겠지. 한국에 여행 오면서 한국말을 일절 못하는 저놈들이 문제인데 왜 식은땀을 절절 흘리면서 우리가 반성하냐고. 달랑 영어만 잘해도 능력자 취급을 하고.’

괜스레 발끈하는 이유는 절대로 내가 비슷한 사건을 겪어서가 아니다. 그건 꿈속 미래의 일일 뿐이지 지금의 나는 개인과외를 통해서 영어를 극복했으니까. 그저 영어 울렁증에 고생하는 이들에게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것에 불과하다.

아무튼, 다양한 국가만큼 언어의 수도 여러 가지인 유럽의 국가들을 통합해서 리그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주최 측은 고달프다.

“다른 나라와 달리 유럽의 프로팀은 다국적 팀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일반적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관리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무턱대고 그냥 다국적팀으로 이루는 일도 지양해야 합니다.”

“유럽을 동서남북 네 곳으로 나누어서 그 안에서 팀을 만들면 어떨까요?”

“훌륭한 생각입니다. 그렇게 운영하고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 리그 전체로 보면 관리하기에도 좋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가 될 겁니다.”

“라틴계, 게르만계와 같은 방식으로 나누는 것도 고려해보겠습니다.”

척하면 착하고 알아들으니 참 마음에 든다.

“매우 좋습니다. 상황에 맞춰 유동적으로 선택해 보십시오.”

“예, 회장님.”

“그리고 내년부터는 엄청나게 수익을 가져오게 될 겁니다.”

기대사항이 아니라 확실한 내용이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수익이 나기 전에 수익이 난 후 어떻게 재투자를 할 것인가, 이 방향을 확실하게 잡아야 합니다. 김유천 부문장님은 해외의 게이머들이 직접 관람하고 플레이하면서 즐거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주력해 주세요.”

“네. 그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잘 되어간다고 마냥 흐뭇해하고 즐기려는 어설픈 태도로는 사업을 꾸려나갈 수 없다. 관객이야 무대의 막이 오르면 시작이고 폐막하면 공연이 끝나지만 주최 측은 결제를 마치고 매출에서 순이익까지 결산해야 비로소 마무리인 것이 아니던가.

‘행운은 준비한 사람이 기회를 잡았을 때 오는 법.’

한창 시장이 커지고 있는 지금이 가장 홍보 마케팅에 열을 올려야 할 때다.

“마이코닉스 쪽에 연락해서 LON의 홍보 애니메이션 멋지게 뽑으라고 하십시오. 약 15분짜리로 만들어서 이를 15초, 30초, 5분, 15분인 네 가지로 편집할 겁니다. 특히 우리 회사에서 가지고 있는 인기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제작을 원한다고 전해주세요.”

“인기 캐릭터라 하심은 마이코닉스의 애니메이션 캐릭터 및 몬스터 프레데터스, 신과 함께, 드래곤 소울, LON 온라인 등의 모든 캐릭터를 총망라하신다는 의미입니까?”

“맞습니다만, 그 가운데에서도 핵심 캐릭터입니다.”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일어나겠군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사람들은 일단 자신에게 익숙한 것들을 선호한다. 아직은 등장하지 않았으나 꿈속 미래에는 아이스 스톰 사에서 만든 AOS 게임이 있다.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흑역사를 가지게 된 이 게임은 암울한 시기를 꽤 보내게 되었으나 처음 등장했을 때는 모든 게이머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았었다.

이유는 단 하나.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게임 마니아들에게 익숙한 캐릭터였고 본래의 세계관이라면 절대 만날 수 없는 그 영웅들이 하나의 전장에서 부딪치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던가. 어렸을 때 하는 순진무구한 물음말이다.

‘슈퍼맨이랑 손오공이 싸우면 누가 이겨요?’ ‘장갑차랑 기차랑 부딪치면 누가 이겨요?’와 같은 것들.

이번 홍보영상은 최대한 그 점에 포커싱을 맞춰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들일 요량이다.

‘미래의 히어로물 영화들도 사실 이 호기심을 제대로 건드려주는 거였지. 가만있자, 어떻게 잘만 하면 나도 판권을 사서 히어로물을 제작할 수도 있겠는데? 어느 배우가 최적의 캐스팅인지도 잘 알잖아. 망작이 되지 않도록 시리즈물로 완성하면 좋고.’

코리안 머니가 들어가면 작품성이 보장되는 작품이 나온다는 이미지를 만들면 그 재미도 꽤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발상에서 그쳤다.

‘그러잖아도 벌여놓은 일이 너무 많아. 더군다나 세상만사에 다 끼어들면서 한 몫 챙기려고 혈안이 될 필요도 없고.’

자고로 만족할 줄 아는 어른스러운 태도가 필요한 법이다.

“제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였으리라 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회장님께서 이토록 짚어주셨는데 제대로 된 성과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건 원숭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확실하게 작업하여 만족스러운 성과를 올려드리겠습니다.”

김유천 부문장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

그의 호언장담에 크게 웃고 말았다.

“아주 좋습니다. 믿고 기다리지요.”

우리는 서로를 잘 안다. 그가 저런 표정을 지었을 때는 실망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오기를 나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일단릭 짓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 여어! 디스 이즈 마이프랜드! 살아있는 것이냐!

- 이 연예인아!

나 정도는 아니어도 플레지로 인생 역전한 대표적인 케이스. 친구이자 지금도 여전히 골드 판매대금을 보내주는 진수 성찬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피커폰으로 해놓았는지 두 친구가 떠들썩하게 말하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리는 게 여간 웃긴 게 아니었다.

“당연히 살아있지. 이 형님이 요즘 여기저기에 출몰하고 있는 거 모르냐?”

- 보고 있지. 초절정 겜고수로 절찬리에 잘 나가고 있던데?

- 얼굴은 연예인한테 확 밀리더만. 역시 괜히 아이돌이 아니더라고. 너님은 그냥 몸 좋고 돈만 많은 보디가드니께.

- 푸하하하!

한바탕 웃음이 들렸다. 가까이에 있었으면 냅다 새우과자 봉지를 던져줬을 것이다.

“아무튼, 뭔 일이냐? 플레지 업데이트 소식 물어보려고?”

플레지는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딱 왕년의 현상 유지가 이어지는 중이다. 내 사정이 사정인 터라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고 플레지보다는 LON 온라인에 집중해야 하기에 과거처럼 주도적으로 플레이하지는 못했다.

사실 대단찮은 사고만 터지지 않는다면 1위를 공고히 한 우리 사람들 길드를 능가할 세력은 없었고 말이다.

‘작정하고 한 게임을 즐기려면 얘네처럼 그냥 치킨집이나 피자집만 가져야 맞아. 나처럼 이리저리 사업에 개발에 죄다 끼어들면 곤란하다고.’

많은 돈을 버는 만큼 일도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정력적으로 온갖 곳에서 몽땅 활약하는 시기는 딱 미래를 확실하게 아는 꿈속 나이가 될 때까지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날이 오면 말 그대로 한가로운 한 때를 원 없이 누릴 것이다.

- 노놉! 그게 아니라, 잘 나가는 친구 덕 좀 보려고.

“뭔데?”

- 장나리 사인 좀~

- 나는 슈가걸즈 사인···

“즐! 그리고 슈가걸즈를 내가 어떻게 아냐?”

- 연예계면 마! 다 통하고 알고 그런 거잖아.

“육갑하네.”

여동생을 위해 오빠는 쪽팔림을 감수해줄 수 있다. 하지만 남자 놈들을 위해서는 차가온 도시인이 된다.

- 야이 치사한 새끼야! 지는 장나리랑 오빠 동생 사이면서!

- 인생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좋은 건 공유하자!

회장이건 뭐건 간에 죽마고우 사이에는 대차게 욕이 나온다.

노발대발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래간만에 녀석들 얼굴이나 보고 오자는 생각을 했다. 남 밑에서 일하지 않는 최대의 장점은 내가 하고 싶을 때 그 일을 해도 감히 뭐라 하는 이가 없다는 점이다.

“됐고 탕수육 세트 C나 주문해 놔라.”

- 와이?

“오늘 친히 왕림해주겠다.”

- 사인 없으면 문 안 열어 줌!

“어울리는 술을 들고 가마. 들어는 봤냐? 죽엽청이라고?”

한국형 무협에서야 흔하게 등장하는 술이지 사실은 상급에 속한다. 분주라면 아무 객잔에서나 마셔대도 말이 되지만 말이다.

- 이런 사치스러운 새끼. 그 비싼 걸 탕수육이랑 먹자고?

- 특별히 봐주겠음. 바로 튀어오삼!

전화를 끊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놀고 와야지.”

짜장면과는 다른 친구들과의 만찬을 간만에 즐겨야겠다.

간 김에 용도 잡아보고 말이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일탈의 시간을 잠시 만끽했다.

128. 틀을 만드는 자

『추리 게임 : 크리미널 씬』

GGT에서 최초로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의 제목이다.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도박에 가까운 도전일 테지만 나로서는 뇌가 섹시한 남자, 코미디언의 재발견, 프로게이머의 비상한 머리 등등 다양한 밈을 만들어 내며 성공하는 것이 확실한 콘텐츠다.

‘그래도 가제로 지어준 건데 그냥 써버리다니. 창의력 좀 신박하게 발휘해보지.’

가볍게 툴툴거려 보지만, 사실 내가 툭 아이디어를 던지고 돈만 들이부어서 괜찮은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감독과 코치가 아무리 잘 훈련시키고 작전을 짜도 막상 뛰는 선수가 개차반이면 경기를 망치는 것과도 같다.

< 틀을 만드는 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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