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11화 (311/577)

< 잘났다 >

- 이직?

<네. 그··· 뭐더라? 회사에서 보직이동? 부서이동? 아무튼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처럼 돼요.>

- ㅋㅋㅋㅋ 아. 이건 진짜 너무 갔네.

- ㅋㅋㅋ 회사에 좋은 말해 주고 이미지 쌓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진호씨. 이건 진짜 아닌 거 같아요.

<아니. 진짜라니까요?>

- 야구선수가 야구 때려치우고 해당 기업으로 보직 옮기는 소리 하고 있네.

억울하다며 송진호가 말했다.

<우와. 진짜. 저 말고도 여기서 방송하는 동생들 중에 방송만 전문으로 하는 애들 있죠?>

- 몬스터 프레데터스, 드래곤 소울 뭐 이런 거 방송하는 스트리머들?

<맞아요. 게네들이요. 게네들은 소속이 어디일 거 같아요?>

- 그 사람들은 GF에서 전문적으로 게임 테스팅하는 친구들이라면서요?

<네. 전문 테스터로 GF홀딩스 소속 정직원이죠. 정! 직! 원! 그런데 걔들이 거기에는 어떻게 입사했을까요?>

- 설마 RA 출신이에요?

몇마디 툭툭 던지는 게 아니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더군다나 실명까지 거론하며 말하니 그때부터는 시청자들도 송진호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 와··· 대박. 그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기업을 그냥 게임 잘해서 들어가네.

- 정직원도 정직원 나름이지. 공채로 들어온 정직원이랑 복지나 그런 것도 같은 거 맞아요?

<복지 부분은 공채출신이나 게네나 우리 선수들이나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물론 각 보직에 따라서 특수한 혜택을 추가로 제공받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연봉은 좀 달라요. 테스터들은 직급 수당인가? 그게 없다더라고요. 대신에 스트리밍 성적에 따른 추가 인센티브가 있어서 딱히 불만은 없는 거 같고요.>

-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 맞아. 이게 뭐임? 그러면 열심히 공부해서 힘들게 들어간 사람들 입장에서는 엄청 억울한 거 아닌가?

- 그 사람들은 진짜 빡세게 공부한 건데 누구는 쉽게 게임만 하다가 입사를 해버리면?

남의 이야기라고 참 편하게들 말한다. 쉽게 게임만 하다가 입사를 했다니.

‘연습생들이나 선수들이 게임하는 양을 보면 그렇게 말 못할 텐데.’

재미있게 몇 시간 즐기는 수준을 한참 벗어났다. 좋아하던 사람조차도 게임이라면 진저리를 치게 될 정도로 의무적이고 강제적으로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냥 게임만 한다고 누구나 다 입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게이머가 목표인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도 단연 발군 수준의 실력을 갖춰야만 RA의 연습생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

‘RA니까 주전 경쟁에서 밀린 거지 당장 다른 게임단으로 갔으면 바로 드리프트 대상에 프로 자격만 획득하면 즉각 주전을 꿰찼을 애들이라고.’

하여간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한 걸 폄훼하면 바짝 날이 서면서도 남이 노력한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얕잡아본다. 특히 게임이라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전문성보다는 아이들 오락거리라는 인식과 선입견이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남아있는 까닭이다.

이러니 철없는 학생들이 아무 계획 없이 그냥 주변에서 게임 좀 한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덤벼드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게이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애들한테 경고도 해줄 겸 현실을 제대로 알려줘야겠어.’

무작정 깎아내리기만 하는 시청자들에게 프로게이머가 된다는 게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도 알려줄 겸. 거기에 무턱대고 프로게이머를 하겠다는 청소년들에게도 이 결정을 하려면 얼마나 큰 결심이 필요한지 보여줄 겸 해서 방송하나를 제작해야겠다.

이름은 대충 ‘프로게임단 24시’면 될 것이다. 나름대로 GGT의 방송 콘텐츠에도 어울리니 딱 좋았다.

‘그건 그거고 저런 말을 하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지?’

지금 저 말을 한 시청자는 아마 지금 자신이 대놓고 무례한 말을 내뱉었다는 인식조차 없을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채팅을 바로 보고 있는 진호 역시도 시청자가 말한 대상에 자신이 속한다는 인식도 못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 소리 해줘야겠다.

“로그인해서 ‘저 윤태식입니다.’라는 식의 글을 올려봐야 금방 묻힐 거야.”

채팅창에 시청자로 글을 쓰는 건 별다른 효과도 없다. 내가 직접 글을 올리는 것보다 효과적인 건 해당 스튜디오를 이용해서 영상에 자막을 바로 쏘는 방법이다.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윤태식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헙! 회··· 회장님?!’ 등의 놀란 직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진호의 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스튜디오의 담당자다. 이런 말단 직원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게 민폐라는 건 알지만 시간을 아끼려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부탁 하나만 할게요. 제 말 하나만 지금 송진호 선수 방송에 자막으로 띄워주세요.”

- 넵! 말씀하십시오!

종이와 펜을 챙기는 소리 같은 건 없다. 어차피 컴퓨터 앞에 있을 것이고 바로 내가 하는 말을 텍스트로 담을 테니까.

그렇게 5분 후, 진호의 방송 시청자들에게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막으로 나타났다.

「윤태식입니다. 프로게이머들의 채용에 관해서 오해들이 있는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프로게이머를 뽑을 때 한 가족이라는 개념으로 뽑으며 일반 공채보다 쉽게 입사를 하셨다는 것은 명백한 오해입니다.」

「게임단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최소 250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는 80대 1의 경쟁률인 일반 공채의 평균보다 더 높은 경쟁률입니다.」

「오히려 더 힘든 경쟁률을 뚫고 들어와서 가장 잘하는 업무를 맡는 것이니 저희 가족들에 대한 잘못된 비하는 그만하여주시길 바랍니다.」

직원들이 정책에 따라서 주눅들 때마다 늘 이야기하지만 GF 그룹의 주요 매출은 국내보다 해외다. 국내의 점유율이 높아져서 매출이 오르면 정말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우리 직원들이 희생할 이유는 조금도 없었다.

말로만 식구네 가족이네 말은 잘 떠들면서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외면하는 회사. 그런 회사가 되느니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만다.

“오죽하면 가족 같은 회사로 기만이 하도 많으니 가좆 같은 회사라고 하지 않겠느냐고.‘

자고로 풍요 속에서 인심과 배포가 나오는 법!

이런 배짱으로 올렸는데 시청자들의 채팅글이 바로 바뀌었다.

- 뭐야? 윤회장님 보고 계셨음?

- 대박. 시청자들이 채팅으로 연습생 출신들이 정직원 된 거가지고 까니까 직접 자막 올리신 듯.

- 우와 다른 회사라면 그런가? 이러고 넘어갔을 건데. 자기 직원 챙기는 거 봐.

<보셨습니까? 이게 바로 우리 회장님이십니다!>

- 쟤는 광신도다!

- 믿슙니다! 그러니 저도 채용 좀. (굽실굽실)

- 나도! 나도!

실제로 당사자가 하지도 않은 말인지만 제법 그럴듯하게 퍼진 온라인상태에서의 명언이 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네가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인데 아니꼽고 기분 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깊이 공감 가는 말이었다.

지금도 봐라. 나는 분명히 똥을 싸는 각오로 한 말인데 사람들은 그걸 또 어떻게든 긍정적인 칭찬 세례로 받아주지 않는가!

*

어느덧 뜨거운 화제를 몰며 화려하게 신고식을 한 회장님과 한판의 2회 차가 방영됐다. 이번에는 촬영에 대한 스트레스는 전혀 없었다.

‘잘 나갈 때는 이것이건 저것이건 마냥 좋은 거거든.’

첫 방송에서 바로 대박을 터트린 덕분에 이제부터는 걱정할 것 없이 한 번에 2회 차 분량을 촬영한다. 덕분에 매주 촬영하는 것보다 훨씬 여유로운 스케줄을 만들 수 있도록 방송 스케줄을 바꾸었다.

그리고 차츰차츰 인기가 높아져 갈 무렵, 태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빠. 요즘 가수 신성이랑 같이 방송한다며?>

‘이야. 태희가 아는 정도면 진짜 대한민국의 젊은 사람들이 다 알게 되었나 보다.’

인터넷 기사, 혹은 게임계에서 GGT와 회장님과 한판에 대해 백날 떠드는 것보다 태희가 알고 있다는 게 백배는 더 크게 다가온다. 그도 그럴 것이 가십거리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공부밖에 모르는 모범생이 내 여동생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가볍게 대꾸하니 살짝 머뭇머뭇하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 오빠. 그러면··· 아 진짜··· 바쁜 사람한테 이런 부탁 해서 정말 미안한데······.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 신성 사인 좀 받아다 줄 수 있어?

‘사인? 태희가 이런 거에도 관심이 있었나?’

의외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태희에게 이런 부탁을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하지만 ‘얘도 연예인한테 드디어 관심이 생겼나 보네.’라는 생각이든 건 아주 잠깐에 불과하다. 신성의 팬이었다면 지금 정도의 이슈가 아니라 첫 방송 때부터 눈치챘어야 정상이라서다.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지.”

- 그럼 한 장 말고 네 장!

“멤버 전체?”

- 전체면 좋고 아니면··· 누구더라? 아! 그 에녹만이라도.

이름도 헷갈리는 것을 보니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이 사인을 원하는 건 태희가 아니라 태희의 친구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긴, 대학교 가서 확 바뀌어버리기에는 너무 급작스러운 변화이기는 했다.

“알았어. 다음 방송 때 받아서 집에 가져갈게.”

- 오빠 최고. 고마워~

요즘에는 신성의 멤버들과 정말 많이 가까워졌기에 이런 부탁을 들어주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별것도 아닌 부탁 하나 들어주는 거로 태희의 어깨가 솟는다면 이보다 좋은 가성비는 없을 것이다.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에녹아. 다음 촬영 때 멤버들 전체 사인 4장씩만 가져와라.>

굳이 촬영장에서 만나서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거기다 대고 ‘사인 좀 해줘.’라며 부탁하는 것보다는 미리 이야기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채 5초가 가기 전에 답장이 왔다.

<네! 미리 준비해두겠습니다!>

<땡큐~!>

에녹의 답장은 언제나처럼 자동설정해 놓은 컴퓨터 기능과도 같다. 그야말로 칼같이 빠르고 정확하게 돌아온다.

‘이 정도면 에녹이 아니라 매니저가 보내주는 거 아냐?’

엄청 바쁜 연예인이라는데 이렇게까지 신속한 답장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잠시 들었다.

띠링!

그때 메시지가 더 도착했다.

<저기··· 회장님. 사인을 사인지에 해갈까요? 아니면 저희 앨범에 해갈까요? 그것도 아니면 멤버 사진에 해갈까요?>

‘아니 무슨 사인을. 그냥 A4 용지에 넓게 대충 그려서 가져오면 되는 거지.’

스타와 팬의 소통이라는 말은 나 같은 아저씨한테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국 끓여 먹지도 못하는 종이 나부랭이이니 ‘아무거나’라고 답장하려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건 내 선물이 아니라 태희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기왕 받고 주는 서비스라면 희소성 있고 더욱 가치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어디에 해줘도 다 좋아. 기왕 해주는 거 앨범이면 더 고맙고.>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에녹의 성격상 앨범에 사인을 해서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앨범 4장에 6명이 사인을 하는 건가? 아니면 24장에 각각 사인을 하는 거? ···에라 모르겠다. 이 정도야 자주 해봤을 테니 나보다는 신성이 더 알아서 잘해오겠지.’

굳이 내가 깊게 신경 쓸 필요 없는 그런 것에 시간을 쏟는 것보다는 오늘의 보고에 더 신경을 쓰는 게 맞을 거다.

며칠 후 GGT의 김선일 국장의 보고 시간 때의 일이다.

“시청률에 대해서 연구하신다고 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

“연구는 이제 막 시작단계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보고드릴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방송의 반응이 워낙에 좋아서 꽤 괜찮은 가격에 광고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벌써 광고가 들어오고 있나요?”

“회장님과 한판은 너무 많은 의뢰가 들어와서 다 받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요?”

아직 GGTV에서 나가고 있는 광고는 총 8가지다. 신생 방송사치고는 꽤 많은 광고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일전에 언급한 바 있듯이 그 8개의 광고는 몽땅 우리 그룹에서 내준 것들이었다.

레이컴의 스텔라부터 시작해서 레오닌 컴퓨터와 신작 게임들에 이르기까지 광고로 제작할만한 것이 있으면 전부 제작해서 몰아준 상태다.

“회장님과 한판의 경우는 지금도 하루에 서너 건 정도의 의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상세한 내용은 보고서 3페이지를 보시면 어떤 기업에서 광고를 넣었는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선일 국장의 보고서.

자신만만한 그의 표정처럼 안에는 정말 다양한 업체들의 광고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연구가 시작이라면 광고 단가는 어떻게 정한 겁니까?”

“배짱으로 베팅했습니다.”

“배짱이요?”

“회장님께서 누누이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우리 GGT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다.’ ‘GF그룹 내의 게임들의 홍보만 잘 되면 적자가 계속 되도 상관없다.’라고 말입니다.”

맞다. 그랬다.

“그런 회사에서 ‘굳이 저희에게 광고 좀 주십시오.’ 이러며 먼저 몸값을 낮추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인기 케이블 방송사의 수준으로 맞췄습니다.”

신생이 인기 방송사의 몸값을 불렀다.

“그러다가 광고주들이 우리에게 광고를 주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겁니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았습니다. 현재 기업의 얼어붙었던 자금줄이 다시 풀리면서 경쟁 과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GGT에서의 광고가 효과를 보인다는 것만 입증한다면 우리 방송사를 저들은 결코 외면할 수 없을 겁니다.”

< 잘났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