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났다 >
127. 잘났다
“오늘 자 기사입니다.”
김선일 국장이 오늘은 당연한 소식을 새삼스럽게 가져왔다.
【실시간 시청자 17만. 인터넷 방송이 뜬다?】
보고서 가장 앞에 배치했는데 내용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었다. 그냥 멍청한 돈 낭비이고 소비자에게 외면받을 줄 알았던 우리의 프로젝트가 대성공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놀랍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물론, 방송의 성공은 당연히 축하해야 한다. 그래서 회장님과 한판의 모든 스태프에게 200%의 보너스를 약속했고 이외의 GGT 직원들에게까지도 50%의 상여금을 주기로 말을 마친 상태다.
파악에 이은 상벌까지 끝마친 시점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17만 명이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고 나름대로 주목을 받을만한 사안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만?”
“네, 회장님.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던 것도 맞습니다만 현재의 상황을 잘 이용하면 수익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서 보고 드렸습니다. 광고성 기사를 몇 개 추가하고 17만 명이라는 시청자의 가치를 명확하게 환산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기존에 시청자의 가치를 환산하는 방법이 시청률의 퍼센트였기 때문이군요?”
“맞습니다.”
전국 1%의 시청률일 경우 12만 5,000가구가 해당 방송을 보고 있다는 식으로 단순 통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략 4인 가구로 잡아서 대충 계산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문자 그대로 아주 단순한 통계였다.
실제로는 4명이 볼 수도 있고 1명이 볼지도 모른다. 이 차이를 작다고 볼 수 없는 것이 4명이 본다고 가정하면 5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김선일 국장이 짚은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다. 17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를 만들어내 놓았는데 정작 제대로 된 광고료를 받아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
“우리의 가치만큼 제대로 값이 매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합당한 이야기였다.
“하세요.”
무조건 수락이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내가 받아야 할 것이 아니다. 외려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온 김선일 국장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뒤이어 다음 보고를 들었다. 이 시간이 적잖게 흘렀는데 아무래도 개국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신생 방송국이니만큼 GGT에는 개선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성장에 대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방송국이기 때문이었다.
‘김선일 국장이 아이디어 뱅크이기도 하고.’
문제를 알고 개선점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다. 덕분에 김선일 국장은 보고 때마다 새로운 변화를 위한 아이템을 가져왔고 늘 보고와 회의의 경계 선상에서 긴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건 좀 번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회장님은 혹시 실시간 검색어 순위 같은 것을 자주 확인하십니까?”
“아닙니다만, 왜 그러십니까?”
“지금 송진호 선수와 회장님이 함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있어서 말입니다.”
‘진호와 내가 함께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다?’
듣고 보니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애당초 내가 왜 LON 온라인을 방송에서 플레이하게 되었던가. 바로 진호가 수다를 떨며 내 게임 실력을 홍보해줬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은 시청자들의 관심이 지금에 이르게 해주었다.
그러니 최초로 나를 거론한 진호는 내 검색기록과 떼어내려 해도 뗄 수 없는 관계다.
“틀린 소리가 아니니 재조명이라도 되나 보네요.”
“아닙니다, 회장님.”
“아니라고요?”
“그 개인방송 있지 않습니까?”
GGT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게임단 소속의 프로게이머들과 회사소속 스트리머들의 개인방송은 유지하고 있었다. 김선일 국장이 언급한 방송은 바로 이쪽이었다.
“거기서 송진호 선수가 회장님에 대한 언급을 계속하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이 아니라 매우, 아주, 상당히 많이요. 덕분에 쟁점이 되고 있으니 저희 입장에서는 긍정적이지만··· 회장님의 의중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진호는 레이컴 어드밴처러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잘나가는 프로게이머다. 그가 얼마나 잘나가고 있느냐는 팬클럽 회원이 20만 명에 육박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가능할 것이다.
이런 녀석이 자주 내 이름을 언급한다고 했다. 팬이 많은 만큼 방송을 보는 인원도 많으니 계속 이슈를 재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자기 자랑이나 할 것이지.’
저러다 만년 2등의 이미지 대신에 나를 포함해서 3등의 캐릭터가 생겨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안타까운 2등과 안타까운 3등은 어감에서 차이가 크게 나니 말이다.
어쨌거나 귀여운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이 문제는 제가 직접 확인하고 처리하지요.”
만약 게이머스 포럼에 소속된 직원이 나와 동의도 없이 내 이야기를 마구 퍼트렸다면 크게 징계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롭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점인 프로게이머들에게 그들과 동일한 처분을 내일 수는 없는 법이다.
‘애초에 직원이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 그리고 결국 진호 덕분에 GGT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있으니까.’
녀석의 행동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주의는 줘야겠지만 그렇다고 크게 혼을 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송진호는 왠지 정이 가서 막 나무라기가 저어된다.
‘공평하지 못하게 회장이 이러면 안 되는데.’
왜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이상하게 미운 짓을 해도 밉지 않은 사람 말이다. 진호가 내게는 딱 그런 타입의 인물이었다.
김선일 국장이 보고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간 뒤, 나는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검색어들을 확인했다.
“줄기세포는 여전히 있는··· 어라? 줄기세포가 이제는 3위네?”
절대 1위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검색어가 2단계 하락하고 1위를 윤회장 아누비스가 차지했다. 그리고 문제의 2위에는 윤회장과 송진호가 있었다.
‘실시간 검색어인데 지금 2위에 이런 검색어가 있다고?’
사실 실시간 검색어라고는 해도 그것이 매우 핫 한 이슈라면 때에 따라 온종일 순위권에 있을 때도 있었다. 즉,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와 송진호에 대한 검색어가 순간적으로는 몰라도 장시간 머무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이는 올라온 지 한참 된 것이 아니라 지금 막 급상승했다는 뜻이고 지금 이 시각에 송진호가 방송 중이라는 추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공략」 송진호의 2위는 쉬운 줄 아냐?]
“역시.”
한창 방송 중이었다.
“제목은 영 별로다만.”
안타까우면서 다행한 일이다. 이번에만큼은 만년 2위라는 타이틀을 가지지 않길 바란 적도 있지만, 이런 식의 캐릭터도 송진호니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유니크함을 잃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팀 랭킹이 늘 1위였잖아.’
꿈속 미래에서는 팀 랭킹마저도 2위에 머물렀었으니 훨씬 나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어떤 방송인데 이런 제목이야?’
내가 들어가면 안 되는 곳도 아닌데 클릭에 머뭇거릴 필요 따위가 없다.
딸깍.
마우스를 클릭했다.
<님들. 일단 잘 들어보세요. 여러분이 승리를 하고 싶으면 승리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해야 승리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화술 교육이라도 시켜줄까?’
짧은 말 속에서 승리라는 같은 단어가 참 자주도 나온다. 전문 방송인이 아니니 이 역시 개성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으나 원한다면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고. 나도 나이가 들긴 했나 봐. 뭐만 보면 충고나 조언부터 해주려고 하니.’
잔소리와 조언의 줄타기를 잘해야겠다. 안 그러면 나이 들어서 인기 없다.
<이번에 우리 윤회장님 플레이 보셨죠? 키아~ 어떻습니까? 딱 승리를 위한 플레이만을 하시지 않습니까? 예전 톱클래스 초대석을 보셨던 분은 그때의 회장님과 이번에 아누비스를 하실 때의 회장님이 전혀 다른 플레이를 하시고 계신다는 걸 아셨을 겁니다. 왜냐!?>
때마침 내 이야기가 나왔다.
<상대가 바뀌었으니까요. 내가 팀을 이끌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그걸 위한 플레이를 한 겁니다. 거기에 팀원들하고도 미리 사전 협의까지 끝냈죠?>
‘이게 원래 이렇게 떠들기만 하는 방송인가? 나 말고 네 게임 얘기는?’
열심히 말하는 소리를 듣다가 관전을 중단하고 제목을 확인했다.
[「공략」 송진호의 2위는 쉬운 줄 아냐?]
분명히 방송 제목의 메인에 걸린 타이틀은 ‘공략’이 맞았다.
‘이래도 되나?’
물론 그냥 얼굴 내놓고 입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화면은 진호가 스타 드래프트를 플레이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고 송진호가 직접 게임을 하는 중이기는 했다.
<전에 시청자분들이 뭐라고 했어요? ‘개인 실력만 좋지 팀 운영 능력은 부족하다’부터 ‘시작해서 뭐 허접한 애들이랑 붙었으니까 이슈가 된 거지.’에다가 ‘사실은 다 거품이었네~’ 등등!>
단지 말과 화면이 맞지 않을 뿐이었다.
<내가 보다보다 답답해서 좀 더 지켜보라고 실드 쳤더니 나보고 ‘윤회장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러기까지 했죠? 여러분. 실력이 늘고 싶으면 일단 넓게 보는 시야를 먼저 가지세요. 마음이 급하니까 시야도 좁아지고 시야가 좁아지니까 핵심을 놓치는 겁니다.>
‘대체 이거 콘텐츠가 뭐야? 송진호의 스드 공략법이야? 송진호의 윤태식 설명법이야?’
아무리 그래도 공략방송이라면 시청자들도 송진호가 스드에 대한 공략을 하는 걸 보고 싶어 할 텐데 이런 엉뚱한 소리만 하고 있으면 불만들이 제기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채팅창을 확인하게 된다.
- 그건 잘 알겠는데 그래서, 윤태식 회장이 게임을 잘하는 건 어떻게 알았냐니까요?
- 요즘도 윤회장이랑 같이 게임 해요?
- 개소리 하덜 마. 국내 최대 규모 회사의 오너인데, 그럴 시간이 있겠냐?
참 묘하게도 시청자들은 자기들끼리 대화할 때는 반말로 채팅하고 진호에게 말을 할 때는 존댓말을 사용했다. 나름대로 이 안에서의 룰인 모양이다.
‘맞아. 내가 진호랑 같이 게임을 하고 그럴 시간은 없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게임할 시간이 없는 사람은 아닌데, 라는 양심의 가책도 느껴진다.
- 국내 최대 규모 회사의 오너가 프로게이머 뺨치게 게임을 잘하는데, 게임할 시간이 없는 거 같냐?
- 동의. 직원들한테 일 시켜놓고 지는 엄청 노는 게 분명하다고.
- 회장쯤 되면 원래 일은 다른 놈들이 하는 거임.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거.
“에이. 솔직히 그건 아니지.”
인터넷 기사에 올라온 댓글이나 이런 채팅에는 어떤 식으로든 심리적인 반응을 하고 싶지 않았고 실제로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마음먹는다고 단칼에 무 자르듯 결단할 수 있으면 그게 어디 사람이겠는가.
인간이란 동물은 자신과 관련된 글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치 ‘핑크색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들으면 생각하지 않기 위해 우선 핑크색의 코끼리를 떠올리는 것과도 마찬가지였다.
<오너로 이름만 올리고 직원들이 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이야. 그건 내가 절대 아니라고 대답해줄 수 있네요.>
- 프로게임단 소속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아. 이 싸람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네. 우리 프로게임단이 GF내에서 가장 오래된 고참 집단 중 하나라 이겁니다. 우리는 거의 GF그룹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말입죠.>
‘이건 맞는 말이지.’
- ㅋㅋㅋ 대한민국 최초로 기업스폰형 프로게임단이니까 오래됐다는 건 잘 알겠는데, 그렇다고 GF 내부 사정을 어떻게 아냐고요.
<지금이야 떨어져서 있지만 초기에는 같이 지냈거든요. 일하면서 회장님··· 그러니까 그때는 대표님이셨는데 만나고 싶으면 꽤 어렵지 않게 만날 수도 있었고 회의하시는 거 보는 게 거의 일상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송진호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장담했다.
- GF도 그러면 인천에 있었던 거예요?
<그럼요. 전에 있던 우리 팀 연습실 있죠? 원래 거기에 다 같이 있었어요. 회장님이 돈 벌어서 가장 처음으로 샀던 건물이 바로 그 건물이었고 거기서 회사를 키워서 강남으로 오신 거죠. 그리고 자꾸 프로게임단인데 니들이 뭘 아냐?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우리 회사는 다른 게임단이랑 달라요.>
- 뭐가 달라요?
- 게임단이 달라 봐야 게임단이지.
<아. 진짜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왜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 우리 RA가 꿈의 게임단인 줄 아세요?>
- 연봉 높으니까.
RA는 레이컴 어드밴처러스의 약자다. 트레이더스 포럼에서 나와 레이컴으로 자리를 옮겼기에 이제는 TF가 아니라 R이 된 것이다.
‘꿈의 게임단이라니 표현 참 거창하네.’
어쨌거나 내 입으로 내 칭찬하는 것보다는 남의 입으로 듣는 편이 더 기분 좋다.
<저도 초창기 프로게이머잖아요? 저랑 같이 게임하던 분들 중에 지금까지 게이머로 활동하시는 분 몇 없는 거 아시죠? 한 손에 꼽아요. 그분들 대부분 뭐하고 계실까요?>
-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앎?
- 몇 분은 게임 해설가로 나오시던데.
<맞아요. 엄청! 무진장 잘 풀리신 타입! 일단 말 빨이 좋으신 몇 분은 게임 해설가가 되셨죠. 그런데, 그건 정말 극소수고 대부분은? 그냥 사라지셨어요. 뭘 하시는지는 저도 모르죠. 그런데 우리 RA는 게임성적이 떨어지고 이쪽에서 더 못 버티겠다 하면 GF의 게임관련 부서로 이직이 돼요.>
< 잘났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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