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09화 (309/577)

< 놀면서 버는 중~ >

구속의 사슬.

기본단축키 W로 지정이 되어 있는 이 스킬은 해당 영웅의 영혼을 구속한다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다. 효과는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싸우나요? 아! 싸웁니다! 약체 중에 약체로 유명한 아누비스가 먼저 싸움을 걸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마을 상점에서 아이템을 사온 것도 아닌데 이길 수 있을까요?]

해설진의 우려가 가득한 목소리. 그리고 그런 목소리가 이어질수록 채팅창도 활발해졌다.

- 윤 회장 지쳤네. 지겨운 거지. 어차피 질 거 같으니까. 그냥 될 대로 되라 이러고 덤비는 거 아냐?

- 포기했다.

- 포기했네.

대부분의 채팅은 부정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반응 덕분에 반전의 효과를 훨씬 더 커졌다.

[뭐죠!? 이 데미지 뭡니까? 언제 이렇게 강력해진 겁니까!?]

[우와! 이길 것 같습니다! 이러면 이깁니다!]

빅터의 머리 위로 사신의 징벌이 박힐 때마다 체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이러한 빅터의 체력을 보면서 채팅창과 해설진 모두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 데미지 미쳤다!

- 와! 빅터 뚜껑 제대로 터진다!

2010년대가 넘어가면 뚝배기라는 표현을 익숙하게 사용했을 텐데 이 시기에는 다들 뚝배기  보다는 뚜껑이라는 표현을 익숙해했다.

- 뚜껑 깨기!

사신의 징벌은 이 스킬로 적 유닛을 죽일 때마다 3만큼의 데미지가 증가하는 기술이다.

현재 추가 데미지는 무려 120.

3레벨이 되어서 기본 스킬 데미지 70에 물리 데미지 계수에서 73, 여기에 추가 데미지 120을 더하면 무려 263의 데미지다. 현재 빅터의 체력은 978이니 약 4방이면 상대는 차디찬 바닥에 쓰러져야 하는 것이다.

‘물리 방어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쓰러지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면 그건 실수지.’

맞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어차피 스킬 재사용시간이 돌아가는 동안 평타도 때린다.

결국, 사신의 징벌 4대와 그 사이에 이어진 평타를 맞고 빅터는 자신의 포탑으로 가지도 못한 채 쓰러지고 말았다.

『영웅 빅터가 사망하였습니다.』

『그렇지! 블루의 힘을 보여줘!』

일상에서 칭찬과 응원을 듣는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그래서 LON 온라인에는 상황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칭찬 멘트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잘못한 점을 꼬집거나 지적해주는 일은 없다. 오직 응원과 격려, 칭찬뿐이다.

[이겼습니다! 이겼어요! 와! 아누비스가 계속 농사만 짓던 농사꾼이! 승리의 상징이자 강력한 마법사인 빅터를 완패시켰습니다!]

[체력보세요. 그대로 계속 싸워도 되는 상태입니다. 이야! 이게 말이 됩니까?]

[스택이 무려 123. 고작 7분이 흘렀을 뿐인데, 스택이 123예요. 미친 스택입니다!]

‘저 7분이 진짜 지루했었지.’

진짜 인내의 시간을 보낸 결과다. 그리고 그 열매는 달았다.

- 와. 아누비스 딜 진짜 미쳤다.

- 쩐다.

- 징벌로 뚜껑 깨기. 쩔었어.

- 7분이면 아누비스는 아직 한참 약해야 하는 타이밍 아냐?

- 우리 팀 아누비스는 20분이 되도 약하던데.

- 몰랐냐? 원래 선사시대부터 우리 팀만 다 ㅂㅅ인 거였어.

이렇게 열광할 때 이따금 장나리가 해프닝을 보여주었다.

[123이 엄청난 건가 봐요?]

[당연하죠!]

[왜요?]

[······.]

너무 당연한 것을 물어보면 잠깐씩 우물쭈물하는 사태. 예능 프로그램처럼 순진무구한 그녀와 진땀을 흘리는 배재석의 속마음이 인터뷰로 나왔다.

어쨌거나 상대 선수 하나를 잡고 나니까 채팅창의 분위기도 확 반전됐다.

- 이제 시작이냐?

- 달려라 농사꾼!

하지만 미안하게도 아직 시작은 아니었다.

아누비스는 지루하고 또 너무 지루한 파밍의 연속을 잘 견뎌내야 한다. 최소 250 스택을 쌓아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으며 게임을 이기기 위한 최소치로 잡아둔 수치는 450 스택이다.

[이제 아누비스가 위험하다는 걸 스페이스 마린의 선수들도 느꼈어요.]

[슬슬 정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정글러들의 견제. 덕분에 내 예상 시간보다 스택을 쌓는 시간이 느려졌지만, 팀의 전체적인 분위기로 봤을 때는 이득이었다. 아울러 시청자들이 하는 실력 평가도 제대로 다시 이루어졌다.

- 와. 어떻게 된 게. 저렇게 계속 들어오는데, 한 번을 안 죽냐?

- ㅋㅋ 진짜 얄밉게 한다.

- 지난 방송에서 봤듯이 전략만 없이 컨트롤은 좋아.

정글러 한 명만 찾아오는 갱킹, 정글러 둘이 함께 찾아오는 갱킹. 2명의 정글러와 미드 라이너까지 포함해서 셋이서 한꺼번에 포탑까지 밀고 들어오는 갱킹. 그 모든 갱킹을 포탑과의 연계를 통해서 전부 생존하는 것에 성공해내는 모습에 해설진도 시청자도 놀라워했다.

『영웅 망령기사가 사망하였습니다.』

『승리의 희망이 보이는구나!』

분명 3:1의 싸움이었다. 불리해도 끔찍하게 불리한 싸움. 그러나 궁극기까지 사용하면서 버텨낸 결과 나는 살아남고 적의 정글러 하나는 포탑에 맞아 죽게 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니언이나 포탑에 의한 사망의 경우 가장 마지막에 유효타격을 한 아군 영웅의 킬로 인정이 되기 때문에 망령기사는 나에게 죽은 것으로 처리 됐다.

이로써 스코어는 2대 2.

게다가 정글러들이 나만을 견제했기에 2인으로 구성된 탑과 바텀에서는 혼자뿐인 상대 라이너들을 압박하면서 착실하게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게임 시간으로 12분.

270의 스택을 쌓은 아누비스는 이제 좁은 미드를 떠나 전체 모든 맵의 미니언과 중립 몬스터를 스택의 제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누비스가 움직입니다. 걸어 다니는 핵폭탄 아누비스! 그는 과연 어느 곳을 선택할 것인가?]

[정글? 적 정글로 들어갑니다?]

저 당시에 내린 결론은 적의 정글에 있는 중립몬스터들의 씨를 말림으로 적 정글러들의 성장을 막는 것이었다. 덤으로 덤으로 내 스택도 계속 성장시키고 말이다.

[이야. 처음부터 치밀하게 작전을 잘 짜둔 거 같습니다.]

[네? 갑자기 그건 무슨 말이죠?]

무언가를 눈치챈 배재성 해설자의 말에 장나리와 양진수가 의문을 표했다.

[보세요. 아누비스가 자리를 비우면서 미니언이 밀리니까 에녹의 라간이 내려가서 딱 정리만 해주고 다시 올라오죠? 그리고 지금 보시면 이번에는 브론즈크랭크가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네요.]

[아! 그렇군요. 이쯤 되면 아누비스가 움직일 건데 라인을 완전히 비워둘 수는 없고··· 또 혼자서 상대 라이너를 감당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까?]

[네. 바로 그겁니다.]

[스페이스 마린 선수들은 지금 어리둥절할 거예요. 아누비스는 대체 어디로 갔는가?]

[이제 눈치 챈 거 같네요.]

[늦었어요. 아누비스는 이미 중립몬스터들을 다 정리하고, 탑 라인으로 갑니다!]

게임 시간 13분.

스택은 321.

[사슬 걸었어요! 난입합니다!]

- 가자! 뚜껑 깨기!

- 부숴라!

120과 321.

그냥 스택만으로 보면 200의 차이지만, 아이템이 바뀌고 스킬의 레벨이 바뀐 만큼 그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컸다.

5레벨인 사신의 징벌은 110의 기본 데미지를 자랑한다. 또한, 물리 공격 계수 100% 덕분에 111의 추가 물리데미지에 321 스택을 더하면 542에 이르니 이것이 현재 아누비스가 가하게 되는 사신의 징벌의 기본 데미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추가되는 데미지가 있다. 바로 아누비스의 핵심아이템인 삼신기가 가진 마력검의 효과 덕분이다.

‘마력검은 스킬을 사용하면 다음 기본공격에 기본공격력의 150%만큼의 추가 데미지를 입히지.’

즉, 현재 기본 공격력은 86이므로 150%를 구하면 129의 데미지가 추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신의 징벌이 가지는 한 방의 데미지는 671이 된다.

쿨타임은 4초지만 삼신기가 가진 쿨타임 감소 효과로 인해서 그마저도 3초로 줄고 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3초마다 다른 영웅들의 궁극기에 해당하는 데미지를 계속 찍어내는 것과도 같았다.

[터집니다! 체력 게이지가 말 그대로 터지고 있습니다!]

[아! 탱커가 아닌 이상 무조건 3방! 그냥 3방이면 죽습니다. 아누비스! 그야말로 무시무시합니다.]

아누비스의 진정한 공포는 삼신기를 제외하고는 공격용 아이템을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공격은 그냥 사신의 징벌만 쓰면 되니까.’

나머지는 모조리 탱커용 아이템으로 도배해버리면 맞아서 피도 잘 안 다는데 무려 700의 데미지를 뿌리면서 24%라는 무시무시한 생명력 흡수 패시브로 죽지 않는 전사가 되어버린다.

『영웅 망령기사가 사망하셨습니다.』

『영웅 무덤지기가 사망하셨습니다.』

『2연속 킬! 더블 킬!』

『영웅 소벡이 사망하셨습니다.』

『3연속 킬! 트리플 킬!』

문자 그대로 파죽지세다. 만나면 만나는 대로 상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닌다. 참으로 보는 맛 나는 화면의 연속이었다.

[못 막죠. 못 막습니다. 그냥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주변을 다 피해가야 해요.]

[이건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이대로 5명이 미드라인으로 쭉 밀고 들어가도 막아낼 수 없어요!]

- 겜 끝났네.

- 오늘의 교훈. 농사를 빨리 지으면 좋다?

- 이거 접대 아님?

- 다 봐놓고도 그 소리냐? ㅋㅋ

보고 있으니 비식비식 웃음이 나왔다.

‘이래저래 수준이 드러난다니까.’

양진수 캐스터의 설명부터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으나 이건 죄다 틀렸다. 이른바 무쌍을 찍고 있으니 무조건 붙으면 필승한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아직은 그래서 될 게임이 아니고 타이밍도 틀렸다.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상대가 우리 선수들보다 잘했고 혼자서 나머지를 감당하는 건 아직 버거운 시점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더 성장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대로 밀고 들어가기보다는 더욱 성장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이 점을 보는 사람이 아직은 없어 보였다.

‘게임 초창기니까.’

아직은 안목이 부족해도 다 이해한다. 그때, 이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인터뷰가 겹쳐 나왔다.

「회장님이 탑에 오셨던 그때요? 진짜 깜짝 놀랐죠.」

신성의 막내 에디의 인터뷰 화면이었다.

「이야. 진짜 대단했다니까요? 저랑 에녹 형은 둘이서 진짜 버겁게 버겁게 하고 있었는데 회장님이 오셔서 쿵! 쾅! 팍! 하니까 다 픽픽 쓰러지는 거예요. 이건 정말로 직접 같이 플레이 해 보셔야만 알 수 있는데··· 진짜 엄청난 게임이었어요.」

기회를 노리면서 정글은 물론이고, 탑과 미드 바텀까지 모든 라인을 휩쓸고 다니다 보니까 어느새, 게임 시간으로 20분이 되었다.

스택은 이제 무려 606!

방템까지 둘둘 두르게 되면서 강력함을 자랑하고 있는 아누비스는 이제 정말로 상대할 자가 없을 것 같은 때가 왔다.

[흩어져 있던 신성 멤버들과 아누비스가 미드라인의 한 자리로 뭉칩니다. 이렇게 뭉친다는 건 이유가 하나겠죠?]

[다른 게 있겠습니까?]

너무도 당연하기에 설명도 필요 없다는 말투로 말을 하던 배재성 해설자가 순간 흠칫하는 표정으로 장나리에게 시선을 옮겼다.

[에이~! 저도 이 정도는 알아요! 한 타! 이제 미드라인을 뚫고 게임을 끝내겠다! 이런 거 아닌가요?]

[오! 정확합니다! 역시 장나리씨 습득능력도 좋으시네요.]

계속 헛다리를 짚던 해설진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들의 말이 맞았다. 강력한 딜탱인 아누비스를 선두로 4명의 신성 멤버들이 보조를 해주는 진형. 그런 우리들을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서 스페이스 마린의 선수들도 모두가 모였다.

- 뚜. 껑. 깨. 기!

- 모두 외쳐! 뚜. 껑. 깨. 기!

채팅창이 뚜껑 깨기로 도배되어가고 아누비스의 징벌이 적 영웅들의 머리에 떨어졌다.

현재 쿨타임은 2.2초.

데미지만 강력해진 것이 아니라 그 쿨타임도 더욱 짧아졌다.

- 와! 단두대다!

- 엥? 단두대는 칼날 떨어지는 거 아냐?

- 그 말이 아니라 다들 두 대면 죽는다고.

- 억! 단두대 어감 좋다!

- 단두대로 가자!

- 단두대! 단두대!

너나 할 것 없이 두 대면 사망이다. 고민할 것도 없고 긴장할 것도 없다. 막아서는 영웅이 있으면 그대로 다가가서 살포시 징벌을 내려주면 알아서 바닥에 쓰러진다.

[키야! 그래도 망령기사! 단단한 탱커입니다!]

[네. 너무 단단한 탱커라서 다섯 방에 무너지네요.]

『영웅 망령기사가 사망하셨습니다.』

『펜타~ 킬! 적들을 섬멸했다.』

『전설의 출현! 영웅 아누비스.』

게임은 끝났다.

[터집니다. 포탑도 세 방을 맞을 여력이 없어요. 두 방에 아군 지원이면 터집니다! 이대로 넥서스까지 30초면 전부 터질 분위기예요!]

『승리!』

귀로 듣고 한 눈으로 보며 채팅창을 보았다.

- 미쳤다. 와. 오늘은 아누비스다.

- 나도 아누비스 하러 가야겠다.

- 이거 지금 방송 끝나는 건가요?

- 아뇨. 지금 첫 게임이니까 아마도 2게임 더할 걸요?

- 어? 그럼 나머지 두 게임마저 보고 아누비스 하러 가야겠다.

역시 결과가 말해주는 법이다. 어느덧 내가 못한다거나 접대성 게임이라는 투의 이야기는 쏙 들어가 있었다.

- 아누비스의 재발견이다 진짜. 이렇게 쎌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 이거 근데 진짜 너무 사기 영웅 아님? 밸런스 패치 들어갈 각?

- ㄴㄴ 사기는 아님. 해본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왜 픽률이 저조했을 거 같음? 저런 플레이를 대부분은 못 하니까 그런 거임.

- 문제는 캐릭이 아니라 느그들 손가락이라는 거.

- 그러는 너는?

- 난 안 골라서 상관없고~

아직 방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고 화면에는 조금 전 경기에 대한 인터뷰를 신성의 멤버들이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를 차지하는 남성들은 여전히 이전 게임에 대한 채팅으로 도배하며 논쟁했다.

‘아무도 인터뷰에는 관심이 없구나.’

나름대로 저 인터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팁 같은 것들이 은근히 포함되었는데 사람들에게는 그저 강렬했던 아누비스의 한 타 만이 게임의 전부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모습에 내가 마음 둘 필요는 전혀 없었다.

중요한 건 방송을 하는 이유이지 않던가.

“회장님! 시청자 수가 15만 명을 넘었습니다!”

첫 게임을 마친 시점에 도달한 수치였다. 또한 아직 한창 방송 중임에도 포탈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아누비스 사기’ ‘윤 회장의 아누비스’ ‘아누비스와 한판’ 등이 검색어들 순위권에서 급상승하는 중이었다.

“이만하면 됐어.”

그렇게 그날의 시청자는 최대 17만 명으로 최종 집계가 끝이 났고 방송 이후로 아누비스의 픽률이 대폭 상승하였으며 승률은 10% 가까이 떨어지는 결과를 자아냈다.

‘아누비스 충’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 말이다.

간혹 인터넷에는 ‘윤태식 때문이다!’ ‘윤회장 개새끼’라며 내가 아누비스 사태를 만든 원흉이고 그 탓에 게이머들이 고통받게 되었다는 말이 유머처럼 돌아다녔다.

< 놀면서 버는 중~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