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면서 버는 중~ >
‘잘하면 오늘 1%의 시청률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거고 이런 흐름이라면 방송 이후로 광고 연락이 꽤 올 수도 있겠어.’
GGT는 지금 GF그룹 산하의 계열사나 자회사들의 광고를 억지로 만들어서 끼워 넣은 수준이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은 ‘이 방송사는 그룹 홍보를 위해 만든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홍보도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방송사답게 외부 광고도 좀 가져와서 넣어주고 하면 아무래도 폼이 좀 더 날 것 같아서 아쉬워하는 중이라 기대감이 상승했다.
은근슬쩍 밖을 내다보니, GGT의 직원들도 한껏 들뜬 얼굴로 시청률이 올라가는 것을 계속 카운팅 하고 있었다.
현재 숫자는 67,000.
지금까지 시청자가 5만을 넘긴 일이 없었는데 오늘 새로 시청자의 숫자를 경신한 것이다. 아직 회장님과 한판의 방송이 시작하기 3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렇게 유입이 되고 있으니 어쩌면 정말로 꿈의 10만 명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을 벌 생각보다는 게임의 이미지 개선이랑 내 취미로 돈을 써보자는 의도로 만들었는데.’
이걸 통해서 두루두루 LON 온라인의 인지도도 올리고 외부에서 수익성을 높이려고 작전을 짠 건데 잘만하면 그냥 이 방송 자체가 이익을 낼 분위기다.
‘얘네도 이거 보려나? 그래도 자기들이 출연하는 건데, 보겠지?’
생각난 김에 휴대폰을 들었다.
[30분 뒤에 회장님과 한판 본방이 시작되는데. 혹시 볼 시간 되나?]
촬영을 마치고 추후 연습을 위해서 연락처를 교환해둔 상태다. 멤버 중에서 신성의 리더인 에녹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10초도 되지 않았는데 바로 답장이 왔다.
[네, 회장님. 지금 저희 멤버들 전원이 컴퓨터 앞에서 본방을 사수하는 중입니다.]
‘아니. 얘네 진짜 바쁜 애들이 아니었어? 이걸 지금 단체로 본방을 보겠다고 대기한다고?’
게다가 휴대폰도 계속 들고 있었는지 문자메시지치고는 나름 장문이었음에도 보내기가 무섭게 답장이 왔다.
‘설마 혹시 내가 문자 보낼지도 모르니까 대기하고 있었나? 에이. 설마. 눈앞에서는 어려워했다지만 지금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을 때도 그러겠어?’
혹시나 하면서도 막상 내가 어느 재벌 회장님의 문자를 받는다면 온 힘을 다해서 답장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때 김선일 국장이 말했다.
“회장님! 지금 전 방송의 시청자가 8만 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빠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6만 대였는데, 어느새 8만을 돌파했다니.
‘이거 성과급을 준비해야 하겠네.’
그렇게 예정된 30분이 지나고 회장님과 한판이 시작되었을 때. 실시간 시청자는 10만을 넘어 12만 명을 달성한 채로 스페이스 마린과의 경기가 나왔다. 장나리나 신성 멤버들의 멘트가 실종했던 녹화 첫 번째 플레이는 예상대로 미방송이 되어서였다.
『영웅의 검에는 피가 마르는 날이 없는 법이지. 영웅의 전장에 찾아온 것을 환영한다.』
게임의 시작멘트와 동시에 나는 방송은 귀로 들으며 시청자들의 실시간 반응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윤회장님이 아누비스로 혼자 미드라인에 서고, 나머지가 탑과 바텀으로 찢어지네요.]
[조합으로 봐서는 에녹의 라간과 해성의 브론즈크랭크가 정글을 돌 계획으로 보입니다.]
포지션을 보고 가장 일반적인 상황을 예상하는 해설자들.
그런 둘을 보면서 장나리가 입을 물었다.
[왜 꼭 그 두 사람이 정글을 간다고 예상하시는 건가요?]
[에디와 민호씨가 선택한 영웅은 정글을 돌기에는 힘에 부치는 영웅이거든요.]
[그냥 레벨이랑 아이템만 있으면 다 가능하고 그런 게 아니라요?]
[네. 각 영웅마다 특성들이 다 달라서. 어떤 영웅은 초반에 강하고, 어떤 영웅은 후반에 강하고 누구는 라인, 누구는 정글 등의 특징이 다 있습니다.]
[그렇구나~]
기초적인 말이지만 그녀의 리액션은 100점 만점의 관객과도 같았다. 아주 재미있는 설명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 덕분일까.
- 크! 장나리. 내가 옆에서 설명해주고 싶다!
- 내가 설명하면 진짜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데!
- 이리 와요! 제가 쟤네보다 훨씬 잘해요! 제가 설명해줄게요!
남자 시청자들이 장나리의 리액션에 빠져들어서 서로 자기 자랑을 하고 있을 때, 해설진은 예상하지 못한 라이너들의 전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뭐죠? 도대체 왜?]
[악마추적자랑 이리아나가 CS를 다 먹고··· 어라? 경험치도 둘이 같이 먹고 있네요?]
LON 온라인의 아주 기본적인 룰인 선 웨이브는 정글에게 양보한다는 개념.
바로 그것이 깨지고 있었다. 당황하는 해설진과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의 글도 바로바로 올라왔다.
- 뭐야? 괜히 연예인들 데려다가 하니까 기본 룰도 모르고 그러는 거 아냐?
- 겜 하는 애들을 불러야지. ㅉㅉㅉㅉ
- 아니. 이런 건 방송까지 하는 거면 가르치고 했어야하는 거 아냐?
어느 정도 LON 온라인을 해본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드는 생각이다. 게다가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남에게 엄격, 근엄, 진지한 성향을 가지는 문화가 있는 만큼 많은 시청자들이 이 사태를 두고는 채팅으로 제작진을 가르치는 듯한 글들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뭐라고 하든 상관없지.’
어차피 이건 전략이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전략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시청자들은 또 언제 비난을 했었냐는 듯이 칭찬 일색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탁월한 실적이라는 결과의 힘 아니겠는가.
일단 화면은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함인지, 기본 룰이 깨어진 탑과 바텀보다는 내가 자리 잡고 있는 미드라인을 중점적으로 잡아주었다.
‘에고. 여기는 꽤 지루할 텐데.’
아누비스는 왕귀형 영웅인데 그 왕귀형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극에 다다른 왕귀형 영웅이다. 오로지 후반만을 보는 셈이라서 초반인 지금 보여줄 플레이라고는 오직 파밍이다. 파밍하고 또 파밍하며 계속 파밍만 한다.
이런 영웅이 있는 라인에서 대체 보여줄 것이 무어가 있겠는가?
[역시 아누비스. 싸움이나 견제보다는 일단 농사에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역시나 상대 미드라인의 마법사 영웅 빅터를 상대로 어떻게든 체력을 유지하면서 아등바등 스택 쌓기에 여념이 없는 장면만 이어지는 미드라인.
[아누비스는 세월을 낚는 영웅이죠.]
해설진의 설명과 함께 화면에 CG가 덧입혀지면서 아누비스 특유의 내려찍는 동작이 밭을 갈고 있는 것처럼 꾸며졌다.
그리고는 인터뷰 영상이 나왔다.
「회장님의 아누비스를 보면 초반에 정말 너무 지겨울 거 같은데요. 플레이하실 때에는 어떠셨나요?」
「어땠냐고요? 지겹죠 엄청 지겹죠. 빨리 이 짓거리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신 것 치고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집중하고 계신 거 같았는데요.」
「당연한 일이니까요. 아누비스는 애초에 그렇게 짜인 영웅입니다. 초반에 스택을 얼마나 잘 쌓느냐. 그리고 어떤 타이밍에 내 자리를 벗어나느냐가 승패의 관건이지요. 농사를 잘 짓고 그 성과를 확인하는 타이밍.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는 ‘과연 회장님의 농사는 풍년으로 끝날 수 있을까?’라는 자막이 붙으면서 다시 게임 화면으로 돌아갔다. 이런 게 바로 녹화 방송의 장점이고 편집의 묘미 아니겠는가. 지루한 장면도 덜 지루하게 만든다.
- 맞아. 아누비스 하는 놈들은 맨날 한 타에 참여를 안 해.
- 진짜 완전 민폐 영웅. 맨날 자기가 왕귀하면 다 이긴다고.
- 기다려줬을 때 왕귀이기나 하면 몰라. 다들 잉여도 이런 잉여가 없어. 저건 왕귀 캐가 아니라 그냥 약한 캐임.
- 아. 완전 공감. 아누비스는 그냥 약한 영웅임. 만든 넘이 그렇게 만들었다잖아.
- 응? 방금 멘트가 그 뜻이었냐?
- 제작자도 별수 없다잖아. 못해도 내가 못한 게 아니라 캐릭이 구린 거라고.
- 너 국어 못하지?
그래. 이런 반응이 지금 LON 온라인에서는 일반적인 반응이다.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훨씬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영웅. 그게 바로 이 아누비스다.
그러던 중 팀에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어!? 바텀이 위험합니다!]
정글러가 안정적으로 라인에서 경험치를 획득하고 라인을 떠난 뒤 자신의 정글에서 충분히 레벨을 더 올리고 찾아온 갱킹이었다.
아군이 1차 포탑에서 숨어 있었음에도 2명의 정글러와 1명의 바텀 라이너의 공격은 매서웠다.
『레드팀이 선취점을 획득했구나!』
『영웅 브론즈크랭크가 사망하셨습니다.』
숫자와 컨트롤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해성이 죽고 말았다.
[아··· 그래도 잘 버틴다 했는데 결국 브론즈크랭크가 쓰러지고 마네요.]
배재성 해설위원의 말에 장나리가 마치 분하다는 듯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
[정말 아까웠어요! 잘만 하면 죽더라도 상대팀원 한 명 정도는 같이 죽을 수도 있었는데요!]
게임을 보는 눈썰미가 적은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너무나도 아까운 상황일 수 있었다. 분명히 적들도 모두 25% 미만의 체력만을 남기고 빠져나갔고, 잘만 했다면 그중 하나는 죽일 수도 있었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쟤들은 애초에 그렇게 나올 수 있을 걸 예상했으니까 들어온 거거든.’
게임이라는 것이 컴퓨터처럼 딱 계산한다고 계산대로 들어맞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각을 재고 타이밍을 맞추면 변수가 없는 한에야 계산대로 들어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 저들의 갱킹은 딱 계산대로 움직였고 그 계산이 들어맞은 경우였다.
‘내가 민호였다면 저 중 둘은 잡았을 거 테지만.’
아무래도 민호의 컨트롤로는 혼자라도 살아남은 게 성공인 셈이다.
‘그래도 진짜 작전대로 잘 해줬네.’
작전은 매우 간단했다.
첫째. 죽지 말고 최대한 버텨라.
둘째. 만약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메인 라이너는 남기고 보조 라이너가 대신 죽어라.
내가 오더한 그대로 해성이가 민호를 대신해서 장렬하게 산화했으니, 작전대로 잘 해 내준 것이다.
[초반이라 빠르게 부활하죠? 자! 탑 라인에서 경험치를 쉐어하던 에녹의 라간과 지금 막 부활한 바텀의 브론즈크랭크가 정글의 중립몬스터를 사냥하러 움직이입니다.]
[상대 정글러들은 이미 두 번째 바퀴를 돌고 있을 텐데 이제 와서 도는 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싶네요.]
- 바텀에서 해성이 당하는 거 보니까. 이제야 이건 아니다 싶었던 거지.
- 근데. 윤회장님이 엄청 고수라고 하지 않았어? 옆에서 계속 대화하면서 하고 있는데, 처음부터 저렇게 하자고 이야기된 거 아닐까?
- 개인의 실력이 고수더라도 팀 전략에는 부족할 수도 있지.
일단 전에 보여주었던 실력이 있었기에 다행히 지금 내 실력을 가지고 까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어? 아니었군.’
다시 보니 한 명이 보였다.
- 그때는 일반인 상대로 좀 잘 풀린 게임을 봤으니까. ‘쫌 한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오늘 보니까 영 아니네. 이 사람. 거품이야.
그리고 한 명이 여럿을 불렀다.
- 진짜 거품일지도. 빅터 상대로 아무것도 못하네. ㅋㅋㅋ
- 회장님과 한판이 아니라 회장님이 쌌다인줄 ㅋㅋ
- 못하는 거 졸라 기대 중인 1인
- 같이 기대하는 2인
- ㅂㅅ들 있더라도 편집하겠지.
- 너나 ㅂㅅ. 편집해도 티는 나거든?
- 아··· 이봐요들. 아누비스는 원래 초반에 누굴 상대로 하든 아무것도 못 해요. 그래서 정글러들의 흔한 먹잇감이죠. 근데 보이세요? 지금 CS도 안 놓치고, 빅터도 킬각이 도무지 안 나와서 싸움도 못 걸고 있잖아요.
- 윤 회장님이 아니라. 우리가 저기서 아누비스를 하고 있었으면 지금쯤 못해도 5데스는 찍었을 겁니다.
- 저기요. 이거 라이브 아니고 녹방이죠?
- 네. 녹화방송 맞아요.
- 그럼 그렇지. 윤회장님. 본방사수하시면서 이러면 안 됩니다.
난데없이 말을 걸기에 ‘나는 본방도 보면 안 되냐?’ 하는 멍청한 생각을 잠깐 하고 말았다. 곧 그 고민이 우스꽝스럽도록 채팅창에 ‘아니거든요?’라며 저들끼리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렇게 윤 회장 거품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사이에 화면 상단에 굵직한 글씨가 나왔다.
『영웅 라간이 사망하셨습니다.』
『블루팀. 좀 더 기운을 내라고!』
멋진 성우의 응원 멘트도 함께였다.
‘플레이 시간 7분. 스코어는 0대 2.’
0대 0이면 더 좋았겠지만, 애초에 그런 불가능한 기대는 하지도 않았었다. 이정도만 해준 것도 정말 고마운 수준이다.
[끊임없이 아누비스를 괴롭히는 빅터입니다. 그럼에도 아누비스는 꿈쩍도 않고 열심히 농사만 짓고 있네요.]
[여기는 5분 전에 보았던 화면이랑 지금 보는 화면이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아요. 그냥 동영상의 구간 반복을 설정해놔도 될 정도입니다.]
집에 다녀온 적이 없었고 바뀐 거라곤 오직 익힌 스킬의 숫자뿐이었다. 그때는 2개였지만, 지금은 궁극기를 포함해서 모든 스킬을 다 배워둔 상태였다.
[이제는 빅터도 거의 습관적으로 견제를 한 번씩 해주는 거 같아요.]
[아누비스가 약한 영웅이긴 한데, 이게 참. 패시브인 영혼흡수가 생명력 흡수라서 은근히 라인 유지력은 좋거든요. 바퀴벌레처럼 버티고 버티는 영웅이라. 아무리 견제를 해도 꿋꿋한 것 같네요.]
[어? 어어?]
모두가 ‘지금도 싸우지 않고 파밍만 하겠지’하고는 화면이 바텀으로 내려가려던 순간. 아누비스가 구속의 사슬을 빅터에게 사용했다.
< 놀면서 버는 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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