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02화 (302/577)

< 놀면서 버는 중~ >

[회장님이! 또 적 정글에 들어갑니다!]

[초반에야 서로 다 약하니까 쉬웠지만, 이제는 소벡도 꽤 체력이 늘어났거든요! 이제는 아군이 도와주러 올 때까지 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도리어 당하는 건 조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회장님은 어떤 선택을 하실까요?]

이제는 내가 움직이면 당연히 적 영웅을 사냥하기 위해서라고 당연하게들 생각하는 것 같다만, 지금은 적 영웅을 잡기 위해서 들어가는 게 아니다.

‘굳이 죽일 상황이 온다면 그러겠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야.’

초지일관!

빠른 레벨업을 위해 경험치를 뺐고자 과감하게 들어왔을 뿐이다.

[아! 회장님의 목적은 룬골렘이었습니다!]

[조커도 안정적인 사냥을 하려면 마나가 많이 부족하거든요!]

룬 골렘.

온몸에 룬이 새겨져 있는 이 골렘은 중립 몬스터들 중에서도 꽤나 강한 몬스터로 분류된다. 그렇기에 특별한 보상을 주는데, 바로 룬의 각인이다.

각인이 새겨지면 몸 주위로 푸른 오러가 돌게 되는데 이것 때문에 블루버프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 그냥 내가 익숙하게 블루 버프라고 불렀더니 테스트 때부터 다들 그렇게 불러서 유저들에게도 그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현재에 쓰지 않는 유행어 같은 것을 미리부터 쓰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주는 사건이었다랄까? 이런 소소한 것부터 잘 지켜야 내가 꿀 빨 미래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지켜낼 수 있는 거거든. 나만 아는 미래만큼 든든한 게 없으니까.’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고 있는 마당에 하는 아주 욕심 가득한 생각이었다.

현재 시점과 미래의 플레이어가 보이는 차이점 중에는 이 룬 골렘에 관한 부분도 있었다. 미래의 게임을 안다면 룬 골렘의 블루버프를 미드 라이너에게 양보하는 게 봍농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결코 그러지 않는다.

‘정글러가 둘이나 되니까 이런 경험치 하나하나 양보했다가는 레벨업을 못해.’

그래서 상대편 사냥터에 건너온 것이다.

[지금 시라크가 룬 골렘을 사냥하러 왔다가 없으니까 어리둥절하죠!?]

[미니맵에는 분명히 룬 골렘이 있다고 나왔었을 텐데요! 얼마나 황당할까요!]

[회장님이 움직입니다! 회장님이 움직여요! 과연 어떻게 킬을···?]

[어··· 그냥 빠지시는 건가 보네요.]

[아··· 예.]

시라크를 보고 이동하는 조커를 보고는 ‘혹시!?’하며 흥분지수가 올라갔던 이들은 시라크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망감을 내보였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아직 실망하려면 일러.’

5대 5의 게임이지만 플레이하다 보면 느끼게 된다. 상대 팀에서 가장 위험한 영웅, 위협적인 게이머, 이 게임을 박살 내버릴 가능성을 지닌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말이다. 그리고 그가 성장하지 못하고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해서 막고자 애쓰게 된다.

이를 역지사지의 처지에서 다시 따져보자.

지금 상대편에서 가장 위험하게 느끼는 적은 누구일까? 아이돌 그룹인 신성의 4명?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킬이 나온 모든 곳에 있었던 조커를 위험대상으로 보는 게 옳았다.

‘그리고 지금 자신들의 룬 골렘이 의문사를 당한 상태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

조커다.

이렇게 따져본 뒤 상대편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추론하면 답은 쉽고 명확하게 얻을 수 있다. 바로 아군을 부르는 일일 것이다.

[어? 회장님께서 빠지다 말고 인형을 설치합니다.]

[왜 저기에 인형을 설치하시는 걸까요?]

[와악! 소벡입니다! 소벡이 나타났습니다!]

[혹시 회장님 맵핵 쓰십니까? 어떻게 저기에 저렇게 딱!]

정글러가 두 명일 때의 플레이 방식은 둘이 함께하는 것과 따로 다니는 것이 있다.

‘떠올리고 나니 너무 당연한 소리를 해버렸군.’

어쨌건, 이렇게 따로 있을 때라면 다른 정글러는 반대편 정글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시라크의 콜에 따라서 적팀이 합류하고자 오면 길목이 합쳐지는 곳은 딱 하나뿐이다.

‘바로 이곳. 포탑과 나무 사이라는 말씀!’

아무것도 모른 채 다가온 어린 양에게 안식을 내려주었다.

『영웅 소벡이 사망하였습니다.』

[아! 예상과 다르게 소벡이 아주 빠르게 녹아내렸습니다!]

[순식간에!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저는 한여름 아이스크림인 줄 알았습니다!]

[······.]

[···벼··· 별로였나요?]

[그런 되도 않는 개그는 좀 자중해주시고요.]

[죄송합니다. 이게 집에서는 진짜 되게 웃겼는데···]

같이 흥분해서 열심히 소리지르던 배재석이 순간 정색하자 양진수가 황급히 사과했다.

[그럼 많이 웃으시는 집에서 자주 하시고 여기서는 자중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진짜 정색은 아니고, 둘이 워낙 친해진 사이다 보니까 일부러 망할 것 같은 드립이 나오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살려주는 것이다. 뒤이어 방금 전의 한 방에 대해 막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할 때였다.

[꺄하하~!]

옆에서 지금까지 입도 제대로 못 떼고 앉아 있던 장나리가 혼자 팡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이스크림. 푸흣.]

[······.]

[···그··· 이거 보세요.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집에서 빵빵 터졌었다고요. 하하··· 하하하!]

[···아, 네. 그렇군요. 하하하하!]

아무래도 장나리가 얼굴마담 그 이상의 진짜 진행자가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뭐 정말 그런 사람이 필요했으면 어떻게든 입담 좋은 남자 연예인을 데려왔을 테니까.’

기대가 많아지면 괜스레 실망하고 사람이 인색해지는 법 아니겠는가. 함께 하여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니 괜히 더 욕심내거나 평가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시청률과 게임성만 살려주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이제 레벨은 8.’

한편, 덤보의 레벨은 6이었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몸을 사리는 덤보의 모습은 영락없이 킬각을 재고 있는 사냥꾼의 모습이다.

‘프로게이머들은 현재 스킬의 데미지 총합이 614다, 뭐 이런 걸 명확히 계산하고 각을 재지만 저들은 일반 유저들이지. 나름 잘하는 편이라고는 했지만.’

각도기 같은 각을 재는 게 아니라 그저 어둠추적자의 체력이 절반 이하로 내려가는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면 얼추 스킬을 한 번 정도 실수해도 궁만 잘 들어가면 잡을 수 있거든.’

그리고 내가 노리는 타이밍 역시 바로 그때였다. 어설픈 계산으로 발생하는 작은 틈 말이다.

‘맞았다.’

덤보의 견제 스킬에 에디의 어둠추적자가 당하면서 슬로우와 함께 절반 이하의 체력으로 뚝 떨어졌다. 이때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몇 대만 치면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이 되면 앞뒤 안 가리고 무턱대고 들어가서 공격하기 일쑤다.

시야가 좁아서 오직 상대의 체력만 보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였다. 그러다 적이 살아나가 버리면 궁극기만 허투루 날리게 된다.

‘그런데 얘는 생각보다 참을성이 있나본데?’

상대 덤보는 욕심내지 않고 한 타이밍을 그냥 보내주었다.

이는 바로 덤보의 특성에 있었다.

‘증기 관리.’

증기로봇인 덤보의 로봇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증기터빈 게이지가 상승하는데 이게 맥스가 되는 순간부터는 한동안 스킬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대신, 평타에 강력한 마법 데미지가 추가된다.

‘하지만 제대로 스킬을 사용하고 난 뒤에야 평타로 때리는 맛이 생기는 거지 스킬도 쓰기 전에 과열되면 답이 없거든.’

그래서 증기 관리를 하고 난 뒤 들어가기 위해서 한 타이밍을 참아낸 것이다. 적의 불행한 점은 상대가 나라는 사실이었다.

‘시간을 보아하니 지금쯤 들어가겠군.’

나 역시 움직였다.

은신을 사용해서 덤보의 뒤에 자리 잡았다. 그 순간. 덤보의 궁극기인 파라매트릭이 어둠추적자를 노리고 쏘아진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노리는 찰나, 기습을 감행했다.

[노렸어요! 정확한 타이밍을 노렸습니다!]

[이때가 되면 덤보가 어둠추적자에게 궁을 쓸 거라는 걸 예상하신 거예요!]

[이야~ 혹시나 오늘 방송을 보고, 조커 정글이 최고네! 나도 조커 정글이나 해야겠다! 이러시는 분들! 그러지 마세요. 이건 회장님이 워낙 전체 흐름을 잘 봐서 가능한 거지 그냥 조커가 좋은 게 아닙니다!]

많이 흥분했는지, 어미가 매번 강하게 올라가면서 반복적으로 강조형을 만들어낸다. 등장하기 무섭게 죽이기 일쑤였으니 이번에도 경악 섞인 환호성만 지르면 될 차례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그 타이밍이 생각보다 오지 않았다.

[어어? 덤보가 주지 않네요?]

[많이 셉니다?]

어둠추적자와 조커의 협공의 구도였다. 그런데도 죽기는커녕 오히려 어둠추적자가 더 위기를 맞고 말았다.

- 일단 빠져.

MOS 유저는 보통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적을 죽이기보다 내가 사는 것에 더 집착하는 스타일과 내가 사는 것보다 적을 죽이는 것에 더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다행히 에디는 전자에 속했다. 자존심을 내세우고 말에 따르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재빨리 물러난 것이었다.

[아아. 어둠추적자 빠집니다. 이렇게 되면 조커가 혼자 싸워야 하는데요!]

[둘이서도 겨우겨우 체력을 빼냈던 조커로 과연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요?]

덤보는 현재 과열 상태다. 당연하게도 강력한 평타를 보유한 지금 붙어서 싸우면 이길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자고로 소나기는 많이 퍼붓지만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조커! 수풀로 몸을 숨깁니다!]

[은신으로 수풀에 들어간 거 정도야 바로 예상하겠죠?]

[역시나! 수풀로 따라 들어가는 덤보!]

[아! 단검 투척으로 슬로우를 걸고 빠져나가네요!]

LON 온라인은 단순하게 컨트롤만 좋다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또한, 아이템이 좋다고 무조건 이기는 것도 아니었다. 상황에 맞게 알맞은 행동을 해야 이길 수 있다.

지형지물과 아이템 그리고 컨트롤까지 삼박자가 고루 맞춰줘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술래잡기를 하다 보면 기다리던 때가 곧 온다.

‘슬슬 과열이 끝날 때야.’

과열 때는 평타가 아파서 문제고 과열이 끝나면 다시 스킬을 쓸 수 있으니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다. 하지만 이는 상대의 강점에 지나지 않는다.

약점은 적이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 움직일 때 드러난다.

‘과열이 끝나가니까 거리를 벌리고 스킬을 사용하려고 하겠지.’

아무리 평타가 강력하다고 한들, 멀리서 때릴 수 있는 스킬만큼의 안정감을 주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때가 조커에게는 기회였다. 적이 어찌할지 미리 안다는 것은 그만큼 이점이 크다.

‘바로 지금!’

은신으로 들어가 백스텝을 날려주고 단검 투척을 한 번 더 사용했다.

‘마지막은 영혼의 맞다이!’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붙어서 싸운다!

『영웅 로봇과학자가 사망하였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투박하고 치열해 보일 테지만 사실은 시작부터 결과까지 계산하고 싸운 결과였다.

[잡았습니다! 이야! 이걸 결국 잡아냅니다!]

[혹시 지금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뭘요?]

[조커를 보시면 지금 물약을 복용한 상태지 않습니까?]

[그렇네요?]

[처음 전투에 돌입하자마자 물약을 먹고 계속 싸우고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보시면 아주 위험한 체력 상태가 나오는데, 미리 물약을 먹지 않았다면 그때 패배했을 겁니다.]

하수와 중수를 나누는 기준은 컨트롤이나 경험, 이해도가 아니다. 바로 적시에 소모품을 사용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서 가장 크게 갈린다.

물론 소모품에 관한 문제는 컨트롤이 아주 뛰어날 경우 그 모든 걸 뒤집을 수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특출난 컨트롤을 가지지 못한 이들. 혹은 동급의 컨트롤을 보유한 상태에서는 이 소모품 사용의 습관 하나가 큰 격차를 만들어버리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덤보 역시 체력 회복제를 가지고 있었고 어둠추적자도 체력 회복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전투 중에 회복제를 사용하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다.

‘어딜 가거나 기본이 중요한 거야.’

세상 어디에서나 통하는 진리라 하겠다.

< 놀면서 버는 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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