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01화 (301/577)

< 놀면서 버는 중~ >

[그럼 이제 갑니다.]

[과연 회장님의 목표는 무엇이 될 것인가?]

워드래프트Ⅲ 유즈맵으로 제작한 LON은 맵이 비교적 컸고 각 라인에서의 전장 역시도 길게 잡히는 편이었다. 반면에 LON 온라인은 그 거리를 좁혀놨고 그 탓에 아군이 라인을 확실하게 당겨서 싸우지 않을 때에는 좀처럼 기회가 나오지 않는다.

즉, 아니다 싶으면서도 ‘기다리면 틈이 나오겠지.’라며 기대하기보다는 심리를 읽고 상대의 동선을 먼저 파악하는 지능이 필요하다는 거다. LON 온라인은 이런 머리가 없는 상태로 오직 피지컬만으로 잘할 수 있는 게임이 절대 아니다.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본다면 어디가 좋을까?’

자신들의 정글 몬스터를 빼앗겼다. 그런 가운데 눈 깜짝할 사이에 킬마저도 내어주어 버렸으니 상대 소벡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할 것이다. 레벨업 할 몬스터도 없고, 무턱대고 갱을 가기에는 레벨 업을 못해서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바텀에 있는 정글러를 콜해서 정글을 치거나 바텀을 치겠지.’

답이 나왔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목표가 될 위험 요소는 바텀에 있다.

[회장님의 선택은 바텀입니다.]

[지금은 돈도 많으세요. 초반에 빠른 이동을 위해서 신발을 사셨던 것 때문에 사실 동등한 레벨이면 전투에서 불리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장검까지 하나 챙기셨습니다.]

[신발이 있어서 추격도 좋고 장검까지 챙겨서 공격력도 보완하신 거죠.]

[어? 그런데 바로 바텀으로 치고 들어가시지를 않네요?]

괜히 잡지도 못할 거면서 신경만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다. 더군다나 상대 정글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순서다. 자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첫 번째 순서가 바로 문제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니까.

지금쯤이면 몬스터들의 부활을 기다릴 시간이고 어떻게든 아군의 이득을 위해서 갱을 선택할 타이밍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토록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뭔가를 노리면서 기다린다는 의미인데, 그게 어떤 건지까지는 알 도리가 없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빨리 각각의 요소를 따지며 계산한 결과, 답이 나왔다.

‘인형 깔고 기다리면 되겠어.’

매복이다.

조커의 인형은 방어에서는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 최고의 스킬이다. 나는 공격을 위해서가 아니라 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은신을 한 뒤에 수풀로 향했고 안전한 수풀에 자리를 잡은 뒤에 인형들을 설치했다.

‘지금부터 딱 15초만 대기하자.’

전략게임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5초 10초 단위로 정해진 코스들을 밟지 않으면 이후에 그것이 스노우볼처럼 커다란 결과물의 차이를 만들어버린다. 내가 정한 15초는 잘못되더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내가 부릴 수 있는 최대치의 여유시간이다.

만약 15초가 지날 때까지 상대가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적이 시간이라는 자원을 허투루 사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윽고 기다림이 10초가 되었을 때.

‘온다.’

드디어 적의 정글러들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오케이. 예상대로군.’

바텀을 치고 들어올 각을 재고 있던 것이다. 나는 바로 망령 기사로 플레이하고 있는 에녹에게 사인을 보냈다.

- 이 근처에 와서 어그로 좀 끌어줘.

적들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한 에녹은 내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몰랐지만, 그래도 일단은 시키는 대로 상대에게 물리기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 좋고.’

현재 적들이 있는 곳에서 에녹을 치기 위해서는 무조건 깜짝 인형들이 있는 지점을 거쳐야만 했다. 아주 좋은 미끼와 트랩인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확실하게 해두었어도 상대는 둘이다. 초반에 약간 벌어진 정도로는 혼자서 둘을 상대할 수 없다.

- 내가 신호를 보내면 에녹이랑 민호랑 둘 다 이쪽으로 와.

이제 곧 파티 타임이다.

[옵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에녹 선수의 망령 기사를 잡겠다고 오고 있어요!]

[지금 자기들끼리는 완벽한 갱킹을 가고 있다고 엄청 희망에 찬 꿈을 안고 있었을 텐데··· 아아! 공포에 걸립니다!]

[산산이 부수어지는 희망!]

빠르게 달려오는 에녹과 민호.

셋의 협공에 상대 바텀 라이너는 감히 도와줄 엄두도 못 내고 자신의 포탑 뒤로 숨어버렸다.

『영웅 소벡이 사망하였습니다.』

『영웅 시라크가 사망하였습니다.』

깔끔하게 처리 완료다.

[지난 방송에서는 회장님이 완벽한 컨트롤로 어떻게 상대를 압살하느냐를 보여주셨다면, 오늘은 완벽한 전략으로 상대의 의지를 죽여버리는 방법을 보여주시네요.]

[지금까지는 누구라도 다 따라 할 수 있는 수준의 컨트롤만 나왔거든요.]

표현 그대로다. 절대 어려운 컨트롤 같은 건 없었다. 누구나 따라 하려면 따라 할 수 있다. 다만 철저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전장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가능하다. 어려운 건 이 상황에 맞는 위치를 먼저 선점하는 것이지 컨트롤이 아니니까.

‘중반 이후 한 타가 시작되면 컨트롤 실력이 지금보다 훨씬 중요해지겠지만, 초반에는 컨트롤보다 위치선점이 몇 배는 중요하거든.’

이 정도는 일찌감치 알려줘도 우리 게임단에 전혀 손해 될 게 없었다.

[그리고 혹시 보셨습니까?]

[어떤 거죠?]

[방금. 회장님이 킬을 다 먹을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안 죽이고 양보하셨어요.]

[개인이 혼자 강해지는 것보다 팀원 전체가 강해지는 것이 승리에 이득이라는 계산이실까요?]

비슷했다. 조커는 그 특성상 암살에서 강력함을 발휘하지만, 중후반 한 타에서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를 이쪽의 표현으로는 유통기한이 끝난다고 말한다.

‘기왕이면 나보다 한 타에 더 좋은 영웅들이 강해지는 게 좋지.’

그들이 강해져서 한 타에서 안정적으로 싸울 수 있어야 그들에게 한 눈이 팔린 사이에 적들을 하나씩 몰래몰래 뒤치기로 잘라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벡은 벌써 두 번이나 죽었어요.]

[이러면 정글러들이 완전 기가 죽죠. 정글러의 기가 죽어 버리면 라이너들도 당연히 힘들어집니다.]

상대 정글러들이 죽고 부활하는 사이에 우리는 새로 나온 정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6레벨을 찍었다. 그에 반해 상대 정글러들의 경우 소벡은 아직도 4레벨, 시라크는 5레벨이다. 스노우볼이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팀 라이너들이 이제는 포탑 주변에서 떨어지질 못하고 있어요. 이러면 CS 관리가 제대로 안 돼서 또 불리해지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CS 욕심부리다가 조커에게 당하면 모니터 깨버리고 싶어지죠!]

[앗! 회장님이 움직이십니다! 미드로 가시네요!]

바텀은 정글러에게 웨이브를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레벨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드는 여전히 5레벨이었기에 이쪽은 궁극기가 있고 상태에게는 궁극기가 없었다.

아울러,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듯이 일반 기술과 궁극기술의 위력은 확연하게 다르다.

[에녹도 갑니다!]

[그렇죠! 이쯤 되면 두 정글러가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이러면 갱이 온 것을 알아도 쉽사리 도와준다는 선택을 하기 어렵거든요!]

[적 정글러는 미드에 사는데! 아군 정글러는 왜 보이질 않냐!]

플레어는 강력한 화염 마법을 쓰는 영웅인 데다가 궁극기는 이리저리 튕기면서 모여 있는 적들 전부를 강타하는 위험한 마법이었다. 즉, 6레벨을 달성하기 전에 먼저 기를 죽여 놓는 편이 좋았다.

-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바로 따라 들어오면 돼.

은신으로 먼저 자리 잡은 뒤 빠르게 투척 단검으로 슬로우를 걸었다. 슬로우에 걸리면서 이동속도가 느려진 영웅은 지금까지 미호의 유혹 스킬을 무빙으로 잘 피해냈지만, 이제는 속절없이 당하고야 만다.

[이야~ 마지막 도망가려는 걸, 에녹의 망령 기사가 막타까지!]

[오늘 처음으로 같이 하시는 거 맞나요? 이거 손발이 너무 잘 맞는 거 아닙니까?]

떠들썩하게 추임새를 넣는 모습에 그냥 눈을 돌려버렸다.

‘잘 맞기는 개뿔.’

결과적으로야 잡았으니 됐지만, 본래 내가 생각했던 계획은 미드 라이너인 미호가 막타를 쳐서 잡아내는 거였다. 그런데 컨트롤 미숙 때문에 다 잡은 먹이를 놓쳤고 결국 에녹이 무리해서 막타를 겨우 먹어야 하는 상황으로 번진 것이다.

그래도 잡긴 잡아냈으니, 손발이 맞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긴. 나 빼고 4명은 원래부터 늘 같이 게임하던 인원일 거 아냐?’

나야 오늘 처음으로 같이 하는 거라지만, 이들이야 원래 매일 붙어살던 그룹 멤버들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한편, 저들보다 신경 쓰이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장나리였다.

‘아가씨. 너무 관객 모드시잖아.’

게임에 흥미가 있다는 건 잘 알겠다. 그만큼 흠뻑 빠져서 ‘아!’ ‘와!’ 하면서 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존재 자체로도 충분하기는 해도 정말로 딱 그 역할만 해줘버리면 좋은 평가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이야 칙칙한 해설진들보다 눈을 돌려서 정화된 마음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말이다.

‘에이! 몰라. 남이사!’

멘탈 튼실하고 근면 성실하기로 유명한 연예인이니 알아서 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즈음 아군의 사망 소식이 울렸다.

『영웅 악마추적자가 사망하였습니다.』

악마추적자가 탑 라인에 가끔 가기는 하지만, 주 포지션은 바텀이다. 그런데 굳이 탑 라인으로 가겠다고 하더니만, 결국 팀원 중에는 가장 처음으로 적에게 킬을 내주었다.

‘애초에 상대부터가 나빴어.’

탑 라이너 중 패왕으로 통하는 덤보.

거대한 로봇에 탑승한 채 싸우는 이 드워프 영웅은 실드와 가속, 강력한 지속형 화염에 슬로우까지 훌륭한 스킬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자타공인의 사기 캐릭터였다. 그런 영웅과 탑 라인에서 1대 1을 맞붙고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잘 살아 남아준 게 용하기도 하다.

‘둘 중 하나지. 상대가 덤보를 할 줄 모른다거나, 생각 외로 에디가 잘한다거나.’

팬은 후자를 선택하겠으나 내가 보기에는 전자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아무튼, 킬까지 먹은 덤보라면 더 크기 전에 어떻게든 잘라내야 하겠는데.’

아직 레벨은 내가 더 높다. 그러나 게임에서 소위 말하는 캐릭터 빨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덤보는 쉽게 보기 어려운 존재이고 애당초 조커는 정면에서 싸울 경우 상당히 약한 영웅이었다.

잘못 들어갔다가는 역으로 당할 가능성도 높다.

‘덤보를 잡을 기회가 날 때쯤이면 덤보 역시 궁극기를 찍겠지.’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에디에게는 더더욱 기회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덤보의 궁극기인 파라매트릭 미사일은 일직선으로 미사일을 날려서 1차로 피해를 주고 이후 해당 지역에 화염을 일으켜서 밟으면 화상피해와 슬로우까지 걸리게 되는 스킬이다.

악마추적자라면 그냥 궁극기 쿨타임마다 죽을 수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내가 돕지 않으면 게임이 터진다.

‘때마다 가서 잡아주는 수밖에 없군.’

스킬의 상세 저보를 되새겨보았다. 강력한 궁극기인 만큼 밸런스를 위해서 1레벨 파라매트릭 미사일의 쿨타임은 무려 110초나 된다. 거의 2분에 가까운 시간이니만큼 한 번 들어가서 궁극기를 소모하게 만드는 것이 첫째 순서다.

그러면서 죽이면 충분히 안정적인 시간을 벌어다 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내가 갖춰야 할 준비물은 무엇일까?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8레벨을 찍는 것.’

스펙을 조금이라도 높여야 했다.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는 조금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 놀면서 버는 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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