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300화 (300/577)

< 놀면서 버는 중~ >

“톱클래스 초대석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화사한 이 분위기가 느껴지십니까? 소개합니다. 회장님과 한 판에 함께 할 새로운 가족! 장나리씨입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방청객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박수로 환호해 줄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기껏해야 출연자와 방송 스태프뿐이다. 그 탓에 나름대로 나와 신성의 멤버들이 호응해주었어도 여러모로 분위기가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굉장한 호응을 받은 것처럼 리액션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장나리입니다.”

어째 나만 신경 쓰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박수나 호응 같은 건 편집 때 알아서 넣어주는 건가 보다.

‘내가 예능이나 이런 걸 경험해봤어야지.’

덕분에 하나 더 체감하는 게 있다. 바로, 시청자로서는 유쾌하고 친분을 다지기 좋을 것만 같아 보이던 방송이 사실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는커녕 자기 할 몫만 해도 준수하다고 볼 만큼의 분위기라는 점이었다.

‘괜히 일반인 출연자가 쭈뼛거리다가 퇴장해버리는 게 아니야.’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대로 논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맞선 자리에서 편안하게 나누어야 하는 잡담이 공부하면 짜증 나리만큼 까다로운 것처럼 노는 모습과 이미지를 연출한다는 건 대단히 어려운 게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매우 편했다.

‘그냥 게임만 잘하면 되니까.’

좋은 건 더 좋게, 실수해도 없던 것처럼 만드는 마법의 묘미. 이런 게 바로 녹화 방송의 장점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회장님과 한판의 화려한 멤버들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룹 신성입니다!”

신성의 멤버들은 총 6명이다. 이 가운데 섭외 인원은 4명만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가볍게 인사를 했고 본격적으로 게임을 준비했다.

나는 물론이고 신성의 멤버들과도 며칠 전에 사전 인터뷰 같은 것들은 미리 촬영을 다 해두었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것 없이 그냥 게임 위주로만 하면 된다.

“자. 우선 에녹 선수는 망령 기사를 선택했어요. 탑 라인이나 정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영웅이죠? 해성 선수는··· 어? 미호를 선택했네요. 오늘은 회장님이 미드를 가실 계획이 아니신가 봅니다?”

방송으로의 재미를 위해서 우리는 호흡을 맞추거나 한 것이 전혀 없다. 그저 조금 전에 어떤 라인과 영웅을 고를 것이냐를 회의한 것과 멤버 중에서 누구의 실력이 가장 좋은가? 정도의 대화만 나누었을 뿐이다.

‘당장 같이 게임을 할 팀원들도 무슨 전략으로 플레이를 할지 모르는 얼굴인데, 쟤들이 알 리가 없지.’

예상대로 해설진은 짚어내지 못한 채 상황만 열심히 중계했다.

“그럼 회장님의 선택은··· 조커입니다. 회장님께서 조커를 선택하셨다는 건?”

“오늘은 정글에 가시겠다는 의미죠.”

LON의 모티브라고 할 수 있는 원천의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 해외에서 코리아 시크릿 웨폰이라는 말이 떠돌곤 했다.

한국인들은 유난히 암살자 은신 이런 것들을 좋아해서 한국형 AOS가 나왔을 때 은신과 뒷치기가 전공인 캐릭터가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그와 가장 비슷했던 캐릭터를 한국인들이 주로 플레이하면서 생겨난 별명이었다.

해외에서는 거의 버림받은 영웅이었는데 한국인이 하면 유난히 무서운 영웅이 되었고 조커는 바로 그 영웅과 상당히 흡사한 콘셉트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그나저나 이렇게 게임에만 집중해도 나중에는 알아서 편집하여 대화도 들어가고 어찌어찌 방송이 잘 나온다고 하는 게 마냥 신기하네. 배우가 아니더라도 연예인은 몽땅 연기자인가 봐. ···에이! 이런 건 신경 그만 쓰고 그냥 게임이나 하자.’

할 때는 즐기고 유명세나 평가는 나중에 게시판이나 방송 후기로 보면 될 일이다.

“은신을 통한 암살이 주 역할군인 조커라니. 회장님의 조커가 참 기대됩니다. 그럼 다음으로 에디 선수는 악마추적자, 민호 선수는 강철의 기사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선택이 끝이 나게 됐네요.”

“저는 회장님이 당연히 미드를 선택하실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선택이라 참 많이 놀랐습니다.”

“과연 회장님이 지난번과 또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실지. 어디 한 번 기대해봅시다.”

LON 온라인은 여전히 2명의 정글러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아주 오래도록 이 진영과 전략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모를까, 당장은 내가 먼저 나서서 이 체계를 새로이 정립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기에 일단은 현재 대세라고 할 수 있는 2명의 정글 전략에 따라주기로 했다.

“자!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은 정석대로 가시네요. 정글을 돌게 될 영웅들이 탑과 미드에서 먼저 경험치를 챙기고 정글로 움직입니다.”

“양측 모두 기본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예인 MC를 추가하긴 했지만 장나리씨는 아직까지는 표현 그대로 얼굴마담 정도의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멘트는 배재석과 양진수에게서 나오고 장나리는 아직 제대로 입을 떼지 못하는 중이다.

‘대충 서류를 보니까 플레이 타임은 좀 되는 거 같던데.’

대단히 많은 경험을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50게임 정도를 플레이했었으니 게임을 이해하지 못해서 입을 못 떼는 건 아닐 것이다.

그냥 게임 방송 진행에 대한 경험 부족 같았다. 관객처럼 열심히 관람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괜찮아. 열의가 있으면 차차 나아질 테고 솔직한 말로 있어만 줘도 감사하니까.’

존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이 이 방송을 볼 이유가 된다. 거기에 ‘인터넷 방송국이지만 우리는 이런 연예인도 섭외할 수 있다’의 역할도 있으니 추가 활동은 모두 보너스로 보면 된다.

“일단 정석대로 선 웨이브는 정글러들이··· 어? 회장님은 정글로 가셨네요?”

“이게 괜히 3레벨을 먼저 먹고 시작하는 게 아니거든요. 정글에 있는 중립 몬스터들이 초반에 상대하기에는 상당히 강력해서 회장님처럼 플레이하면 몇 마리 잡지도 못하고 우물로 돌아가야 하는 사태가 발생··· 해야 하는데?”

“이야! 깜짝 인형이 이렇게 사용되는군요!”

조커의 스킬은 총 세 가지다.

은신, 함정, 단검투척.

이 중에서 깜짝 인형이라는 기술이 바로 함정 스킬인데 적이 잠시간 이동하지 못하게 된다. 자리를 잡고 싸우는 초반에 이것보다 든든한 것이 없을 정도다.

‘공격도 상당하고 대신 맞아주기까지 하지.’

이보다 매력적인 스킬이 또 어디 있으랴 싶다.

“깜짝 인형을 활용해서 초반에 상대 팀이 3레벨을 찍는 사이에 회장님은 빠르게 상대 중립 몬스터들을 정리해 버렸습니다.”

“이야~ 이러면 나중에 상대 팀 정글러가 3렙 찍고 올라와서 당황할 거거든요. 어? 내 몹 어디 갔어? 이렇게 되는 거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게 라인을 잡는 라이너들도 그렇긴 하지만 정글러들의 경우는 다들 자신이 정해둔 루트가 있어요. 이때는 뭘 잡고 저때는 뭘 잡고 하는 식이죠. 그러고는 시간에 맞춰서 라인에 견제 들어가 주는 건데 지금 이 모든 게 무너진 겁니다. 이러면 정말 당황합니다.”

“그렇습니다. LON 온라인은 본래 3레벨에서 5레벨 때 중립 몬스터들을 누가 더 많이 잡아내고 또 얼마나 상대 정글러들을 잘 견제하느냐, 바로 이 초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은 팀이 중반까지 유리한 위치를 계속 가져갈 수 있게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원래 축구든 게임이든 중계석에서 할 말이 없을 때가 가장 괴로운 법이다. 특히나 게임의 경우는 초반에 할 말이 없어서 어떻게든 쓸데없는 사족을 늘어놓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초반부터 허를 찌르는 전략이 나와 버리니 신이 난 배재석과 양진수의 입에 모터가 장착됐다.

‘상대 정글의 몬스터를 다 사냥하고 나면 당연히 내 정글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겠지?’

당연한 말이지만 맵의 절반은 상대 진영에서 가깝고 절반은 아군 진영에서 가깝다. 그리고 진영에서 가깝다는 말은 유사시에 아군의 지원을 받기 좋다는 걸 의미한다.

적 정글에서 사냥한다는 건, 언제라도 협공을 당해서 끔살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러니 정석대로라면 몰래 상대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에 성공하는 즉시, 안전한 아군의 정글로 돌아와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내가 다른 영웅을 선택했다면 말이지.’

LON과 같은 게임의 장르에서 암살 캐릭터들은 뒤치기가 바로 미학이자 알파요 오메가다.

그리고 조커는 바로 그 뒤치기에 가장 특화가 된 영웅!

이런 영웅으로 다시 내 정글에 가서 중립몬스터만 노리고 있을 이유가 없다.

“안전하게 사냥을 마친 회장님. 이렇게 되면 라인에서 웨이브를 먹는 것보다 레벨업이 빠르거든요.”

“이제 회장님 라인에서 정글몹을 다 사냥하면 4레벨이 되시겠죠?”

“어? 그런데 안 가시네요?”

예상했던 대로 중계진에서는 적의 몬스터들을 잡아내고는 다시 내 몬스터를 사냥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충 여기가 좋겠어.’

중립 몬스터를 사냥하려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곳이면서 수풀이 있어서 들어오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는 딱 좋은 위치.

탑과 미드 라인의 사이의 공간에 깜짝 인형들을 설치하고 상대 정글러가 오기를 기다렸다.

“깜짝 인형을 또 준비합니다. 이거 아무래도···”

“네. 적 정글러까지 처리하려고 준비하시는 것 같습니다.”

깜짝 인형은 2개 이상이 뭉쳐 있을 경우 초반의 영웅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데미지를 가지고 있는 스킬이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가까이에 온 유닛에게 공포까지 걸어 버리니 도망가기도 쉽지 않았다.

‘초반에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면 그냥 마우스를 모니터에 던지고 싶어지거든.’

미안하지만 지금쯤 아무것도 모르고 3레벨을 찍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을 적의 영웅이 바로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왔다.’

리자드 파이터.

뭐, 이름은 리자드인데 사실상 생긴 건 악어다. 무시무시한 칼날을 가진 악어 인간이 자신의 정글 몬스터를 썰어 버리러 준비된 함정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 함정에 걸렸다!

“걸렸습니다! 깜작 인형의 공포!”

“악어 캐릭터인데도 리자드 파이터의 당황한 표정이 여기까지 생생하게 보이는 것 같네요!”

아주 빠른 공격속도를 가진 깜짝 인형의 공격에 리자드 파이터의 체력게이지가 증발해갔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고 당황하게 되면 누구라도 일단 도망부터 생각하기 마련.’

하지만 여기에는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다.

바로 은신!

조커가 괜히 뒤치기 전문 캐릭터겠는가? 속임수 스킬을 사용해서 은신 상태가 될 경우 적의 뒤에서 공격할 때 추가 데미지와 크리티컬이 터지게 된다.

『영웅 소벡이 사망하였습니다.』

시원하게 작렬하고 메시지가 나왔다.

“아! 백스텝 터졌습니다!”

“이야! 백스텝입니다! 백스텝!”

“저는 조커에게 있는 이 백스텝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거든요!”

“저도 그랬습니다. 사실 싸울 때 상대의 등 뒤에서 공격할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상대도 자신의 등을 줄 일이 얼마나 있고요? 그런데! 이게 이렇게 사용되는 군요!”

“그야말로 예언과도 같은 전략이었습니다.”

게임을 잘 아는 만큼 목소리에 진심 어린 감탄이 섞여 있었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 이런 생각으로 흔하게 자리 잡은 메타를 아무 고민 없이 했다가는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뭐 이런 걸 제대로 보여주신 전략이었다고 봅니다.”

“네. 맞습니다. 아마도 지금 이 방송을 보고 계신 시청자분들 중에서도 지금 뒷목이 시린 분들이 꽤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럼요. 당연히 그러실 분들이 많을 겁니다. 저도 저 상황이면 똑같이 당했을 거라고 생각 하거든요.”

너무나도 당연한 패턴이다. 현재 LON 온라인을 하는 유저들 중에서 이렇게 플레이하지 않는 유저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렇게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냥 너무 당연한 정석 플레이였다.

‘하필 상대가 나라는 게 재수가 없었던 거지.’

이 시기에 LON을 하는 유저들 중에는 아직 이런 플레이가 나온 적이 없으니까 아무도 이 상황의 대비책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자!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4레벨을 찍은 회장님은 바로 아까 남겨두었던 자신의 정글 몬스터를 처리하러 가십니다.”

“원래 이 타이밍이 되면 혹시나 상대 정글러 둘이 연합해서 내 쪽을 치러오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회장님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 소벡이 이미 죽었거든요.”

적 영웅은 웨이브 병사나 중립 몬스터보다 확실히 많은 경험치를 준다. 그 덕분에 가장 빠르게 4레벨을 달성했고 또 중립 몬스터들을 사냥함으로 가장 먼저 5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 놀면서 버는 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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