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면서 버는 중~ >
‘환상의 무빙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거야.’
게임 시작 9분.
라이너들이 궁극기를 찍는 타이밍까지 정글러들은 집요하게 미드라인을 방문했다. 그러나 위기감지라는 내 특별한 능력이 매번 신호를 보내주었기에 단 한 번의 기회도 얻지 못했다.
‘무쌍의 배경에는 치트키가 있다는 말씀!’
저들에게 나는 짜증의 대상이자 난공불락으로 보일 터. 거액의 상금과 우승자를 가르는 대회였다면 양심이 찔렸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니니 상관없었다. 마음껏 즐기는 거다.
“집요하게 미드를 노리던 정글러들이 지금 아래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죠? 자 다시 아리아나를 잡아낼 타이밍입니다.”
원래 자주 죽으면 기가 죽지만, 딱 한 번 죽었을 때는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더 무리해서라도 덤비는 법이다. 이러면 빈틈이 생기고 실수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바로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다.
“아리아나의 궁극기는 강력한 데미지와 CC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그네틱 코어 주변에서만 터지지요. 즉, 범위만 잘 파악하고 있으면 맞지 않고도 싸울 수 있습니다.”
가시를 통한 견제만으로 상대와 딜 교환을 하면서 눈치를 보다 보면 마음이 급해진 상대가 먼저 들어오게 된다. 특히나 초창기인 지금의 인식은 ‘마법사야 궁극기만 잘 먹이면 암살자 정도는 쉽게 녹일 수 있어!’라며 착각하는 시기다.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던 타이밍인 마그네틱 코어가 나를 노리고 날아오는 순간!
“바로 이 타이밍에 도약공격을 사용하면.”
비록 상대의 Q에는 어쩔 수 없이 데미지를 받지만 그 이후에 사용되는 궁극기의 범위는 회피하게 된다. 이다음은 정말 수비다.
“이어서 가시를 날려주고 공포의 낫질을 연거푸 써주세요. 다음으로 평타를 치면, 체력이 조금 남죠? 아깝게 놓치는 거라고 걱정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LON 온라인은 LON과 달리 플레이어 스펠을 두 개나 주니까요.”
고른 영웅과 상관없이 플레이어가 원하는 두 개의 스킬을 보유하게 되는 시스템은 LON과 LON 온라인을 구분하는 주요 지표 중에 하나다.
“이렇게 중독을 걸어주면.”
『영웅 아리아나가 사망하였습니다.』
“마무리를 짓게 됩니다.”
“우와···”
“정말 퍼펙트합니다.”
게이머들답게 플레이 방식에 두 사람이 크게 감탄했다. 시청자들의 반응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송진호 선수가 괜히 잘한다고 말한 게 아니네.
- 얻어걸린 게 아니야. 설계 쩐다.
- 이런 실력이면 이미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솔직히 LON을 벌써 이 정도로 하는데, 스드 때도 특출 났다는 말을 못 믿으면 그게 이상한 거 같음.
- 뭘 해도 될놈이었다는 거냐? ㅅㅂ 겜도 잘하다니!
- 더 재수 없어.
그렇게 내가 플레이한 카라스의 스코어는 17킬, 0데스, 2도움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팀 전체 스코어가 23킬, 8데스, 13도움이었으니 얼마만큼의 활약을 했는지는 플레이 장면을 보지 못한 사람조차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126. 놀면서 버는 중~
톱클래스 초대석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날 확보한 시청자의 수만도 5만 명이었고 GGT의 인지도를 높이는 성과를 가져왔다. 또한, GGT는 인터넷 방송이 아니던가. 방영된 영상을 온라인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지 재방송으로 볼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
“지금 방송 게시판에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보고하는 김선일 국장의 표정은 ‘이보다 기쁠 수는 없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반응이 생각보다 좋은가 봐요?”
“생각보다 좋냐고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건 완전 대박입니다. 현재까지 재방송으로 스트리밍된 영상 중에 가장 높은 뷰가 7만 뷰입니다. 그런데···”
미래의 시각으로는 ‘겨우 그걸 가지고 왜 저리 호들갑이야?’ 싶을 수 있겠으나, 지금은 전 세계 최대의 비디오 플랫폼인 위튜브조차 고작 반년 정도 된 시점이다. 아직까지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방송을 본다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다.
이를 고려하면 7만 뷰라는 건 엄청난 시청률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회장님이 출연하신 방송은 무려 그 세배에 가까운 20만입니다. 무려 20만이라고요!”
“대단하군요.”
이건 진심으로 놀랐다.
20만 뷰!
이건 기대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게다가 아직 방송이 나가고 사흘이 지났을 뿐이니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가능성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플래시를 통해 동영상을 스트리밍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게 되면서 점점 인터넷 동영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런데도 20만 뷰 이상을 기록한 영상은 현시점에서는 몇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고무적인 수치였다.
‘아무래도 잘 나가는 프로게이머 초대보다는 재벌이나 마찬가지인 회장이 직접 게임을 해서 더 관심을 끌었나 보군. 하기나, 나중에도 위튜브에서 조회수가 잘 나오는 대표 콘텐츠가 자기 수익 공개하기였으니까.’
대놓고 ‘돈! 돈!’ 거리면 수준 낮다고 한소리 하는 대한민국의 정서지만 막상 ‘돈 버는 법!’ ‘대박 비법!’을 알려주면 여기에는 온갖 관심을 두는 것이 대다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건 국민성이 낮다거나 내숭 떠는 일이라고 비하하면 그게 오히려 삐뚤어진 사람이다.
단순한 눈요기를 넘어서 나은 사람, 나아지는 방법, 경쟁에서 이겼다고 보이는 누군가의 노하우를 얻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자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강사가 정작 그 강의를 하면서 부자가 되듯이 진짜로 특급 비밀을 선선히 알려주는 이는 적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개뿔.’
노력 없이 믿기만 해도 우주가 도와주리라는 시크릿을 되새기며 객쩍은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나도 ‘이렇게 하면 나처럼 부자 될 수 있다.’ ‘성공의 8원칙!’을 써서 책을 출간하면 아마도 짭짤한 돈벌이가 될 것이라는 잡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약간 톤이 낮아진 김선일 국장의 멋쩍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 회장님 반응이 이렇게 밋밋하시면 보고 드리는 저도 기운이 안 사는데··· 20만 뷰가 정말 대단한 게 맞기는 하거든요.”
‘아이고, 이 사람아. 내가 회장이라고.’
아무리 대단한 성적을 냈다고 한들 명색이 기업의 오너다, 이런 일로 만세 삼창을 부르며 호들갑을 떨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100억 단위로 수익을 낼 때도 그냥 수고하셨습니다로 때우는 사람이란 말이야. 쯧쯧.’
내심 혀를 차면서도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한껏 기뻐하기를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있는 김선일 국장을 보고 있으니까 맞장구쳐줄 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아니야. 그래도 회장이니까.’
지금이 맞다. 희소식이라고 기뻐서 날뛴다면 실적이 별 볼 일 없을 때는 쌍욕 하며 물건을 집어 던져야 일관성 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바위처럼 든든하고 굳건한 회장님 콘셉트를 유지하며 넌지시 말했다.
“충분히 감탄하고 있으니 이 안건은 이쯤하고 다음은 뭡니까?”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방송이 너무 잘 돼서 그러는데···”
“그러는데?”
역시나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말끝을 흐리는 김선일 국장이었다. 재촉하자 그가 말을 이었다.
“이번에 했던 톱클래스 초대석은 파일럿 방송을 했다고 치고 회장님 초대석이라는 프로를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름부터가 ‘회장님 초대석’이다. 즉, 내가 정기적으로 방송에 출연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런 건 좀 곤란하지 않으려나?’
살짝 저어되는 제안이었다.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거나 게임 플레이를 하다가 말아먹으면서 이미지를 실추하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치트키 플레이어가 일반 유저한테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백전백승할 자신이 있다.
단지 신경 쓰이는 점은 나의 사회적 위치였다.
‘대중에게 어떻게 비치려나?’
괜히 방송에 나오는 부자가 외제차, 스포츠카를 몰고 다녀도 재벌은 국산차를 이용하는 게 아니었다. 저들보다 돈이 없어서가 절대로 아니라 위화감을 주지 않고 이미지를 친서민적으로 잘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퍼포먼스인 것이다.
‘이런 내가 매주 방송에 출연해서 게임을 하는 게 좋은 행동일지······.’
2004년에 평가했던 내 재산은 2조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5조가 넘어간다.
1년 동안 대략 3조의 수익을 올린 셈!
사람들이 우스개로 기업인들의 수익을 놓고 분당 얼마를 벌어들이네, 시간당 얼마를 벌어들이네 하는데, 이 돈은 대부분 연봉이 아닌 주가 상승을 통한 수익이다. 그 계산법을 내게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루 수익이 3억 4천만 원이 넘지.’
하루를 24시간으로 계산한다면 시간당 570만 원이다.
‘그러고 보면 재벌들이 방송에 잘 안 나오는 건 당연한 거야. 돈 더 벌고 유명해져서 몸값 올리려는 목적이 대부분이잖아. 반면에 나는 제작비가 570만 원이 안 되는 방송에 시간당 570만 원짜리가 출연하는 셈이고. ···진짜 꿈속 미래랑은 완전 달라졌구나.’
오래간만에 느끼는 격세지감이다. 의미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단순계산이었기에 생각 즉시 그냥 웃고 넘겨버렸다.
“그 부분은 생각을 좀 더 해보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계열사의 사장급만 되었어도 김선일 국장은 방송 출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럴 수 없었기에 아쉽다는 듯이 입맛만 다셨다. 나 역시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잘 알기에 그저 미소로 축객령을 대신했다.
‘일하는 시간에 당당하게 게임을 하면서 돈도 벌고 왕년의 꿈이었던 방송도 하는 거니까 마냥 내키지 않는 건 아니야. 하지만 선택은 신중할수록 좋아.’
섣부르게 결정하고서 후회하기보다는 늦더라도 제대로 따져보는 편이 백번 나았다.
그렇게 지금은 GGT보다 LON 온라인에 더 신경을 쓰기로 마음의 양팔 저울이 기울고 있을 때였다.
이틀이 지난 시점.
“회장님!”
“대박입니다!”
“이건 꼭 보셔야 합니다!”
오전에 출근하기 무섭게 내 사무실로 세 사람이 찾아왔다. 김선일 국장과 LON 온라인의 총괄 PD로 있는 이명현 팀장. 마지막으로 GF 홀딩스의 홍보팀장이었다.
‘뭐야? 이 조합은? 홍보팀장이 중간다리 역할로 만난 건가?’
아무튼, 이른 시간부터 이 사람들이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뭘 봐야 한다는 겁니까?”
“여기 있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홍보팀장이 스텔라 패드를 내게 보여주었다.
‘오호. 이게 벌써 직원들에게 보급됐어?’
레이컴에 내가 직접 지시해서 개발한 태블릿 PC.
아직은 어플도 없어서 그저 동영상 구동과 MP3,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곳에서 아주 느린 속도의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금처럼 문서만 출력해서 보여줄 때에는 서류보다 효과적이었다.
그 화면에는 기사들이 보였다.
【회장이 직접 즐기는 게임.】
【회장님마저 빠져들게 한 매력. LON 온라인.】
【게임을 잘하는 것과 잘 만드는 것은 다르다. 많은 시간을 플레이했을 것이 분명하다.】
제목만 봐도 톱클래스 초대석에 나갔던 방송을 토대로 나온 기사였다. 그리고 아래에는 ‘톱 클래스 초대석, 회장님 편’이라는 제목과 함께 옆에 350,000 View라는 글씨가 볼드체로 강조되어 있었다.
“35만 뷰?”
20만이던 것이 엊그제였는데 정말 껑충 뛰었다.
“네! 지금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게시판까지 아주 난리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러 잡지사에서 기자들이 연락해 와서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
“잡지사?”
“전부 회장님의 방송이 일으킨 반응과 여파 때문이죠.”
세 사람이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게이머들 사이에서 생겨났던 관심이 커지면서 그것이 외부로 뻗어 나갔고 덕분에 게임 외적인 계층의 관심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해당 방송과 기사 이후로 LON 온라인의 동시접속자가 증가했습니다. 지금 반응으로 봐서는 회장님 효과를 톡톡하게 보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동시접속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것만큼 좋은 소식이 어디 있으랴. 그 상징적인 지표가 두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온라인 게임의 점유율을 엄청나게 치고 올라가서 현재 플레지의 턱밑까지 쫓아간 상태입니다.”
이 시기까지 플레지는 단 한 번도 PC방 점유율 1위에서 내려온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1위를 빼앗았던 게임조차 플레지2였고 오래지 않아 최고의 자리를 되찾았다. 그 탓에 게임들 대부분은 확고한 1위와 2위 자리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3위인 뉴 온라인의 자리를 넘보고 덤벼드는 실정이었다.
‘고작 1% 차이 밖에 안 나다니!’
그런데 철옹성을 함락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 놀면서 버는 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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