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법이 왜 없냐? >
“GGT의 준비는 잘 되고 있습니까?”
GF GAME TV.
줄여서 GGT라고 명명한 인터넷 방송국의 개국이다.
“말씀만 하시면 언제든지 시작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연습생과 여러 선수와 면담을 진행하시고, 지원자들을 추려서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초창기에 구상했던 단순한 스트리밍 사이트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PD와 작가 등을 영입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진행하는 제대로 된 방송국의 형태다. 채널은 2개였고 그중 하나가 스트리밍이었는데 이는 시청자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는 스트리밍의 장점을 버리기 아까워서였다.
그렇게 전 TFA. 현재는 레이컴으로 둥지를 옮기면서 레이컴 어드밴처러스, 줄여서 RA로 변경된 게임단에 인터넷 방송국에 대해 알려주었고 출연할 의향을 물어보았다. 당연히 공짜 출연이 아니라 출연료도 지급한다.
“방송에 정기적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
“좋죠! 용돈도 벌고 인기도 생기면 좋고!”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소속된 모든 선수들은 GGT의 출범과 목적에 모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GGT방송에 출연하기로 동의했다.
내 행보 덕분에 여러모로 미래의 일이 앞당겨져서 일어나고 있지만,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점이 있다. 아직은 2005년이라는 것이다. 나중에야 개인 스트리머들이 활동하며 1인 방송의 시대가 친숙해지지만, 지금은 인터넷 방송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한 편이다.
그 탓에 괜찮은 광고를 섭외하는 일은 불가능했고 우리는 방송 프로그램 사이의 광고 시간에 GF에 소속된 게임과 레이컴의 신제품 및 레오닌 컴퓨터로 가득 구성했다. 그리고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GGT가 첫 방송을 송출했다.
그리고 인 게임넷에서 힘들게 스카우트한 인물이자 현재 GGT의 초대 국장을 맡은 김선일 국장이 죄지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날 최고 시청률은 1만 명이었습니다.”
“고작 1만 명?”
“네, 회장님.”
‘매번 대박만 치다가 오래간만에 카운터를 맞은 기분이네.’
인터넷 방송의 장점 중 하나가 현재 시청자들의 숫자를 정확하게 집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너무나도 정확한 덕분에 이것은 단점이 되기도 했다.
시청자 1만 명!
개인 스트리머의 방송에서 1만 명이면 대단히 성공한 방송이 된다. 보통 이 정도면 스트리머계에서는 일명 대기업으로 통할 정도다. 그러나 GGT는 개인 스트리밍이 아니고 들어간 인력과 자본의 크기 역시 비교할 수 없다.
이를 감안하면 1만 명은 상당히 저조한 성적이었기에 기대했던 제작진들이 꽤나 힘이 빠진 모양이다.
‘역시 살짝 빨랐나.’
그래도 괜찮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족집게처럼 짚어내어 이득을 취하는 것 이외에 시장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가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점으로도 충분했다. 당장 겁먹고 발을 뺄 필요는 없다.
“아무래도 초기이고 크게 홍보가 되지 않은 상태라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레이컴에 소속된 인기 선수들을 얼굴로 내세워서 방송을 제작하면 인지도가 조금 올라갈 것 같은데?”
슬쩍 대안을 제시했는데 이 정도 머리는 제작진들이 이미 썼다고 한다.
“그게··· 이미 첫날 송진호 선수와 방정식 선수를 게스트로 초대했습니다. 그때 나온 숫자가 1만 명이었고 최대 시청자였습니다.”
‘송진호 이 녀석, 생각보다 약빨이 없군.’
김요환 선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버그와 포스토스 두 개의 종족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두 선수를 필두로 내세웠음에도 이런 성적이니 기가 죽을 만도 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있을리가요. 괜찮으니 마음껏 다양한 시도를 해보세요.”
“예, 회장님. 저기 그런데···”
“말씀해 보세요.”
우물쭈물하는 그를 채근하자 김선일 국장이 이내 결심한 듯 쭉 말했다.
“송진호 선수가 방송 중에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실수라니요?”
방송 중에 바지라도 벗으면서 물의를 일으켰나 싶었는데 들려오는 이야기가 사뭇 예상외였다.
“초기에 게임단을 창단할 때 회장님이 송진호 선수는 물론이고 김요환 선수에게 많은 전략을 알려주었다고 언급했습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엄청난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셨고 이건 김요환 선수마저 인정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선수들 사이에서 비공식 랭킹 1위라고도 했고요.”
‘내 얘기?’
“회장님이 프로게이머로 활동을 안 해서 그렇지 만약 활동만 하시면 모든 대회의 우승을 휩쓸었을 거라고 여러 번 강조하는 바람에, 그 말이 인터넷으로 퍼졌고 게시판에서는 지금 시청률을 훨씬 능가하는 논쟁 게시글이 도배 되듯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게 뭔 개 소리냐. 그때야 프로게이머 초창기라서 수준이 낮아서 그랬던 건데.’
황당했다. 내가 송진호와 김요환에게 스타의 기본기들을 가르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진호가 말하는 것처럼 대단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앞선 전략이나 발달한 감각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비벼볼 수는 있을 테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밥만 먹고 하루도 쉬지 않으면서 오직 스타 드래프트로 단련한 프로게이머를 몇 년간 손 놓았던 내가 압도할 수는 없다. 플레지에서 요구하는 테크닉과 스타 드래프트의 컨트롤은 비교하면 민망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박진감 넘치게 비벼보려면 폐관 수련하듯이 스타를 붙들고 해봐야 할걸? 어쨌거나 내 얘기라니까 궁금하긴 하네. 이 이슈면 우리 방송국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고.’
내심 흐뭇해하면서 김선일 국장에게 물었다.
“게시글의 내용은 주로 어떤 겁니까?”
“송진호 선수가 조금 가볍기는 하지만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 것 같지는 않다는 내용과 회장님이 워낙에 플레지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통하다 보니까 게임 자체에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답답하게 자꾸 망설이지 마세요. 그리고 뭡니까?”
“회장님이 직접 출연하셔서 한 번 방송에서 제대로 보여주면 좋겠다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김선일 국장이 망설인 이유가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회사의 오너에게 ‘실황으로 게임 한 판 하시죠?’라는 요청을 하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입을 빌렸지만, 은근히 ‘이렇게라도 시청률을 높여봤으면 좋을 텐데.’라는 마음이 여실하게 보였다.
잠시 고민했다.
게임은 나 역시 좋아한다.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멋지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두 개다.
방송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어야 하고 내 이미지와도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이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와!’ 소리가 나올 만큼의 실력을 보여줘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기면서 송진호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동시에 게임 관련 부분에서 다재다능하다는 이미지도 굳히면 금상첨화다.
‘가능할까?’
머리를 굴리며 계산했다. 그 결과, 최고의 해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스타 때와 마찬가지로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면 된다.’
이거야 말로 윈-윈 이 될 것이다.
“좋습니다. 방송 출연 스케줄을 잡아보지요.”
“정말이십니까?”
말해놓고도 큰 기대하지는 않았던지 꽤 놀라는 모습이었다. 나는 물론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재 GGT의 국장은 김선일 국장님이지만, 저 역시 GGT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출연해서 GGT에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다면 한 번쯤이야 수고해볼 만하지요.”
“감사합니다! 그럼 가장 좋은 시간대에 스드 방송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네?”
김선일 국장이라면 내가 출연해서 제대로 어필할 수 있는 콘텐츠를 훌륭하게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플레이하려는 게임은 스타 드래프트가 아니었다.
“우리 회사의 게임을 해야지요. LON 온라인으로 갑니다. 5인용 게임이니 함께 방송할 게이머들 네 명 정도 준비해주십시오.”
LON 온라인은 우리 회사 것이고 스타 드래프트는 남의 회사 게임이다. 기왕이면 내 것을 홍보하는 편이 낫다. 아울러, 내가 김요환과 송진호에게 한 수 가르쳐주었던 때가 스타 드래프트 초반기였던 것처럼 지금의 LON 온라인은 내가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
멱살 잡고 캐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청자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액션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스드 팬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좀 있겠지만 그건 미리 스드가 아니라 LON 온라인에 대한 콘텐츠를 진행할 거라고 광고하면 적당히 무마될 테지.’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이보다 나은 최고의 답변은 없으리라!
“LON도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 겁니까?”
우려 가득한 김선일 국장의 말에 나는 가볍게 웃었다.
“김선일 국장님이 잘 모르시나 본데 LON은 물론이고 LON 온라인까지 다 제 머리에서 나온 겁니다. 당연히 자신 있지요. 게다가 단언컨대 저는 스타보다 LON을 월등하게 잘합니다.”
감히 자부할 수 있다. 이건 최근에 LON을 직접 플레이 해보면서 확신하게 된 사실인데 내가 갖고 있는 쓸데가 정말 많지만 정작 쓸 일이 없는 이 초능력들은 스타 보다는 LON과 같은 게임을 할 때 더더욱 두드러진 효과를 발휘한다.
감각으로 마우스를 컨트롤하는 정도는 차치해두더라도 위기를 직감적으로 느끼니 상대 캐릭터에게 기습당할 일이 없고 네비게이션 능력을 발동하면 적의 위치 역시 맵핵 수준으로 느껴진다.
부대별 컨트롤이 아니라 단일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이런 이점들을 가졌으니 문자 그대로 나 혼자 치트키를 쓰고 게임하는 셈이다. 덕분에 스드와 달리 LON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도 나보다 이걸 잘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다.
누구든지, 얼마든지 덤벼도 좋다는 내 태도에 김선일 국장이 힘있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LON 온라인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시청률 급상승을 노리는 제작진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이틀 뒤, GGT 홈페이지와 게이머스 포럼에 ‘윤태식 회장 전격 출연!’이라는 광고가 대대적으로 올라온 것이다. 게시판의 반응은 뜨거웠다.
- 뭐야? 스드를 잘한다더니, LON이네? 난 스드를 보고 싶었다고!
- 뭐 이해는 되네. 요즘 떠오르는 대세이기도 하고 LON은 GF에서 직접 만든 게임이기도 하니까 윤태식 회장 차원에서는 LON온라인으로 밀고 싶지 않았을까?
- 그렇겠지. 게다가 솔직히 LON을 잘하면 스드를 잘했었다는 거도 믿어줄 만 하잖아?
- 게임에 대한 재능은 장르를 불문하고 일단은 따라가는 거 같음. 쉽게 질리는 타입이라 친구들이랑 거의 3개월마다 새로운 게임으로 갈아타곤 하는데, 게임이 바뀌어도 수준 차는 거의 계속 동일함.
- 인정. RTS나 FPS 같은 건 어느 정도 등락이 있기는 한데 거의 이 게임 잘하는 애들이 저 게임도 잘함. 송진호 선수의 말이 맞다면 윤태식회장은 LON 온라인도 엄청 잘할 듯?
- ㅈㄹ 오바들 한다. 지가 만든 게임이니까 당연히 잘하겠지.
- 헐. 개 무식 인정이냐? 이 뭔 농사꾼이 최고의 셰프라는 소리?
- 지가 만들어서 잘하는 거면 스드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아니라 아이스 스톰 개발자겠네?
- GGT인지 뭔지 게임하는 회장 보러 함 가봐야겠구만~
- 완전 졌음 좋겠다. ㅅㅂ 젊고 돈 많은데 게임까지 잘하면 배 아프다고.
- ㅋㅋㅋㅋㅋ
누군가는 기대하고, 누군가는 실망했으나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대한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스타 드래프트는 거 기준선이 너무 높았다. 지금까지 프로게이머들이 활약한 매드 무비는 물론이고 송진호의 멘트로 기대감이 높아진 만큼 그들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만약 지면 내가 쪽팔리는 것도 문제지만 진호의 이미지도 망가질 수 있었지. 역시 LON을 하는 게 최고야.’
다시 생각하고 곱씹어봐도 자화자찬 할 만큼 정말 영리한 선택이 틀림없었다.
내가 출연하기로 한 방송은 평일 저녁, LON 온라인에서 상위 포인트를 보유한 유저들을 초대해서 그들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을 주요 콘텐츠로 삼은 ‘톱클래스 초대석’ 방송이었다.
“회장님. 방송 10분 전입니다.”
두 명의 MC와 1명의 게스트로 운영되는 방송이기에 오늘의 게스트인 나는 카메라가 준비 된 스튜디오에 자리를 잡았고 함께 플레이하는 것으로 당첨된 게이머들은 그 옆에 자리가 세팅이 되어 있다.
게이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손을 풀고 있었다. 한편, 방송의 MC들은 긴장한 채로 온몸에 힘을 가득 주고 어색하게 있는 상황이었다.
< 방법이 왜 없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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