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법이 왜 없냐? >
비서실을 생각하면 이 역시도 또 우습다. 최근에 임원들이 꽤 많아지며 만들었는데 정작 비서실장 자리는 모두가 한사코 거절했다.
‘나만큼 좋은 사람이 어디 있는데 다들 은근히 불편해한다니까.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비서실장에 아무 경력자나 데려와서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니 덕분에 비서만 있고 실장은 공석으로 비어 있는 중이었다.
이게 다 회장이라는 직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계층에는 역시 호호백발이 되어서야 올라오는 게 맞아. 나이가 왕창 들어 보이잖아.’
아주 가끔은 ‘나한테 엄청난 카리스마가 생겨서 사람들이 겁먹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건 아닌 게 분명했다. 진수와 성찬이를 만나면 여전히 맥주 던지고 과자를 뿌려대며 노니까 말이다.
- 회장님. 고진환 부사장 도착했습니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가장 처음 비서실장을 거절한 고진환 부사장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비서실장을 거절한 이유는 정말 명확했다. ‘비서실장을 하면 밤낮이 없지 않습니까? 저는 정해진 출퇴근을 지키고 살고 싶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나라도 비서실장이랑 부사장 중에 고르라면 부사장을 고르겠지만.’
고진환 부사장은 젊은 나이와 상관없이 부사장이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포스를 제대로 풍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재벌 2세 혹은 3세라는 생각이 드는 느낌이다.
근래에는 ‘이런 사람이 백수였다니!’라는 생각보다도 ‘고진환 씨는 뭘 해도 성공해서 미래에는 15분짜리 강의를 하고 다녔을 거야.’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찾으셨습니까?”
“앉으시죠. 오늘 프로게임단을 해체한다는 보고가 제게 올라왔더군요. 이 사안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저도 조금 전에 서면보고만 받았습니다. 역시 회장님 지시사항은 아니었던가 보군요.”
“당연하지요.”
가볍게 대화를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 회장님. 김정규 GF 서비스 사장이 찾아왔습니다.
“김정규 대표?”
- 예.
“기다리라고 하세요.”
하지만 내 말이 무색하게 이미 문은 열리는 중이었다.
“회장님!”
헐레벌떡 들어와서는 다급히 외치는 모습이다. 셔츠 단추까지 두어 개는 푸른 것이 숨 가쁘게 뛰어온 듯 보였다.
“김정규 대표. 회장님에게 지금 무슨 무례입니까?”
고진환 부사장이 날카롭게 말했지만, 김정규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머거리인 양 그의 말을 무시하며 오직 내게만 말했다.
“TFA를 해체하신다는 게 사실입니까?”
현재 GF의 임원 중에서 누구보다 TFA에 많은 열정을 쏟았던 인물이 바로 김정규 대표다. 그런 애정이 있는 만큼 조금 전에 받았던 보고가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 명 때문에 여럿이 피곤해지는군.’
내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아니죠.”
“아니. 그 친구들은 우리 가족과 같은··· 네? 아니라고요?”
“김정규 대표 말대로 그 친구들은 우리 가족과 같은 사람들인데 왜 해체합니까.”
“예? 어··· 아니··· 저기··· 보고가···”
“해체가 아니라 매각으로 진행할 겁니다.”
황당해하며 경직된 어깨가 탁 풀리려던 그가 다시 불끈 힘을 주었다.
“매각이라뇨?!”
해체나 매각이나 더 이상 트레이더스 포럼에서 관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기에 김정규 대표의 표정은 좀처럼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LON 온라인이 e-sports에 포함되었습니다. 덕분에 트레이더스에서 직접 관리하기에는 여러모로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는 건 피할 수 없습니다.”
홍보팀장이 해체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만큼 김정규 대표도 바로 반박할 말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매각하게 되면 그 친구들의 처우가···”
이를 보니 순간적으로 홍보팀장을 내치지 않고 잘 다루면서 더 오래 써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가 이성적이었다면 김정규 대표는 가족 같은 사이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보육원으로 착각하나? 아무튼, 이 일부터 매듭짓자.’
어디를 가건 적절하게 밸런스를 이루어야지 하나의 사고방식에 매몰되어서는 좋을 것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이었다.
“매각하겠다고 했지 남에게 맡기겠다고는 안 했습니다.”
“매각하는데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니요?”
“레이컴이 있지 않습니까?”
트레이어스 포럼은 게이머스 포럼에 직접 소속된 회사다. 하지만 레이컴은 GF그룹 소속의 계열사로서 GF에서 개발하는 게임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이었다.
그뿐인가?
트레이더스 포럼은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규모의 회사다. TFA를 인수해서 운영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 하나가 더 있었는데 이는 회사 이름을 듣고서 바로 떠올린 고진환 부사장의 말과 같았다.
“레이컴은 회사 특성상 주요 타깃층이 게임을 시청하는 사람들과 매우 맞물려 있습니다. 홍보 효과도 충분히 좋을 거라는 판단이 되는군요.”
“맞습니다.”
레이컴이 GF의 계열사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탓에 바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요소다. 김정규 대표가 이제야 환하게 웃어 보이듯 홍보팀장 역시 마찬가지로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 그렇군요! 레이컴에서 운영하면 제약도 없고 홍보도 되고! 게다가 회사의 규모도 부족함이 없으니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오히려 트레이더스 포럼보다 레이컴이 더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스타 드래프트 리그는 어디까지나 국내 한정으로 잘 나가는 게임리그다. 하지만 LON 온라인은 조만간 전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장기간 세계 프로게임 리그를 지배하게 될 게임이었다.
뿐만이랴.
TFA는 조만간에 벌어질 스마트 기기 전쟁에서 레이컴의 이름을 조금이라도 더 알릴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줄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게임단은 조금 더 오래 존속할 수 있게 되었군요. 그리고 레이컴에서 운영하면 스드 뿐만 아니라 LON도 운영할 수 있겠어요.”
“아마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LON의 유망주라 ? 수 있는 프로 선수들 명단을 작성에서 영입을 시도하라고 전달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이는 불가능했다. MOS 장르 자체가 꿈속 미래보다 앞당겨졌기에 내가 기억할 정도로 유명한 프로게이머들의 연령대 역시 오차가 생겼다.
지금 미래의 유명 프로게이머를 찾아보면 초등학생, 중학생, 정말 많아 봐야 고등학생일 것이다. 이 또래가 한창 게임을 하는 중이라면 만의 하나로 기대를 할 테지만 아직 MOS 장르의 게임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았다.
‘미래를 확정적인 예언서가 아니라 매우 훌륭한 참고서 정도로 쓰는 편이 나아. 그리고 대안은 얼마든지 있지.’
재능 있는 선수들을 미리 알아보고 영입하지 못한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높은 연봉과 좋은 복지.
이 두 가지를 최고로 보장해주면 아무래도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건 당연한 법이다.
“그래서 말인데, 아직 레이컴에는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고진환 부사장님이 이 부분을 조율해주십시오.”
사실 전화 한 통이면 그냥 처리될 일이다.
GF의 오너가 하라고 하는데 반대의견이 나올 리가 있으랴.
하지만 모든 일을 그렇게 과정 없이 행할 수 없는 법이다. 절차를 무시하면 폐단이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문제없도록 진행하겠습니다.”
“마이코닉스 측에도 전달해서 아주 멋진 새로운 로고도 뽑아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TFA의 해체라는 무거웠던 주제는 이렇게 단기적인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내게는 홍보팀장을 따끔하게 혼내는 정도로 작은 해결이었지만 당사자였던 TFA의 선수들에게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중차대한 대사건이었다.
미래와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때 이뤄졌고 이로 말미암아 선수들의 생각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프로게이머들은 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2군에 있을 때는 1군이 되기 위한 몸부림과 함께 ‘만약 끝끝내 1군에 속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와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1군에 들어갔다고 해서 마냥 행복한 건 아니다.
마치 면접을 통과해서 직장에 들어가면 새롭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 엄습해오듯이 1군에 들어간 후에도 성적에 대한 부담감과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생기는 자존감 하락 및 각종 트라우마가 이들을 괴롭히게 된다.
물론, 이는 프로게이머 이외의 모든 직장인이 느끼는 공통의 감정이라서 크게 그들만 불행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직종에는 없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더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직업의 불확실성이었다.
축구나 야구는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 스포츠가 남아 있을 거라고 쉽게 믿고 이해할 수 있으나 프로게이머들이 하는 종목은 근래 명성을 얻은 게임이고 역사와 전통을 찾을 수 없다. 즉, 당장 내년에도 유지가 될지 신뢰하지 못한다.
‘e-sports가 아무리 대흥행을 하더라도 그 안에 자기가 하는 게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지.’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두려움을 이번의 게임단 해체 이슈와 관련하여 크게 느끼고 진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2군에 소속된 선수들과 연습생들이 선수생활을 계속해도 되느냐를 두고 고민 상담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그나마 최저 연봉 시스템의 보호를 받는 2군은 조금 나은 편이다. 보호의 사각지대에 있는 연습생들은 연봉이라는 표현이 부끄러운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정식 선수가 될 날을 고대하며 생활한다.
이 현실은 국내 모든 게임단 중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제공하는 우리 게임단 역시 다르지 않은 부분이었다.
‘연봉 960만 원. 월 80만 원.’
이 돈을 받으면서 합숙 생활을 이어가는 젊은 청년들에게 고민이 없다면 오히려 그게 비상식적인 일일 것이다. 팀에서 정점이자 모두에게 인정받는 김요환, 송진호 같은 스타 플레이어를 꿈꾸며 열정을 불태웠지만, 이번 사건으로 느낀 현실의 칼바람은 오싹했으리라.
‘집에서 나가!’ 수준이 아니라 집이 통째로 회오리에 날아가 버릴 뻔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이들 모두에게 고액의 연봉을 제시할 수도 없다.
‘돈이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그 정도까지 해줄 아무런 가치가 없어.’
당장 회사를 홍보하는 게이머들은 1군이다. 이들을 관리하는 일은 필요하다.
하지만 2군은 어떨까?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땜빵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연습생은?
‘말해서 뭐하겠어.’
회사가 보는 연습생은 한낱 교육생에 지나지 않는다. 게임을 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그들 중에서 소위 실력 좀 있다는 젊은 친구들이 무수하게 문을 두드리는데 그중에서 체로 거른 일부일 뿐이다.
흔하고 얼마든지 후보는 넘쳐난다. 혈기로 도전했다가 금방 포기하는 사례도 부지기수이고 스타의 프로게이머는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서 선발하기 때문에 기껏 키워놓고 다른 팀 소속이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함부로 투자하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이거지. 애들 청춘 드라마도 아니고 내가 정성을 보인다고 저들 역시 확고하게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거든.’
의리나 정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시시때때로 바뀌고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하기 마련이다.
안전장치를 마련해 놓고 투자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사람 사이의 정을 믿고 퍼주기를 하면서 의리를 지켜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멍청한 짓을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내린 절충안은 이것이었다.
“최대한 그 친구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도록 하세요.”
“지시하신 대로 제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어설프게 미래를 걸게 하거나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이 길을 걷고 그것에 후회가 없을 친구라면 어떻게든 남도록 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빠르게 다른 길을 걷도록 해준다. 이 정도의 역할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프로게이머들에게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이자 방송인으로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선택지를 하나 준비해주기로 했다.
< 방법이 왜 없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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