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93화 (293/577)

< 방법이 왜 없냐? >

“진짜 대단하십니다!”

“탈리스만 페이지를 만드실 때부터 이런 걸 예상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지만, 자주 그랬듯이 그냥 웃음으로 넘겼다.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것만큼 볼품없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행동이고 저들 역시 내가 이뤄놓은 결과물에 감탄하는 상황이니 나는 그 우러름을 마음껏 즐겨도 된다.

“그런데 회장님. 요즘 작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유럽과 북미 그리고 중국과 대만 등에서 다수의 이용자가 접속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최근의 동시 접속자는 20만 명을 넘겼습니다.”

사업이라는 게 그렇다. 안 되면 안 돼서 문제, 잘 되면 잘 돼서 또 문제다.

“동시 접속자는 차치하고, 게임은 어떻던가요? 진행에 문제는 없습니까?”

“핑이 너무 높아서 다들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당연하다. 그 장거리에서 접속하는데 핑이 안정적일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최대한 빨리 해외에 진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 이거야 원. 인기가 넘치니 의외의 피곤함이 생겨버리네.’

그러잖아도 각 지사는 물론, 다양한 외국의 언론 등에서 꾸준히 연락이 오는 중이었다. 대관절 LON 온라인의 해외 서비스는 언제 시작할 거냐는 연락이다.

어쩌겠나. 다들 간절히 원한다는데 그 바람을 들어줘야지.

“각 지사에 바로 준비해서 최대한 빠르게 시범서비스를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연락하십시오. 그리고 해외 아이피를 지금 차단하기는 좀 그렇고··· 해외 아이피는 해외 아이피끼리 만날 수 있도록 조정이 가능하겠습니까?”

“그건 제가 그 분야가 아니라서······.”

지금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경영계열이기에 대답을 못 하는 게 당연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 부회장님은 개발실에 관련한 내용을 전달해주시고 회의는 이만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회장님.”

당장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지만 현재로서는 최선의 판단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외국에서도 이런 관심을 보인다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니 미리부터 대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거나 마음을 쓸 필요는 없었다.

‘뭐 오픈도 그렇게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니까.’

지금은 다른 것보다 제1회 LON 프로리그가 잘 풀리길 바라는 게 순서다.

*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트레이더스 포럼 어드밴처러스의 연습실은 한국 프로게이머들이 가고 싶어 하고 머무르기를 바라는 워너비 장소다.

과거 간석동에 있었을 때와 비교할 것 없이 국내 어디를 가도 이만큼 쾌적한 환경과 복지로 밝은 분위기를 자랑하는 연습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히 소속원의 자부심과 만족도도 높기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분위기가 달랐다.

“형. 이거 진짜예요?”

평소라면 여느 때처럼 게임으로 시작하여 게임으로 끝나는 즐거운 분위기가 오늘은 툭 건드리면 와장창 깨져버릴 유리창처럼 사뭇 심각했다.

“우리 게임단이 해체되는 거예요?”

TFA의 2군에 소속된 선수 한 명이 크게 불안감을 보이며 말을 꺼내지만, 1군 소속의 선임 선수들은 어두워진 얼굴만 하고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2군 선수가 답답한 듯이 조금은 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아니, 말이 안 되잖아요. 이렇게 해체할 거라면 그냥 인천에 계속 있으면 되지 굳이 간석동으로 이사를 한 거래요?”

용산에 있던 연습실과 숙소 등은 기존 인천의 시설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만큼 게이머스 포럼에서 선수 복지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다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기에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이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기다려봐.”

“그래. 게임단이 해체될 수는 있지만, 윤 회장님이 우리를 그렇게 버리듯이 내치실 분이 아니야.”

이제는 게임단 선수들 중에서 가장 선임 선수가 되어버린 김요환과 송진호 선수의 말에 후배 선수들이 잠시 진정을 하는 것 같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쉽사리 마음의 평화가 오지는 않아 보였다.

LON 온라인이 주목받는 만큼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스타 드래프트의 온도 차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새로 낸 게임을 밀어주기 때문에 이제 스드는 완전 찬밥 신세라는 소문도 막 돌고 있다고요.”

“형. 우리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닐까요?”

“맨날 스타만 했는데 그 시간이랑 노력이···”

“그만!”

우물쭈물하다가 푸념이 점점 늘어나는 후배들에게 김요환이 버럭 소리쳤다.

“그렇게 불안해만 해서 뭐 할 건데? 바뀔 게 있냐? 할 수 있는 것부터 해! 그럴 시간에 연습이라도 더 하라고!”

평소에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분노하면 어떻다는 것을 그가 몸소 보여주었다. 후배들은 움찔 놀라서 눈치만 보다가 일제히 자기 자리로 찾아갔다. 그러나 상황을 당장 봉합한 것처럼 보일 뿐, 후배들의 뒷모습을 보는 김요환과 송진호의 표정 역시 좋지는 않았다.

“진호야. 잠깐 나가서 커피나 한잔 할래?”

“커피 좋지.”

커피가 미친 듯이 마시고 싶다는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리 있으랴. 자리를 옮겨서 대화하자는 의도를 잘 알았고 둘은 조용히 일어나서 연습실을 나갔다.

후배들과 함께였기에 나누지 못한 진지한 고민이 비로소 이어졌다.

“너도 성철이 형이 따로 찾아왔었지?”

TFA의 창단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연성철. 그는 일찌감치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은 TFA의 감독을 맡아서 팀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공적인 자리에서는 감독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석에서 대화할 때는 형이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했다.

“어. 며칠 전에 찾아오더니 만약 팀에서 떠나야 한다면 계속 선수 생활을 할 건지 물어보더라.”

“뭐라고 대답했어?”

“나야 아직은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다고 했지. 솔직히 형보다야 성적이 안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선수로 활동할 만하잖아?”

은퇴를 고려하기에는 사회적으로나 생물학적으나 모두 이른 시기다. 이런 대화가 우스우면서도 씁쓸한 이유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대답했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김요환 역시 말했다.

“그런데 우리한테 그런 질문을 했다는 건 팀의 해체가 거의 사실이라는 말이겠지?”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싶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어.”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김요환은 현재 팀 내의 선수 중에서 맏형이라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팀에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었고 이는 단순하게 자신이 이뤄낸 성과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팀의 큰 형으로서 이런 상황에서 나서야 한다는 무게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성철이 형이라고는 뭐 안 해봤겠어? 우리가 나선다고 뭐가 바뀌기는 할까?”

송진호와 김요환이 가진 발언권은 팀 내에서는 절대적이다. 감독도 어느 정도 접어줄 정도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이는 발언권에 지나지 않는다.

계약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유명세나 발언권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팀을 해체하는 부분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건 서로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성철이형을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랑은 처지가 다르잖아. 성철이 형은 애초에 목표가 감독이나 그런 게 아니라 GF의 홍보팀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

“어? 잠깐···”

송진호의 눈썹이 진하게 말려 올라갔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군이 새로이 생겨나고 e-sports라는 새로운 종목이 태동했을 때 그 누구도 스타 드래프트가 이토록 장기간 지속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김요환과 송진호라는 대중의 매력을 끄는 플레이어가 없었다면 2001년도를 끝으로 스드리그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 덕분일까? 아니면 하루가 다르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 선수들 때문일까?

TFA에는 게임단 소속이기보다 GF 소속으로 전화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편이고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연성철 감독이었다.

“그 말은 설마 성철이 형이 우리를 해체하고 자기만 회사에 입사하는 거로 이야기를 했다는 거야?”

높아진 어조나 딱딱하게 굳은 표정. 배신감마저 느끼며 그가 크게 화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김요환은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그의 화를 가라앉혔다.

“무슨 말이 거기까지 가냐. 너무 멀리 가지는 마. 그냥 우리만큼 절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런가?”

치솟던 배신감이 가라앉으며 감정에 따라서 진호의 눈썹이 내려가고 있던 때였다.

“야야. 니들이 그렇게 말하면 나 섭섭하다?”

연성철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절박하지 않다니. 내가 너희보다 더 절박할 걸?”

“아. 형.”

“들으셨어요?”

방금 전의 대화를 들었다면 꽤 무안한 일이기에, 진호와 요환이 멋쩍은 낯을 보였다. 연성철은 그럴 필요 없다며 크게 웃고는 말했다.

“뭐,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그래. 너희 생각처럼 나는 게임단보다 홍보팀으로 넘어가길 원해. GF의 홍보팀이면 안정적이고 연봉도 좋잖아.”

엄밀히 따지면 연봉은 TFA의 감독인 지금이 더 높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IMF 이후로 높은 연봉보다 안정적인 직업군에 대한 선호도가 급격히 높아졌고 연성철 역시 연봉보다 안정성에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있었다.

“그 말은···”

“어허.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거 몰라? 자, 생각해보라고. 여기서 우리 팀이 해체되면 어떻게 될까? 스타급 플레이어인 너희야 어디든 부르는 팀이 줄을 설 거야. 그런데 나는? 그냥 나가리야. 완전 쪽박이라고. 즉! 나야말로 절박하다는 거다. 이제 알겠냐?”

“아!”

확실히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요환과 진호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리고 설마 형이 너희 팔고 그냥 갈까 봐? 너네 그러는 거 아니다?”

“아니··· 저희는···”

대놓고 하는 핀잔에 둘이 더욱 겸연쩍어 했다. 연성철은 씩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됐고. 조금만 기다려봐라. 해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건 맞는데 그냥 트레이더스 포럼에서만 말이 나온 거야, 아직 회장님에게는 보고가 들어가지 않았단다.”

“그럼 그렇지!”

“회장님이 우릴 그냥 버리고 그럴 사람이 아니라니까?”

함께 게임을 했던 기억 덕분인지 윤태식에 대한 인간적인 정이 있는 두 사람이었다. 이들의 반응에 연성철은 내심 ‘단순한 녀석들’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정해진 건 아직 아무것도 없으니까 설레발치지 말고 기다려 봐. 가서 애들한테도 그렇게 전하고. 너희도 알다시피 나나 코치진에서 그런 말 하는 것보다 너네가 말하는 게 훨씬 효과가 좋잖아.”

그 말에 완벽하게 평소의 컨디션을 되찾은 송진호가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그거야 이미 잘~ 단속하고 연습이나 열심히 하라고 일러뒀습니다. 제가 누굽니까? 우리 TFA의 기둥! 스타 최강의···”

“촐싹 송진호지.”

“아니죠!”

“짜샤. 내가 너 때문에 걱정하는 거야.”

“쳇.”

툴툴거리는 그를 보며 김요환이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바람을 담은 나직한 말이 오갔다.

“그나저나 오늘 쯤 회장님에게 보고가 들어갈 거라고 들었는데··· 잘 되겠지?”

“잘 될 겁니다.”

“아~ 믿음이 부족하네요. 비공식 1위 랭커인 회장님을 믿어보라고요.”

과장된 그의 호들갑에 잔웃음이 오갔다.

< 방법이 왜 없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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