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법이 왜 없냐? >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게임을 팔긴 뭘 팝니까?”
“이미 이야기 다 하고 왔으니까 잔소리 말고 팔아.”
“그렇게 하면 그동안 칼리버 온라인을 개발하면서 먹었던 돈들은 다 넘어가 주지.”
“아니 도대체! 이보십시오. 칼리버 온라인은 제가 만든 겁니다. 제가 만든 제 걸 왜 당신들이 팔라 말라 합니까!”
“하하! 이 사람이 이거 돈 무서운 줄 모르는군그래?”
예전 살갑게 굴며 환대하고 고향친구처럼 굴어주던 이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들은 성주환 대표에게 더할 나위 없는 타인이 되어 말했다.
“그래. 네가 만들었지. 돈도 안 되는 쓰레기로 말이야.”
“130억으로 쓰레기를 만들었어. 그 130억이 어디로 다 갔을까? 개발하는데 얼마 썼을까나? 회사 어디에 들어갔지?”
“······.”
“괜한 소리로 시간 끌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 LON이 유료화되면 본전도 못 뽑아.”
“···안 됩니다.”
“안 돼? 하하하하! 좋지, 좋아. 그럼 감방에 가서 거기서 재밌게 즐기던가.”
“그··· 그건!”
“그게 싫으면 내 말대로 칼리버 온라인 팔고 거기서 팀장 명함이라도 달아. 그렇게 네가 아끼는 칼리버 온라인을 잘 살려 보라도.”
“시간을 몇 초 줄까? 아니, 관대하게 몇 분이라도 줄 수 있으니까 둘 중 하나 잘 선택해 봐.”
선택이라고 말했지만, 이건 선택이 아니다. 이미 칼리버 온라인에 투자한 모든 투자자끼리는 합의를 마친 듯했고 돈이라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말이니 더는 거부할 명분도 없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몰락을 기사는 한 줄로 알려주었다.
【칼리버 온라인 두 게임에 팔리다.】
꽤 큰 금액에 팔렸다는 소문과 함께 게임 회사, 두 게임으로 칼리버 온라인이 넘어갔고 성주환 대표의 모노 소프트는 그날로 사라졌다.
한편, 오 팀장을 비롯한 모노 소프트의 직원들에게는 좋은 결과였다. 그래도 게임을 개발했던 경력을 인정받아서 전부 예전에는 꿈도 못 꿨을 대기업인 두 게임으로 이직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내가··· 이 성주환이가 이딴 지경이 되다니!’
오직 대표에서 팀장으로 떨어진 한 사람만이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그래. 비록 이제는 내 게임이 아니게 됐지만, 여기서라도 내가 잘 살려본다. 그리고 윤태식! 네놈의 LON 역시 나처럼 무너지는 꼴을 두 눈으로 지켜보겠어.’
세상 그 누구보다도 LON 온라인의 유료 정책이 빠르게 실현되기를 그는 간절히 기도했다.
125. 방법이 왜 없냐?
칼리버 온라인이 두 게임으로 넘어갈 즈음 LON 온라인 역시 정식 서비스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GF 홀딩스 소속 게임 기획실은 모노 소프트와 분위기가 확연하게 달랐다.
“회장님은 진짜 천재야. 뭔가 우리랑은 달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 거지?
“하긴.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군 사람이 평범하겠어?”
“그런데 이게 과연 팔리기는 할까? 뭐 남들과 다른 점이라는 건 긍정적이지만, 결국 게임에서 도움 되는 건 없잖아?”
“도움 되는 게 없기는 왜 없냐? 일단 좀 더 멋있으면 위기감이 드는데.”
“그리고 도움이 되는 것들도 팔기는 팔잖아.”
LON 온라인에서 유료로 판매하는 것들은 칼리버 온라인과는 사뭇 달랐다.
첫째는 메인 상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스킨이다. 기본 디자인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것들이지만, 오직 현금으로만 구매할 수 있는 스킨들은 그것과는 완전히 색다른 매력을 접할 수 있도록 디자인된 것이 특징이다.
둘째는 탈리스만과 탈리스만 페이지였다.
LON에는 없었고 오직 LON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이 탈리스만 시스템은 게임에 적용되는 추가 스탯과 같은데, 기본 페이지는 고작 2개. 하지만 디테일하게 게임을 플레이하기 위해선 최소 6개, 많게는 15개까지 필요하고 탈리스만도 매우 많이 필요하다.
굳이 현금을 쓰지 않아도 구매할 수는 있지만, 기왕이면 현금으로 구매하는 편이 훨씬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것도 게임 내의 밸런스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긴 하지만, 칼리버 온라인만큼 파괴적인 수준은 아니었기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성주환 대표··· 아니지. 성주환 팀장이니까. 아무튼, 그 멍청이가 이거 보면 목덜미 잡고 쓰러지겠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솔직히 게임을 베껴가서 성공적으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제가 보니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탈리스만 같은 과금 시스템이었던 거 같습니다.”
“맞아. 이걸 알았으면 칼리버 온라인이 넘어갈 일은 없었겠지.”
게임 기획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것이 바로 이 과금 시스템이다. 그런데 LON을 개발하는 동안에는 기획자들이 크게 머리 아플 일이 없었다. 바로 윤태식 회장이 직접 나서서 아주 디테일하게 새로운 게임에 맞는 과금 시스템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이머스 포럼만이 가진 세 번째 강점이 있으니 바로 콘텐츠였다. 다른 게임사에서는 절대로 따라 할 수 없는 포인트이기도 했는데 이는 GF가 뛰어난 아티스트들이자 훌륭한 캐릭터들을 보유하고 있는 마이코닉스라는 회사를 보유했기에 가능했다.
스킨에 마이코닉스에서 개발한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
일례로, 드루이드 영웅의 경우 본래는 여러 동물의 힘을 빌려올 수 있는 영웅인데 마다가스칼의 드루이드 스킨을 구매할 경우 마다가스칼의 동물의 형태로 변신이 가능해진다. 이런 스킨은 절대 다른 게임사에서 이용할 수 없는 요소였다.
“올해 마이코닉스에서 개봉한 영화가 뭐지?”
“드래곤 라이더요?”
“맞아, 그거. 그거도 스킨으로 제작 중이라던데?”
“그래요?”
“그거도 5억 불 이상의 수익을 올린 거라서 스킨 나오면 대박일걸?”
“그거보다 저는 마다가스칼 바로 다음 해에 나온 게 더 대박일 거 같은데요?”
“뭔데?”
“그거 있잖아요. 히어로 패밀리.”
“아! 히어로 패밀리! 그거 매출이 8억을 넘겼었지?”
“그럼요. 완전 대박이었잖아요. 마이코닉스에서 지금까지 낸 영화들 다 대박 나면서 지금 할리우드에서는 D.genie(디지니)와 라이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잖아요.”
“그건 좀 오버 같다만, 아직 제대로 계약한 대형 배급사가 없어서 다들 어떻게든 계약하려고 난리라고는 하더라. 마다가스칼, 히어로 패밀리, 카레이서, 드래곤 라이더 전부 대박이니까.”
기획실에서의 잡담은 어느덧 유명 애니메이션의 감동적인 장면과 인상적인 부분으로 한참 넘어갔다.
“내년에는 뭐가 나올까요? 전 개인적으로 히어로 패밀리 후속작이 나오면 좋겠는데.”
“너무 성공해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근데 그거 알아?”
“뭐요?”
“그 애니메이션들도 회장님이 직접 다 시놉시스 만들고, 에피소드 정리해서 마이코닉스에 준 거래.”
“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제대로 만드는 건 마이코닉스의 능력이지만, 그 소재 같은 건 다 회장님 머리에서 나온 거라더라고.”
“에이. 그건 말도 안 되죠.”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어···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은밀한 비밀을 알려주듯이 목소리가 나직하게 바뀌었다.
“생각해봐. 쏘우리스트, 블루워터. 그 감독들 다 무명인데, 우리 회장님이 발굴하셨잖아. 심지어 감독도 안 보고 그냥 줄거리만 보고.”
“와아!”
“회장님이 그런 분야에 초능력이 있으신 거 같아.”
“···에이! 진짜 진지했었잖아요.”
“하하하! 아무튼, 초능력은 농담이지만 그래도 다른 건 진짜야. 마이코닉스 쪽에 친해진 직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 통해서 들은 거거든.”
“사실이면 진짜 대박이긴 하네요.”
“그 덕분에 LON은 앞으로 마니아들 눈이 뒤집히는 스킨들을 엄청 출시 될 수 있다는 말이지.”
“이미 기본 캐릭터들부터 눈 뒤집히는 애들 많아요.”
LON은 대형 게임사라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몬스터 프레데터스, 샤이닝 로드, 드래곤 소울, 나그네로크 등에 존재하는 캐릭터 혹은 보스 등을 영웅화해서 게임 내부에 녹여냈다.
덕분에 아주 익숙한 캐릭터들이 LON이라는 하나의 게임에서 어우러질 수 있다는 크나큰 장점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5년 7월 25일.
LON 온라인의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날이 되자 열성 게이머들이 한껏 고대하며 게시판에서 뜨겁게 논쟁을 벌였다.
- 두구두구두구두구! 긴장된다. 지금까지의 게이머스 포럼을 보면, 유저들 뒤통수치는 업데이트를 할 거 같지는 않은데.
- 이미 유료화하는 것들 정리해서 공지 올라왔잖아.
- 그걸 그대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칼리버 몰라? 주사위로 우와! 업뎃으로 시팍!
- ㅎㅎㅎ 게이머스 포럼이 왜 인기가 많은지 몰라요? 얘네는 나중에 변경한다고 새로 공지를 하면 했지 미리 공지한 건 제대로 지키는 회사라고요.
- 하긴. 대한민국의 게임을 지키는 수호자가 있는 회산데.
- 수호자?
- 윤 회장님. 대한민국 게임계의 수호자가 별명인데 몰라? 게임은 마약을 파는 사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 큰 이바지를 하는 국가에서 제대로 지원해야 하는 산업이다!
- 고러취!
- 지랄. 솔직히 다 지들 겜 잘 팔자고 하는 소리지.
- 이 사람 보게? 윤 회장님은 당장 한국 땅을 떠나면 두 배는 더 벌 사람인데, 한국이 발전하길 원해서 한국에 남은 사람이야.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해?
- 아 됐고. 이게 서버 오픈 시간이야!
게이머스 포럼은 물론이고 게임계가 주시하며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간. 유저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조금 늦어지길 바랐던 LON의 정식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리고 비명을 질렀다.
- 영웅 숫자 대박! 이게 대체 몇 개야?
- 86개!
- 우와. 이러니까 매주 10개의 영웅을 로테이션으로 돌릴 수 있는 거구나.
- 정식 서비스 되도 무료로 되는 건 똑같은데?
- 완전 맘에 듦. 집에서도 무료임.
- 피시방에서는 돈 받는다는데 대신 모든 영웅 사용할 수 있데. 거기에 PC방 스킨 사용 가능이라고 함.
훗날에는 꽤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지만, 2005년은 개인용 PC에서는 무료. PC방에서는 유료화 되는 시스템에 대해서 PC방 연합이 강하게 반발하고 싸운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메리트를 추가로 주지 않으면 크게 유명해지기 전에는 게임을 받아주지 않는 난처함이 생기기에 PC방 스킨은 LON 개발진에서 자청해서 만든 시스템이었다.
사실 PC방 스킨이라고 딱히 대단할 것은 없었다. 똑같이 생긴 캐릭터에 키보드 마우스 같은 것을 추가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비교할 수 있던 전 게임이 존재했기에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 칼리버 온라인이랑 엄청 차이 난다.
- 비교조차 미안한 수준인데? 여러모로 배려심이 느껴짐!
칼리버 온라인이 돈을 쓰면 확실하게 승률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면, LON 온라인은 돈을 쓰면 로딩 화면을 보면서 괜스레 어깨 뽕이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헤비 과금러들에게 매력적인 게임은 아니었으나 다양한 사람들이 꾸준히 매출을 올려주는 형태까지는 이루어졌다.
이 결과는 바로 증명됐다.
“보고 드립니다. LON 온라인 첫날 매출 달성액 5,000만 원으로 목표액 3,500에 1,500만 원을 초과 달성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게임을 개발하는 건 개발자들이지만, 그 개발이 내가 원하는 방향이어야만 했기에 모든 걸 직접 조율해야만 했다.
‘오래간만에 진짜 빡세게 일했군. 아~ 성주환 그 녀석 때문에 너무 버닝으로 달렸어.’
실패를 용납할 수 없기에 이래저래 열심히 움직였다. 사실, LON 온라인은 게임 특성상 첫날부터 대단한 매출이 생겨날 리가 없다.
‘냉정하게 보면 한 달 정도는 지나야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다냐?’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LON의 매출액은 하루가 다르게 급상승하더니 결국 주간 매출액이 15억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탈리스만 페이지가 그렇게 많이 팔려나갔어?’
헤비 과금러가 과금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바로 캐릭터와 탈리스만 페이지다. 그리고 그것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팔려나가면서 매출이 예상치를 훨씬 웃돈 것이다. 제법 장사가 될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
< 방법이 왜 없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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