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다면서 왜?! >
‘기존의 LON에는 있었던 거잖아. 그런데 이걸 없애버리다니!’
그래픽에 눈 돌아가는 건 잠시일 뿐. 이 차이가 당장 불러올 파장이 그의 눈에는 확연하게 보였다.
‘제길! 이거 어쩌지?’
어차피 비슷한 게임이다. 게임 내에서 받아들이고 또 수정해서 더 유리하게 가꾸면 가능성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 그럴 문제가 아니었다.
‘이걸 받아들이면 우리 게임의 특성이 사라진다.’
인정해야 한다. 워드래프트Ⅲ라는 플랫폼을 벗어나는 순간 LON은 완전히 워드Ⅲ를 탈피한 게임이 되었다. 반면에 칼리버 온라인은 여전히 워드래프트Ⅲ라는 두꺼운 옷을 껴입고 있었다.
물론 성주환 대표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원작이 워드Ⅲ의 커스텀이었고 거기서 너무 벗어나면 당연히 이질감을 느낄 테니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한 것이니까. 즉, 유저가 받아들이기에는 칼리버 온라인이 더 좋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LON 온라인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게임이 한계 없이 성장할 수 있어.’
그리고 그 순간부터 칼리버 온라인은 그저 구시대의 게임으로 변하는 것이다.
‘졌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건 무조건 패배야.’
서서히, 확실하게 말라 죽는다.
그렇기에 정식으로 오픈하기 전인 지금 이 타이밍에 승부를 걸어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발버둥조차 칠 수 없다.
문제는 어떤 방법을 쓰느냐다.
‘미치겠군! 시점은 알았는데 수단을 모르겠어!’
분명한 건 뭐라도 하기는 해야 한다는 것.
“어떻게든 탄탄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하니 뭐든지 이벤트 준비해.”
“뭐든 이벤트요?”
“젠장! 어떤 이벤트건 간에! 유저들이 관심 가질 이벤트를 준비하라고!”
성주환 대표가 버럭 소리 질렀다.
“LON 온라인을 향한 관심을 우리에게 돌려야해! 기회는 LON 온라인이 오픈하기 전까지 밖에 없다. 빨리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내린 괜찮은 지시였다. 제대로 조처할 수만 있다면 몰락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성주환 대표는 큰 실수를 저질렀으니 그것은 모노 소프트는 전 직장인 게이머스 포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대표님은 갑자기 우리한테 이벤트를 준비하라고 하시면.”
“우리가 뭘 알아야 이벤트를 준비하지.”
유저들의 시선 환기로 이벤트라는 생각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개발자로 시작해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흔한 RPG였다면 여타의 게임에서 힌트를 얻어서 얼추 만들었을 테지만 칼리버 온라인은 새로 태어난 장르다.
어떤 이벤트를 해야 유저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뭐든 하라고는 하시는데···”
“다른 회사에서는 뭣들 했었지?”
“어떻게든 짜깁기 해봐.”
효율적인 판단을 내릴 능력이나 감 혹은 경험이 너무 부족했다. 그리하여 어찌어찌 생각해 낸 ‘칼리버 온라인 고객 감사 이벤트’는 단순 보드게임과 비슷한 형태였다.
매일 접속하면 주사위를 주고, 그 주사위를 굴리면 대표 영웅이 그 주사위 숫자만큼 칸을 이동하는 형태. 그리고 아이템이 있는 칸에 떨어지면 해당 아이템을 받게 되는 이벤트.
힘들게 게임을 하거나 현금을 써야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에 마음을 돌린 유저들을 다시 뒤돌아볼 수 있게 할 수 있는 이벤트였다.
- LON 온라인이 나온다니까 칼리버에서 아주 제대로 쫄린 듯?
- 그래도 이렇게 쫄리면 좋다. 게임사끼리의 싸움 때문에 유저들은 진짜 좋아진 거 아닌가?
- 마즘. 나도 그래도 이번에 접었던 칼리버 온라인 재설치 중.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떠나갔던 유저들이 상당수 돌아오게 되면서 동시접속자가 무려 10만 명까지 다시 늘어났으니까.
“도··· 동접자 10만입니다!”
“우리가 해냈습니다!”
그렇게 모노 소프트에서는 오랜만에 환호성이 울려 퍼졌지만, 성주환 대표는 웃을 수 없었다. 절반의 승리였던 이유는 명확했다.
‘시팔! 매출 그래프가 다시 쪼그라들었잖아!’
동시 접속자 10만 명은 좋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 건 줄어든 서버 비용이 다시금 늘어났다는 의미였다. 또한, 일찍이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유료화 아이템 때문에 어떻게든 위기를 겨우 모면했던 칼리버 온라인이다.
그런데 이벤트 주사위 덕분에 모노 소프트의 밥줄이라 할 수 있는 유료 아이템들이 대거 풀려 나가버렸다. 유저들로서는 돈 주고 해당 아이템을 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성주환 대표의 초조함이 극도로 치달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이··· 망할! 제발 방법을 찾아야···’
유저가 늘어나고 매출이 그대로라도 게임사 입장에서는 손해다. 그런데 유저가 늘어났으면서 매출이 줄어들게 되면 어떨까?
“알아. 나도 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단 말이다. 이 빌어먹을 고객님들아!”
돈이 필요하다.
이 상황에 대한 해결책은 또다시 새로운 것을 판매해야만 했다.
『공지
칼리버 온라인을 이용해주시는 가주 여러분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최근에 행한 주사위 이벤트에 많은 호응을 보내주신 덕분에 칼리버 온라인에서 해당 주사위는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앞으로 칼리버 온라인의 기본 콘텐츠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칼리버 온라인에서 수익을 포기하고 유저들을 위한 결심을 내렸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내용까지 읽게 된다면 절대 칼리버 온라인에서 유저들을 위해 진행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다만 주사위의 보드가 장기적인 콘텐츠로 바뀜에 따라서 일부 변경 됩니다. 아이템은 동일하지만 아이템 칸에 떨어질 확률이 줄어들게 될 것이며 이에 따라서 새로운 아이템인 더블주사위를 출시합니다.
※ 더블주사위 - 500 캘리 : 최대 6칸 전진을 하는 것은 일반 주사위와 동일하지만 3칸짜리 주사위 두 개를 동시에 던지는 것으로 한 번에 두 곳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다.』
즉, 1~3까지만 나오는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1, 3이 나오면 1칸을 전진해서 아이템을 획득한 이후에 3칸을 또 전진해서 아이템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는 주사위였다.
500캘리는 현금으로 500원.
큰 금액은 아니지만, 계속 주사위를 굴리다보면 어느 새 큰돈이 되어 있을 게 분명한 아이템이다.
거기다 새로이 변한 캐릭터가 이동할 보드판의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 기존에는 50%가 아이템 칸이었다면 이제는 그 절반도 안 되는 20% 정도가 아이템 칸이다. 더블 주사위를 사용하지 않으면 아이템을 획득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는 이야기다.
역시나 게시판은 이 황당한 업데이트로 난리가 났다.
- 어쩐지 칼리버에서 갑자기 좋은 이벤트를 한다 했다.
- 에이잇! 퉤엣!
- 게임이 좀 괜찮다 싶어서 해볼까 했는데, 아주 돈에 환장한 게임사잖아 이거.
- 기본적으로 밸런스를 맞춰줘야 우리도 게임을 하지. 일부러 지려고 게임하는 사람이 있냐?
- 그거도 문젠데 일부러 돈 쓰는 애들이 지들끼리 팀 짜고 무과금 유저하고는 팀도 안 짜줘.
- ㅇㅇ 결국 하다보면 과금유저 대 무과금 유저 판이 계속 짜지는데 이거 이길 수 있냐?
- 그거 아냐? 빠른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거. 난 호구되기 싫어서 간다.
- 오오. 그거 명언인데?
세간의 칭찬과 좋은 평가는 이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저렇게 떠들다가 좋은 이벤트를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칭송할 게 뻔한 것이 유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주환 대표에게 오직 유의미한 것은 매출 그래프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시기가 너무 좋지 못했다.
빠르게 이탈하는 무과금 유저들.
그런 유저들로 인해서 게임 한 판을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대기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 타이밍에 LON 온라인의 오픈베타가 시작되었다.
돈을 쓰는 유저들은 대기시간이 짧은 LON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진짜 허탈한 건 그 탓에 과금 유저들이 현저하게 줄었고 어처구니없게 밸런스가 맞아지면서 무과금 유저들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일단 무과금 유저들 덕분에 동접자는 안 줄었어! 그대로 기사 내!”
“알겠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음을 널리 알려줘야 했다.
【칼리버 온라인 동시접속자 5만 명.】
【LON 온라인으로 빼앗긴 유저들은 거의 없어···】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동시 접속자의 수는 지금도 5만 명이 유지되고 있으니까. 다만, 매출 그래프가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이달 예상 매출액은?”
“18억으로 예상됩니다.”
초반에 뽑아둔 매출 덕분에 이달은 그래도 저 정도나 되는 것이다.
“다음 달은?”
“그게···”
“똑바로 대답해.”
“1··· 1억 5천입니다.”
“······.”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초창기의 월 매출 1억을 생각하면 아주 개미 눈곱만큼 오르긴 올랐다. 그러나 그 정도 오른 것이 성주환 대표의 마음을 풀어주지는 못한다.
‘7억 손해나 6억 5천 손해나 그게 그거지.’
유저가 줄어서 손실액도 줄었다는 것은 절대로 위안이 될 수 없다. 허탈해진 그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완벽하게 망했어. 나는··· 망한 거야.’
온몸에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일까? 이토록 화려한 대표실에서 자신은 어찌 초라한 몰골이 되었단 말인가?
‘130억으로 시작해서 제2의 윤태식이 되고 그놈의 코를 아주 납작하게 눌러주려고 했었는데.’
어느덧 포부는 그냥 말도 안 되는 허풍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텅텅 빈 느낌이다.
다 필요 없고 지금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바깥의 노성이 침잠하던 그의 의식을 확 잡아 일으켰다.
“성주환 어디 있어!”
“성주환 이 새끼 어디 있냐고!”
“아니. 왜들 그러십니까?”
“왜? 왜에? 지금 니들이 왜라는 말이 나와?”
“지금 니들 매출로는 회사 유지도 어렵다면서?”
“내 돈! 내 투자금!”
“이거 다 어쩔 거야!”
회사로 투자자들이 들이닥쳤다. 주주총회니 뭐니 그런 것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모노 소프트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도망갈 곳도 없다.
‘결자해지라고 했던가.’
마지막이 왔지만 초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주환 대표는 힘없이 일어나 대표실을 나섰다.
“회사입니다. 거기서 그러지 마시고 이리 들어오시지요.”
“어쭈! 회사를 이따위로 해놓고 여전히 대표이사 놀음은 하고 싶다 이거지?”
“회사가 이렇게 됐어도 저희 게임은 아직 동접자가 5만 명이나 되는 상위 랭킹의 게임입니다! 지금은 이래도 투자금을 회수할 기회가 충분히 있습니다!”
“기회? 기회~에? 이 새끼가 게임 모른다고 나를 아주 병신 머저리로 보냐?”
“지금 게이머스 포럼에서 출시한 게임이 어떤지 알면서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압니다. 하지만 결국 오픈 베타니까 그들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른 단초는 장기적인 수입원 창출에서 난항을 겪으면서였다.
“그쪽도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유료화를 진행할 거고! 그때는 우리도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 같은소리하고 있네. 유료화? 만약에 거기서 유료화로 제대로 성공하면! 성공하면 그때도 이딴 기회 같은 소리 할 거야?”
“그게 그렇게 쉬운 이야기 아니라는 건 잘들 아시지 않습니까?”
“내가 듣기에는 성주환 네놈 이야기가 더 쉬운 이야기가 아니게 들리거든?”
“세상천지에 윤태식을 만만하게 보는 개발자는 너밖에 없다더라.”
“그래서!”
폐부를 찌르는 비수 같은 말에 성주환 대표가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 지금 어쩌시겠다는 말입니까? 게임을 이대로 없앨까요? 그러면 뭐 대단한 수라도 있겠습니까? 오히려 돈을 벌 기회만 사라지는 겁니다.”
통렬한 그의 말에 투자자들이 냉소를 지었다.
“오오! 그건 그래··· 하며 넘어갈 줄 알았냐?”
“그런 소리 할 줄 진작 알았지. 웃기지 마. 우리 역시 전부 사업가야.”
“투자 역시 하루 이틀 해본 사람들이 아니고.”
“그게 무슨···”
“게임 팔아.”
“뭐··· 뭐라고요?”
“칼리버 온라인을 팔라고.”
< 좋다면서 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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