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90화 (290/577)

< 좋다면서 왜?! >

오 팀장은 일단 크게 대답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그러나 굳은 결의로 가득 차 보이던 표정은 문을 대표실의 문을 닫음과 동시에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팀장님. 대표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LON 온라인을 박살 내실 거라고 모든 자료를 확보하라고 하시는군.”

“예? LON을 박살 낸다고요?”

“그게 말이 됩니까?”

“GF라고요. 게이머스 포럼!”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높이는 직원.

그의 입을 다른 이가 막고 또 다른 직원은 얼른 오 팀장을 이끌어 대표실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한껏 목소리를 낮춘 채 대화했다.

“어떻게 박살낸다는 건가요?”

“대표님 말로는 어차피 우리가 가진 자금이나 걔네들이 LON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나 어차피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은 거기서 거기라고 하더라. 그러니 비등비등한 전력이라서 우리가 노력한다면···”

“노력이요? 노오-력?”

“비등비등? 에이. 무슨 말 같은 소리를 하셔야지.”

“GF가 국내 최고 게임 회사··· 아니지. 세계적으로 먹어주는 회사인 거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게다가 국내에서는 게임사 랭킹이 아니라 대기업 랭킹으로 상위권 회사라고요.”

들리는 말 중에는 어느 것 하나 틀린 이야기가 없었다. 정확히 오 팀장이 하고 있는 생각과 같은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보일 수 있는 것은 작게 내쉬는 한숨일 따름이다.

“그건 우리보다 그 회사에서 나오신 분이 가장 잘 알지 않겠냐?”

“말도 안···”

“그리고 우리야 까라면 까야지. 아니면 사표 낼래?”

말을 딱 잘라서 대외적인 현실 이외의 개인 사정을 짚어주자 춤추던 직원의 혀가 마비된 듯 멈춰버렸다.

현재 한국은 게이머스 포럼의 엄청난 성과 덕분에 컴퓨터 공학은 물론이고 자연계열에서도 게임 개발자라는 직업이 급부상하는 중이었고 최근에는 개발자를 전문적으로 키우는 전공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꽤 많은 개발자가 탄생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대 이상으로 실력이 좋은 젊은 개발자들이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출중한 실력을 가진 알맞은 인재일 수는 없는 법.

상대적으로 뒤떨어지는 개발자들 역시 상당했고 애석하게도 모노 소프트의 개발자들은 이 부류에 속해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지.’

‘사표를 낸다면? 이제 뭐 하지?’

‘아······.

모노 소프트의 직원 중 절대다수는 그저 동호회 같은 모임으로 취미와 비슷하게 간단한 게임들을 개발하면서 일반 직장인으로 살아오던 사람들이었다. 신입으로 들어갈 나이는 한참이나 지났고 그렇다고 중견으로 들어가기에는 실력이 부족한 개발자들이다.

즉, 여기서 사표를 쓰고 나가게 되면 아예 개발자라는 길을 포기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칼리버 온라인에 모든 것을 던져야만 했다.

“자료 확보하겠습니다.”

시키면 해야 한다. 그렇게 모노 소프트의 직원들은 LON 온라인을 파악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히 사람들이 기적을 바라겠는가. 절박함과 열정만으로 바라는 결과물을 모두 얻기에 세상과 현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팀장님. 영웅에 대한 데이터는 보안이 철저해서 자료를 얻을 수 없습니다.”

“아마 오픈 서비스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전혀 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인맥이 없으니 찔러볼 구멍이 없었고 경험이 부족하니 다른 묘수를 찾아내지도 못했다.

“다른 것들은?”

“그걸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미 공개가 되어 있어서 그냥 정리하고 출력만 하면 되는 수준입니다.”

“그래? 하는 수 없지. 그럼 그대로 출력해서 가져와.”

“네.”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의 결과물을 취합하여 오 팀장이 대표실의 문을 두드렸다.

“대표님. 자료 준비되었습니다.”

부실한 내용물이라서 한바탕 혼찌검이 날 것을 각오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은 의외로 무신경\한 목소리였다.

“두고 나가.”

“네?”

“두고 나가라고.”

“아! 네.”

회초리를 100대는 맞을 줄 알았던 아이에게 뜻밖의 면죄부가 주어진 기분이었다. 다행이라 여기며 오 팀장이 돌아나갔다.

한편, 그를 보는 성주환 대표의 눈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실망? 그런 건 기대를 했어야 있는 거지.’

그는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다. 모노 소프트의 개발자들이 어떤 수준인지 채용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 팀장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아마추어 출신. 그나마 오 팀장도 다른 게임사에 들어가면 그저 그런 중견 개발자 수준밖에 되지 못했다. 이런 개발자들을 가지고 칼리버 온라인을 개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성주환 대표의 능력이었다.

그런 만큼 지금 직원들이 애써 모아온 자료 중에 옥석을 가리고 제대로 분석할 능력이 있는 사람 역시 모노 소프트에는 딱 한 사람, 성주환 대표뿐이다. 그렇기에 설명해주고 가르치는 데 시간 낭비를 할 바에는 자신이 직접 보고 결정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이 더 들더라도 실력 있는 개발자들을 끌어들일 것을 그랬어.’

모노 소프트의 개발자들 수준이 이렇게 낮은 건 성주환 대표의 욕심 때문이다. 어차피 게임의 핵심은 그가 직접 다 개발했으니 실력 있는 개발자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개발에 무리는 없었다.

굳이 비싼 개발자를 들이느니, 수익을 높여서 그 자신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길 원한 것이다.

‘이번 위기만 잘 견디고 나서는 사람에 돈을 아끼지 말자.’

분명 초기에는 자신의 전략이 아주 훌륭하게 먹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위기가 생기고 나니 그런 전문 개발자들의 손이 아쉬워진 것이다.

“능력 없는 놈들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한 내가 잘못이지. 앞으로는 무조건 실력 우선이야. 기회의 공평한 분배. 사회적 공헌. 이런 건 다 의미 없던 거였어.”

돈을 아끼기 위해서 싼 맛에 뽑았었지만 늘 이런 식으로 포장해오다 보니 이제는 그 자신도 그렇게 믿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됐고. 일단 내용이나 보자. 얼마나 대단한 게임이기에 국민 게임과 경쟁하겠다는 건지 보자고.’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게임의 전체적인 틀이다.

이 게임이 가진 목표가 무엇인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 목표에 접근할 것인가?

이것이 확실하고 또 그 과정이 재미있어야 즐기기 좋은 게임이 된다.

“이건 내 게임과 똑같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칼리버 온라인과 LON 온라인은 완전히 동일한 게임을 두고 태어났다. 굳이 따지자면 칼리버 온라인은 일종의 바람피워 낳은 자식과 같은 경우고 LON 온라인은 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난 자식 혹은 동생과 비슷하다.

‘라인의 형태도 같고, 그 라인을 가로지르며 이동하는 루트도 비슷하고.’

다만 차이라면 칼리버 온라인은 대부분의 시야에 관련된 전략이 벽과 지형에 관련된 것이라면, LON은 수풀이라는 LON에는 없던 개념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워프게이트도 없어? 이러면 속도감도 우리보다 부족한 거 아닌가?”

탑 라인과 바텀 라인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워프게이트는 LON에서 빠질 수 없는 전략 오브젝트였다.

그런데 LON 온라인에는 그 중요한 것이 사라졌다.

성주환 팀장은 도대체 윤태식 회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잘나가는 LON의 주인이 정작 같은 이름만 사용하고 전혀 다른 게임을 내보낸다?

‘이건 대다수의 큰 회사에서 리메이크 한답시고 개발하고는 망하는 게임들과 동일한 순서인데.’

이름만 같고 내용물은 전혀 다른 게임의 연혁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다. 상대는 다름 아닌 윤태식 회장이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게임을 변경했을 리 만무하고 게이머들이 호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자료만을 가지고서는 왜 바꿨는지 그 차이점을 알아낼 수 없었다.

“오 팀장!”

“네. 대표님.”

개발자들 개발하는 것 확인하면서 쪼을 거 다 쪼아야 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대표가 부르면 재깍 달려와야 하는 직책이 모노 소프트의 오 팀장이었다. 가히 극한직업과도 같은 업무였다.

“게이머스 포럼에서 발표회 때 보여준 시연 영상들 확보되어 있지?”

“네. 그렇습니다.”

“가져와.”

오 팀장은 재빠르게 자신의 자리에서 노트북을 가져와 성주환 대표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영상에 집중한 그는 나직이 침음했다.

“이딴 엔진은 또 언제 만든 거야?”

분명히 그가 게이머스 포럼에 있을때는 개발 시도조차 없었던 엔진이다. 그게 몇 달 사이에 이렇게 뚝딱하고 만들어진다니?

‘윤태식 이 음흉한 새끼 같으니.’

아무리 게이머스 포럼이라도 납득할 수 없는 속도다.

“대표님이 계실 때 같이 개발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같이? 나는 워드Ⅲ 커스텀만 개발했어. 이런 건 애초에 개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거야. 이런 개발이 있었으면 내가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왔을 거 같아?”

그 말에 오 팀장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게이머스 포럼에서 동일한 장르의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데 그 회사를 나와서 게임을 개발할 이유가 없다. 가만히 있으면 성공할 게임을 두고 경쟁으로 망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기엔 게이머스 포럼은 지나치게 좋은 회사다.

‘비열한 새끼 같으니라고. 나를 내보내려고 이런 수를 써?’

성주환 대표의 생각으로 이건 애당초 함정을 설치해 둔 것과 다름없었다.

“공성용 투석기도 없고 그저 영웅과 아이템 그리고 전략만으로 보는 승부라고? 콘텐츠를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콘텐츠를 더 줄인 꼴이잖아?”

게임의 콘텐츠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게임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콘텐츠가 적은 게임보다 콘텐츠가 풍부한 게임이 더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이 즐긴다. 그런데 성주환 대표의 얼굴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윤태식 회장의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이다.

“젠장.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

“네?”

전혀 이해하지 못한 오 팀장에게 그가 말해주었다.

“Simple is the best.”

“예?”

“유저들이 쉽게 이해하고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단순함이 이럴 때는 최고의 무기일 수 있다는 말이다.”

칼리버 온라인은 용병을 소환하기 위해서 두 명의 유저들이 바쁘게 중립지대에서 사냥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중간중간 라인에 지원을 가긴 하지만, 라인에 집중하면 용병 소환에서 밀리게 된다.

덕분에 다양한 전략이 만들어질 수는 있으나 진짜 호흡을 제대로 맞춘 팀이 아닌 이상 거의 매 게임 분쟁이 일어나는 걸 피할 수 없다.

선택하고 또 선택해야 한다.

결정하고 또 결정해야 한다.

유저들은 게임 도중에 계속해서 고민하고 집중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패배하게 된다. 안 그래도 눈앞에 있는 적 때문에 손도 마음도 복잡한데 그 외의 것들을 계속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LON 온라인은?

‘단순하지.’

일단 내 자리를 잘 지키면 된다. 중립 사냥도 중요하지만 그것 또한 내 자리를 잘 지키기 위함이다. 거기에 아이템은 또 어떠한가?

“LON 온라인에서 공개한 영웅이 50개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소모품은 오히려 우리보다 적어.”

“아! 그랬군요!”

아이템도 단순하다. 복잡한 과정들을 최대한 단순하게 풀어냈다. 분명히 칼리버 온라인이 속도감을 위한 준비를 더 많이 했는데 실제 이루어지는 전투는 LON이 훨씬 빨랐다.

치열한 공방과 눈치싸움을 통한 전투는 마찬가지지만, 칼리버 온라인은 이렇게 ‘아차’하는 순간 죽는 경우가 드물다.

‘이동형 창고 시스템이 오히려 독이 될 줄이야.’

마을로 돌아가면서 비우는 시간.

그것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

이를 방지하고자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이동형 창고 시스템을 칼리버 온라인에 넣었는데 그 불편함으로 LON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사건이 벌어진다.

< 좋다면서 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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