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89화 (289/577)

< 좋다면서 왜?! >

대회의 화제성은 물론이거니와 이 정도 규모의 상금은 스타 드래프트 리그뿐이 없었다. 그조차도 스폰서를 빵빵하게 받았을 때나 가능했다.

‘성주환씨. 돈은 이렇게 쓰는 겁니다.’

프로 게이머들이 이 기회를 놓치려 들 리 만무하다.

“여기서 끝내면 서운하지요. 메인 서포터가 없는데 8강전에 진출한 팀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시즌이 끝난 후, 500만 원의 지원금을 제공할 겁니다.”

LON은 5인의 팀으로 운영하는 것이니 1인당으로 잡으면 고작 100만 원이다. 한 시즌을 3개월로 잡는다면 매번 8강전에 올라가도 연봉 400만 원 수준이다. 이 돈은 내 기준으로는 작아도 너무 작아서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다.

그러나 입장과 처지가 다르듯 부자의 100만 원은 한 끼 식사일 지라도 빈자의 100만 원은 풍족한 한 달 생활비가 될 수 있다. 이 액수로 게이머들은 크나큰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사람을 붙잡아둬야 해. 게임이 인기 있으면 서포터는 금방 붙을 거고 우리는 그때까지 이 사람들이 프로 게이머로 먹고살 희망을 품게만 해주면 된다.’

투자이자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어떤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되리라.

“그리고 마지막 조건입니다. 우리 게임과 칼리버 온라인 이 두 게임을 동시에 프로 등록해도 상관없다고 전하십시오.”

“회장님. 그런다면 우리 지원금을 받으면서 칼리버 온라인을 할 경우가 발생···”

“정말로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의 말을 자르며 내가 크게 웃었다. 이 사람, 아직 걱정이 너무 많다.

처음에야 다들 그렇게 생각할 거다. LON으로도 벌고 칼리버로도 벌고 거기에 지원금까지 받으면 꽤 괜찮을 거라고. 여기에 게이머스 포럼은 게이머와 칼리버 둘 다 생각해주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보너스로 장착하겠지.

그러나 해보면 안다. 하나에 몰방하지 않으면 지원금을 받을 8위에 안착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들 이 악물고 하는데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까닭은 실력이라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치열한 상위 1% 사이에서는 양자택일해야 하고 그때의 선택지는 불을 보듯 뻔하게 된다.

빵빵한 지원이 가능한 리그와 겨우겨우 연명하는 리그.

비상하는 LON 온라인과 추락하는 칼리버 온라인.

상식이 있다면 자연스레 전자를 선택하리라.

‘최종적으로 우리는 좋은 이미지를 남기면서 질 좋은 선수들을 모두 끌어올 수 있게 된다.’

사실 프로리그의 초창기에는 이런 경우들이 꽤 있었다. 당시는 프로 게이머라고 하지만 협회도 없었고 소속이니 뭐니 그런 것도 없던 시절이라 혼자서 여러 게임을 오가면서 상금을 노리는 선수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결국 스타 드래프트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돈이 되는 곳이니까.’

이익이 없으면 행동도 없다.

“예! 회장님. 그럼 말씀대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명현 팀장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 숙였다.

가난했던 시절부터 부자가 된 지금까지 자주 절감하는 진실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발휘하는 힘과 영향력은 실로 강력하다.

- 아이고, 회장님이 그래 주시면 그저 감사하지요!

2억 2천에 추가 조건들을 들은 프로 게임 협회는 우리의 제안을 받자마자 더 생각할 것도 없이 LON 리그를 기획했다. 아울러 칼리버 온라인과 동시에 선수 생활을 해도 된다는 조건과 지원금은 LON 리그에 대한 여론을 매우 긍정적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6월 27일.

LON 온라인의 오픈 베타 서비스가 시행됐다.

‘기억 속 이 게임이 가진 최고의 수는 로테이션이었어.’

칼리버 온라인이 가진 최고의 단점은 총 5가지의 캐릭터 중에 2개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처음으로 플레이하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캐릭터로 시작하게 된다.

게임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영웅 캐릭터를 판매해야하니까 전부를 줄 수는 없으니 유저들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 뭐지? 시작부터 무료 캐릭터를 6개나 주네?

- 칼리버랑 달리 영웅이 56개나 돼서 그런 거 아닐까?

처음에는 오해도 있었다. 칼리버 온라인은 총 26가지의 영웅으로 시작했기에 2배가 넘는 차이를 이용한 물량 공세라고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의구심이 기대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 그게 아닌가 본데? 이번 일주일간만 쓸 수 있대.

- 뭐야? 그럼 일주일 지나기 전에 돈 모아서 영웅을 새로 사라는 거야? 그거 못 사면 현금으로 사라는 그런 건가?

- 아니. 그게 아니라. 일주일 후에는 다른 영웅으로 6개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대.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로테이션 영웅이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좋은 점에는 쉽게 익숙해지듯이 스펀지처럼 적응해 버렸다.

- 오! 이거 대박인데? 이것도 지금 베타 서비스라서 6개고, 정식 서비스에 들어가면 10개씩 될 거래.

- 그럼. 영웅을 안 사고도 계속 해볼 수 있다는 거네?

- 그 일주일만이지만 그런 거겠지?

- 이거 괜찮네!

점점 로테이션이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전파가 되기 시작했고 유저들은 이것이 칼리버 온라인에서 활용하던 기존 시스템과 얼마나 큰 차이인지를 플레이를 통해 몸으로 습득해나갔다.

- 오픈 첫날부터 잘 겹치지도 않고 플레이하니까 꽤 재미있네.

- 거기다가 기초 영웅은 몇 번만 플레이하면 구매가 가능해.

- 가격이 비싸면 그만큼 좋은 건가? 비싼 애가 더 강한 거 아냐?

- 아닌 거 같은데? 지금 로테이션으로 되어 있는 영웅 중 3개가 가장 비싼 영웅이야. 개인적으로 딱히 세고 그런 거 같지는 않아.

- 후후. 여기서는 밸런스 똥망의 냄새는 안 나는군!

- 또 모르지. 겁나 비싼 현금캐릭이 나올지도?

- 에이. 여기가 골목마켓이냐? GF라고. 졸라 대기업이야.

가격은 개발 시기에 따라서 정해진다. 최근일수록 비싼 가격이며 이후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판매량이 줄면 가격도 함께 다운되는 시스템으로 설정되어 있다. 절대 비싼 영웅이 더 좋거나 강력함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접속자는 어떻게 됩니까?”

“현재 8만을 돌파했습니다.”

이윽고 오픈 베타 3시간.

LON 온라인의 동시 접속자 수는 10만을 돌파하면서 커뮤니티에는 칼리버와 LON. 그리고 모노 소프트와 게이머스 포럼의 차이에 관한 글들이 도배되어 올라왔다.

- 워드 LON을 안 해본 나로서는 칼리버를 했다가 학살만 당했던 기억 때문에 LON도 하지 말까 했었는데 의외로 LON은 재미있음.

- 여전히 승보다 패가 많지만 그래도 해볼 만한 게임이라고 보임.

웃긴 말이지만, LON의 정식 후계인 LON 온라인보다 칼리버 온라인이 더욱 LON을 닮았다. 그렇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오픈 베타 날의 성적표는 LON 온라인의 가입자 40만 명, 동시 접속자는 최대 10만 명이었다. 이른바 압도적인 시작으로 게임계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었지만, 나는 약간 아쉬웠다.

‘칼리버 온라인이 아니었으면 최대 14만 명까지도 가능했는데. 나눠 먹은 층위가 아깝군. 성주환 덕분에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었지만, 완벽의 성과에는 미치지 못했어.’

물론, 이는 내 욕심과 기준점이 높은 것일 따름이다. 객관적으로는 절대로 부족하지 않은 결과다.

그렇다면 칼리버 온라인의 동시 접속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보다도 이쪽에 관심을 둔 기자들이 먼저 올려둔 기사가 있었다.

【LON 온라인. 출시와 동시에 10만 명. 정말로 스드를 잡게 될까?】

【칼리버 온라인 동시접속자 5만 명.】

【LON 온라인으로 빼앗긴 유저들은 거의 없어···】

‘오호!’

의외다. 우리 측의 동시 접속자가 10만 명에 달하는데 칼리버에서는 고작 1만 명 정도만 빠졌다니!

“이건 최고인데? 완전 베스트야.”

기사에 호도되면 멍청하다는 증거다. 뺏고 빼앗기는 것에 연연할 게 아니라 증명된 숫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칼리버 온라인에 흔들림이 없는 상태로 우리 측의 접속자가 이 정도라는 뜻은 곧 신규 유입자가 증가하여 시장이 더욱 커졌다는 뜻이다.

이건 장기적으로 훨씬 나은 결과였다. 더군다나 칼리버 온라인이라는 배는 이미 침수되고 있는 상태다. 시간이 빠르고 느리고의 차이만 있을 뿐, 침몰하는 것은 예정된 미래였다.

‘가능한 버텨줘야 구경하는 재미가 있을 텐데.’

흐뭇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내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LON 온라인 출시 효과. 칼리버 온라인 리그 출전팀 26팀. LON 온라인 46팀.】

【칼리버 온라인 리그는 이대로 힘없이 물러날 것인가?】

딱 사흘.

칼리버 온라인의 침몰 위기가 대두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뭐야. 이거 맷집이 너무 약하잖아. 근성 없기는. 더 오래 견뎌야 그만큼 고통받을 텐데.”

서운했지만 엔딩을 너무 쉽게 보고 말았다.

‘이제 물에 빠진 사람들이 알아서 우리 LON을 찾아오겠지.’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LON이라는 훨씬 튼튼하고 훌륭한 배가 근처를 지나간다고 소문만 내면 승부는 그 순간 종결이다.

그리고 소문을 위한 프로리그는 이미 준비가 끝나가고 있다.

‘어차피 시작부터 이기고 플레이한 게임이기는 했으니까.’

더 이상의 경쟁은 없다.

*

【LON 온라인 출시 효과. 칼리버 온라인 리그 출전팀 26팀. LON 온라인 46팀.】

【칼리버 온라인 vs LON 온라인. 그 승자는? LON···】

와작!

구겨진 신문이 허공을 날았다.

“이런 빌어먹을!”

게이머스 포럼에서 LON을 발표한 이후 초창기에 활기찼던 모노 소프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마치 초상집과 같은 흉흉한 기운이 감돌았다.

모노 소프트의 개발진들이 있는 사무실이 초상집과 같은 느낌이라면 모노 소프트의 대표실은 마치 한 마리의 야수가 날뛰고 간 것 같은 느낌이다.

“뭐? 칼리버 온라인은 상대가 아니야? 그게 어제까지만 해도 물고 빨고 하던 놈들이 할 짓이냐!”

대표실의 바닥에는 온갖 서적과 집기들이 나뒹굴었다. 그 중심에는 열이 뻗칠 대로 뻗친 성주환 대표가 있었다. 그의 눈에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는 잘 나온 윤태식 회장의 얼굴이 확대되어 보였다.

자극적인 기사에는 하나, 하나 전부 자신과 그를 비교하고 있었다.

보자마자 이빨이 뿌드득 갈릴 정도다.

“아니야. 이건 내가 만들었어. 그 잘난 놈의 LON을 만든 건 윤태식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 성주환이라고!”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윤태식 회장은 어디까지나 새로운 형태의 게임을 개발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물론, 세부적인 디테일까지 전부 윤태식 회장의 머리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이건 지시일 뿐, 손수 코딩을 하고 게임에 적용한 것은 성주환 대표였다.

그런데 소위 기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를 묵살하고 있었다.

‘불패의 GF? 마이더스의 윤태식? 개소리하지 마라. 내가 마음먹고 제대로 한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까!’

결단을 내린 그가 크게 불렀다.

“오 팀장!”

“예. 대표님.”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대표실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 팀장이 재빨리 대표실로 들어왔다. 그의 귀로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당장 LON 온라인에 대한 모든 자료를 확보해.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게임이라서 이 지랄 생난리를 떠는지 제대로 분석할 테니. 그리고 철저하게 박살낼 거다. 알겠어?”

아직 게임이 제대로 나온 것도 아니니 반격의 기회는 있었다. 자고로 야구 역시 9회 말 투아웃에서의 짜릿한 역전이 희대의 백미라지 않던가. 구석이 몰렸더라도 승리의 어퍼컷으로 상황을 반전하고 말 것이다.

“윤태식의 돈이 아무리 많아봤자 이런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은 어차피 한계가 있어. 그놈들이나 우리나 크게 다르지 않아! 재차 강조한다. 철저하게 분석하고 노력하여 확실하게 박살 낸다! 알겠나!”

질문이 아니다. 오직 정해진 답변만 있을 따름이다.

“네! 대표님!”

< 좋다면서 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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