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87화 (287/577)

< 좋다면서 왜?! >

그는 절대 자신이 횡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는 어떻게 해서든 투자자들이 자신이 횡령한 것으로 만들려는 분위기였다.

오 팀장 역시 폭발적인 인기와 터무니없는 수입의 현실을 잘 알기에 별다른 말 없이 성주환 대표의 말에 따랐다. 아울러 여기에는 ‘내가 말해봐야 제 맘대로 할 텐데’라는 불도저식 경영의 악영향도 한몫했다.

“예, 대표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이템들이 풀리는 데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애초에 개발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이미 어느 정도 준비를 해두기도 했으니까, 일주일 후면 업데이트가 가능할 겁니다.”

“좋아요. 기왕 이렇게 된 것, 유료 아이템을 몇 개 추가해서 일단 숨을 좀 돌려봅시다.”

“예.”

그리고 절대다수가 신명 나게 즐기고 회사는 피 말리며 초조해하는 일주일이 지났다.

칼리버 온라인의 2005년 6월 첫 주 업데이트.

캐릭터 강화와 사기급의 유료아이템이 출시했다. 반응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온도로 미친 듯이 타올랐다.

- 뭐야?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냐?

- 이런 아이템을 사전 고지도 없이 그냥 업데이트해도 되는 거야?

- 아 진짜 오바다. 이건 너무 오바했다.

- 내가 무료라서 여태 참았던 건데, 사실 깔 거 졸라 많았거든?

- 이 돈독 오른 새끼들!

완벽한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칼리버 온아린이 완벽하게 보였던 것은 이를 압도할 만큼의 호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게임을 무료로 플레이하다니, 감사합니다.’라는 호감이 치워지자 잠재되어 있던 다양한 불만들이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이 반응은 유료와 무료 유저 사이의 간극이 심해지고 게임을 플레이하며 절절히 느끼게 되는 만큼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

- 아! ㅅㅂ! 안 해! 미친 현질겜!

- 컨트롤을 씹어 먹는 캐릭터~ 오예~ 퉷!

- 유전무죄 무전유죄! 너나 해 처먹어라!

- 돌아갑시다! 우리의 고향! 불평등하지 않은 LON으로!

유저들을 강하게 등 돌리게 만드는 업데이트 덕분에 많은 무료 유저들이 떠나갔다. 그 결과, 업데이트 1주일 만에 칼리버 온라인은 12만을 넘던 동시접속자가 6만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대표님. 동시접속자가 반 토막 났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성주환 대표는 오히려 앓던 이가 빠진 듯이 시원했다.

“매출은?”

“네?”

“동시접속자가 줄은 건 줄은 거고. 매출은 얼마나 되냐고.”

“아··· 예. 이번 한 주간 매출은 6억입니다.”

“끝내주는 군.”

10만 명의 동시접속자를 보유하고 일주일간 2,000만 원의 매출을 달성했던 지난번.

반면에 이번에는 일주일 만에 6억을 달성했다. 그뿐 만이겠는가, 접속자가 줄어들었으니 서버 유지비용도 그만큼 낮아졌다. 이거야말로 호재 중에서도 호재다.

나쁠 게 전혀 없는 이 판국에 그깟 동시접속자가 줄어든 게 무슨 문제랴.

“그깟 거머리 같은 동시접속자들은 없는 게 더 나아.”

이게 다 자업자득이다.

‘좋은 게임을 즐겼으면 마땅한 대가를 냈어야지. 거지새끼들 같으니.’

불면증이 오리만큼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갔다. 이러한 내용을 명확히 적어서 투자자들에게 보내주자 저들의 태도가 이전과는 대번에 바뀌었다.

그때는 사냥이 끝난 개를 삶아서 먹어버리려는 사냥꾼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피붙이처럼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성주환 대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발판만 마련하고 보자. 내 돈으로 내가 하고 만다. 이 하이에나 같은 새끼들.”

애써 외면하지만 유저들이 올리는 성토와 비난의 글이 그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고 말았다. 그가 판단하건데 완벽한 칼리버 온라인에 흠집을 낸 것은 공짜 근성으로 무장한 거지 유저들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기만 한 투자자들의 책임이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옳은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걷기 위해서는 더욱 철두철미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며 성주환 대표가 받아 든 성적표는 제법 훌륭했다.

월간 매출액 25억가량.

순수익은 대략 10억.

‘6만 명으로도 충분해.’

이대로만 유지되면 투자자들도 웃고 성주환 팀장도 손놈이 아닌 손님들을 상대로 꿈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렸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왜? 또 무슨 일이길래 그래?”

“그··· 그게······.”

“아. 똑바로 말을 해!”

쾅!

주먹이 아플 정도로 테이블을 내리치자 오 팀장이 다급히 말했다.

“LON 게임 제작 발표회를 한답니다!”

“···뭐?”

일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게이머스 포럼은 국내에서 게임 제작 발표회를 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제작한 게임은 뉴 온라인을 제외하고는 전부 국내보다는 해외시장을 목적으로 개발된 게임이다.

그런데 하필 지금 이 타이밍에 국내에서 제작 발표회를 열다니?

‘씨발!’

성주환 대표의 얼굴이 힘껏 밟힌 음료 캔처럼 일그러졌다.

“언제?”

“일주일 후에 연다고 합니다.”

‘윤태식··· 이 새끼가···!’

지금까지 새로운 게임을 개발한다는 조금의 소식도 외부로 흘리지 않았다가 하필 이 타이밍에 제작 발표회를 연다?

이건 대놓고 칼리버 온라인을 겨냥한 것이 분명했다.

‘이 가증스러운 놈! 분명히 내가 회사를 나올 때까지만 해도 게임을 출시할 마음이 없는 것처럼 굴더니··· 내가 뭘 해도 좋다는 듯이 그러더니··· 설마 처음부터 이러려고 기다렸던 거냐? 내 뒤통수를 이렇게 치려고?’

분노가 머리꼭지까지 올라왔다.

초창기의 칼리버 온라인이라면 얼마든지 덤벼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밸런스 붕괴 아이템을 자신의 손으로 내놓은 상태였다.

‘약삭빠른 새끼!’

지금은 불리하다. 그러나 이미 터진 일을 어쩔 수는 없다.

성주환 대표는 금방 화를 가라앉혔다.

‘괜찮아. 어차피 고정층을 만든 상태야.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내놓아도 우리 게임을 떠나지 않을 만큼 현재 우리 게임의 유저들은 칼리버 온라인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윤태식 회장이 새로운 게임을 출시한다고 칼리버를 떠날 리 없어.’

이들이 칼리버 온라인을 떠나지 않은 건 마땅히 옮겨갈 게임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성주환 대표는 자신의 역작을 믿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런 한편, 게이머스 포럼의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저들의 행보를 주시했다.

그리고 2005년 6월 22일.

게이머스 포럼의 신규 게임 레전드 오브 뉴 어스 온라인의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

게이머스 포럼과 모노 소프트.

윤태식 회장과 성주환 대표.

그리고 칼리버 온라인에 이르기까지 이들 관계에는 이슈 할 거리가 많았다. 덕분에 가뜩이나 뜨겁던 게이머스 포럼의 행사에 구름처럼 많은 기자들과 관계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에고 눈부셔라.’

게임은 물론이고 일반 언론사까지도 모인 발표회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플래시가 멈출 줄을 모른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몰리는 시선에 저절로 움찔움찔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누비며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내가 아니던가.

‘발표회쯤이야 우습지.’

능수능란하게 청중을 움직이며 발표회를 진행했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유명하고 많은 게이머에게 사랑받고 있는 게임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떠올렸다시피 바로 스타 드래프트와 플레지입니다. 혹, 이 두 가지 말고 떠오르는 게임이 있으십니까?”

장난스러운 이 질문은 다분이 의도적인 것이었다. 초창기였다면 여기에 칼리버 온라인이 들어갈 테지만 현재는 유료 캐릭터와 강화 아이템의 등장으로 모든 밸런스가 무너졌기에 많은 게이머에게 사랑받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도 콕 짚어서 칼리버 온라인을 연상하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확실하게 묻어버릴 생각이거든.’

골수 층이 생겨서 저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일을 막는 것. 그게 내 목적이다. 사실, 이 이유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국내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내가 직접 얼굴을 보였을 필요가 없었다.

“아무도 대답을 하시는 분이 없네요. 역시 다른 게임이 떠오르는 분이 없으시겠죠?”

가볍게 웃었다.

“저 역시 게이머스 포럼을 국내 최고의 게임사라고 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최고 게임을 이야기할 때는 딱히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여러분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딱!

손가락을 튕겼다.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스타 드래프트와 플래지가 최고의 게임일까? LON의 기획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나도 잘 안다.

사람들이 지금 궁금해하고 듣고 싶은 말은 성주환과 나의 욕 배틀이라는 것을.

저들은 성주환이 우리 회사를 떠나서 칼리버 온라인을 만들었고 그것이 지금 성공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그리고 LON이 칼리버 온라인을 이길 수 있는가, 이런 형태의 자극적인 멘트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궁금해한다고 해서 내가 그걸 알려줘야 하는 의무는 없다.

‘디스전을 하면 아무 말 대잔치를 왕창 펼쳐댈 텐데, 누구 좋으라고 그 짓을 하냐?’

이를 잘 알기에 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말을 듣지 못할 예정이다. 그러나 무작정 우롱해서 돌려보내는 것은 적을 만드는 일에 불과하다. 그러니 적당히 씹을 거리 한두 개는 던져줄 요량이다.

내가 원하면서 이들이 나름 만족할 수 있는 떡밥을 던져주는 일이었다.

“혹시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분 중에서 스타 드래프트를 직접 플레이해보신 분들이 계십니까?”

손을 드는 사람들은 반절을 조금 넘기는 정도. 그나마 이 정도라도 나오는 것은 반절에 가까운 인원이 게임과 관련된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2005년. 현재까지도 한국 남성중에 30대를 넘어서는 사람들은 게임에 그렇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지금의 학생들이 성인이 되는 나중 시점에는 민속놀이 취급을 받을 테지만 말이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스타 드래프트드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2종족이 아닌 3종족으로 이루어졌음에도 완벽한 밸런스를 갖추었기 때문 아닙니까?”

일반적인 대답일 뿐, 내가 의도했던 답변은 아니었다.

“과연 스타 드래프트의 장점은 세 종족 간의 밸런스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스드도 그렇고 지금 LON이 몸담고 있는 워드Ⅲ 역시 밸런스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완벽한 밸런스의 게임을 만드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그럼 무엇 때문에 그런 성공이 가능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라는 질문이 나왔다.

“속도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강조했다.

“스타 드래프트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게임보다 공방이 치열하고 빠르게 흐릅니다. 이기고 있다고 확신하는 그 순간에도 아차 하면 바로 역전패를 당하기 십상이죠.”

“스드에 대한 회장님의 생각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지금 회장님께서 무엇 때문에 스드와 플레지를 언급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플레지에 관해서는 지난 모노 소프트의 칼리버 온라인에서 좋은 발표를 해주셨더군요. 경쟁게임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PVP에 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나한테 들은 말을 성주환이 잘 써먹은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원조임!’이라는 이야기를 해봐야 구차할 뿐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더군다나 가장 확실한 복수는 압도적으로 성공하는 것이지 하나하나 부여잡고 잘잘못을 가리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플레지의 공성전은 매우 지겹고 귀찮은 과정을 통해서 결과가 만들어집니다. 공성전을 위한 물자를 미리 준비해야 하고, 성을 원하는 유저들은 늘 똑같은 싸움을 해나가죠.”

플레지는 그렇다.

그리고 LON은 이러하다.

“적절한 밸런스, 즐거운 싸움 그리고 무엇보다 빠르게 원하는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게임! LON은 바로 이 모든 것을 함축한 게임입니다. 처음 하는 게이머도 쉽게 MOS라는 새로운 장르를 배울 수 있고, 또 그 어떤 조건도 없이 공정하게 결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게임이지요.”

< 좋다면서 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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