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리버 온라인 >
“기발하네요. 이걸 적용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이미 디자인과 스킬 같은 것들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습니다. 타이트하게 한다면 3주 안에 할 수 있을 겁니다.”
“2주.”
눈을 지그시 감았던 성주환 대표가 검지와 중지를 들었다.
“2주 안에 해결해 보세요. 성공한다면 전 직원에게 보너스 200만 원을 지급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열흘 안에 해결하고 게임의 오픈 테스트를 다음 달 안에 가능하게 한다면 500만 원의 보너스를 일괄 지급하도록 하죠.”
“오··· 오백이요?”
“네.”
성주환 대표가 개발자로 데려온 인물들은 대부분 유즈맵이나 개발하던 아마추어팀 출신이었다. 이미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명성까지 두루 갖춘 인재들은 큰 게임사에서 인정받고 있거나 중소기업의 디렉터를 하고 있기에 쉽사리 데려오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이들에게 500만 원이라는 통 큰 보너스는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실로 대기업 못잖은 배포와 씀씀이였다.
“예! 대표님! 잠을 자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꼭 해내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열의를 듬뿍 담아 대답했다. 하지만 성주환은 여유 있게 고개를 흔들며 누군가를 흉내 냈다.
“아니에요. 사람이 잠을 안 자서야 되나요? 수면을 너무 줄이면 실수가 늘어날 뿐입니다. 그러니 충분한 수면과 함께 작업을 빠르게 진행해주세요.”
그 말에 감탄했는지 대답조차 못 하고 개발자가 멍하니 있었다. 뿌듯한 순간이었다.
‘캬! 이번 멘트도 진짜 너무 멋졌어. 이런 말을 윤태식 회장만 하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가만있자··· 이러다가 금방 윤 회장급이 되는 거 아냐? 나 같은 인재를 팀장으로 부리면서 세월만 죽이게 만들었으니 하여간 그 녀석도 보는 눈이 없다니까.’
‘업계 최고의 안목을 자랑하기는 개뿔.’이라며 그가 냉소 지었다.
하지만 성주환 대표의 생각과 달리 개발자가 할 말을 잃은 이유는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정말로 어이가 없어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
‘저게 입바른 소리라는 거군. 같은 개발자였으면서 저런 얘기를 이제는 잘도 하네. 개구리 올챙이 때 시절 모른다는 게 저거구나. 밤새 개발을 해도 될까 말까인 과제를 내줬으면서 잠을 다 자면서 하라니? 무슨 여기가 게이머스 포럼인 줄 알아?’
이미 자체평가로는 윤태식 회장과 동급이라서 쉽게 말했지만 성주환 대표가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었으니 바로 모노 소프트와 게이머스 포럼의 차이였다.
게이머스 포럼에서 야근 없는 정시 퇴근과 여유로움을 누리는 채로 여타 회사보다 빠르게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이유는 보너스도, 직원들의 충성도나 집중도도 아니었다. 기존에는 50명으로 개발하며 쥐어짜던 게임에 120명의 인원을 투입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이 분업을 통해서 일하니 다른 회사보다 더욱 빠르게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즉, 자본의 승리인 셈이다.
한편, 신생 회사인 모노 소프트는 정 반대다.
‘여기는 100명으로 개발할 걸 70명으로 개발하는 꼬락서니인데.’
정확히 말하면 인원은 100명 규모를 맞췄다. 다만 그 개발자들의 능력이 기존 게임개발사보다 떨어져서 70% 정도의 효율을 가졌다. 이런 판국에 완료 시기를 앞당기라는 지시를 내리는 건 날밤을 꼴딱 세워가며 밀어붙이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런 주제에 충분하게 수면을 취하라니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는가. 빤히 보이는 입바른 소리이고 ‘나는 너희가 밤을 세우는지 마는지는 관심 없어.’라는 말에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급자를 마주했을 때 하급자가 해야 하는 말과 행동은 정해져 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대표님.”
“그래요, 그래.”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
순종하면서 감동에 찬 태도를 보이는 것.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매우 기본적인 처세술이었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난 3월 4일.
회사에서 대표 한 사람만 모르는 불철주야의 시간이 흐른 끝에 70명의 땀과 노력의 산물이 완성됐다.
“칼리버 온라인만의 특성이 담긴 게임이라는 것이 팍팍 느껴지네요.”
성주환 대표의 미소가 귀에 걸릴 만큼 지어졌다. 그만큼 흡족한 게임이었다.
칼리버 온라인의 배경은 정령계와 마계의 전쟁이다. 그러나 강력한 존재들인 만큼 싸움의 여파로 자칫 세계가 붕괴할 수 있기에 이들은 인간계를 통해 대리전을 펼치는 양상을 가지게 되고 그 영웅들을 유저가 플레이하는 게임이었다.
히어로는 인간종족.
용병들은 중립 몬스터를 사냥해서 획득한 마정석으로 정령 혹은 마족의 용병을 소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설정이 완벽하게 잘 적용되어 있었다.
“2주 만에 잘 해내셨으니 전 직원에게 200만 원씩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하겠습니다.”
- 우와!
노력이 보상을 받았다. 기쁨에 찬 환호가 저절로 나왔다.
‘역시, 나는 대표를 해야 하는 그릇이었어.’
우러름을 만끽한 성주환 대표가 저들에게 새로운 미션을 내렸다.
“그리고 앞으로 2개월의 시간을 드릴게요. 5월에 오픈 베타 서비스를 진행할 수 있도록 수고 좀 해주세요.”
- 예! 대표님!
“그럼 저는 우리 개발자분들만 믿고 이만 사장님들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시원하게 일을 맡긴 뒤 성주환은 대표자가 해야 하는 업무를 시작했다.
성주환 대표는 본래 게임 개발자이자 총괄 디렉터였지만 회사의 오너가 되고부터는 개발 업무보다 밖에서의 시간을 더욱 중요시했다.
‘총괄기획은 남에게 맡길 수 있지만, 투자자들과의 사교는 남에게 맡길 수 없는 거 아냐. 이런 게 바로 대표가 짊어져야 하는 책임이자 무게인 셈이지.’
한때는 열심히 일하며 진두지휘하는 상급자가 좋은 리더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불패의 성공신화를 이룩하는 윤태식 회장과 게이머스 포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오너의 개발 능력? 그런 건 다 필요 없어.”
중요한 건 딱 두 개.
넘치는 자본!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정신!
이거면 된다. 절대로 오너의 개발 능력과 게임의 완성도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내가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니잖아. 윤태식 회장? 그 녀석이 게임 개발에 있어서 직접 하는 게 뭐가 있어? 그럴듯한 소리만 해대며 시켜댈 뿐이지.’
개발에 대한 지식조차 없는 인물.
그런 자가 게임사를 차려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제 마음대로 밀어붙이는 건 많은 꼰대들이 하는 짓이니 넘겨버리면 단 하나가 남는다.
‘답은 돈이야. 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자본이다. 이토록 깊은 깨달음을 얻었기에 성주환은 과감하게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자신은 결코 부족한 존재가 아니다. 돈만 있다면 더 좋은 게임을 개발할 수 있고 더 좋은 개발자들을 묶어 둘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게임을 개발하며 양적 팽창과 질적 향상을 모두 거머쥐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성찰이 녹아든 성주환 대표의 일과는 이런 식이었다.
오전에 출근해서 보고받은 뒤 외출한다. 아직 한참이나 오전이 남은 상태에서 본격적으로 벌이는 일은 골프였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는 데에는 이것만 한 게 없지.’
무릇 취미를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하는 법 아니겠는가. 평소에 하고 싶은 스포츠라는 작디작은 욕심이 섞여 있기는 했으나 이게 다 필요해서 하는 일이다. 이토록 합리적인 이유로 골프를 열심히 치며 친분을 다져간다.
그리고 오후 늦게, 거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다시 출근하여 보고를 받는다. 가벼운 격려와 인상적인 명언을 남겨주면 완벽한 마무리였다.
이때의 업무 속도는 매우 빨랐는데 이는 그가 잡은 기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대부분의 기획안을 그대로 통과해주기 때문이었다.
‘칼리버 온라인에 손을 왜 대? 이미 완성된 게임인데 여기서 더 고칠 게 뭐가 있다고. 게다가 내가 직원들이랑 같이 있어 봐. 이건 병사들이랑 굳이 함께 밥 먹으려고 끼어드는 사단장이랑 똑같은 짓이야. 나는 빠져주는 게 좋지.’
그간의 직장생활로 어떤 상급자가 배려심 있는 타입인지 그는 잘 알았다. 그렇기에 알아서 잘 굴러가는 마차에 괜히 채찍질하거나 끼어들어서 방해하는 일이 없는 편이 나았다.
대신 밤에는 투자자들과 밤 문화를 즐기며 비즈니스를 했다.
‘추가로 개발할 게임에 투자를 받는 것이 훨씬 생산적인 일이니까.’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고 사기를 고취시키는 데 필요한 총탄!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한 눈물겹고 밤낮 없는 대표의 노력이었다.
그렇게 어느덧 4월에 접어들었다. 모노 소프트는 순풍을 타고 쾌속 항해하는 배처럼 나아갔고 투자자들은 물론, 게임 잡지와 관련된 기자들. 나아가 LON의 유명 클랜들을 초청한 칼리버 온라인의 발표회 날이 찾아왔다.
“혹시 최근에 출시된 게임들을 경험해보신 분이 계십니까?”
피부 관리부터 말끔하게 코디 받은 옷차림. 근래 시작한 운동을 통해 어깨에 각이 생기며 옷 태가 나기 시작한 사업가로서 성주환 대표가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장르를 막론하고 최근의 게임들은 모두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경쟁! 그리고 승리입니다.”
어쩔 수 없다. 최근 들어서 경쟁사회의 문제점들이 큰 화두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인간에게 경쟁을 통한 승리보다 빠르고 자극적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폭력성이 무의미하다.
폭력적이건 비폭력적이건 경쟁과 승리. 자신의 우월함을 인정받고 증명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같다. 성주환 대표는 이를 강단있게 말하고서 손을 뻗었다.
“지금 화면에 보이는 게임은 레이싱 게임입니다. 당연히 경쟁을 통하여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목적이죠. 다음 화면을 볼까요? 이건 실시간 전략게임입니다. 어떻습니까? 목적은 경쟁과 승리에 있음을 우리는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게임들 사이에서 가장 그 목적으로 향하는 시간이 느린 게임은 무엇일까요?”
성주환 대표가 넘긴 화면에는 엠씨소프트의 플레지2, 넷젠의 다이너스티, 아이스 스톰의 월드 오브 워드래프트가 출력되고 있었다.
“바로 RPG 게임입니다.”
그의 말에 청중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레벨 1부터 사냥에 심취해서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게임을 두고 가장 느린 게임이라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은 것이다. 성주환 대표는 윤태식 회장이 그러했듯이 자신감 있는 미소를 띠고서 말했다.
“사냥은 물론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게임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것에서 오는 희열감?”
단호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바로 PVP입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만렙을 찍고 다른 유저보다 신속하게 좋은 아이템을 장착해서 남들보다 강한 힘으로 상대를 누르는 경쟁과 승리! 바로 그것이 온라인 RPG의 최종 콘텐츠입니다.”
그제야 성주환 대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한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직하고 분명한 그의 말에 다들 저마다의 기억을 투영한 것이다.
“칼리버 온라인은 바로 이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굳이 몇 달이라는 시간을 고생해서 PVP를 해야하는 걸까? 그렇게 열심히 키웠는데 거대 길드에 가입하지 못하면 공성전도 참여하지 못하는데 과연 이 게임에 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청중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투자자들이 눈에 빛을 발했다.
성공의 가능성.
짙게 풍기는 돈 냄새를 느꼈다.
“우리 모노 소프트의 신개념 배틀 RPG인 칼리버 온라인은 이런 의문을 해소해줄 완벽한 게임입니다. 공성전을 위해 굳이 거대길드에 가입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만렙을 키우기 위해 시간을 쓸 필요? 전혀 없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자 모두의 기대가 한층 고조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번 공성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게임! 그것이 바로 칼리버 온라인입니다!”
- 우와아아!
잘 만든 쇼처럼 환호 속에서 칼리버 온라인의 시연 영상이 이어졌다.
워드래프트Ⅲ의 유즈맵으로 있는 게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유려한 그래픽.
시선을 잡아끄는 스킬들의 향연.
여기에 LON에서부터 이미 유명세를 타던 최고의 플레이어들이 화려한 컨트롤을 펼쳤고 승리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명작에 항상 배고픈 이들이 게이머 아니겠는가.
일명 ‘갓겜’이라 부름 직한 칼리버 온라인의 등장은 입소문을 담당할 LON의 유명 클랜원들을 격동시켰다. 환호성을 지르는 열광적인 모습! 이 모습에 감명 받은 투자자들 역시 함께 기립 박수를 쳤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 한껏 고무된 기자들은 재빨리 자신들이 오늘 써야 할 기사들을 정리하기 바빠졌다. 기대 이상의 결과를 완성한 성주환 대표는 흡족하게 웃으며 내심 한 사람을 인정했다.
‘1년도 더 지난 방식인데 이게 지금 써먹어도 이렇게 통할 줄이야. 확실히 윤태식이가 게임을 몰라서 그렇지 이런 방면에서는 천재가 맞군.’
지금 프레젠테이션에서 발표한 내용은 사실 성주환 대표가 직접 생각해낸 개발 스토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LON의 개발 스토리도 아니다. 언젠가 윤태식 회장이 간부들을 불러놓고 일장 연설을 했던 내용 중 일부를 기억해서 최신 게임에 맞게 적용한 것뿐이다.
연설 방법이나 강조점 등도 카피했고 말이다. 하지만 원곡이 있더라도 일반인이 노래방에서 부르거나 어설픈 모창 가수가 대중에게 외면받듯, 같은 소스로 동급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분명히 능력의 문제였다.
‘그때 들은 말을 가지고 지금 트렌드에 맞춰서 발표할 수 있는 내 재능도 보통은 아니지.’
< 칼리버 온라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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