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83화 (283/577)

< 칼리버 온라인 >

“당연히 이렇게 스타일을 변경한다면 그에 맞는 캐릭터 구성과 아이템 구성을 짜야 할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알아서들 하실 수 있겠죠?”

“예! 문제없습니다!”

“이렇게 스킬을 더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만큼 아이템의 성능이 너무 좋거나 고효율의 스킬을 가지면 곤란할 겁니다. 그러니 아이템의 스킬은 어디까지나 보조형으로만 쓰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

다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것을 보니 당장은 안심을 해도 되는 모양이다. 나는 기분 좋게 화면을 다음으로 넘겼다.

“그다음은 각 진영에 존재하는 수호신들을 삭제하는 일입니다.”

현재의 LON은 게임 한 판이 짧으면 40분부터 1시간 30분까지 걸린다. 이렇게 긴 게임 시간은 유저들이 막간을 이용해서 한 판만 하고 빠지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즉, 우리는 이 시간을 줄여야만 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기존 시스템은 아군의 배럭이 파괴되었을 경우 적은 공짜로 골드를 획득하고 아군은 몰려오는 적들을 상대해야 하게 되면서 급격하게 추가 기울었습니다.”

굳이 미니언을 상대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골드의 수급이 가능해진다는 것은 팀원들에게 굉장한 여유를 주게 된다. 불리한 입장에서는 극복하기 힘든 상황으로 이어지는 셈이었다. 마지막까지 역전의 가능성이 보여야 끝까지 집중하고 노력할 게 아니겠는가.

해결책은 이렇다.

“상대 배럭을 파괴할 경우 아군 배럭에서는 공성에 특화된 미니언이 생산되어 상대 라인에 압박을 줍니다. 하지만 골드 수급은 오히려 상대가 더 유리하도록 합시다.”

라인에서 가지는 자유도는 높아지지만 라인을 통한 골드 수급은 오히려 불리한 쪽이 유리해지는 방향의 변화였다. 이것은 여전히 불리한 것은 맞지만 잘만 하면 역전을 할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줄 것이다.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질겁할 만큼 큰 변화를 주는 셈이기는 하지.’

세 갈래의 라인.

그사이에 존재하는 중립 몬스터.

마지막으로 상대 핵심기지를 파괴하면 승리하는 조건.

정말 이 핵심 조건들만 일치할 뿐 그 외의 것들은 전부 새로운 형태였다. 도저히 같은 게임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달리는 길이 최첨단이니 그들은 되돌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저들이 우리 게임을 기존 LON의 후속작으로 인정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게이머스 포럼이 걸어온 길이 증명하듯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자기 자랑이기는 한데, 감히 어떤 회장도 나처럼 충실하게 직원들을 설득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더 재미있으면서도 기존과 다르게 만드세요.’ 따위가 아니라 명확히 어떤 게임을 원한다는 걸 알려주고자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이 정도를 보여주면 개발자들이 내 말에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다. 이를 보며 성주환 팀장이 다시금 떠올랐지만, 연연하지 않기로 한 만큼 곧장 뇌리에서 지워버렸다.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게임으로 탈바꿈하는 건 극비로 진행되어야만 합니다. LON 온라인은 오픈 베타 직전까지 최대한 비밀로 합니다.”

“알겠습니다.”

회의를 일단락 지은 뒤 잡담처럼 넌지시 경쟁작의 근황을 물었다.

“칼리버 온라인 쪽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소식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어떤 내용이죠?”

“그쪽도 기존과 다른 점을 추가해야만 경쟁력이 생긴다고 생각한 것인지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는 용병 시스템을 추가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용병 시스템?’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혹시 그 용병에 대한 정보도 있습니까?”

“자세한 내용은 그쪽에서도 비밀로 하고 있어서 파악이 어렵습니다만, 중립 몬스터들을 사냥하면서 증표를 획득할 수 있고 그것으로 용병을 고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하. 대충 뭔지 알겠다.’

그런 형태의 AOS 게임 하나를 알고 있다.

이름은 바빌론 온라인.

나름대로 한국에서는 인지도를 잘 쌓았는데 애석하게도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망해버린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장르의 게임을 출시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던 이유 중에는 그 게임도 큰 몫을 했지.’

바빌론 온라인은 나름대로 기존 AOS 장르의 유저들을 잘 흡수한 게임이다. 그러나 유료화 아이템이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바람에 순식간에 외면받은 게임이었다. 그리고 이미 한번 깨진 밸런스는 어떤 방법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고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게 됐다.

꿈속 미래의 사건이었기에 내가 LON을 선점하면서 더는 탄생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성주환 팀장을 통해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빌론 온라인의 핵심 콘텐츠가 바로 이 용병 시스템이었지.’

게임 내에서는 용병 시스템, 게임 외에서는 가문 시스템이다. 이 중 가문 시스템은 2005년까까지의 개념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시스템이다. 바로 게임을 시작하면 기본 캐릭터를 받게 되고 이후에 돈을 모아서 가문에서 활약할 영웅들을 가문 소속으로 영입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공짜 영웅과 유료 영웅으로 자연스레 등급이 나뉘게 되지.’

밸런스 붕괴의 싹이 여기서 발아한다.

돈을 주고 구매해야만 하는 영웅이 일반 영웅과 동급이라면?

당연히 돈을 쓴 사람은 섭섭해진다. 그러니 돈을 쓰게 하려고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주게 되는데 이게 또 무과금 유저의 입장에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언제고 이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도 교육해줄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생각이 없고 게임이 어느 정도 만들어졌을 때, 기획안의 형태로 전달할 요량이다.

‘내가 칼리버 온라인의 신규 개발 아이템을 들은 것처럼, 저쪽 역시 우리 회사의 정보를 들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극비가 아닌 바에야 친구끼리, 옛날 동료끼리라는 이유로 쉽게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니 우리 회사 내의 개발자들에게도 당장 알아야 하는 게 아니라면 숨겨두기로 했다.

“오늘의 회의 내용대로 수정하여 테스트를 해보려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시겠습니까?”

“전체 플레이를 위한 테스트는 석 달. 단순 캐릭터의 이동 및 아이템 장착, 스킬 사용 정도의 수준은 한 달이면 됩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 후에 테스트를 해보도록 하며,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바람직한 길라잡이를 마쳤다.

*

전 게이머스 포럼의 팀장이던 성주환.

하지만 이는 옛날에 불과한 구질구질한 직함에 불과했다.

“좋구나. 성주환 대표. 아주 좋아!”

그는 모노 소프트라는 회사를 차렸고 대표가 되었다. 이른바 화려하게 비상하는 제2의 인생이 펼쳐진 시기였다. 탄탄하게 뻗은 대로를 시원하게 질주하며 성공을 거머쥐기만 하면 그만인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성주환 대표의 어깨에는 자연스럽게 힘이 생겼고 얼굴에는 웃음이 상시 감돌고 있었다. 정말이지 살 맛 나는 세상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오셨습니까?”

출근하는 그에게 개발자들이 인사했다. 성주환 대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보이고자 고개를 끄덕이며 저들을 다독였다.

“굳이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하실 필요 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좋은 아침입니다. 이렇게만 인사하고 하시던 일 하세요.”

회사를 차린 것은 처음이지만 지금까지 많은 오너들을 보아왔다. 회사의 오너가 지질하게 굴었을 때와 쿨하게 굴었을 때 개발자들의 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안다.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자신이 알고 있는 오너 중에 가장 쿨했던 이의 모습을 자신에게 덧씌웠다.

‘완벽하군. 부드럽게 지배하는 이 카리스마라니. 역시 나는 큰물에 있어야 하는 몸이었어.’

배려심과 권위를 두루 갖췄다며 흡족하게 사장실에 들어갔다. 그러나 인간은 말 그 자체보다도 목소리와 어감을 통해 화자의 감정을 전해 받기 마련이다. 성주환 대표의 권위적인 말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잘난 척을 느끼지 못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누가 보면 회장급은 되는 줄 알겠어?”

사장실의 문이 딸깍 닫히자 개발자들이 수군수군했다.

“엄청나네. 이제 막 투자받고 개발하기 시작한 회사가 무슨 사장실을 저렇게 크게 쓴대?”

“야. 그래도 이 게임의 투자금이 얼만 줄 알아?”

“얼만데?”

“칼리버 온라인이 지금까지 무려 총 130억이나 투자된 게임이야.”

“뭐? 이걸 130억이나 투자했다고?”

부러움과 시기심이 묻어나던 목소리에 경악이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130억이면 이런 중소게임사에서 개발하는 게임이 아니라 중견 게임사에서 신규 게임을 내놓을 때 들어가는 개발비용이었다.

이토록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이런 게임개발사에 들어오다니!

아무것도 모르던 개발자로서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게이머스 포럼 출신이라는 후광의 효과였다.

“완전 부럽다. 확실히 LON의 개발자라는 게 외부에서 먹어주긴 먹어주나 봐?”

“말이라고 하냐? 보통 먹어주는 수준이 아니라고. LON 한국 유저만 잘 잡아놔도 반년이면 투자금 다 뽑아 먹는다고 다들 난리잖아.”

일하는 시간의 잡담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 다른 개발자 역시 끼어들었다.

“한국에서만이 아니야. 이거 해외에서도 난리거든. 말 그대로 노다지라고.”

“하긴. 그러니까 투자자들이 어떻게든 투자를 하려고 야단이겠지.”

이런 반응에 상황을 잘 모르는 개발자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데 이게··· 진짜로 130억이나 필요한 게임인가?”

“알게 뭐냐?”

“이건 비밀인데, 은근하게 도는 소문에 의하면 이거 개발툴 구매로 30억을 썼데.”

“뭐!? 사··· 삼십억?!”

“야. 쉿! 조용히.”

“아··· 어······.”

놀라는 이유는 칼리버 온라인을 개발하기 위한 툴을 제작한 사람이 바로 성주환 대표였기 때문이다. 즉, 그는 스스로 개발한 툴을 회사돈 30억으로 구매했다는 의미였다. 호주머니가 빵빵해서 터질 정도로 챙긴 셈이었다.

게다가 툴의 값에도 거품이 지나쳤다.

“이거 아무리 높게 쳐줘도 1억이면 끝나야 하는 거 아니냐?”

“대표가 호구 제대로 잡은 거지. 미다스의 손이라는 윤태식 회장의 손에 있던 황금이니 자부심을 부려도 된 것이겠고.”

“그래서 최근에 집도 강남에 큰 아파트로 이사하고 차도 최고급 수입 세단으로 갈아탄 거 아니냐.”

“대박이다. 게임 하나로 인생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그런데 차액이 너무 큰데··· 이거 안 들키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닐까?”

“글쎄다. 칼리버 온라인이 제대로 자리 잡아서 투자자들한테 돈만 제대로 벌어준다면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걸?”

문제가 생길 때는 오직 게임이 실패했을 때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가능성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성주환 대표의 칼리버 온라인은 LON을 하는 모든 유저들이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게임이다.

유저들부터 투자자까지 그 누구도 이 게임의 실패 따위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을 정도로 성공이 보장된 게임!

그것이 바로 칼리버 온라인이다. 이것이 성주환 대표가 자신 있게 인생의 황금기를 걷는 이유였다.

“우와···”

“진짜 완전 부럽네.”

개발자들이 드넓은 사장실을 보며 입가를 씰룩였다.

그 시각, 사장실에서 책상에 발을 올리고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던 그에게 방문객이 찾아왔다.

똑똑똑···

“대표님. 칼리버 온라인의 신규 기획안입니다.”

자세를 고친 그가 따뜻한 카리스마를 되새기며 대답했다.

“어디 봅시다.”

성주환 대표가 개발한 LON은 태생적으로 가진 장단점이 있다.

워드래프트Ⅲ의 유즈맵이었기에 개발하는 과정이 쉽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그러나 다른 회사의 게임을 베이스로 해야만 하는 한계를 가진 것은 단점이었다. 지금처럼 완전히 새로운 이름과 게임성을 표방하며 출발하는 때는 더욱 문제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차별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워드래프트Ⅲ에는 없었던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활발히 논의 중이고 그 결과물인 용병 시스템의 기획안을 받아 든 상황이었다.

< 칼리버 온라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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