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81화 (281/577)

< 칼리버 온라인 >

6월이 오기 전에 오픈 베타 테스트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 LON은 얼마마다 신규 패치가 된 맵을 배포하지요?”

“약 2개월마다 배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배포 기간은?”

“4월 말에 있습니다.”

시기를 듣고 계산을 마쳤다.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가늠이 된다. 나는 옅게 웃으며 말했다.

“좋군요. 그걸 마지막으로 우리도 한동안 신규 패치를 배포하지 않겠습니다.”

“그··· 저희 팀은 해체되는 건가요?”

아쉬움과 허탈함, 서운함, 속상함 등의 복합적인 심경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해체라뇨? 기껏 새로운 장르 시장을 개척해놓고 해체를 하는 건 멍청이나 하는 짓입니다.”

걱정하지 말라며 내가 고개를 단호히 흔들었다.

“지금까지 작업한 것이 아까우시겠지만, LON의 개발을 시작하십시오.”

“저··· 정식 온라인 게임으로 개발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특히나 콘텐츠 분야의 사업은 그 정도가 훨씬 더하다. 아무리 훌륭한 게임이나 영화라고 해도 타이밍이 좋지 않으면 망한다. 내 예상보다 칼리버의 개발이 빠르기 때문에 우리도 그만큼 빠르게 움직여야만 타이밍을 맞출 수 있게 됐다.

“감사합니다! 최고의 게임으로 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쥔 이명현 팀장에게 ‘너는 할 수 있다!’라는 신뢰감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마지막 패치를 배포할 때 앞으로 한동안은 패치하지 않는다고 멘트를 남기세요.”

“알겠습니다.”

MOS는 특성상 늘 같은 라인, 같은 적, 같은 형태에서 플레이한다. 그렇기에 패치가 새로 되나 안 되나 늘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였고 ‘패치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생각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건 큰 오산이다.

생각보다 이 장르는 금방 실증이 나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들을 꾸준히 바꿔줌으로써 그 실증을 막아내야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그렇기에 패치가 멈춘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고 우리 게임을 즐기던 플레이어들은 금방 떠나갈 것이다.

‘멋진 대체재인 칼리버 온라인으로.’

그리고 감히 장담하건대 오픈 베타 기간 동안 호평에 호평이 이어지리라!

이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다. 애당초 LON의 메인 개발자가 성주환 팀장이었다. 그런 인물이 만든 게임이 오픈 베타 테스트 때 재미가 없을 수 있으랴.

게임 특성상 테스트 기간은 플레지와 뉴 온라인을 위협할 정도로 서버에 어마어마한 접속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성주환 팀장과 그의 투자자는 황금빛 미래와 성공을 확신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걸 ‘괘씸해도 우리 식구였으니까 이 정도 도움은 줘야겠지.’라고 보면 매우 곤란하다. 오히려 확실하게 침몰시키기 위해서 몰아주는 사악한 계략이다.

‘내가 자꾸만 미뤘었고 그때마다 한 말들을 떠올린다면 알아차릴 테지만, 자아 도취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모를 테지.’

칼리버에는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일찍부터 예고하고 경고했던 유료화 정책.

둘째는 진입장벽이다.

‘이미 워드래프트Ⅲ의 유즈맵으로 충분히 잘나가고 있는데 무슨 진입장벽이 있겠냐 할 수 있지만, 실상은 달라.’

처음부터 개별 게임으로 개발한 것이 아니라 타 게임의 툴을 이용해서 개발해 냈다. 이 경우 해당 게임은 탄생배경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덕분에 내게 익숙한 MOS와 현재 LON은 캐릭터의 육성 방향과 아이템의 설정 등이 닮았지만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반면에 내게서 큰 그림을 다 보지 못한 성주환 팀장의 칼리버 온라인은 워드Ⅲ 속의 MOS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의외의 진입장벽은 여기서 발생한다.

‘워드Ⅲ에서 LON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일부러 칼리버 온라인을 할 사람이 없다는 결론에 닿게 되지.’

그러므로 진입장벽 때문에 더 성장하기는 어렵고 유료화 정책을 만들기도 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이런 판국에 우리가 LON의 패치를 멈춰서 유저들이 왕창 몰려든다면 칼리버 온라인은 서버 유지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상황에 봉착한다.

수입 없이 지출만 극대화된 것이다. 이러면 게임사는 어쩔 수 없이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 설혹 그게 장기적으로 게임을 갉아 먹게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당장 그러지 않으면 지금 죽어버릴 판이거든.’

살아남기 위해 하는 선택이 결국 칼리버 온라인을 침몰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가 등장해야 하는 시기는 바로 그즈음이었다. 배가 사라지고 생존자들만이 물 위에 떠 있는 그때 모두 옮겨 태우면 게임은 끝난다.

이것이 내가 그린 큰 그림이었다.

“온라인 형태로 새롭게 개발할 LON은 이전 유즈맵의 형태에서 많이 벗어나는 게임이 될 겁니다.”

“어떠한 변화를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혁신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쪽으로의 변화입니다. 그에 따른 내용은 따로 게임기획팀을 통해 기획안이 전달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하던 일 마저 하세요.”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구안 100%. 지금까지 내가 건드린 게임들 중에서 실패작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이명현 팀장은 자신도 성공하는 게임의 개발팀장이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회장실을 벗어났다.

*

LON에 대해 조처를 하고서 기대와 흥미로 돌아가는 판을 예의 주시하고 있을 즈음의 일이었다. 예전에는 전투적이었지만 지금은 소소하게 변해버린 국내 영화계로부터 우회적인 메시지가 날아왔다.

“회장님께서 해외 영화에 많은 투자하셨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덕분에 국내 영화에도 투자를 하셨으면 하는 제안이 생각보다 많이 오고 있습니다.”

곽지원 부사장의 입을 빌려서 왔는데 이건 고작 영화감독이나 영화사 수준에서 나온 발언이나 제안이 아니었다. 이들과 이권 관계가 연계된 정치계나 제법 큰 모기업을 둔 배급사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글쎄요. 어지간한 건이면 그냥 형빈이가 알아서 투자하라고 지시를 해뒀습니다만?”

미안하게도 국내에는 별 관심이 없어진 지 오래다. 시장이 작기도 하거니와 대박이 나 봐야 고만고만하고 실패해서 손해를 봐도 그 정도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카이닉스 때문에 한 푼이 아쉬웠을 때라거나 크리스 감독처럼 우연히 면담하는 상황이라면 혹 모르지만.’

지금의 GF는 이런 것까지 일일이 나서서 투자하고 그럴 이유가 없다.

“아시다시피 형빈이는 담이 작아서 과감하게 투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올해 투자할만한 영화들을 추려두었으니 이 중에 마음에 드는 거 몇 개 정도만 골라 달라고 합니다.”

뒤이어 곽지원 부사장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했다가는 또 그 꼴이 날 테고 말이지요.”

그동안 내가 투자하는 것을 가장 유심히 지켜본 사람은 다름 아닌 곽지원 부사장이고 빼어난 눈썰미를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출중한 능력을 중국, 미국을 넘나들며 숱하게 발휘한 만큼 영화 투자를 맡겨본 일이 있었다.

‘결과는 처참했지. 희대의 꽝손이었어.’

짚어내면서 괜찮은 것 같다고 말하는 영화들 중 단 하나도 손익분기점 근처조차 가지 못했다. 마치 수능에서 0점을 맞는 것과도 같을 정도의 실력이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아무튼, 곽지원 부사장이 언급할 정도이니 적당히 짚어주는 정도는 해줄 필요가 있었다.

“어디 한 번 봅시다.”

“여기 있습니다.”

형빈이가 나를 흉내 낸답시고 나조차 알지 못하는 선구안을 발휘한 결과들이 보였다.

‘웰컴 투 봉막골, 가내의 영광2, 친절한 은자씨, 짐의 남자, 열애의 목적, 괴수, 사짜, 미인은 괴로워··· 뭐지? 죄다 내가 아는 영화들이잖아?’

놀라울 따름이다. 도대체 이런 선구안을 가지고 왜 그리 콩알만 한 간을 가졌는지 모를 정도였다.

‘쟤가 나랑 엮이지 못해서 이 업계를 떠났었다면··· 영화 좋아하는 일반인 중에서 나름대로 눈썰미 있는 일반인 C나 D가 되었겠어.’

왜 있잖은가. 온라인에서 진짜 평론가 못잖게 능력을 뜬금 발휘하는 재야 고수 말이다. 기회가 닿지 않아서 타협하게 되었던 재능이 잉여력이라는 이름으로 발산되는 이들의 사례일 수 있다는 망상마저 들었다.

물론, 지금은 대성할 조짐이 물씬 보이는 멋진 예비 투자자다.

‘좋아. 혹여나 한 개 혹은 두 개 정도가 흥행수익보다 작품성으로 인정받은 것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 실패는 다른 영화에서의 수익으로 만회하기에 충분해.’

나는 목록 전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빠짐없이 다 투자하라고 하세요.”

“얼마나 투자하면 되겠습니까?”

“영화당 최대 20억입니다.”

한 곳에서 20억이라는 큰 투자를 감당할만한 영화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마도 최대 15억 정도 투자하는 것이 전부가 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20억을 말한 것은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다 하라’는 의미였다.

“회장님의 안목에도 모두 흡족할 정도로만 골라내다니, 형빈이의 실력이 그야말로 일취월장 인가봅니다. 녀석이 정말 좋아하겠군요.”

해줄 말이 생겨서 좋다며 그는 흐뭇한 얼굴로 돌아갔다.

모래알이 굴러봐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바위가 한번 구르면 땅이 들썩이고 흙먼지가 크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그날 내가 한 선택이 바로 기사로 반영되어 속보들이 올라왔다.

【영화계의 큰손 GF홀딩스. 윤태식 회장이 선택한 영화에 주목!】

【GF홀딩스에서 투자한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

【수익률이 200%에 달하는 GF홀딩스의 선택!】

형빈이를 통해서 투자를 진행하기 무섭게 언론부터 충무로에까지 아주 난리가 나버렸다. 이는 단순하게 금액 때문에 생긴 여파가 아니었다. 바로 투자 불패의 신화를 계속 써 내려가는 내 위상으로 말미암은 일이었다.

【GF홀딩스의 투자에 성공한 영화는 함박웃음. 선택받지 못한 영화사는 울상을···】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하는 법.

내가 투자한 영화는 성공한다는 이미지가 있으니 더 크게 주목받고 투자 과잉 현상마저 일어나서 한없이 돈이 몰려들었다. 당연하게도 내게 외면받은 회사는 본래 투자받기로 했던 것까지 회수당하며 투자자들이 냉정하게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공할 작품에 투자한다는 의미의 반대는 나머지 것들이 실패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거참. 이러면 곤란한데.’

사무실에서 조용히 기사를 보다가 나는 미미한 꺼림칙함을 느꼈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줬다는 양심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그런 선량함을 갖고 있었다면 애당초 될성부른 것들만 싹싹 모아가며 현재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저어하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이러다가 성공할 영화조차도 망하는 거 아니야?”

내가 투자하지 않은 영화가 망하는 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어차피 성공 가능성이 낮은 영화들이 많을 것이고, 지금까지 내가 투자한 영화들은 전부 성공했지만 모든 성공한 영화가 내 투자를 받은 건 아니니까.

그보다는 지나치게 자본을 끌어안은 감독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성공작을 만들지, 아니면 ‘넘치는 이 돈으로 내 모든 로망을 다 실현해보겠어!’라며 괴작을 만들어 낼지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다.

‘할리우드에서랑은 다르게 국내 영화에는 말 그대로 돈만 투자했지 다른 건 통제하지 않고 있어.’

더 큰 성공을 이루기 위해 각종 개선안을 제시하고 몸소 뛰었던 과거와는 달랐다. 지금은 오로지 감독의 역량에 모든 것이 달린 상황이다.

걱정거리는 바로 여기서 생긴다.

본래 50억으로 제작하기로 했던 영화에 70억이 몰리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20억의 투자를 받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50억이면 될 영화를 굳이 70억을 써서 만들려는 욕심을 부리게 될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인 결과보다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확률이 아주 높다.

‘아직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은 고액의 제작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괜히 도전했다가 군더더기만 늘어나겠지. 자칫 각본이나 배우까지 바뀌면 제2의 성냥팔이 소녀의 강림이 나올지도 몰라!’

화마가 일어나기 전에 화근을 제거하도록 한다. 즉시 곽지원 부사장에게 연락하여 지시했다.

“우리가 투자하기로 한 영화들 말입니다.”

- 네, 회장님.

“우리 쪽에서 투자를 이야기하기 전의 제작비와 투자 이야기가 나온 뒤의 제작비가 바뀐 영화들이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 제작비가 변경된 영화 말이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하기를 바라십니까?

“투자를 철회하십시오.”

- 예?

“기존에 우리와 이야기했던 투자금보다 10%를 초과해서 투자받는 영화는 투자를 철회하겠다고 이야기하세요.”

용인해줄 수 있는 범위는 10%다. 50억짜리 영화가 55억이 된다고 대단한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닐 테니까. 그건 흥행에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 혹시 지분 때문에 그러십니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아니라고 일축하고서는 설명했다.

“돈이 많아지면, 욕심도 커지는 법입니다.”

- 하지만 퀼리티가 높아지면 영화의 흥행 가능성도 올라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퀼리티가 높아질 가능성보다는 많아진 돈을 엉뚱한 곳에 쓸 가능성이 높을 것 같더군요.”

그 말에 ‘아!’하며 감탄한 그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습니다. 그럼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보는 안목은 부족하지만, 그의 능력은 미국에서 경험했듯이 매우 출중하다. 내 의사를 제대로 반영했고 강력하게 전달한 듯했고 이는 다른 기사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충무로에 쏟아지는 투자금. 울상 짓던 영화사에는 다시금 함박웃음이.】

기존의 제작비와 비교해서 10%를 초과해서 제작비가 늘어나는 영화에는 투자를 철회하겠다는 엄포를 놓자 많은 영화사가 급하게 투자받으려고 잡았던 손을 놓아버렸고 그 돈은 또 고스란히 다른 영화사로 흘러 들어가면서 어설프게 벌어졌던 해프닝은 막을 내렸다.

< 칼리버 온라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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