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80화 (280/577)

< 칼리버 온라인 >

‘매일 안전점검을 하는데 별일이야 있을까··· 따위일 리가 없지. 분명히 뭔가가 다를 거야.’

경계심을 가지고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니 평소와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슬이 불안하게 뒤틀어진 모양새였다.

‘예전부터 저랬는지 오늘이라 다른 건지는 모르겠다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애석하게도 관심을 조금도 두지 않았던 부분이라 문제가 생겼는지 여부를 확신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불안감을 느끼는 상태로 애써 문제가 터지지 않기만 기도하는 멍청한 짓을 저지를 이유는 없다.

바로 무전을 보냈다.

[-여기 케이지를 연결하는 사슬 하나가 모양이 이상합니다.]

[-네? 사슬이 이상하다고요?]

[-사슬이 좀 뒤틀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내 말을 듣자 살짝 늦은 타이밍에 답변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직접 봐야 할 것 같네요.]

그제야 뭔가 짚이는 바가 떠오른 모습이었다.

[-일단 케이지를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세요.]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어 보인다.

‘역시 사고가 생긴 걸 잘 수습하기보다는 터지지 않게 방지하는 쪽이 나아.’

얼마 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적절한 판단이다. 그렇게 잘 대처했노라고 스스로 흡족하게 여길 때였다.

끼기기기릭-

아래로 풀어지던 도르래가 다시 반대로 감기면서 사슬이 팽팽해졌다. 그리고 예정대로 케이지가 올라가려고 하는 그때, 내 불안감이 극도로 커지는 것이 아닌가.

반사적으로 얼른 소리쳤다.

[-잠시! 잠시만!]

[-네?]

이건 꿈속 미래를 통해서 판단을 내릴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직감이라는 능력이 불안감을 통해 불길한 경고를 주었고 나는 이에 따라서 판단했다.

[-사슬이 불안합니다. 자칫 끊어질 수 있으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다급히 말한 뒤 생각했다.

‘이미 상어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를 사용했고 주변에는 적잖은 녀석들이 몰려들어 있는 상태. 사슬의 안정성은 지금은 물속이라 괜찮지만, 수면을 벗어나려고 하면 사고가 날 게 분명해. 하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안전장비로 산소통 조끼에 달린 고리를 연결하면 우리가 올라갈 때까지는 버텨줄 수 있다. 단, 그러려면 케이지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데 상어들이 즐비한 케이지 바깥으로 지금 나가는 것은 스스로 상어밥이 되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케이지에서 나가지 않은 채 고리를 연결하는 것.’

불안 불안해서 이 사단을 만들어낸 사슬이 제법 가까운 곳에 있었다. 케이지 안에서라도 손을 최대한 뻗으면 고리를 연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시나리오 만들려다가 영화를 찍게 생겼군.’

상어들의 위치를 보며 제법 멀어졌다 싶을 때 조심히 팔을 내밀었다. 고리를 사슬과 연결하려고 시도한 건데, 결과는 썩 신통치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멀다.’

물속이라서 그런 것일까?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사슬과의 거리가 멀어서 팔이 닿지 않았다.

- 회장님!

- 조··· 조심하세요!

직원들의 반응에 잽싸게 케이지 안으로 손을 집어넣자 옆으로 상어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짐짓 호들갑스러기까지 한 반응에 가슴팍이 서늘해졌다.

케이지 밖으로 나간 팔은 보통 상어에게 먹이를 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상어는 심장박동에 민감하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지니 놈들은 내 손은 맛있는 먹이로 곧장 인식된 거였다.

- 회··· 회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 아니요. 제가 합니다.

‘당신들 심장부터 가라앉히라고.’

내심 한소리 하면서 직원들에게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최대한 안심시킬 겸 태연한 모습으로 가만히 지켜보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책임감이나 뭐 그런 게 아니다. 이런 일을 잘 해낼 거라고 신뢰가 가는 직원이 없어서 맡겼다가는 정말 큰 사고로 발전하게 될 게 자명해서다. 여러 능력을 갖춘 내가 직접 하는 게 베스트였다.

‘생각보다 멀어. 케이지를 열고 살짝 나가서 고리를 걸어야 하니 타이밍을 신중하게 잘 재야겠군.’

상어의 수를 헤아리니 총 4마리가 느릿느릿 주변을 돌고 있었다. 하지만 저 속도에 맞춰서 생각하면 곤란하다. 기회가 생기면 조금 전처럼 쏜살같이 달려들 것이다.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동시에 직감에 집중했다.

과연 상체를 케이지 밖으로 내밀었을 때, 상어가 달려드는 것보다 빠르게 고리를 걸고 다시 케이지로 들어올 수 있을까?

‘불가능!’

아이템 강화가 실패하는 정도의 내키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절대로 하지 말라는 극렬한 거부감이 들었다.

손만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상체 전부라면 결단코 불가능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쉽사리 떠오르지가 않았다. 장시간 고민한다면 해법이 나올지 모르지만 당장은 어려웠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상어를 케이지에서 떨어뜨릴 방법을 물으니 의외로 금방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 케이지에서 거리가 있는 곳으로 먹이를 뿌리면 상어가 이동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집단지성!’

혼자보다는 여럿이 나았다. 듣고 나니 저 간단한 걸 왜 떠올리지 못했나 싶을 정도다. 나는 바로 무전했다.

[-사슬에 고리를 걸 시간이 필요합니다. 동쪽에 먹이를 뿌려서 상어를 유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우리의 사정을 이해한 듯이 돌아오는 답변에도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사고를 당한다면 저들도 매우 곤란해질 테니 당연한 일이다.

[-지금 먹이를 투하합니다.]

1··· 2··· 3··· 4··· 5초.

무전이 들려오고 잠시 시간이 지났다.

상어들이 동쪽으로 이동하자 다시금 시뮬레이션 해 보았다.

‘···가능!’

지금이다.

재빨리 케이지의 문을 열고 위로 올라가서 고리를 사슬에 걸었다. 그리고 안심을 하기가 무섭게 한 마리의 상어와 눈이 마주쳤다.

‘서둘러!’

이보다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케이지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쾅-!

아슬아슬하게 놓친 상어의 입이 케이지와 부딪치면서 케이지가 크게 흔들렸다.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위협적이었으나 그래봤자 창살 바깥의 위협일 뿐이다. 나를 비롯하여 눈을 크기 치켜뜨고 긴장했던 직원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고리 걸기 끝. 올리세요.]

끔찍한 결과를 낳을 뻔했지만, 그 덕분에 내 기획의도에 100% 부합하는 시나리오가 나올 좋은 경험··· 이기는 개뿔!

‘진짜 죽을 뻔했네. 이거 능력 생겼는데 왜 외계인이나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아쉬워할 게 아니었어. 그런 건 게임에서나 좋지 정말 할 짓은 아니야.’

덕분에 알았다. 내가 익스트림한 체험을 좋아하지만 그건 다 안전이 담보되었을 때의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전화위복의 결과는 있었다.

“회장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 콘셉트. 모두 제대로 살려보겠습니다!”

마지막 체험으로 대오각성한 직원들은 일주일 후 기획안과 시놉시스를 완성했다. 『블루워터2 : 샤크 케이지』는 한 번에 프리패스를 달성했고 이를 받아본 크리스 감독 역시 ‘완벽한 블루워터2!’라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23. 칼리버 온라인

성주환 팀장이 퇴사하고 고작 4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벌써?”

그가 개발하고 있는 게임에 대한 기사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스타 드래프트의 아성에 도전하는 차세대 RTS. 칼리버 온라인!】

워드3의 유즈맵으로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는 LON의 아버지 성주환 대표. 그가 개발하고 자사에서 서비스 준비 중인 칼리버 온라인이 드디어 베일을 벗길 준비가 되어간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기대의 신작, 칼리버 온라인! 배틀 RPG를 보여주겠다.】

칼리버 온라인은 이미 e-sports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타드래프트의 장르인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과 플레지, 뉴 온라인 등으로 대변되는 롤플레잉 온라인 게임을 혼합한 스타일의 게임이다.

산적한 기사들을 읽는 내 감상은 ‘미묘한데’였다.

“이미 워드래프트3의 유즈맵을 통해 MOS를 경험한 게이머들에게는 굉장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성주환 팀장은 조만간에 게이머들에게 배틀RPG라는 신선하고 새로운 게임을 보여드리겠다 자신감을 표하고 있다··· 라고는 하는데, 어째 시점이 무진장 빠르다?”

달력을 다시 보아도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 지금은 고작 4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테스트를 할 정도로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 회장님께는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라도 LON의 제작을 맡겨주신다면 다 거절하려고 했습니다만, 회장님은 여전히 LON의 제작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군요.

분명히 그가 퇴사하기 전에 했던 말은 이러했었다. 이 이야기를 사실로 보자면 성주환 팀장은 내가 알던 것 이상의 능력자라는 뜻이 된다.

GF를 나가서 투자받고 회사를 창업한 뒤에 개발을 얼추 마치는데 고작 이 정도 시간이 걸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 있으랴.

“이거 괘씸한데?”

아무리 뛰어난 개발자라고 해도 순서를 생각한다면 지금 즈음 엔진 작업의 초기에 이르렀어야 옳았다. 즉, 지금 같은 비정상적인 개발속도가 증명하는 바는 딱 하나다. 우리 회사에 있을 때부터 혼자 몰래 개발을 하다가 그 자료를 그대로 가지고 나갔다는 것.

아마도 투자자 역시 성주환 팀장이 얼마만큼 개발을 마쳐가고 있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 돈을 받으면서 이런 짓을 했단 말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썩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가 예상보다 더 빠르게 칼리버 온라인을 개발하여 출시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내가 왜 타이밍을 늦추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가? 토대가 마련되지 않아서다.

이런 판국에 최대한 우리가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게이머들로 하여금 해당 장르에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누군가가 등장하였으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장래에 우리의 밑거름이자 양분이 되어줄 테니까.

그래서 타사의 게임 출시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냉정한 이성만큼 뜨거운 본성이라는 쌍두마차가 존재하는 법. 칼리버 온라인이 내게 이득을 안겨준다고 성주환 팀장이 괘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뒤통수 맞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러니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내 쪽에서도 그에 맞춘 대응을 해줄 작정이다. 대신 내가 오해한 건 아닌지, 잘못된 추측을 해서 미친 듯이 출중한 성주환 팀장의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로 했다.

“MOS의 이명현 팀장님에게 들어오시라 하세요.”

그는 성주환 팀장과 함께 LON의 초기부터 틀을 잡았던 개발자다. 코딩 능력이 뛰어난 타입은 아니지만 캐릭터 간의 스토리와 밸런스를 잘 다루었기에 이를 높이 사서 성주환 팀장의 후임으로 팀장의 역할을 담당토록 했다.

그라면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회장님. 저, 이명현 팀장입니다.

누군가가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숨을 골랐고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모습으로 들어왔다. 호출을 받고서 회장실에 온 것이 처음이라서인지 그는 셔츠가 흠뻑 젖도록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직 겨울인데, 무슨 땀을 그렇게 흘려요? 일이 많이 바쁜가 봐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뻔한 몇 마디 인사치레를 나눈 뒤 본론에 들어갔다.

“오늘 게임 잡지 사이트에 재미있는 기사들이 났더군요. 알고 있으십니까?”

“기사요? 그게 어떤 건지··· 잘···”

“칼리버 온라인 말입니다.”

“아!”

“보셨습니까?”

이명현 팀장이 빠르게 대여섯 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봤습니다.”

“생각보다 개발이 훨씬 빠른 것 같더군요. 이 점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신지?”

“그···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거에 성주환 팀장이 했던 말이 있습니다.”

옛 기억을 얼른 떠올리며 그가 대답했다.

“혹시라도 언제 갑자기 회장님이 LON을 개발하라고 지시하실지 모르니까 미리미리 준비해둘 것이 많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굳이 엔진까지 새로 개발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LON은 게임의 특성상 GF엔진으로 개발할 경우 개발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새로운 개발 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요?”

“넵!”

애매하다.

‘그러니까 나한테 월급 받으면서 따로 개발한 툴이 있고 그걸 가지고 나간 게 맞기는 하다는 이야기인데.’

보고도 안 되었고 또 특별히 해당 툴을 개발하기 위해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다. 이 팀장도 개발툴의 정체를 전혀 모르는 것으로 봐서는 개인적으로 집에서 개발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니 성주환 팀장은 딱히 걸고넘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건 그의 판단대로였다.

‘듣고 나니 월급 주면서 일을 적당히 준 내 탓 같기도 하고.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서 가능한 거로 볼 정도니까.’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요주의 인물은 눈코 뜰 새 없을 만큼 일을 부여하고 결과물을 받아서 압박감을 줘야 했나, 따위의 생각도 아주 잠깐 스쳐 갔다.

“좋습니다. 그럼 그건 됐고··· 이 팀장님이 보기에 칼리버 온라인은 오픈 테스트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우리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거의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디자인과 캐릭터의 스토리만 개발하면 되는 문제라서··· 아마도 2, 3개월 이내에 가능할 거라고 보입니다.”

< 칼리버 온라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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