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77화 (277/577)

< 휴가~ >

“맞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서 짐 풀어.”

“응. 알았어.”

태희가 얼떨떨해하는 모습으로 부모님과 함께 방에 들어갔다.

객실에 함께 온 인원은 총 세 명이다. 한 명은 태희와 가족을 따라갔으니 내 곁에는 두 명이 남았다. 나는 다른 한 명에게 캐리어를 맡기며 말했다.

[제 짐은 대충 풀기만 하면 되니까 그냥 캐리어만 저쪽 방으로 옮겨주시고.]

마지막으로 남은 관리자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이곳의 설명을 좀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설명을 원하십니까?]

[제가 이 객실에 대해서 사전 지식을 너무 갖추지 못하고 왔습니다. 부끄럽지만 객실에 대한 설명과 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틀이라는 짧은 준비 기간을 가지고 해외로 왔으니 여러모로 부족한 건 당연한 일이다.

‘지금이라도 알아둬야 더 당황하는 일이 없겠지.’

아울러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충분하면서도 여유 있게 누릴 것이다.

[저희 로열스위트룸은 250㎡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내부에는 침실 3개, 집무실과 다이닝 룸이 1개가 있습니다.]

동급의 객실이라고 하더라도 비즈니스형은 침실이 1개 혹은 2개로 이루어지며 응접실을 포함한 것에 반해 이 객실은 가족여행 형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응접실을 제하고 침실이 한 개 더 있는 형태의 차이군.’

객실에 포함되지 않은 서비스는 호텔까지 우리를 픽업해준 차량과 기사가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투숙하는 동안 전담하여 편의를 봐준다. 또한, 호텔 최상층의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여 언제든지 시드니의 전경을 즐길 수도 있다.

‘낮에는 티, 저녁에는 와인 서비스 등등인데··· 꽤 고급스럽지만, 딱히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아.’

이 외에도 호텔 내부의 부대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헬스장에서는 트레이너와 치료사가 상시 대기 중이란다. 혹시 모를 사고 시에는 호텔의 헬기를 이용할 수 있고 말이다.

듣고 나서 내가 결론 내린 것은 호텔 서비스 코스를 쭉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몸 가는 대로 편하게 지내자는 거였다. 사명감을 가지고 죄다 써먹으려다가는 휴가가 아니라 빡빡한 일과가 될 기세여서다.

“아들! 도대체 얼마짜리를 예약해서 온 거야?”

드디어 짐 정리가 끝나신 것인지 놀란 고여사가 대뜸 돈 걱정부터 하신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억만장자라고 추켜세워도 언제나 걱정부터 해주는 가족다운 우려의 모습이시다.

“괜찮아요. 얼마가 들더라도 고 여사가 걱정할 필요 없을 만큼 아들이 잘 나가니까 그냥 잘 쉬다 돌아가 생각만 해요.”

“그래도 엄청 비쌀 거 같은데······.”

원래 호텔은 모든 숙박시스템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지 못한 형태다. 그런 곳에서 호화 서비스를 받으면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게 된다.

‘보고 받기로 1박에 880만 원 정도였나 했지. 나름 양심적인 가격이라고 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고.’

LA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 정도의 방에 이런 서비스가 지원된다면 천만 원은 우습게 넘어간다는 말을 함께 들었다. 동네 찜질방이나 여관과는 다르게 비교 대상을 LA로 잡으니 시드니 물가는 지낼만한 합리적인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럼 저는 나가 있겠습니다. 이 벨을 통해서 언제든지 호출할 수 있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 바랍니다.]

친절함 200%로 무장한 직원이 공손함의 절정을 보여주며 물러났다. 그러자 잠시간 줄어들었던 태희의 목소리가 다시 제 볼륨을 찾았다.

“오빠. 오빠. 여기 전부 다 우리 거야?”

“우리 거는 아니지. 빌린 거니까.”

마음먹으면 살 수는 있지만, 호텔 경영은 진짜 눈곱만큼도 모른다. 그냥 돈 내고 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전부 다 쓰는 거 맞아?”

“어.”

“우와! 우리 오빠 돈 많이 번다. 많이 번다. 하더니 진짜 엄청 많이 버는구나!”

“지난 호텔에서 얼마치를 샀는지 벌써 까먹은 거냐?”

보통 사람은 등골이 휠 정도였단다.

“헷!”

피식 웃는 사이 얘는 또 언제 겁먹었냐는 듯이 고 여사와 팔짱을 끼고는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기 바빴다. 마음속에 품어만 둔 장래 희망 중에 사진가가 있지는 않을까 의심될 따름이다.

그즈음 아버지가 조용히 다가오셔서 한마디 하셨다.

“아들.”

“네?”

“고맙다.”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엄지를 내보이셨다.

*

원래 여행 첫날은 비행의 피로 때문에 밖으로 나다니기보다는 그냥 호텔 방에서 신선놀음이나 하는 것이 최고인 법이다. 그렇게 충분한 휴식을 해주어야 이튿날에 온전한 체력으로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시일이 촉박하거나 돈의 압박을 받는 것도 아니니 우리 가족은 몸이 노곤해질 만큼 푹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밝자 호텔 조식을 즐기고 시드니 투어를 시작했다.

“오오! 저기 봐! 다리가 진짜 커!”

“저거! 저거! 저거 봐! 저거 그거야! 그! 오페라 하우스!”

스타트는 시드니의 전경을 볼 수 있도록 경비행기를 타고 주요지역 관광지를 훑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호주로 오는 내내 비행을 하고 또다시 돌아갈 때 10시간이 넘도록 비행을 해야 하지만 그런 비행과 경비행기로 관광을 위해 하는 비행은 느낌부터가 달랐다.

앞에 있는 것은 수송이자 이동이라면 지금은 몸소 하늘을 난다, 여행한다는 기분이다.

‘저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도 봐줘야 되려나? 내 취향은 아니지만, 어머니나 동생은 좋아하겠지?’

음악에 큰 관심이 없는 아버지와 나는 그냥 희생하는 마음으로 감수해야겠다. 이런 우발적인 마음이 들 정도로 하늘에서 내려다본 오페라 하우스의 모습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아울러, 마케팅이 잘 된 영향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는 에펠탑,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처럼 시드니는 왠지 오페라 하우스가 딱 떠오르기 때문이다. 레스토랑에 가서 셰프가 자랑하는 시그니처 메뉴를 쏙 빼먹고 오면 왠지 배불러도 뭔가 아쉬운 것처럼 말이다.

‘심리라는 게 참 묘해. 분명히 가봤자 뭔지도 모를 소리만 잔뜩 듣고 잠만 자다 나올 텐데 당기는 걸 보면.’

관심 없는 음악이라서 폄하하는 게 아니다. 외국어라고는 영어 하나 달랑 할 줄 아는데 다른 언어로 부르는 노래를 무슨 방법으로 알아듣겠느냔 말이다. 나 같은 막귀한테는 몽땅 소음일 뿐이다.

‘아 몰라. 그냥 사진만 찍고 오페라는 안 봐.’

그렇게 혼자서 가족의 여행 일정을 짜고 있을 때였다.

“나 경비행기 이런 건 영화에서만 봤는데! 직접 타보니까 진짜 좋아!”

한껏 들뜬 태희와 말만 하지 않으셨을 뿐 표정으로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어머니였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이국의 풍경에 흠뻑 젖은 두 여성과 달리 아버지는 창백한 낯으로 입을 막고 있으셨다.

“우욱!”

애석하게도 아버지는 본인이 경비행기에 멀미가 있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흔들림 없는 땅을 밟고 나서야 숨을 깊이 몰아쉬신다.

그러건 말건 모녀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이번엔 우리 뭐해?”

“아들. 다음은 어디 가니?”

“하늘의 반대편이요.”

호텔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이동한 곳은 시드니에서도 상어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대륙 규모의 사이즈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호주는 섬나라다. 즉, 사방이 바다로 이루어진 곳인데 그중에서도 일부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관광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상어 관광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가이드가 ‘여러분이 보시는 저 지느러미가 바로 상어 지느러미입니다.’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안전한 케이지로 보호를 받으며 잠수한 뒤에 물속에서 직접 상어를 구경하는 것이다.

바다 자체를 아쿠아리움으로 바꾸어버리는 스케일의 관광이라 하겠다.

‘개인당 40만 원이라는 사실은 우리 가족한테 절대로 비밀이지.’

이 투어는 무시무시한 상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아주 스릴 넘치는 관광으로 유명했다.

“우와! 바다다··· 가 아니잖아! 오빠!”

“상어!”

“태식아··· 아빠를 상어 밥으로 주고 싶을 정도로 미워진 이유가 뭐니?”

꿈속 미래에서 연예인들이 체험하는 것을 방구석에서 보며 ‘나도 꼭 한 번 해봤으면’했던 목록 중 하나였다. 그래서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건 나만 그랬던 모양이다.

하늘의 반대편이라는 말에 해수욕을 떠올리던 가족은 사람을 상어밥으로 넣는 것처럼 보이니 문화충격을 제대로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전한 거예요. 그냥 아쿠아리움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우리 옆으로 상어가 헤엄치고 다니는데 그게 아쿠아리움이라고?”

“그래서 더 신이 나는 거죠.”

“아들. 너나 들어가렴.”

“그래. 이건 엄마 말이 백번 맞다.”

나름 설득을 해본다고 했는데 부모님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관광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샤크 케이지는 나와 태희 둘이서만 하기로 했다.

[긴장 푸세요.]

샤크 케이지의 직원들이 태희와 내게 장비를 입히는 동안 긴장한 동생을 릴랙스 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산소 게이지가 어떤 거라고 했었죠?]

[여기 이 숫자 있는 거요.]

[지금 숫자가 몇이죠?]

[200?]

[예. 이게 100 밑으로 떨어지면 우리에게 신호를 주셔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50이 되면 알아서 끌어올릴 거니까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네.]

[그리 깊게 들어가지 않아요. 수심 5m까지만 들어갑니다. 깊지 않은 만큼 압력의 문제가 생길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문제가 생긴다면 고개를 뒤로 젖히고 침을 삼키세요.]

[네.]

[당연한 말이지만 숨을 빨리 쉬면 산소가 빨리소모 됩니다. 긴장을 푸시고 여유롭게 호흡하세요. 그래야 더 오래 즐길 수 있습니다.]

[아······.]

[지금은 이렇게 긴장되시지만, 아래에 내려가신다면 올라오는 게 아쉬워질 겁니다. 제 말 믿으세요.]

착한 유치원생처럼 고개를 끄떡끄떡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하셨다.

“태식아. 이거 정말 해야겠니?”

“네. 꼭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자칫 사고라도 나면···”

“그러면 자동차나 비행기도 못 타고 다닐걸요?”

현실이 스릴러 장르의 무엇이라면 가족에게 이런 말을 듣고도 강행했을 때, 케이지의 사슬이 끊어진다거나 하는 사고가 벌어질 것이다. 마치 마지막 작전을 수행하기 전에 가족사진이나 고향에 있는 애인 이야기를 한 등장인물이 꼭 사망하는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장르는 스릴러가 아니었다. 그럴 거였다면 직감이나 뛰어난 신체 능력 등을 가졌을 때 벌써 몬스터가 침공하거나 눈 떠보니 다른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벌어졌어야 했다.

‘상어 밥 되려고 시간을 거슬러 돌아왔다면 그건 너무 웃긴 일이잖아.’

모든 준비가 끝나고 케이지와 함께 물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우리가 잠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어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들이 사방에 뿌려졌다.

- 오빠! 저기 상어!

느긋하게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헤엄쳐서 오는 상어들.

- 하나... 둘... 다섯 마리야!

객체의 크기는 한 마리, 한 마리가 한국의 아쿠아리움으로 가면 최대 사이즈가 될 것 같은 거대한 놈들이었다. 그런 상어들을 우리가 구경하듯이 놈들도 네모난 창살 내부의 인간들을 구경하듯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 이런 거 진짜 꼭 해보고 싶었다니까?’

살면서 해보기 어려운 체험이다.

조심스레 태희를 보니 얘도 처음의 겁먹었던 모습과는 달리 이제는 슬슬 즐기는 자의 모드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 먹이 주고 싶어. 원래 이런 거 하면 먹이 들고 있다가 상어한테 주고 그러는 거 아니야?

아까까지만 해도 긴장해서 대답도 제대로 못 하던 녀석이 이제는 먹이 타령까지 했다.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됐음을 믿어 의심치 않은 덕분이다. 이러면 흡사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카페에 앉아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과 상어를 구경하는 일이 같은 수준이 된다.

물론, 2D와 4D 관람이라는 차이는 있을 테지만 말이다.

- 아서라. 그거 잘못하면 물고기가 아니라 손모가지가 먹이로 날아가.

- 아쉬워.

- 어이쿠~

정신없이 상어를 구경하다 보니까 어느새, 산소량이 다 떨어졌고 케이지는 우리를 안전하게 다시 끌어올려 주었다.

“엄마! 대박! 상어 진짜 완전 멋있어!”

“정말이니?”

“응! 해보니까 진짜 재미있어!”

태희가 배에 올라오자마자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

그 모습에 어머니께서 눈빛을 반짝이시자 그 표정의 의미를 깨달은 아버지는 재빨리 고 여사의 옆을 벗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은 빨랐다. 더군다나 우리가 있는 곳은 좁은 배였으니 아버지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아버지는 울상을 짓고 유언처럼 한 문장을 남기셨다.

“하고 싶은 사람만 하면 되지 왜 나를···!”

< 휴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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