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 >
“숨기는 것보다 카이닉스를 차지하는 거에 집중해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공개라고해서 딱히 불법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합법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상장하지 않은 회사의 내부 정보들을 모두 공개할 필요가 없고 우리의 자금력을 다 공개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어차피 지금 알아봤자 1년만 지나면 다시 쓸모없어질 정보에 불과하지. 우리 회사는 매년 작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하고 있으니까.’
지금의 성장대로라면 내년에 공개된 정보로 우리 회사를 파악하는 건 미련한 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실력자인 곽지원 부사장에게 휘두를 칼을 쥐어주니 그는 자신의 역량껏 거래를 성사시켰다.
【카이닉스 채권단. GF의 인수계획 긍정적 검토.】
【카이닉스 채권단 GF외의 업체 인수 입찰 허용.】
워낙 덩치가 큰 업체인지라 최대한 많은 이득을 위해서 채권단이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보지만, 국내에서는 당장 카이닉스를 인수할 여력을 가진 기업이 없다.
“언제쯤이면 인수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협상이 되겠습니까?”
“11월이면 채권단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고생해주세요.”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이 과거에는 카이닉스의 인수 협상 시기에 노조들이 인수 반대 시위를 엄청나게 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환영으로 반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 이제 배고플 만큼 굶었지. 이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비싸게 굴긴 힘들 거야.’
그렇게 2005년 2월 3일.
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웠던 기회.
이를 위해 게임 외적으로 노력해온 지난 세월이 결실을 맺었다.
GF그룹은 카이닉스를 품에 안았다.
121. 휴가~
2005년도에 들어서면서 GF가 카이닉스를 가지는 것은 배보다 더 큰 배꼽이라는 말이 쏘옥 하고 들어갔다.
“스텔라의 판매 곡선이 매우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개당 40만원이나 하는 스텔라가 월간 70만대씩 판매가 되고 있다. 2005년 1월 스텔라의 매출은 무려 2,800억. 심지어 그 판매량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어서 2분기에는 월간 85만대, 3분기에는 월간 100만대를 목표로 잡고 있을 정도다.
“좋네요. 올 해는 매출 3조원을 넘겨봅시다.”
레이컴의 스텔라가 굉장한 성과를 내면서 클로버 스팅 역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장세를 보여주는 중이다.
“2005년 1월 총 매출액 422억 중 152억이 음악 콘텐츠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스텔라의 판매 현황에 따라서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충분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래 클로버 스팅의 해외 사업 분야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중이었다. 해외의 게이머들은 대부분 클로버 스팅에서 유통하는 형태의 게임들에 익숙하지 못했고 느린 인터넷 환경 때문에 다운로드 콘텐츠에 대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전체적으로 매출이 많이 올랐네요?”
“네. 음악을 다운 받기 위해서 클로버 스팅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PC게임 쪽으로도 유입되면서 추가적인 수익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레이컴과 GF홀딩스. 이 두 곳의 수익만으로도 충분히 카이닉스를 건사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증명해내면서 GF그룹은 대한민국 벤처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미지를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반면에 게임 쪽에서는 새로운 대규모 프로젝트 대신 기존 게임의 관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업데이트 공지 - 얼어붙은 탑 : 데몬의 부활
안녕하십니까? 뉴 온라인입니다.
이번 업데이트인 ‘얼어붙은 탑 : 데몬의 부활’은 쿤륜의 자리를 빼앗으려다 쿤륜의 분노로 오히려 땅속으로 묻혀버린 데몬의 부활을 다루었습니다.
포이즌 쉐도우, 데빌 등의 기존 몬스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을 선보이는 몬스터와 함께 봉인에서 풀려버린 데몬의 등장!
총 8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탑은 모든 층이 기존의 몬스터들 보다 강력한 몬스터들이 등장하며, 탑의 최고 지배자 데몬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강력함으로 무장한 채 마지막 층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천 년의 봉인을 풀어내고 다시금 그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는 데몬을 물리쳐 영웅의 길을 걸으시길!』
『새로운 도시! 에피소드 10. 아이언블록!
나그네로크와 함께하시는 모든 수호자 여러분께 새로운 업데이트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이번 업데이트는 공업도시답게 강철을 때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여 아이언블록이라고 지어진 곳입니다.
☆ 새로운 몬스터들 등장!
기존의 슬라임 푸딩은 잊어라!
이제는 강렬한 금속의 영향을 받아 더욱 감하고 튼튼해진 무시무시한 메탈 푸딩이 등장합니다. 아이언블록의 몬스터들은 모두 공업도시의 영향을 받아 금속으로 된 튼튼한 육체를 지니고 있으니 사냥에 각별한 주의를 바랍니다.
☆ 몬스터만 추가하면 섭섭하지! 던전도 추가!
아이언블록이 공업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아이언광산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 광산에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등장해서 광부들을 괴롭히고 있다는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용사님들!
10번째 에피소드인 공화국의 첫 번째 시나리오를 지니고 있는 아이언블록은, 나그네로크에 다시 시나리오의 흐름이 재개된다는 것을 알리는 첫 번째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언블록에서 제작될 예정인 비공정과 함께 부상할 나그네로크를 기대하세요.』
결코 소홀하지 않도록 알차게 준비한 업데이트였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살짝 미묘했다.
- GF는 지들이 신작 내놓고 지들이 쫄리나 봄.
- 같은 회사라고 해도, 부서가 다르니까.
- ㅇㅇ 모르긴 몰라도 자기들끼리 회원 빼앗길까봐 엄청 조마조마할 듯?
- 에이. 그래도 같은 회산데 설마 그럴라고?
- 뭘 모르시네. 원래 높으신 분들은 자기들이 좋은거 만들면 다 경쟁사 꺼 빼앗아 오는 줄 알지 지들 파이가 나눠지는 건 줄 몰라요. 신작이 나오면 그 유저가 어디 제 3세계에서 뚝딱하고 생겨나는 줄 알 걸? 고생은 늘 밑에서 개발하는 개발자들 몫이지.
- 아! 그래서 이렇게 경쟁하듯이 신규 업데이트들을 해대는 거구나!
- 그래도 난 나쁘지 않음. 이번 얼어붙은 탑이 생기고 좀 할 맛이 나는 중.
- 나도 그거 업댓 되고 플레지2 하다가 복귀함.
- 나도 나그네로크 복귀할까 생각 중인데······.
- ㅋㅋㅋㅋ 무조건 복귀하셈. 이번 업댓은 복귀할 가치가 있음!
- 솔직히 GF가 실망시킨 적은 없죠. GF만큼 게이머들 마음을 잘 아는 게임사는 없을 듯?
- 일단 그룹 회장부터가 게임폐인으로 유명한데 뭐······.
- 게이머로 시작해서 저런 그룹을 일궜는데 폐인이라는 단어는 좀. 걍 매니아라 해줍시다~
- 근데 크라비티는 신작 준비 안 하나?
- 그러게? 넷젠도 한창 잘나갈 때 신작 내서 더 잘나가고 있는 거 아닌가?
예상했던 반응들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알지. 누구보다 잘 알아.”
그러니 신작을 출시했을 때 우리 고객들의 이주를 줄이고 타 게임의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GF 내부의 모든 게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신규 업데이트와 이벤트들을 해대고 있는 중이다.
‘크라비티의 신작도 나름 잘 준비되고 있는 중이고.’
그런데 계획대로 잘만 준비중이던 크라비디의 신작인 정령의 숨결을 발표하지 않은 이유는 엉뚱한 문제 때문이었다. 바로 대륙의 위엄으로 다이너스티가 지나치게 잘 나가고 있다는 거였다.
“나도 사랑해요 차이나를 외쳐야 하려나?”
본래 중국은 동양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서양의 판타지보다 동양의 판타지를 선호하는 기질이 강한데 다이너스티는 그 두 가지 분위기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게임이었다. 덕분에 출시와 동시에 뉴 온라인을 제치고 중국내 RPG 랭킹 1위를 달성해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북미에서도 동양의 신비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게임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대 이상의 수익을 안겨다 주고 있었다.
이는 숫자가 증명한다.
정식 출시 후 2개월 만에 국내로 치자면 3개월 이용권 개념인 패키지의 판매량이 무려 120만 장. 매출액으로 따지면 270억이다. 놀라운 건 여기서 특별한 실수만 하지 않으면 패키지의 경우는 못해도 2배 이상 따라오게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신작을 출시할 수는 없다.
‘크라비티 입장에서는 뭘 해도 부담이거든.’
그래서 당분간은 크라비티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신작에 대한 발표를 미뤄주기로 했다.
‘근데 참 이것도 이상하네.’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의 글들을 읽어보면 국내 게이머들이 평가하는 GF의 게임들은 평판이 우호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게임이라고 욕을 먹거나 하는 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타 게임에 비해서 그 빈도가 적은편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건 왜 그럴까?”
내게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지표가 있었다.
『2005년 1월 PC방 점유율
1위 플레지 1 20.8%
2위 뉴 온라인 19.4%
3위 플레지 2 14.4%
4위 카트 라이딩 10.6%
5위 메이비 스토리 9.3%
6위 다이너스티 8.2%
7위 매드맥스 아케이드 6.1%
8위 스페셜 어썰트 4.2%
9위 나그네로크 3.6%
10위 스타드래프트 2.3%』
넘지 못하는 아성!
그 이름은 다름 아닌 플레지다.
‘이야말로 미스테리야.’
지금의 뉴 온라인은 본래 역사속의 뉴 온라인과는 전혀 다른 게임이 되어 있다. 3D 캐릭터들을 최대한 활용한 싸움은 물론이고 오토 플레이어들의 악용을 최대한 막아내고 있었으며 기존의 타격감에 변화를 주어서 이전보다 훨씬 흥미롭게 바꾼 상태다.
그런데도 도저히 플레지를 능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욕을 많이 드셔도 플레지는 플레지인가?”
다이너스티도 온갖 극찬과 더불어 대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점유율을 보라! 오픈 베타 때에만 반짝 2위까지 했다가 지금은 5위 이내에 진입해본 일이 없다.
전 세계 매출로 비교를 하자면 플레지의 매출은 뉴와 나그네로크를 따라오지 못한다. 그럴진데 유독 한국에서만큼은 영 밀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알 수 없는 미지를 조우하는 기분에 빠져들었다.
다른 자료를 보면 아리송함을 더욱 커지게 된다.
『2004년 온라인 게임 매출 순위
1위 뉴 온라인 2150억
2위 나그네로크 1615억
3위 플레지 2 1200억
4위 플레지 1 1160억
5위 메이비 스토리 864억』
칭찬은 하지만 게임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사람들 하고는. 칭찬세례를 할 거면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던가. 이게 도대체 뭐냐?”
이 덕분에 생긴 오해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사람 들 중에는 GF보다도 엠씨 소프트가 더욱 큰 기업이라고 아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거였다.
‘에이! 몰라!’
이건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일단 플레지나 우리 뉴 온라인의 경우는 PC방에서 며칠씩 밤을 보내는 성인 고객들 덕분에 학생들이 하는 게임과 비교해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신규 유저들을 영입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내 목표 중 한 가지가 대한민국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게임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없는 것은 미뤄둘 필요도 있었다.
‘그래도 많이 변하긴 했어.’
일단 우리 GF의 엔진 덕분에 국내 중소형 개발사에서도 꽤 높은 퀼리티의 게임을 개발할 수 있었고 우리의 유통망을 통해서 해외 시장을 공략할 수도 있게 됐다.
국내 시장만 노리느냐, 해외시장을 함께 노리느냐는 엄청 큰 차이다.
‘일본이나 북미에는 진출하기 힘든 모양이지만.’
그래도 중국, 대만, 유럽에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마냥 무료봉사도 아니고. 우리도 소소하지만 월 10억 정도의 이익은 얻고 있으니까.’
그 덕분일까?
최근에 성과급이랍시고 내 통장에 꽂히는 돈이 너무 많아져서 소비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다.
자고로 돈은 물과도 같아서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통장에 고이 쌓아두기보다는 이를 어떻게 쓸 지를 생각해 보았다.
< 휴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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