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74화 (274/577)

< 일~! >

‘이해가 안 되는군. 왜지?’

성주환 팀장의 연봉은 8000만 원. 별다른 야근을 하지도 않고 신작 게임에 대한 기획 때문에 며칠씩 밤샘 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닌 조건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연봉을 주는 게임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그뿐이랴.

LON의 모든 개발은 우리 회사의 소속에서 진행되었기에 이 게임에 대한 권한은 전적으로 GF가 가진다. 물론, 나가서 게임 특성이 거의 비슷한 MOS장르의 게임을 개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LON이라는 게임은 만들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간다고?’

비록 수익성을 가지고 있는 게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LON이 가지고 있는 명성을 생각한다면 어지간한 조건으로는 성주환 팀장을 데려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도 회사를 나가려면 그 이유는 딱 하나뿐이었다.

“투자자가 나타났나 보군요.”

다른 게임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게임사를 만들어서 나가는 것. 이를 가능하게 해 줄  투자자를 구한 것.

이 물음에 가볍게 긍정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회장님께는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라도 LON의 제작을 맡겨주신다면 다 거절하려고 했습니다만, 회장님은 여전히 LON의 제작에 관심이 없으신 것 같군요.”

‘자신 있으니까. GF에서 개발한 최초의 실패작이자 내 커리어에 오점이 될 작품이 되리라는 자신이.’

가만히 있으면 다른 회사에서 알아서 카피작들을 출시할 것이고 그들의 실패를 발판 삼아서 적당한 때에 나서면 장르의 시작도 우리 것, 최초 성공작도 우리 것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거머쥘 수 있다.

이로써 MOS라는 장르의 상징적인 게임으로 탄생하게 될 것인데 굳이 나서서 실패의 사례가 되어 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 소리를 입 아프게 또 떠들어서 무엇하랴.

‘어쨌건 첫 경험이기는 하구나. 간부급이 찾아와서 퇴사를 하겠다고 하는 건.’

GF도 회사니까 당연히 매년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하고, 또 입사를 한다. 하지만 팀장급 이상의 퇴사는 성주환 팀장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매우 애석한 말이지만 나 역시 굳이 그를 잡으려고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게임에 대한 핵심 아이디어는 내 머리에 충분히 다 있으니까.’

성주환 팀장의 총괄 능력은 아쉽지만 대체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솔직한 말로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주어지기만 하면 얼마든지 수행해 낼 인재가 우리 회사에는 충분히 키워진 상태였다.

‘원한다면 응당 들어드려야지. 선택은 당신이 한 거야.’

그는 절대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아쉬울 게 없고 성주환 팀장은 손해만 보는 셈이다.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도 다 내 덕이니까 딱히 더 미안해 할 필요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전산으로 사퇴 결재 올려주시고 퇴직금에 관한 부분은 김지애 이사와 이야기 하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나의 인연이 매듭지어졌다. 그렇기에 남남이 된 그에게 나는 냉정하게 짚어주었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인데, LON에 대한 모든 권리는 GF에서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시지요?”

성주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내가 강하게 나가면 투자자에게 받기로 한 투자가 다 엎어질 수 있었기에 굳게 다문 그의 입가는 긴장감으로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냉정하기는 해도 상도의조차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파렴치한 놈은 아니었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MOS 장르에 대해서 우리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투자 받아서 최대한 잘 만드세요. 게임의 이름이나 캐릭터의 이름, 디자인은 새로 하셔야합니다. 그 정도만 지켜주신다면 우리 회사 출신인 성주환 팀장님과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내 말에 굳어졌던 그의 표정이 꽤나 밝아졌다. 내 조건이 매우 후하다고 생각해서이리라.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치 못할 것이다.

‘게임을 개발하는 동안은 즐거울 거야. 뉴 온라인과 나그네로크로 굉장한 부자가 된 넷젠과 크라비티의 간부들을 꿈꾸며 같은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겠지.’

가장 걱정했던 내 방해조차 없으리라는 확언을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할 것이다.

“바보 같이 가시밭길을 자초하는군.”

지금 MOS장르가 온라인으로 나오게 되면 90% 이상의 확률로 망한다.

‘냉정하게 볼 때, 이건 도저히 고객의 돈을 벌어들일 방법이 없어.’

스킨과 룬 같은 것으로 수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그런건 미래에나 통하지 현재의 시점에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

‘아직 사람들은 이런 분야에 돈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MOS의 장르가 현 시대에 이르다는 판단. 여기에 과금 정책에서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 장르는 형태상 적용할 수 있는 과금 정책이 딱 두 개였다. 첫째는 패키지로 판매하면서 판매금으로 수익을 올리는 방법. 둘째는 부분유료화를 통해서 외적인 요소로 수익을 올리는 방법이다.

‘바로 이게 문제지. 이 게임은 패키지로 판매하기에는 게임이 너무 가벼워서 고가의 정책을 가질 수가 없어. 그렇다고 저가로 팔아서는 절대 이익을 내기 어렵지.’

그렇다면 부분유료화 정책은 어떨까?

‘돈을 주고 사는 거라면 무조건 기능적이어야 해.’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야 한다 돌림노래를 부르며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성전 장르가 자리 잡으면서 기능 없이 스킨 효과만으로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이 차츰차츰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중의 일이지 지금 당장은 구매층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즉, 현 시점에서 기능 없이 지갑을 여는 사람은 없다고 보아야 옳았다. 그런데 게임은 출시했고 어떻게든 스킨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고객이 구매할 매력을 느끼도록 스킨에 기능을 추가한다면 어떻게 될가?

‘바로 게임 밸런스가 파괴되지.’

실제로 공성전을 메인으로 삼은 게임 중에서 이 시기에 출시한 대다수가 망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런 미래를 뻔히 알기에 ‘우리의 완성도를 믿고 명작은 언젠가 인정받는다는 굳은 각오로 한 번 도전해봅시다.’ 라는 멍청한 소리를 어찌 할 수 있겠는가? 걸작은 세상이 알아준다는 행복회로만 돌리고 말이다.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 그동안 노력은 많이 했으니 잘 되기를 기원은 해드리리다.’

희망에 가득 차서 사무실을 나가는 성주환 팀장의 모습이 나로서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

그 사람이 어떤 존재감을 가졌는지 가장 크게 알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 바로 곁에 없는 순간이었다. 없어서 티가 확 나느냐,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느냐에 따라서 이를 크게 실감할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간부였던 성주환 팀장의 사퇴는 어땠을까?

‘일이 생기긴 뭐가 생겨. 무난하게 끝이지.’

그의 사퇴는 아주 빠르게 처리했고 회사에는 일말의 동요조차도 없었다.

‘괜히 줄줄 세던 월급 하나가 세이브 된 기분이야.’

사업적으로 나간 분야도 아니고 그저 남의 게임에 기생해서 유즈맵으로 개발만 하던 팀이라서 인수인계도 딱히 필요없었다. 그냥 사직서 통과하고 다음 날로 성주환 팀장과 GF는 결별했다.

그리고 그가 퇴사하고 일주일째 되던 날, 익숙한 이름이 적힌 기사가 올라왔다.

【GF의 성주환 MOS 총괄 팀장. 둥지를 떠나 새로운 둥지를 만들다.】

그에게 붙은 투자자들이 꽤나 열정적인 것인지 참으로 발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이제 막 회사를 차렸을 거고 아직 개발자들도 모집해야 하는 상황일 텐데 벌써 기사부터 나온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기사에 대한 온라인의 반응이었다.

- 뭐야? LON 개발자야?

- 이런 대박 개발자가 회사를 그냥 나온다고?

- GF답지 않은데? 이런 갓겜이면 돈도 많은 회사니까 그냥 게임으로 출시하면 되잖아.

- 그래봤자 유즈맵에서 인기 있는 거잖슴. 다른 회사면 침을 질질 흘리겠지만 GF니까 그냥 허접하게 보는 거 아님?

- 근데 솔직히 이게 유즈맵이 아니라 제대로 나올 거 생각하면 다들 기대 엄청 되지 않아? 내가 보기에는 GF에서 감 떨어진 거 같은데? 그것도 아주 잘 익은 홍시가 말이야.

- 노노. 다들 잊은 모양인데 GF 회장이 이쪽 감각은 세계 최고라고 알려진 사람임. 그런데도 굳이 이런 상황이 된 거 보면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을 거임.

- 너야말로 노노. 딱 보면 모르냐? 잘 될 거 같으니까 저 팀장이란 인간이 통수 치고 나와서 회사 차린 거잖아.

GF에서는 딱히 입장 표명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였다.

‘잘해보세요. 또 누가 압니까, 내 예상대로 우리의 초석이 되어줄지 아니면 멋진 성공신화의 주역이 될지 말입니다.’

일말의 반전을 기대하며 나는 남이 된 성주환 팀장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대신 집중한 것은 다른 부분이다. 바로 오래 전, 내가 영화 투자를 비롯하여 자금을 다각도로 마련하고자 결정하게 만든 크나큰 계기에 대한 것이었다.

【GF. 카이닉스의 새로운 주인 되나?】

이건 2004년 10월에 나온 기사다.

“열심히 돈 번 보람이 있어.”

드디어 내가 반도체 업계의 공룡 중 하나인 카이닉스를 먹을 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GF 홀딩스가 나섰고 카이닉스의 경영권부터 주식들을 매입하는 방향으로 협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채권단에서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채권을 정리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언론에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이닉스 하나의 기업가치가 우리 그룹 전체의 기업 가치와 비슷한 수준이니 저들이 볼 때 GF가 카이닉스를 인수하는 일은 통통배에 고래를 싣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이러면 고래와 함께 배도 침몰하게 된다는 분석이 곧 세간의 평가였다.

하지만 저들은 여전히 게임이라는 분야와 우리 회사를 우습게 여기고 있었다.

‘우리 회사가 1년 만에 5배 이상 성장했다는 부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어.’

그들의 말대로 지금은 비슷할지 모른다.

하지만 1년 후에는 어떨까?

그리고 2년 후에는 어떻게 될까?

자기 몸통만한 고래를 실은 통통배는 고래를 담아둘 거대한 수조를 가진 기업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스닥에 상장했으니까 망정이지 국내증권거래소 같은 곳에 상장했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했을 거야.’

짐짓 미래정보를 바탕으로 불패의 성공만을 이뤄내고 있는 놈이 바로 나였다. 카이닉스라는 거대한 만찬을 준비 없이 시식할리 만무하다. 그렇기에 나는 단호히 밀어붙였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소화하기에는 너무 큰 회사라는 것을 인정은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거래는 꼭 성사시켜야 합니다.”

“정재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과연 GF가 카이닉스와 어떤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느냐?’ 와 ‘과연 메모리반도체 회사가 요구하는 투자규모를 감당할 수 있느냐’의 부분입니다.”

곽지원 부사장의 말은 달리 보면 이러하다.

“그 두 가지만 증명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인수 비용은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긴, 애초에 인수 비용보다 투자금이 훨씬 큰 거래니까.’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3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카이닉스는 그 특성상 매년 1조원 이상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만 유지할 수 있다. 이건 우리 그룹에서 1년에 1조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업체는 레이컴 하나일 정도로 엄청난 자금이다.

대외적으로 우리가 그런 자금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그룹 내의 모든 사업을 중단하고 카이닉스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 분석은 널리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했을 뿐이다.

“설득이 가능하시겠죠?”

“비공개로 하고 있던 GF의 정보 대부분을 공개한다면, 가능합니다.”

“상관없습니다. 공개하도록 하세요.”

세상이 잘 몰라서 그렇지 나도 이미 공룡이다.

< 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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