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65화 (265/577)

< 그래, 이거야 >

하지만 간발의 차로 천국에 오른 사람이 있다면 간발의 차로 지옥에 떨어진 이가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의 뒤에 있던 사람이 노발대발했다.

“뭐라고!? 지금 1시간을 기다렸는데!”

“대단히 죄송합니다. 드래곤 소울의 1차 물량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조속히 2차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보겠습니다.”

“뭐야!? 말도 안 돼!! 2시간을 기다렸다고!!”

“죄송합니다. 거듭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빨리 수량 더 풀어!”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드래곤 소울은 더 이상 남아 있지가 않은 관계로···”

군중의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아키비트를 씹어 삼킬 분위기로 달아올랐다. 그러나 재고가 다 떨어졌는데 아키비트라고 해서 딱히 무슨 해결책이 있겠는가. 직원으로서는 계속해서 사과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울분을 표출하는 고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아키비트의 사장이 나서서 모든 직원과 함께 대대적인 사과를 함으로써 소요가 잦아들었다.

“비록 드래곤 소울은 재고가 모두 소진되었지만, 저희는 충분히 훌륭한 타이틀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 게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원하는 게임을 구매하지 못해서 화가 난 손님들의 화를 푸는 것도 보통일이 아닐 텐데,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른 게임을 판매하는 영업능력이라니 말이다.

‘하지만 나랑은 상관없지. 나는 승리자니까.’

안도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젓고는 아키비트를 벗어났다.

‘당장이라도 드래곤 소울을 플레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지금은 너무 피곤했다. 오늘처럼 물량이 부족한 날은 게임을 구매했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다. 자신처럼 체격이 작은 사람은 잘못 걸렸다간 겨우겨우 구매한 게임을 강탈당하기 일쑤인 곳이 또 아키하바라다.

덕분에 안 그래도 피곤한데 집에 오는 내내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눈꺼풀이 천근만근이 되어버렸다.

‘드디어 집에 왔구나. 이제야 마음 놓을 수 있겠어.’

수업시간 내내 드래곤 소울을 플레이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었다. 그래서 오늘 수업은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늘부터 내 머리는 드래곤 소울을 위해 비워둔다!’

안도는 긴장과 기대가 가득 담긴 얼굴로 드래곤 소울을 실행했다.

“캬아! 장엄해! 멋있어!”

그저 음악만 들어도 이 게임 속의 주인공이 얼마나 비장한 마음으로 세계를 위해 싸울 존재인지가 느껴졌다. 그런데 거기에 눈을 황홀하게 만들어주는 영상이 더해지니 이건 추가로 이야기할 것이 없는 수준인 것이다.

‘그럼! 게임 스타또!’

새로운 게임을 선택하자 캐릭터를 직접 꾸밀 수 있는 화면이 나온다.

‘남자라면 당연히 미소녀지! 어리석은 닝겐들이 가끔씩 게임 캐릭터는 이용자의 아바타이기 때문에 남자라면 남성 캐릭터를 선택해야 한다는 무지몽매한 소리를 지껄인지만 이게 다 모르고 하는 헛소리라고.’

안도 쿠라노스케의 철학은 확고부동하다.

‘내가 내 눈으로 게임을 하는데! 게임 속에서마저도 땀 냄새가 풀풀 나는 놈들을 보고 있어야겠냐?! 무조건 미소녀! 미소녀가 최고시다!’

애정을 듬뿍 담아서 온 힘을 다해 커스터마이징에 집중했다. 어언 2시간이 흘렀고 그 결과, 최대한 호리호리하면서 긴 생머리가 내려오는 미소녀 캐릭터를 완성하는 것에 성공해냈다. 세계를 구할 그녀의 이름은 아즈미였다.

‘태생은 로데론의 귀족이지.’

귀한 여성이니 아낌없이 주고 키워야 한다. 거지나 사냥꾼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능력치를 안겨주었다.

“아즈미 짱! 우리 함께 괴물들을 무찌르러 갑시다!”

보고만 있어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게임을 시작했다.

「아주 먼 고대. 빛은 물론이고, 해와 달조차도 아직 태어나기 전···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상에는 용과 노예들뿐이었다···」

황홀할 정도의 영상을 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거대한 드래곤을 사냥하는 드래곤 슬레이어는 모두의 로망이지!’

거대한 드래곤에 비하면 한참이나 작은 왕들. 그러나 그런 왕조차도 인간에 비하면 거대한 존재라는 것에서 압도적인 무언가를 느꼈다.

그때였다.

“뭐야!? 우리 아즈미 짱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약간은 까무잡잡하면서도 탄력이 넘치는 탱글탱글한 피부.

거기에 유려한 곡선의 미를 제대로 살려주면서 힘들게 만들어낸 아즈미는 지금 쭈글쭈글한 피부에 좀비 같은 몰골을 보이고 있었다.

‘이건 아냐! 이럴 거면 대체 커스터마이징이 왜 있는 거야!’

사랑하는 그녀가 300년은 족히 됨직한 세월의 풍파를 온몸으로 때려 맞았나 보다. 하지만 분명히 회복할 방법이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안도는 다시 패드를 잡았다.

‘일단은 진행을 해보자.’

대부분의 게임이 초반에 그렇듯이 드래곤 소울 역시도 「녹이 슬고 이가 빠진 짧은 검」이라는 허접한 칼 하나만 들고 시작했다. 그러나 안도는 아즈미의 특별한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즈미 짱! 공격!”

숙련된 게이머인 안도는 두 마리의 좀비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며 냉소를 지었다.

‘GF의 게임이 어렵기로 유명하다더니만 역시 ZBox나 하던 놈들의 엄살이었어. 하긴, 그놈들이 게임에 대해 알기는 뭘 알겠어?’

그의 콧대가 더욱 높아졌다.

‘어디 보자 그러니까 이 모닥불이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구나?’

거기에 덤으로 체력도 회복된다는 아주 훌륭한 정보를 취득했다.

몇 대 맞으며 떨어진 체력을 모두 채운 뒤 그는 거침없이 전진을 선택했다. 그러다 아직 게임의 맵에 익숙하지 못한 것인지 약간의 방황했고 3마리의 해골이 일어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몹들이 괜히 있을 리 없으니까 이쪽이 진행 루트라는 거군. 좋아. 새로운 재물에게 우리 아즈미 짱의 위대함을 알려주자!’

조금 전 두 마리의 좀비를 손쉽게 해결했기에, 한 마리가 더 늘어났다고 크게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자신감은 한 줄의 메시지로 돌아왔다.

- 꺄아악!

「You died」

여성의 비명과 함께 화면이 검회색으로 바뀌었다

“어어? 어라?”

아즈미가··· 아즈미가···!

죽어버렸다!

‘그냥 맞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하잖아!?’

아찔함을 추스르며 숙련된 게이머로서 안도는 상황을 파악했다. 좁은 복도에서 선공이 들어오니 그걸 제대로 피하지 못했던 탓이다.

‘맞으면 경직이 돼서 연타를 허용하게 되는 거구나. 좋아. 이번에는 제대로 보여주지.’

길을 헤매다가 해골이 전부 일어난 뒤에 싸우게 된 것이 패착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일어나는 동안 재빨리 때려잡으면 훨씬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 으윽!

「You died」

“··· 저기요. 아니 왜! 뭔데! 왜 죽는 건데!”

해골이 몸을 채 일으켜 세우기 전에 공격한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한 녀석을 공격하는 동안 다른 녀석들이 일어나서 공격을 해오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즈미가 또 차가운 바닥에 누워버렸다.

‘그렇다면! 몽땅 한 번에 몰아서 때려 잡아주마!’

고도로 숙련된 게이머의 실력을 보여주기로 작정하고 도전했다.

- 꺄악!

「You died」

“안 돼! 아즈미 짱!”

재도전!

- 아흑!

「You died」

“으아아!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아주 극 초반이었다. 아니, 이건 초반이라고 말을 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진행도다. 그런데 도저히 이 난관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You died」

「You died」

「You died」

「You died」

회피 위주로 해봤더니, 피하다 죽고 말았다.

공격 위주로 해봤더니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하고 나면 늘 그게 마지막 공격이다.

“으아아!”

이건 무슨 북쪽의 주먹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너는 이미 죽어있다.’라고 몬스터가 꾸준히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화가 난 안도는 자신도 모르게 패드를 집어 던졌다.

‘아차! 패드 고장 나면 어쩌려고!’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놀란 그가 조심스레 패드를 집어 드는데··· 그 옆에 드래곤 소울의 타이틀 케이스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는 의미심장한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드래곤 소울 : 죽을 준비 되셨습니까?」

“뭣? 이게 타이틀 이름이라고?”

드래곤 소울이 중요하지, 그 옆의 부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제대로 보지 않았는데 이건 부제부터가 아주 심각한 것이 아닌가!

‘도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들이 이딴 글을 써 둔 거야? 젠장! GF가 변태처럼 어렵게 만든다더니··· 그게 이런 거였었어?’

많은 ZBox의 게이머들이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든 이겨내고 싶었다. 그러나 몇 차례 「You died」를 마주했고 그는 슬프게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하지만 아직 자신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안 되겠어··· 인터넷에서 공략 정보를··· 크흑! 찾아볼 수밖에!’

그 자신도 나름대로는 게임 공략을 꽤 많이 올려두었기에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남이 올린 공략을 봐야 한다니 그 사실이 너무 분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아즈미를 반복되는 죽음에 내몰 자신이 그에게는 없었다.

집단 지성에 기대어 안도가 드래곤 소울 공략을 검색했다. 곧 그와 같은 피해자들의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이 게임 진짜 미친 거 아냐?

-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해골 3마리를 죽일 수가 없어!

- 전 아직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 게임 개발자가 미친 거 같아. 미치지 않고서야 이딴 게임을 만들 리가 없다고!

저들의 게시글들을 보니 한편으로 위로가 되었다. 자신만 이상한 게 아니라는 소속감과 평등하다는 의식 덕분이었다.

‘그래. 내가 이 정도인데 저 무지렁이들은 오죽하겠냐?’

딱히 그들과 안도의 진행도에서 차이점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에게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압도적으로 높은 조회수와 댓글을 자랑하는 한 글이 보였다.

- 친절하게 죽을 준비가 되셨냐고 먼저 물어보는 게임, 드래곤 소울.

제목만으로는 딱히 눈길을 잡아끌 것이 없었지만 이 게시물은 무려 조회수 1만을 훌쩍 넘겼고 댓글 역시 50개를 가뿐하게 넘긴 상태였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일까?

안도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글을 클릭했다.

- 초반 해골에 막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다들 무쌍에 익숙해지셔서 주인공은 ‘당연히 다수 전에 뛰어난 능력을 보유할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하시기 때문인데요. GF의 게임은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 무조건 다수전을 피해야 합니다. 1대 1을 엄수해야 됩니다. 해골 3마리와 싸운다? 안 됩니다. 그냥 1마리가 일어나는 거리까지만 다가갔다가 바로 빠지세요. 그렇게 유인하면서 하나씩 잡으셔야 합니다!

공략법은 초반 해골에 대한 내용에 불과했다. 그러나 달랑 이 한 가지만을 가지고도 게이머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만큼 드래곤 소울의 플레이어들이 이 구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안도 역시 그 해법을 찾아 검색한 마당이지 않던가. 그리고 지금은 방법을 찾아냈고 말이다.

“아즈미 짱! 내가 해골을 족칠 방법을 찾아왔어! 다시 가자!”

모를 때는 그토록 어렵던 녀석들이 알고 나니 너무나도 쉽게 처리된다. 공략글의 내용대로 안도는 1마리씩 끌어내어 사냥했고 그 결과, 난적이던 해골 3마리를 모두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조각난 뼈 더미를 보며 스스로 어이없음을 느꼈다.

‘멍청하기는. 이 간단한 걸 도대체 왜 떠올리지 못했던 거냐?’

< 그래, 이거야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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