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61화 (261/577)

< 맛있게 매워야지 >

「내 정체? 당신처럼 탈출하려고 했는데 저 마수 때문에 도망칠 방법이 없었지 뭐야? 그러다가 당신이 마수를 처치했으니, 나도 이제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거지.」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도움을 줬으면 하는데··· 어디 보자 ···아! 맞아. 그게 있었지.」

「마침 내게 이 수용소를 벗어날 좋은 친구가 있는데, 어때?」

- 고개를 끄덕인다.

「좋은 선택이야! 자. 이쪽으로 따라오라고!」

갑자기 등장한 인물은 아무래도 게이머에게 현재 주변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설명충의 느낌이 강했다. 해당 NPC는 불사자의 사명부터 시작해서, 드래곤과 거인 그리고 인간들의 관계에 대한 것들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미주알고주알 떠들었다.

‘파편적인 스토리라고 내가 분명히 짚었었는데, 역시나 제대로 이해를 못 했던 거구나.’

단순히 게임만이 아니라 어느 분야라도 창작자는 자신이 창작한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이 창작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떻게든 설명하고 싶어 하는데, 이 NPC의 역할이 딱 그것이었다.

잠시 더 플레이한 뒤 견적을 내렸다.

“다 뜯어고쳐야 해.”

게임을 멈추고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가 의도한 방향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 오면서 별다른 함정은 만나지도 않았다. 이 게임의 매력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함정인데, 진짜 너무 단순한 함정을 제외하고는 조금도 참신한 것이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어려운 게임을 만들려고 하니까 그냥 단순하고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난이도를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겠지.’

거기에 보스는 덩치고 크고, 위압적으로 만들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한 방에 그냥 죽어나가게 만들 수는 없으니 적당한 공격력을 가지게 만들었고 이게 문제로 작용했다.

‘크니까 어떻게든 사각을 파고들 수 있었지. 이러면 체력이 기존의 몬스터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봐야 그냥 샌드백일 뿐이야.’

그냥 체력만 높을 뿐, 기존 몬스터가 더 위협적인 이상한 밸런스가 된 것이다.

‘이후의 스테이지도 문제점 투성이야. 맵 구성이 너무 단순하고 길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누가 봐도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느껴질 정도야.’

한정적인 오픈월드 형태를 요구했었다. 그런데 한정적으로 만들려고 하니 오픈월드의 개념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이러면 헤매거나 찾아다니는 수고 자체를 할 일이 없어진다.

사실 꿈속 미래의 원작 게임 역시도 스테이지 2의 도입부에서 많은 게이머들이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어디로 가라고 알려주는 NPC가 없으니 길을 잘못 선택하거나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다반사였거든. 그 탓에 중반부에 가야할 길로 쪼렙이 들어섰다가 끔살을 당하기도 했고.’

물론 그런 시스템이 꼭 좋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길을 헤매도록 만들어서 이 게임의 불편함에 익숙할 수 있도록은 해줘야 하는데, 우리의 드래곤 소울은 찾아내는 게임이 아니라 맞아 죽어가면서 전진하는 게임이 되고 말았다.

“회의해야겠네.”

흡사 요리책에 적힌 ‘갖은 양념을 적당히 넣어’라는 말처럼, 내가 요구한 사항과 직원들이 받아들이는 정도에 차이가 있었다. 이걸 바로 잡아야겠다.

***

드래곤 소울의 시험판을 직접 플레이하고 난 뒤 소집한 회의.

제작팀의 핵심멤버들은 칭찬 들을 것이 마땅하다는 양 기쁘게 웃으며 자부심에 찬 얼굴로 착석해 있었다.

‘그래 기존의 한국 게임과 비교하자면 정말 자신감이 넘칠 만도 하지.’

하지만 우리는 보통의 한국 회사가 아니다. 무려 몬스터 프레데터스와 신과 같이를 만든 게임사이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개발자들의 반열에 진입하는 무렵이었다. 이런 이들이 고작 이런 결과물을 가지고 자부심을 내세우면 안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날 선 목소리로 포문을 열었다.

“회의 시작하기 전에 질문부터 하겠습니다. 개발자 중에서 드래곤 소울의 시험판을 플레이해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자리에 앉아 있는 모두가 손을 들어 올렸다. 뭐 자신들이 개발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면서 문제점은 찾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이건 당연한 거지 칭찬할 거리도 아니다.

다음 질문을 던졌다.

“좋습니다. 여기 계신 열다섯 분 모두 플레이를 해보셨군요. 그렇다면 여러분 중에 스테이지 1을 클리어하신 분이 있으십니까?”

거짓말처럼 전원이 손을 내렸다.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하긴 내가 겨우겨우 클리어를 했을 정도인데 아무리 게임을 좋아하는 개발자들이라고 해도 자력으로 클리어하기에는 힘들었겠지.’

문제는 이거다. 지금 자신들이 게임을 만들어놓고 그 전체도 아니고 스테이지 1. 이것 하나만 클리어를 한 사람을 찾는 데도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들은 자랑스러운 표정이다.

‘미쳤구나.’

아무도 클리어를 하지 못했다는 것. 이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 정신 나간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내게서 긴 한숨이 나오자 몇몇 개발자들이 그제야 무언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것을 눈치챘다. 그 애매한 분위기에서 내 질책이 시작됐다.

“이게 지금 정상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네?”

“게임을 개발한 핵심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데 그중에 단 한 명도 스테이지 1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으로 생각하느냐, 이겁니다.”

억울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게··· 저희는 회장님께서 높은 난도의 게임을 원하신다고 하셔서 이를 반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라고 하시면······.”

“그랬지요. 어려운 게임, 쉽게 깰 수 없는 게임 말입니다. 하지만 그게 무지막지한 몬스터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 그게 대체 무슨···”

“저야말로 되묻고 싶군요. 대관절 왜 어려우려면 몬스터의 체력이 높거나 방어력이 높거나 혹은 공격력이 높아서 한 대 맞으면 죽는 것만 생각하는 겁니까? 이런 방식으로만 생각하니 지금 같은 결과물이 나오는 거 아니냔 말입니다!”

“어··· 그건······.”

“저기··· 회장님. 몬스터를 사냥하기 어려워야 게임이 어려운 것 아닙니까?”

여전히 모른다는 기색이다.

‘그래. 답답하니까 그냥 다 내 탓이라고 해버리자.’

지금까지 아무도 개발하지 않았던 방향의 게임을 제시해놓고서 이런 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았던 내 잘못이 크다. 주류의 형태가 아닌 방식을 선택해놓고 스스로 하게 만들어선 안 되는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서는 확실하게 이미지를 넣어주기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했다.

‘마이코닉스에서 아주 좋은 걸 배워왔지.’

스토리 북.

당연하지만 드래곤 소울에도 스토리 북은 존재한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스토리 북은 그런 게임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종류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원하는 전투 방식을 애니메이션 화해서 만들어낸 책이다.

초등학교 때 심심해서 그리던 놀이가 있지 않던가? 책에 그림을 그려놓고 빠르게 넘기면 만화가 되는 종류 말이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쫄라맨과 같은 해골로 만화를 그렸다.

‘그래도 애니메이션처럼 만들려니까 이게 엄청나게 노가다더라.’

덕분에 손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말이다.

‘회장님이 이런 거나 그리면 모양 빠지잖아.’

손재주가 없기도 했고 말이다. 아무튼, 이 준비물을 선보이며 질책하듯 말했다.

“단순히 몬스터가 강해야만 난도가 올라가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맵과 몬스터의 AI를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이런 방식으로 게임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다들 화면을 주목하세요.”

「드래곤 소울 1화」

화면에는 드래곤 소울이라는 이름의 스케치북이 나왔고, 잠시 후 화면에 누군가의 손이 나오면서 스케치북을 빠르게 넘겼다.

머리 위에 주인공이라고 쓰여진 해골이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이 나타난다.

‘여기서 직접 스케치북을 드르륵 해서 보여주면 폼이 안 나니까 미리 영상으로 만들었지.’

역시나 애써준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뿐이다.

손쉽게 초반의 잡몹을 물리친 해골은 자신감 넘치게 다음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계단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잡몹이 커다란 쇠 구슬을 밀어버리면서 주인공은 구슬에 깔려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해롱해롱 거리는 사이에 쏘아지는 불화살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익숙한 문구를 선물했다.

「You died」

“아!”

외마디 감탄사가 들리는 사이, 첫 번째 스케치북에 있는 내용이 모두 끝났다.

드래곤 소울 2화!

죽음에서 부활한 주인공은 조금 전의 함정을 예측하고 쇠 구슬을 피해 도망쳤다. 하지만 쇠 구슬이 내려오는 속도는 주인공보다 빠르다.

「You died」

다시 도전!

이번에는 거듭된 죽음을 통해서 쇠 구슬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냈다. 그러함으로써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는 장면이 나오자 제작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수가!”

“아무것도 모르고 플레이하면 죽을 수밖에 없지만, 알고 나면 또 할 만해지는 어려움!”

“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실 수가 있는 거죠?”

“항상 저희보다 몇 발자국 앞에서 생각하고 계셨던 거군요!”

놀라우리만큼 극적인 반응이지만, 나는 속지 않는다. 저런 호응은 이전에 설명했을 때도 있던 정도니까.

‘아주 약간 잡은 것일 텐데, 그 정도로는 부족해.’

아부는 그만하고 집중하라며 말했다.

“총 5화로 제작된 영상입니다. 나머지 영상도 전부 본 후에 대화하도록 합시다.”

“네!”

처음 영상을 틀었을 때의 제작진은 ‘대체 뭘 보여주려는 거지?’ 이런 얼굴을 하고는 ‘회장님 심기가 어지러운 거 같으니 각 잡고 보자.’ 이런 모습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어떤 참신한 전투가 또 나올까?’의 얼굴로 기대감을 보였다.

「드래곤 소울 3화」

몇 가지 위기를 극복하면서 초반의 허접한 쫄라맨이 아닌 나름대로 갑옷을 장비한 쫄라맨이 된 주인공.

이제는 더욱 공격적으로 잡몹을 처리하며 전진한다.

앞으로 향해 쭉 뻗은 기다란 복도 구간. 앞서 함정에 당해보았던 쫄라맨은 혹시나 또 쇠 구슬이 나오지는 않을까, 건너편의 해골 궁수에게 집중하면서 좌우 경계 역시 잊지 않았다. 하지만 쇠 구슬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던 그때, 불쑥 튀어나온 무언가에게 뻗 걷어차이고 만다.

“깜짝아!”

“아! 놀래라! 뭐였죠 지금?”

공포영화에서나 나오는 연출방식이다.

정면의 적을 주시할 수밖에 없도록 해놓고, 한창 긴장감이 감도는 동안에는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한다. 그리고 사람인 이상 긴장감이 풀릴 수밖에 없을 즈음,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다른 몬스터가 등장하는 것이다.

「You died」

몬스터에게 뒤를 내어준 주인공은 또다시 허망하게 유다희 양과 재회하고 말았다.

첫 1화와 2화는 이후 주인공이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지만, 이제는 쫄라맨의 극복 과정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이건 공략집이 아닌 설계에 대한 영감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철저하게 주인공을 속인 뒤에 죽일 수 있느냐, 이 부분을 집중해서 보여주었다.

“으아아. 저렇게 죽으면 진짜 열 받아서 패드 던질 거 같은데···”

“미쳤다. 이건 진짜 미친 아이디어입니다.”

궁수를 처리하러 갔더니 그 앞에 숨어있던 병사가 절벽으로 밀어서 쫄라맨을 떨어뜨렸다.

아이템이 보여서 희희낙락하며 먹으러 갔더니 아이템을 줍는 사이에 몬스터가 기습했다.

만만해 보이는 한 놈만 있기에 자신감 넘치게 잡으러 갔더니 사실 거기에 떼거리로 모여 있던 몬스터들이 삽시간에 덮쳐왔다.

< 맛있게 매워야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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