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60화 (260/577)

< 맛있게 매워야지 >

아이템이 구질구질해서 나온 불만이 아니다. 어차피 튜토리얼 아이템이니 부러진 검을 주나, 단검을 주나, 이빨 빠진 검을 주나 상관없다.

문제는 아이템의 설명이다.

‘이 게임의 핵심은 아이템과 NPC들의 멘트란 말이다! 단서가 숨겨져 있어서 찾아서 해석하고 모으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이게 무슨 식상하고 전형적인 멘트인지······.’

그래. 맨 처음에 가지고 있는 아이템에 게임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뭐가 있겠나?

다음에 얻는 아이템 설명을 기대하며 전투를 확인해 보았다.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 망자들.

좀비와 같은 모습으로 허우적대는 녀석들은 초반 잡몹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아주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가볍게 두 마리의 망자를 처리한 뒤 문을 열고 복도를 벗어났다.

어둑어둑하던 경치가 어스름한 새벽녘으로 밝아지며 반짝이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Tip. 맵의 곳곳에는 모닥불이 존재합니다.」

「불은 곧 이 땅에 내려진 작은 태양. 모닥불을 이용해 피해를 회복하세요! 사망 시, 모닥불에서 부활하니 원활한 진행을 위해 모닥불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 주의사항 : 모닥불을 이용할 시, 처치한 망자들이 부활합니다.』

“으아!”

도대체 이런 친절함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이건 드래곤 소울이! 유다희를 수백 번 만나야 깰 수 있는 그 게임이 아니야!’

점차 내가 기대한 완성품과는 멀어지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나는 반포기 상태로 ‘얼마나 실수했는지 몽땅 확인해주마.’라는 심리가 되었다. 눈물을 머금고 체크한 뒤 친절한 팁에 따라서 모닥불을 이용했다.

세이브 포인트를 확보하고 게임을 진행한다.

‘이쪽 길인가?’

드래곤 소울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게임의 내용을 판박이처럼 가져다가 넣었으나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원래 게임을 모르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 기억 속 분위기와 매우 닮았으면서 전반적인 외모나 지형 등은 원본과 상당히 달랐다.

‘그래서 오히려 더 길 찾기가 어려운 느낌이야. 아는 듯 모르는 게임이라서 정말 헷갈리는군.’

그래도 게임을 할 때 특히나 잘 발휘되는 감이 어디 가겠는가? 금방 익숙해졌고 딱히 길을 잃지 않은 채 다음 지역으로 넘어갔다.

다음에 마주한 몬스터는 제법 장비를 갖춘 병사였다.

이전에 잡은 좀비 두 마리는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거지와 같은 모습이었다면, 이번에 만난 녀석은 나름대로 가죽 갑옷에 그라디우스 따위의 무기로 무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초반의 잡몹 아니랴.

아무리 어려운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초반부터 기가 죽어서 게임을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원판 게임도 이런 몬스터와의 1대 1 조우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편이었다. 이보다는 숨어 있다가 등장하는 놈들 혹은 2대 1이나 그 이상의 적과 조우했을 때가 위협적이다.

그런데 우리 개발진은 여기서 내게 반전을 안겨주었다.

- 으어억!

「You died」

“엥?”

죽었다. 그것도 게임을 시작하고 딱 세 번째로 만난 잡졸에게 죽고 말았다. 어떻게 죽었는지를 따지고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아니 무슨! 내가 때리면 상대는 5씩 다는데 나는 한 방에 빈사 상태가 돼?’

맞으면 딱 일격에 체력이 절반 아래로 훅 떨어졌다.

그뿐인가? 검을 휘두르는 속도도 나보다 일반 잡 몬스터가 더욱 빨랐다. 그 때문에 사과 깎기마냥 야금야금 사냥할 수밖에 없었고 절반까지 적의 체력을 깎았을 때, 나는 한 번의 실수로 1격, 연이어지는 2격에 맞아서 유다희양 과의 첫 만남을 하고 말았다.

이건 압도적인 스펙 차이에서 비롯하는 일이다.

‘혹시 초반에 아이템을 놓친 게 있나? 예를 들면 갑옷이라거나 제대로 된 검 같은 거?’

잡몹을 만나기 전에 제대로 된 무기를 획득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모닥불에서 부활한 뒤에 이 잡듯이 맵의 모든 곳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무기나 방어구는 커녕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망자들에게 숨겨진 아이템이라도 드랍되나 싶어 학살했는데도 이 녀석들은 소울이나 줄 뿐, 그 어떤 아이템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어려운 게임을 만들라고 했더니, 설마 이런 식으로 한 거였어?”

빈약한 장비로 어떻게든 잡고 가라는 뜻인가 보다. 이 역시도 체크해두고 다른 도리가 없으니 그냥 사냥해 나가기로 했다.

- 아악!

「You died」

- 크헉!

「You died」

- 으허억!

「You died」

“우와. 내 컨트롤로도 이렇게 죽어 나간단 말이지?”

환장할 노릇이다. 이런 극 초반에 이 정도로 막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몬스터의 방어력과 공격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적에게 맞으면 경직이 되면서 연타에 당할 확률이 높아지는 데 반하여 적 몬스터는 경직이라는 요소가 없기에 발생한 일이었다.

‘쟤가 나보다 덩치가 큰 것도 아닌데, 왜? 나만 경직이냐?’

몬스터 프레데터스의 몬스터들도 경직되는 일은 거의 드물다. 당연하지만 그곳에 나오는 몬스터들은 거대하고 강력한 괴수들이니까 누구다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 소울에서 내가 상대하는 이 몬스터는 딱 봐도 비쩍 꼴아 가지고 플레이어의 캐릭터보다도 훨씬 빈약하게 생겼다.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이 얇실하다. 그런데도 막상 싸워보면 저놈이 아니라 내가 툭 맞고 나자빠지는 격이었다.

“초반 잡몹을 잡으면서 대회 결승을 치르는 것마냥 집중해야 한다니.”

오기가 생겨서 그만둘 수 없다.

심기일전!

초능력이나 다를 바 없는 반응속도를 살려서 조작 하나하나에 혼신을 다했다.

‘이크!’

놈의 그라디우스가 허공을 갈랐다.

간발의 차이로 회피에 성공!

다음은 내 공격!

‘죽어라!’

제대로 등을 잡고 치명타를 입혔다. 그러나 끼친 피해는 고작 15.

‘15가 어디냐. 평타는 고작 5잖아.’

추정되는 놈의 체력은 80이다. 열심히 공격해봐야 가랑비에 옷 젖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가랑비를 계속 맞으면 결국 젖기는 젖는 법.

“잡았다!”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싸운 끝에 드디어 빌어먹을 잡몹을 죽이고 새로운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라디우스 (공격력 : 25)

보병들에게 대중적인 무기.

짧기는 하지만 직검류들 중에서 가장 다루기 쉽고 안정적인 물리 공격 속성을 가지고 있다. 통상 베기와 찌르기 모두 사용이 가능해서 상황대처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일단 이 녀석이 특별하게 강력했던 이유가 밝혀졌다. 바로 초반에 쓸 만한 무기를 주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아이템 설명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 그라디우스를 착용했으니 5배의 데미지를 주며 게임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다.

망자 병사 중에서 특히나 번듯해 보이는 몬스터. 온몸을 감싼 레더 갑옷에, 투구, 심지어 방패까지 착용하고 있는 이 잡졸은 둔기류를 들었다. 딱 봐도 ‘이놈을 잡으면 방어구를 떨구겠구나.’ 싶은 녀석이 나온 것이다.

“미친!”

그리고 이놈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라디우스로 때려도 고작 데미지를 7밖에 받지 않았다.

‘녹슬고 이 빠진 검으로 때리면 고작 1 달거나 미스가 떠버리는 거 아니야?’

한숨을 내쉬다 한 번 맞고 말았다. 몬스터의 무기가 둔기인 탓인지, 이번 경직은 무려 3초에 달했고 내 캐릭터는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You died」

“이놈 역시 한 대도 맞지 않은 채 잡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환장하겠네.”

그리고 모닥불에서 다시 시작했다. 지점은 처음 무기를 주는 녀석을 만나기 직전이었고 다행하게도 착용한 그라디우스를 잃거나 하지는 않은 상태였다.

결국, 다시금 고도로 집중하여 몬스터를 사냥해냈지만 어느새 처음의 기대와 흥분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 내가 어려운 게임을 만들라고 했어.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니지.’

드래곤 소울을 제작하며 요구했던 바는 어렵지만, 클리어를 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었다. 아울러 이런 식으로 어려운 게임 역시도 아니다.

어려운 게임은 꿈속 미래에도 숱하게 존재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크게 성공한 작품이자 대명사로 손꼽는 건 오직 드래곤 소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마냥 어렵기만 한 게임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누가 스트레스를 풀려고 게임을 하지 받고 싶어 하겠냐?’

즐거워야 한다. 또한, 적당히 납득할만한 어려움을 주면서 그걸 극복했을 때의 쾌감을 주어야 했다. 이것이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잘 지켜질 때, 해당 게임은 어려운 명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플레이 중인 드래곤 소울은 이런 부류와는 거리가 매우 적었다.

‘맵이나 몬스터 디자인만 훌륭한 편이라고 봐야겠어.’

어려운 게임이라서 그럴까?

시간이 정말 덧없이 흘러갔다. 아직 스테이지 1의 보스를 만나지도 못했고 대체 언제쯤에나 만날 수 있을지 예상도 못하겠는데 벌써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보스는커녕 1시간째 여기서 버벅대고 있군.’

일종의 챔피언급 몬스터에게 막혀있다. 기사의 모습을 한 이 몬스터는 이 수용소의 간수로 지내다가 망자가 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강해도 지나칠 만큼 너무 강했다.

“무슨 초반 몬스터가 패리까지 능수능란하게 써?”

측면이나 후면을 거의 주지 않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정면의 공격을 회피하고 겨우 공격했다. 이때 타이밍에 맞춰서 상대의 검을 쳐내는 기술이 패리인데 이를 몬스터가 기막힐 정도로 잘 사용하는 것이다. 그 탓에 내 검을 쳐내고는 강력한 치명타를 맞는 일이 빈번했다.

「You died」

방어구를 착용한 덕분에 일반 공격은 3대 정도 버틸 수 있었는데, 이 치명 공격에 맞으면 무조건 원킬이었다.

‘사실 이놈이 스테이지 1 보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의심하게 될 만큼 까다로운 적이었다. 결국, 3시간이 지났을 무렵에야 간신히 이 기사를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들인 공과 다르게 이 녀석은 장비는커녕 별다른 아이템조차 주지 않았다.

“차고 있던 액세서리라도 떨어뜨릴 것이지 야박하게 아무것도 없네.”

소위 말하는 똥꼬쇼를 하면서 간신히 진행한 끝에, 4시간이 지났을 무렵이 되어서야 나는 보스 몬스터인 수용소의 마수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도 우리의 개발진은 내게 반전을 안겨주었다.

「You defeated!」

“···와아, 이겼다?”

한 번에 클리어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끔찍하게 죽어대면서 고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허망할 정도로 싱거운 보스전이다.

‘이전의 몬스터들에게 미치도록 훈련받았기에 일군 성과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게 뭐야?’

잡다한 몬스터와는 1대 1로도 버거운데 보스 몬스터는 체력 높은 것을 제외하면 그럭저럭 할 만 한 수준이었다. 뒤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수다스러운 NPC 하나가 등장했다.

「오오! 정말 굉장한 실력이잖아? 이 거대한 마수를 사냥하다니···」

「항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마수들은 드래곤에 종속된 존재이니까··· 마수의 등장은 드래곤의 부활이다. 뭐 이런 소문도 있지. 그냥 왕들의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난리를 피우는 거라는 소문도 있고.」

「자세히 알아보려면 최소한 수도에는 가봐야 알 수 있지 않겠어?」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그 인물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 맛있게 매워야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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