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있게 매워야지 >
[지금 당신을 통해서 호비 아인슈타인과 엮였던 여배우들의 증언을 엄청 모아두었고 증인으로 참여할 배우 역시도 상당히 모인 상황이야.]
[헛소리!]
[글쎄, 이래도 헛소리 같아? 당신도 알 거야··· 최근에 꽤나 거물을 건드리셨더라고?]
[······.]
대답하지 않았지만 놀란 눈이 이미 사일런트의 심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영화 팬이라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름만 대도 알 수 있는 이름의 여배우. 심지어 그 배우의 남자친구는 더 유명한 배우였다. 이들은 최근에 그런 여배우를 건드리려다가 실패한 경력이 있었고 그 커플은 복수는 하고 싶지만. 이들의 권력 때문에 겨우겨우 삭히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이를 상세히 언급해주며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됐네? 복수해도 뒷감당은 그들이 아니라 어떤 풋내기 동양인이 해버리면 그만인 기막힌 때가 찾아온 거야. 이봐, 사일런트.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
[개··· 개소리하지 마!]
[이런~ 이런, 다 알면서 개소리라니. 귓구멍 열고 똑바로 들어라. 어차피 네 증언이 없어도 호비는 잡혀 들어갈 거다. 해온 짓거리가 워낙 많아서 증거들이 아주 확실하거든. 그런데 이런 판국에 네가 혼자 뒤집어쓰면? 과연 어떻게 될까?]
법정에서 한 위증은 그것대로 또 큰 범죄다. 안 그래도 미국에서 꽤나 혐오하는 범죄에 걸려들었기에 재기가 힘들 수 있는데 위증까지 더해지면?
재기는커녕 인생의 커리어가 박살 나 버린다.
그제야 사일런트의 낯빛이 달라지고 눈동자가 과격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런 모습을 짐짓 태연한 척 보며 내심 가슴 졸였다.
‘아깝다. 톱스타들이 나서주고 빼도 박도 못할 만큼의 확실하게 증거가 있었다면 이놈을 위증으로 더 고통받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렇게 블러핑이나 쓰는 정도구나.’
사실 사일런트가 유치장이 아니고 심리적으로 구석에 밀렸으며 호비의 심성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방법은 전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내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빈틈이 있었다.
간단하게만 보아도 증거와 물증이 확실한데 굳이 직접 찾아올 이유가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후천적으로 이성적인 사고를 하도록 학습했을 뿐, 본래는 감정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무장이 벗겨진 상태인 사일런트였기에 그는 내 말에 흔들리고 말았다.
[이제 면회시간 끝났군. 잘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하라고. 이만 간다.]
대답은 없었으나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증언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사일런트 사장은 나름대로 인정할 것은 인정한 뒤에, 형을 감량 받아서 재기를 노리려 할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이튿날.
본격적으로 마리맥스의 사장인 호비 아인슈타인에 대한 섹스 스캔들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지금 에밀리의 명예훼손으로 잡힌 사일런트가 바로 호비의 브로커였음이 추가로 알려지면서 인터넷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중간한 중소 영화사가 아니다. 무려 마리맥스다.
루트 필름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의 회사 사장의 스캔들!
일반적이었다면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테지만, 이미 진행 중이던 사건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제법 많은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니 경찰들도 평소와 달리 발 빠르게 수사를 진행했다.
호비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현재 터져 나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비록 사건이 사건이다 보니 경찰이 수사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무죄가 밝혀질 것’이라고 죄를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그래. 네놈이 바로 자신의 죄를 인정할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애들 만화와 현실은 다르다. 악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형을 받는 일 따위는 볼 수 없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올곧음 하나로 모두 해결되는 옛날 이야기와는 다르게 현실에서는 힘없는 정의가 무능하다는 주장이 큰 공감을 얻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적법한 힘과 수단을 썼다.
“경찰에게 서류를 보내세요.”
뉴저지 걸의 계약을 파기한 이후로 꾸준히 모아두었던 자료들이다. 이곳에는 그동안 마리맥스의 사장이 어떻게 여배우들을 입막음해왔는지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심지어 해당 배우 중에는 에밀리처럼 미성년자가 포함되? 있었다.
‘미국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에 아주 민감한 나라니까.’
예상대로 해당 자료를 확인함과 동시에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호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저택에서 체포되어 경찰서로 향해야만 했고 이 모든 내용은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었다.
그리고 에밀리에 대한 여론이 바뀌었다.
[-아니··· 좀 웃긴 게··· 이렇게 되면 엠마 스틴은 파트라이지 패밀리에 합류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공식적으로 하차를 시켰으니까 합류 안 하는 거 아니야?]
[-에이. 그건 아니지. 애초에 루머와 뒷공작으로 하차가 된 건데. 이러면 복귀시켜야지.]
[-파트라이지 패밀리 이미 엠마 스틴에 이어서 2위에 있던 배우와 계약을 했대요! 엠마 스틴은 우승하고도 배역을 놓친 게 되는 셈이죠.]
[-벌써? 아니. 대체 뭐가 이렇게 급해서 벌써 계약을 다 했대?]
[-시트콤 제작진들도 조사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얘네도 결국 쟤네들이랑 한패 일지도 몰라!]
에밀리의 루머가 퍼지자 신나서 해당 내용들을 더 많은 곳으로 퍼 나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녀에게 위로와 응원글을 생산하여 더욱 열심히 퍼뜨렸다.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일 테지만. 저 중의 일부는 당시 에밀리를 욕하면서 앞장서서 루머를 퍼 나르던 사람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겠지.’
이리 쏠렸다가 저리 쏠려버리는 모양새. 실로 조변석개하는 저들의 반응을 보면 쓴웃음이 나올 때가 더러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런 화제의 중심에 서는 것이 연예인의 삶일 텐데 말이다.
그래도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한 가지는 확실하게 얻어낼 수 있었다. 당금, 미국의 10대와 20대 중에서 엠마 스틴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인지도는 100%가 아니라 1,000% 달성인 셈이군.’
오디션 우승의 실력을 가졌음에도 사회의 치졸한 술수에 말려 들어서 끔찍한 루머에 휘둘린 소녀. 그것도 모자라 당당하게 자신의 것이었던 배역마저도 놓쳐버린 비운의 배우!
이슈와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거의 완벽한 여주인공의 스토리를 주었다. 그 덕분에 그저 그런 케이블 방송의 오디션 우승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현실판 권선징악은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든다니까. 백마 탄 영웅이 악당 목을 쳐내서 해결하는 거였으면 차라리 쉬웠을 텐데, 자료 조사에 뭐에··· 어휴. 돈이 너무 들었어.’
어쨌거나 해피엔딩을 봤다.
갑작스러운 상황 덕분에 디지니는 호비 아인슈타인과 관련된 모든 사람은 마리맥스에서 해고통보를 했다. 또한, 파트라이지 패밀리에서 직접적으로 에밀리를 향해 의혹을 질의했던 심사위원이자 여배우인 블릿 스왈로스 역시 사건의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조사를 받게 되었다.
[-안 그래도 저 여자는 못 되기로 유명하잖아?]
[-나는 이참에 저 여자 방송에 더 이상 안 나왔으면 좋겠어.]
[-그러게. 미래가 창창한 여배우의 인생을 망치려 들었으니, 이제는 자기가 망쳐볼 차례지.]
[-솔직히 삼류 케이블이니까 심사위원이랍시고 있었던 거잖아.]
[-저 여자는 어차피 이런 일 없었어도 그냥 삼류 배우나 하다가 끝났을 걸?]
대중의 관심은 때론 열광적이며 어떤 때는 가혹하리만큼 냉정하다. 아마 조사 결과가 어떻게 끝나든 블릿 스왈로스의 삶은 더 이상 풍요롭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뒤끝 있는 남자다. 이런 식으로 남이 휘두르는 몽둥이보다는 내가 직접 때려야 직성이 풀린다.
‘기대해라. 일단 직접적으로 공연성이 있는 장소에서 나를 언급했으니 조사가 끝나면 바로 고소해주마.’
작금은 자본주의 사회다. 피해는 응당 돈으로 보상해야 하며 나는 악착같이 받아낼 충분한 의지가 있었다. 게다가 나는 보통의 매니저가 아니라 GF의 회장이다. 나 정도의 인물이 입은 피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막대하고 저런 이류 여배우쯤?
손쉽게 파산할 것이다.
“눈물 어린 참회 따위 필요 없어.”
반성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 모조리 뱉어내라.
이것이 현대판 권선징악이다.
116. 맛있게 매워야지
한창 진행 중인 호비 아인슈타인의 섹스 스캔들은 내 입장에서 성공적인 마무리를 지었다. 그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루트 필름즈의 사장, 사일런트가 1심에서 15년을 선고받고 최종적으로 5년을 받았다.
그들과 거래하던 파트라이지 패밀리 오디션의 감독은 보석금 10만 달러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방송 관련으로 일하기는 어려워졌으니 그의 커리어는 완전히 끝난 셈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마리맥스의 사장인 호비 아인슈타인은 단순히 성범죄 하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동안 은폐해왔던 범죄들의 증거자료가 대폭 확보되며 1심에서 200년을, 최종적으로 50년을 선고받았다.
‘이 인간이 지금 51살이니까 이런저런 이유로 일찍 출감을 한다손 쳐도··· 어이쿠. 인생 종 치셨구먼.’
기적적으로 빨리 나와봐야 최소 80세는 되어야 가망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니에서 명예훼손으로 추가 소송을 걸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평생 감방에서 살다가 죽는 게 이 사람 입장에서 가장 행복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추가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공범이 하나 더 잡혔는데 그는 호비 아인슈타인의 동생이란다. 지금까지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잘 은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동생의 덕분이라고 하며 그 탓에 형제가 사이좋게 교도소에 들어가서 지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에밀리는 대중의 욕설과 비난 대신 응원과 격려를 통해서 기력을 되찾으면서 이전보다 더욱 밝은 성격으로 바뀌었다.
[대장님! 저! 영화에 출연하기로 했어요!]
[그래?]
이런 사건을 겪고도 바로 연기를 계속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걸 보면, 나이를 초월한 강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영화인데?]
[디지니에서 제작하는 영화에요! 스카이 스쿨이라는 영화인데! 슈퍼히어로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래요!]
‘아하, 그거?’
2005년에 개봉할 영화 중에서 그나마 에밀리가 출연하기 좋다고 판단했던 유일한 영화였다. 이전에는 인지도가 떨어져서 엄두를 내지 않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섭외가 들어온 거야?]
[네! 디지니에서 직접 섭외가 들어왔다니까요?]
[우와! 대단한데?!]
디지니에서의 섭외에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일단 이번 사건의 주역인 마리맥스가 디지니의 계열사였다보니 디지니 입장에서는 이미지 쇄신과 더불어 책임에 대해 자유롭지 못한 입장이었다는 것이 첫째다.
두 번째는 전국구로 널리 알려진 에밀리의 인지도 급상승이다. 단순하게 사죄의 의미로 캐스팅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티켓 파워를 가진 쓸만한 배우로 보였기에 타당하게 선택한 것이다.
[배역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두 가지 배역 중에 잘 맞는 쪽으로 배역을 주신대요.]
[기왕이면 악역으로 한다고 해.]
이런 영화는 속편까지 출연해서 좋을 게 없다. 그냥 1편에만 임팩트 있게 출연한 뒤에, 다른 영화를 촬영하러 가는 편이 딱 좋다.
< 맛있게 매워야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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