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57화 (257/577)

< 돈으로 뱉어라 >

“알겠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사건인지라 저희가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면 그것도 저들에게 확신을 주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혹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당하면 그 자체로 더 큰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차라리 에밀리와 우리가 ‘얼마나 가족처럼 지내는가.’ 이런 것을 공개하는 방향으로 해서 해결해보도록 합시다.”

“자금이 꽤 많이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예산을 어느 정도로 잡고 진행하도록 할까요?”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자금을 다 밀어 넣어도 됩니다. 다만 놈들을 확실하게 끝장내세요.”

책임은 내가 지겠다. 확고부동한 이 말에 곽지원 전무를 비롯한 직원들이 더욱 정력적으로 움직였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이 끝나고 고작 한 시간이 흘렀을 즈음, 인터넷에는 ‘방송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내용으로 에밀리에 대한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부자연스러운 속도야.’

스마트폰은 아직 나오지도 않은 세상이다. 인터넷도 한국이나 초고속 인터넷망이 당연하지 미국은 아직 인터넷을 하려고 인터넷 카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흔한 국가였다. 심지어 이 사람들은 페이지 로딩으로 모래시계를 보면서 기다리는 것이 매우 당연한 사람들이다.

그런 환경에서 이런 속도로 확산된다?

방청객의 입소문으로는 결단코 불가능하다. 마리맥스가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인 셈이다.

‘심지어 이런 제보까지 추가가 된다니.’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가장 빠르게 전달되는 것은 당연히 자극적인 가십거리다. 그리고 이번 사태는 모두가 관심 가지기에 충분한 가십거리였기에 그 확산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GF 오너와 엠마 스틴이 함께 콘도에서 나오는 사진.】

【GF 오너가 엠마 스틴과 함께 시카고의 호텔에 들어가는 사진.】

···

【GF 오너와 엠마 스틴】

나와 에밀리의 모습이 다정하게 찍힌 사진들이 약 13장 정도 게시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중에 그 어느 것도 합성이 없다는 점이다.

‘시카고의 호텔은 오디션 볼 때 갔었으니까 당연하고, LA에서야 같이 식사도 많이 했고 여기 콘도야 내가 사는 곳이니까 함께 들어오거나 나오는 경우도 자주 있었지.’

가슴속에서 불길이 타오른다. 대처할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아닌 다른 피해자들이었다면 그야말로 절망해버렸겠어.’

호비 아인슈타인. 대체 이 남자는 지금까지 이런 더러운 방법을 이용해서 얼마나 많은 젊은 예술가들의 꿈을 짓밟아 왔을까? 꿈이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 몸을 버려야 했던 배우들은 또 얼마나 비참했을까?

군대를 전역한 뒤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1억이라는 단위가 쉽게 오가는 회장님의 처지이지만 당시에는 100만 원에 웃고 울었다. 부자는 알 수 없는 빈자들의 현실적인 고난이다.

밥줄을 끊는다, 커리어를 끝장내 버린다는 말을 호비와 같은 이들은 정말 쉽게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이만큼 가혹한 폭력이 더는 없을 정도다.

‘고국에서도 하지 않던 환경미화를 제대로 해주마.’

나와 에밀리가 찍힌 사진을 보며 재차 결심했다.

다음 날.

“회장님. 꼬리를 찾았습니다.”

마리맥스와 연결된 모든 정보를 조사하는 분야를 담당했던 스티브가 내 사무실로 급히 찾아왔다.

“오디션의 심사위원과 TV쇼의 제작진에 대한 정보를 찾는 도중에 마리맥스와 블릿 스왈로스가 모종의 거래가 이뤄졌음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거래했다는 정황만 있지, 당장 증명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현재까지는 해당 배우가 받은 보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꼬리를 찾은 의미가 없는 셈이군요.”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In Search of the New Fartridge Family의 감독과 마리맥스의 거래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정보도 함께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진행 중이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상황을 훨씬 자극적으로 만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꽉꽉 눌렀던 분노가 치솟는 이야기였다. 스폰서 이야기 이상으로 더욱 자극적으로 만든다면 뭐가 나온단 말인가!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또 다른 다급한 발소리가 사무실로 다가왔다.

“회장님. 곽지원입니다.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들어오십시오.”

화급히 들어온 곽지원 전무의 얼굴은 스티브보다 훨씬 더 경직되어 있었다.

“오늘 자 신문입니다.”

그가 가져온 것을 펼쳐보였다.

“벌써 신문에 해당 내용이 실린 겁니까?”

“일단 이슈거리로 올라오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 내용이 아닙니다.”

“그럼 뭐가 중요한 거죠?”

곽지원 전무가 내 손에 펼쳐진 신문에 한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In Search of the New Fartridge Family. 논란 속의 엠마 스틴. 그녀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이런 이슈를 이끌고 가기에는 방송사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된다. 해서 파트라이지 패밀리의 제작진은 눈물을 머금고 엠마 스틴을 배역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공식적으로 방송사에서 입장표명을 한 겁니다.”

돌아가는 판이 하도 박진감 넘치니 헛웃음마저 나왔다.

“놀랍군요. 아니, 어제 촬영했고 해당 내용은 아직 방송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떡 하니 실렸다? 이렇게 되면 에밀리가 우승이라는 걸 다른 사람들도 이미 예상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방송을 망치는 건데 왜 이런 짓을 했을까요?”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일단 해당 의견을 낸 곳은 In Search of the New Fartridge Family가 아니라 New Fartridge Family의 제작진입니다. 그리고 ‘우승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이라는 내용을 넣음으로써 우승 결과는 모르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군요.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이다.

“그래도 뭐 나쁘지는 않군요.”

“네?”

“아. 별거 아닙니다. 가뜩이나 파트라이지 패밀리가 내키지 않던 중인데 이런 결과가 신속하게 나와 버리니 이건 이것대로 괜찮겠다 싶군요.”

“그··· 그렇습니까?”

곽지원 전무는 이 내용을 보고 내가 큰 충격을 받을 거로 생각하고 급히 왔던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오디션은 수단이며 주연 배역은 결실에 해당하기에 이 보도문은 내가 실패했음을 짚어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루 밝히지만 않았을 뿐, 나는 누차 에밀리를 어떻게 하차시켜야 자연스러울지 고민했던 사람이다. 의도했던 우승 타이틀만 얻고 우리 길을 가게 되었으니 결실을 제대로 본 셈이다.

“스티브.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듣도록 하죠. 그러니까 자극적으로 만들 무언가··· 까지 말했던가요?”

“아! 예!”

스티브는 군기가 바짝 들어간 모습으로 내 말에 집중하고 있다가 자신이 파악한 내용을 술술 꺼냈다.

“그들이 오늘 저녁에 추가로 접선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확실한 정보가 맞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좋군.’

이들이 접선하는 모습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한방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게 된다.

“접선을 증명하고 저들이 준비한 자료를 확보하는 방안에는 뭐가 있습니까?”

“이미 이런 일에 있어서 최고라고 불리는 회사를 하나 섭외해 두었습니다. 또한, 작전의 확실한 성공을 위해 미국의 경찰을 동원하여 접선 증거를 잡아내기로 했습니다.”

미국 경찰들은 이번 증거의 증인이 되는 셈이고 경찰들이 증인이 되는 순간 증거는 무한한 신뢰도를 가지게 된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고 일은 빈틈없이 진행됐다.

“지금. 접선지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일 처리가 확실하다고 믿어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작전은 오후 9시 무렵,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꼬리들이 모두 우리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반드시 전부 잡아야 합니다.”

“예, 회장님.”

남의 꿈과 인생을 짓밟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놈들. 그리고 그런 자들의 밑에서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것들이었다. 이 한 번의 행위로 만악의 뿌리를 뽑을 수는 없을 테지만 일부라도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후 9시 25분.

‘됐다.’

접선지에서 마주하고 있는 이들의 면면을 사진으로 촬영했다. 아울러, 이들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들을 모두 확보하는 것에 성공했다. 자료의 확인 결과 에밀리에 대한 루머를 퍼트리려는 것이 명확했고 그곳에 있던 자들에게는 즉각적인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뉴저지 걸의 영화사 사장이 직접 왔었다고 하더군요.”

“In Search of the New Fartridge Family의 감독까지 다 잡힌 게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그럼 우리도 마무리 단계의 반격을 진행합시다.”

세상만사가 그러하겠지만 법 역시도 잘 알면서도 제대로 휘두르는 자에게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어준다. 이제 이 검을 휘둘러 상대를 베어버리는 일만 남았다.

미국의 장점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오늘의 방식으로 구한 귀중한 자료를 통한 정보를 인터넷에 흘리는 순간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적용되지만, 이곳은 그딴 거 없다. 사실이라면 이건 표현의 자유가 되는 것이다.

[-TV쇼 파트라이지 패밀리의 새로운 가족을 찾는 오디션에서 생겨난 일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해당 TV쇼 제작을 담당했던 감독이 따로 돈을 받고 우승이 유력한 참가자를 모함한 것이 그 내용입니다.]

일차적으로 에밀리에게 만들어졌던 루머는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었다.

[루트 필름즈는 최근 자신들의 영화에 출연하기를 거절한 배우, 엠마 스틴양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하지만 마리맥스의 사장 호비 아인슈타인은 이 사건의 모든 것을 뉴저기 걸의 영화사인 루트 필름즈의 사장이 독단적으로 한 것처럼 꾸몄다. 마냥 지켜보면 모든 혐의에서 자유롭게 풀어질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는 못 두지.’

나는 호비 아인슈타인이라는 진짜 목표를 낚기 위해 미끼로 써먹을 사일런트 사장에게 찾아갔다. 경찰서의 유치장에 있는 그의 속내를 건드려 증언을 확보할 요량이었다.

[사일런트씨. 오랜만입니다?]

[너··· 너···!]

[아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왜 당신이 그토록 억울한 표정을 짓는 겁니까? 아하··· 사자성어를 모르니 방금의 말은 못 알아들었겠군요. 그냥 딱 네 행동거지를 그대로 표현한 말이니까 궁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친절한 투로 빈정거리자 그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빌어먹을! 그래서. 이제 이긴 거 같으니까 좀 놀려주러 여기까지 찾아오셨나?]

그의 말에 나는 어설픈 배우처럼 과장되게 웃었다.

[재미있군요. 당신은 자신이 놀림 받을 만큼의 가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거 자신감이 지나치신데?]

[뭐!?]

잠시 말을 끊은 뒤 나는 나직하게 말했다.

[똑바로 들어. 나는 네게 좋은 것 하나를 알려주려고 온 거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네놈이 주는 좋은 게 필요하기나 할 것 같아? 어차피 며칠이면 여기서 빠져나가게 될 거다.]

[오호~ 그래? 정말?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마음대로 생각해.]

[뜻밖에도 낭만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시군. 이봐, 혼자서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끝내려 한다고 들었는데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거든.]

[미친 놈.]

뭐 당연히 이런 반응을 보이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바로 ‘어 정말이야? 그게 나쁜 생각이야?’ 이러면 그게 얼간이 아니겠나?

그래서 이 대사가 필요한 거다.

< 돈으로 뱉어라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