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낌새가... >
113. 낌새가...
2003년 10월 3일. 미국에서 팬으로서 열심히 도왔던 에밀리의 첫 영화인 스쿨 오브 밴드가 개봉했다. ‘이것이야말로 성공한 아저씨 팬의 심정이다’를 증명하듯 초청받아서 자리에 참여하고 축하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다만, 약간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시사회라는 게 막상 가보니 별 재미도 없네.’
미국에서 하는 언론 시사회라는 정도의 느낌이 전부였을 뿐, 딱히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똑같은 길거리의 꽃을 보고도 누군가는 예쁘다며 사진을 찍지만, 누구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듯, 그저 에밀리와 관련되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내게는 아니었다.
역시 나한테는 게임이 가장 재미있는 일인가 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이 기사에도 나오니까 보는 즐거움은 있었다.
【코믹의 탈을 쓴 다큐 스쿨 오브 밴드】
이달 초 개봉한 스쿨 오브 밴드는 대중문화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와 틀에 박힌 교육에 대한 비판을 재미있게 풀어낸 영화다.
못생겼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 쫓겨난 짐 블랙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학교에 취직한다. 학교에 취직한 그는 학생들을 상대로 록밴드를 결성하고 아이들을 꼬드겨 경연대회에 출전한다.
이 영화는 코믹이라는 가면으로 자신을 가린 채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양성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면서도 줄거리와 구성은 다분히 통속적인 클리셰를 이리저리 버무려놓은 형태다. 사회의 다양성을 말하는 영화가 클리셰 덩어리라는 모순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제법 긴 보도문의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화는? 대박!’
어느 정도냐 하면 미국의 영화계에서 연신 스쿨 오브 밴드와 짐 블랙을 외칠 만큼이었다.
[대장! 대장! 이거 봐요! 여기! 여기! 저도 기사에 났어요!]
에밀리가 신이 나서 기사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가서 시선을 옮겼다.
- 때로는 아이답게, 때로는 반의 반장이자, 밴드의 매니저, 그리고 명문가의 촉망받는 딸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준 아역 배우 라일리 스틴의 미래가 기대된다.
엄청 따분하기까지 한 기나긴 기사에서 자신과 관련된 딱 한 줄을 찾아낸 그녀였다.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찾기 힘든 인기도 없는 기사에서 자신을 찾아내는 것을 보니 마냥 신기했고 기꺼워하는 모습에 나 역시도 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이건 기사라기보다 이건 거의 에세이 급인데?’
스쿨 오브 밴드와 짐 블랙에 대한 에세이. 여기에 거론되었다는 정도로도 마냥 행복해하는 모습에 ‘저렇게 다른 사람의 관심에 행복해하는 성격이 연예인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물처럼 끌어안고 있는 에밀리에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와. 신문에도 이름이 나오고 이제 대스타네?]
[에이~ 이제 고작 한 줄 나온 건데요 뭐~]
말은 저렇게 하지면 입은 찢어질 대로 찢어진 상태로 연신 몸을 비비 꼰다.
좋아 죽는다 아주.
[대장님~ 그거 알아요?]
[뭐?]
[저요~ 영화 출연 제의 들어왔어요~]
[출연 제의?]
[네! 네! 얼마 전에 마리맥스라는 곳에서 영화 출연 제의가 왔어요. 읽어보라고 벌써 시나리오도 보내준 거 있죠! 정확히 말하면 오디션 제의가 온 거기는 한데요! 이미 거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데요!]
잠시 떠오르는 생각 하나를 지우며 대답했다.
[이야~ 대단한데?]
[피~ 뭐야? 별로 좋아하지도 않네요 뭐.]
좋은 일이고 축하해줄 사안이 맞았다. 저 정도까지 말이 나왔으면 정말로 에밀리가 하겠다고 의사에 따라서 바로 출연 확정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내가 순수하게 축하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미래의 얕은 기억 하나 때문이었다.
‘스쿨 오브 밴드에 출연했던 아역들. 게네들이 이후로 활동을 했었던가?’
별달리 배우로 인지도를 쌓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밀리가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로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내려진 결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주연배우인 짐 블랙이 가져갔다는 것.
‘이건 뭐 크게 신경 쓸 것도 아니긴 하지. 애초에 스쿨 오브 밴드는 짐 블랙의 원맨쇼에 가까운 영화였으니까.’
그가 스포트라이트를 다 받아가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중요한 건 나머지 다른 이유다.
‘둘째. 아역 배우들이 성공할 만한 영화가 이 시기에는 없었다는 것.’
2003년이라는 현재의 시기에 촬영하고 성공하는 영화가 무엇이 있었던가?
대표적으로는 거미 인간2, 브리짓의 연애일기2, 퀸카가 살아남는 법, 그리고 소설이 원작인 마법사 해리의 모험기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중에서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여자아이가 출연 가능한 영화?
‘없다.’
물론, 내 기억은 한정적이기에 떠올린 작품들 이외에도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영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업계 종사자여야 떠올릴 수 있을 정도의 흥행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기억 속에 일절 없는 것이니 애당초 미련을 가져봐야 아무 의미 없기도 하고.’
그러니 가능성이 1%라도 있는 쪽에 집중하는 편이 나았다. 이것이 에밀리의 출연제의 소식을 듣고도 내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였다. 이제 막 배우의 길을 들어서는데 잘못된 방향을 선택했다가는 그대로 커리어가 끝날 수 있다.
‘팬심으로 스타가 성공 가도만 달리도록 도와준다. 이것만 한 팬질이 또 어디 있겠어?’
나는 심정이 들키지 않도록 에밀리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며 물어보았다.
[영화 이름이 뭐니?]
[안 가르쳐 줄래요!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자기처럼 좋아해 주지 않으니까, 삐친 모양이다.
[아니야. 궁금해. 알려줘.]
[진짜죠?]
[그래. 진짜야.]
[뉴저지 걸이요.]
[뉴저지 걸?]
[네! 뉴욕 최고의 연예 프로모터였던 주인공이 뉴저지의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요!]
‘뉴저지 걸이라······.’
정말 딱 영화 제목만 들어본 이름이다. 망한 영화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한 영화라는 이야기다. 그녀를 불렀다.
[에밀리. 그 영화가 정말로 하고 싶니?]
[네? 아니 뭐, 영화 시나리오를 읽어 보니까 시나리오는 괜찮은 거 같아서요.]
‘시나리오는 좋다?’
흔히들 믿고 보는 배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배우가 출연한다면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된다.’라고 신용하는 경우다. 그러나 그런 영화를 보더라도 100% 재미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세상일이라는 게 결코 낭만적이지는 않거든.’
누구라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이 배우는 왜 이따위 영화를 선택했을까?’ 와 같은 의문.
그들이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완전 꽝이라서 그랬을까? 배우만 꽝이 아니라 그 옆에서 함께 시나리오를 보았던 사람들도 다 엉망진창이라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완성된 결과물로써 평가하는 관객과 달리 그들은 밑그림부터 시작하여 뼈대부터 짓는 입장이다. 그리고 우주선을 만들려고 했다가 도마뱀을 만들 듯이 시나리오만으로 영화의 재미와 성공을 보장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영화는 배우가 아니라 감독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
에밀리는 아직 어리지만, 시나리오를 보는 눈은 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배우가 나보다도 훌륭하다. 현재 내가 보이는 식견은 미래에 성공할 것들을 알고서 결괏값에 역순으로 해석을 붙이는 수준이지만 그들은 진심으로 시나리오를 샅샅이 훑어보니 당연한 노릇이다.
‘마냥 어리게 볼 것 없이 배우로 에밀리를 보자. 뉴저지 걸은? 시나리오가 괜찮아서 탐을 낼 만한 작품이라는 뜻이 돼. 그런데 왜 망했을까? 시나리오 외적인 이유?’
좋은 시나리오라고 해도 영화가 망하는 이유는 넘쳐난다. 배우가 문제라거나 감독이 문제라는 것 등등 너무 많은 이유가 있어서 섣부르게 예상을 할 수는 없다.
어쨌건 남을 설득할 때는 최소한의 근거와 이유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냥 ‘하지 마. 그거 망할 것 같아.’라는 식의 우격다짐을 부리는 건 멍청한 짓이다. 더군다나 사춘기 막바지에 걸친 에밀리인 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에게 오디션을 포기하라고 한다면?
‘오히려 삐뚤어질 가능성이 크지.’
그러느니 일단은 오디션을 보도록 하고, 따로 왜 이 영화가 실패하는지를 알아보는 편이 나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밀리에게 말했다.
[그럼 좋은 기회니까 오디션 준비를 해볼까?]
[네!]
에밀리가 신이 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이후, 나는 회사의 정보망을 이용해서 뉴저지 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튿날, 내 책상에 한 편의 보고서가 올라왔다.
「뉴저지 걸 보고서」
“역시 우리 직원들은 참 유능해.”
설립한 GF홀딩스 미국법인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여실하게 보이는 부분이었다.
‘뭐가 문제려나.’
보고서의 첫 장을 넘겼다.
뉴저지 걸의 시나리오에 대해서 우리 직원들은 ‘가족의 소중함을 다룬 소박 하면서도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 군더더기 없는 무난하고 편하게 볼 수 있는 가족영화.’라고 평가했다. 물론,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말 아니겠는가.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이러하지만, 부정적으로 언급하면 ‘흔해빠지고 뻔한 소재를 다룬 식상한 주제의 영화.’라는 소리였다.
‘너무 색안경을 쓰고 보지는 말아야겠지. 어쨌건 에밀리의 말대로 시나리오는 평타를 치나 보네.’
뻔하고 식상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특별하고 새로운 시나리오가 좋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성공하는 것들은 뻔하고 식상한 이야기들이었다. 관건은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물린 것을 물리지 않게 포장하는 재주였다.
‘실패했다는 결과에 비추어보자면 이 영화는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에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어느 쪽에서 헛발질을 한 걸까?’
배우들의 케미? 감독의 연출? 그게 아니라면 영화사 내부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겼던 것일까? 애석하게도 이러한 속사정까지는 하루 만에 완료된 보고서의 내용에 나와 있지 않았다.
“어?”
조금 더 조사하도록 지시해야겠다, 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보고서를 읽어나가는 무렵이었다. 중간에 의미심장한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출연 배역의 적정 연령
남자배우 역 - 40세
시골여자 역 - 22세
뉴저지 걸 - 9세」
“에밀리 나이가 없는데?”
어디까지나 적정 연령이다.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배우의 나이가 더 되건 말건 화면에 어떻게 담기느냐, 그 나이대로 보일 수 있느냐만이 중요하고 해낼 수 있으면 몇 살이 되었건 상관없다.
그러나 이를 감안 하고 봐도 에밀리의 나이는 어중간하다.
‘얘는 15살이잖아.’
22세의 시골 여자 역할을 맡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 어떻게든 엮어서 하려고 해도 15세의 에밀리가 22세로 보이게 촬영을 하느니 그냥 20대의 여성을 데려오는 게 낫다.
그렇다면 딸의 역할을 하는 뉴저지 걸일까?
‘이건 더 말이 안 돼. 적정 연령이 9살이라고. 도대체 영화사에서는 무슨 생각으로 러브콜을 보낸 거지?’
이 영화에 에밀리가 출연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시나리오를 죄다 뜯어고쳐서 딸의 나이를 15살로 맞추는 것. 최소한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으로 바꾼다면 어떻게든 출연은 할 수 있다.
이것 이외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뉴저지 걸에 출연할 방법은 없었다.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곽 전무님.”
의문을 푸는 방법은 지금 알아낸 정보에 더 가깝게 접근하는 것뿐이다.
“뉴저지 걸과 관련된 내용 전부를 최대한 빠르게 알아봐 주세요. 단순히 이 영화 하나만 알아보는 게 아니라 뉴저지 걸은 물론이고 이 영화를 촬영할 영화사와 감독, 그리고 투자배급사까지 깡그리 정보를 취합하세요.”
- 알겠습니다.
영화와 그에 관련된 회사들에 대한 정보까지 모두 취합하는 것은 생각보다 막대한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일이다. 그 탓에 일주일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고 그 사이에 에밀리는 기분 좋게 출연할 준비를 마쳐나갔다.
[대장님! 저 합격이래요! 저 진짜 운이 좋은가 봐요! 오디션만 봤다 하면 다 합격해!]
듣는 것만으로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기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마냥 좋아해 주기에는 영 꺼림칙하다.
[무슨 역할을 맡기로 한 거야?]
[뉴저지 걸이요! 영화 제목이랑 제 역할이 같으니까 제가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예요!]
< 낌새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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