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50화 (250/577)

< 방임=자유? >

“이만하면 결론은 나왔네.”

아직 토지임대나 배와 같은 콘텐츠는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즉, 현재로서는 수영으로 대륙간 이동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여기에는 최소 5시간이 걸린다. 애당초 배를 통한 이동을 전제로 게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굳이 캐릭터로 그 긴 시간 동안 헤엄치며 확인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지금 연결이 되어 있다는 보장도 없고.’

아직 개발 중이라 그 중간이 뚝 하고 끊겨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이건 회의 때 한번 물어보면 된다. 그렇게 다이너스티에 존재하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는 대략 2시간 만에 끝이 났다.

* * *

“조금 전까지 다이너스티를 열심히 플레이하고 왔습니다. 일단은 굉장히 수고하셨다는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칭찬과 격려를 전하는 것 치고는 내 표정이 썩 마뜩잖다. 더불어 ‘일단’이라는 단어를 붙였으니 느낌이 단박에 왔을 터.

회의실에 모인 넷젠의 간부들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대장장이가 무기를 만드는 것, 나무를 베어서 쓰러트리는 것, 또 식물을 심어서 수확하는 과정까지 모두 다양하게 잘 만들어 냈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도대체 이 게임을 왜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질문에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저들은 침만 꿀꺽 삼켰다.

“회장님. 그게··· 저··· 무슨 의미로 하신 질문인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이제 곧 베타 서비스를 끝내고 정식으로 출시하는 플레지2를 예로 들어보지요. 플레지2는 아주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사냥을 하고 아이템을 획득한다. 돈을 벌어서 아이템을 획득한다. 그 과정에서 레벨이 올라간다.”

말을 이었다.

“뭐, 혹은 레벨이 올라가는 과정에서 돈도 벌고 아이템도 획득한다. 그렇게 해서 강력해지면 그들끼리 모인 집단이 성을 차지해서 영주가 된다. 이 정도입니다. 아주 심플하죠. 그런데 그 단순함을 통해서 익숙하게 게임의 재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묻겠습니다. 우리의 다이너스티는 어떨까요?”

“그건······.”

넷젠의 간부들이 억울한 얼굴을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거론하면 안 된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는지 달리 대답했다.

“저희도 사냥을 하고 나무도 심고··· 또 제작을 위한 재료들은 직접 광석을 캐기도 하고 나무를 베어야 합니다. 심플함과는 거리가 멀죠.”

“아니오. 사실 그것들도 다들 심플합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실제로 도끼를 들고 나무를 베어보신 분이 있으십니까?”

아무도 없었다. 시대가 달라졌기에 흔한 경험이 아니게 된 탓이다.

“나무라는 게, 그냥 도끼로 옆면을 찍기만 한다고 베어지는 게 아닙니다. 물론 언젠가는 베어질 테지만 같은 힘이라도 잘 찍는 사람이 5번 만에 쓰러뜨린다면 못 찍는 사람은 10번을 해도 못 쓰러뜨립니다. 그런데 우리의 다이너스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거 없죠. 그냥 3번 찍으면 쓰러집니다. 현실에 비하면 얼마나 심플합니까? 그리고 도끼로 찍으면 나무가 쓰러지는 거 모르는 사람? 어디 있어요? 전혀 없을 겁니다. 즉, 우리의 게임 역시 어렵지 않고 심플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 건가요?”

“‘왜’가 없습니다.”

“네?”

“대관절 왜 나무를 베어야 합니까? 도대체 왜 유저가 직접 광석을 캐야 하고 왜 나무를 베어야 하지요? 그게 현실적이라서? 그렇죠. 현실적이니까 그렇게 한 거 맞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유저보고 납득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 그런 게임이 없잖아요.”

게이머들은 게임을 하면서 점점 그 내부의 세계로 녹아든다. 이를 몰입이라고 하는데 만약 아무런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몰입에 방해가 되는 단순 노가다가 되어버린다.

같은 행동을 하게 하더라도 그것에 이유를 넣느냐. 못 넣느냐로 게임의 몰입도와 유저의 피로도는 분명하게 달라진다.

개발자들에게 그걸 지적해야만 했다.

“자!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다이너스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퀘스트가 뭔지 아시는 분?”

다행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간부 전원이 손을 들었다.

‘최소한 아직은 넷젠의 간부들 중에는 월급 루팡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지.’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제가 했던 휴먼은 시작함과 동시에 여우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왜 그 여우를 잡아야 했습니까?”

임경목 실장이 손을 들었다. 고갯짓하자 그가 말했다.

“휴먼은 자경단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람의 언덕마을은 현재 들끓는 여우 때문에 농업에 타격을 입고 있는 중이기에 자경단이 여우를 사냥함으로써 농업의 안정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저는 이제야 제 캐릭터가 자경단의 신입으로 시작을 했고, 농업에 손해를 끼치는 여우를 사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요?”

“그건···”

“내용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래. 그 설정!

나무랄 데 없이 좋다. 내가 보고서로 받아들었을 때도 그리 여겼었다. 그런데 왜 플레이를 하니까 그 잘 짜 놓은 게 전혀 보이지 않느냐는 소리다.

“여러분의 머릿속에만 있고 게임 내부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니까 모르는 겁니다. 다시 질문하지요. 왜 자경단으로 시작하는 거죠? 이 마을에만 있을 것도 아니고 금방 다른 마을로 가게 될 것인데? 대체 왜 자경단입니까?”

질문을 하면 임경목 실장의 입에서 아주 청산유수와 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는 이 게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설정을 머리에 담아두고 있었으며, 또 그것을 아주 훌륭하게 설명해내는 재주가 있었다.

‘차라리 말로 설명을 못 하고 게임에 잘 녹여 넣는 재주를 가지시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나무를 베어야 하는 이유. 식물을 심어야 하는 이유. 그걸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 제가 받았던 설정 집에는 전부 있었던 내용입니다. 맞죠?”

“네.”

“그런데 게임을 하는 유저들은 아무도 그런 설명을 듣지 못해요.”

“길게 그런 내용을 설명해봤자 유저들은 어차피···”

“아무도 안 읽으니까 그냥 설명을 간략하게 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감히 장담하건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안 읽는다니요. 단 한 명이라도 그걸 읽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내용을 넣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이를 공유하고 또 공유받은 것 속에서 얻은 힌트를 위해 다른 사람들이 다시 찾아보며 이어지고 유저들의 머리에 ‘이 게임이 어떤 세계관을 지녔구나.’ 이러고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게이머스

포럼이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사이트고요.”

게임 커뮤니티는 그냥 게임의 공략만을 나누는 곳이 아니다.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를 나누고 양질의 정보를 통해 게임에 대한 배경을 이해하도록 견인한다. 그렇기에 사람들 대부분은 게임보다 이런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서 이해도를 높여가는 사례가 많았다.

즉, 다이너스티는 지금까지 나왔던 게임들과 같은 방향성을 가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그 한도 내에서만큼은 완벽하고 치밀한 세계관을 가지고 그걸 유저들에게 이해시켜야만 한다.

그래야 진짜 모두가 즐기는 게임으로 성장해나갈 수 있으며 추후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게임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다음은 대장장이 시스템을 짚어보지요. 고급 아이템을 확률형으로 제작하는 시스템은 없애십시오. 이건 권유나 요청사항 수준이 아니라 이게 남아 있다면 다이너스티 프로젝트는 그대로 뒤집을 겁니다.”

“회장님. 그게 없으면 콘텐츠의 소비속도에···”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르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다른 대안이 있으신 겁니까?”

“확률형 말고 특별한 조건을 위해서 해당 조건에 맞는 레어 아이템이 추가되도록 하면 됩니다. 소켓형을 아이템을 만들어서 획득 난도가 높은 보석을 넣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콘텐츠 속도를 확보하면 됩니다. 참고로 굳이 레어니 뭐니 같은 엉뚱한 것은 넣지 맙시다.”

레어가 아니면 실패가 된다. 이 요소를 넣는 순간 레어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수십 번을 도전할 재료를 모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럴 바에는 수십 번 도전할 재료를 모으는 시간과 등가의 아이템을 넣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간단한 예를 들어주었다.

“어렵게 생각해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상위의 레어 아이템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키우다가 그게 벼락을 맞아 뇌속성으로 성질이 변한 나무가 필요하다고 칩시다. 이래 버리면 운 좋게 그런 나무를 얻기 전까지는 제작을 못 하게 됩니다.”

확률로 장난칠 필요 없이 발상만 바꾸면 해법은 많았다.

“벼락은 게임 시스템상에서 뇌우가 오도록 설정하고 그 안에서 낮은 확률로 나무에 맞게 하면 그만입니다. ···혹, 이 방식이 구현하기 어려운 거였습니까?”

설명하는 도중에 넷젠 간부들의 눈빛이 영 아닌 거 같아서 말을 멈추고 물었다. 나는 게임을 잘 알지만 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한 이해도는 저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니 상급자가 현실도 모른 체 공허한 말만 내뱉는지는 않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었다.

“아닙니다.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요?”

시대적으로 너무 이른 요구를 하는가 우려했는데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들 표정이 ‘그런 걸 어떻게?’ 하는 것 같습니다.”

너털웃음을 흘리니 천부당만부당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닙니다. 그게··· 이런 걸 대체 어떻게 생각하신 겁니까? 벼락 맞은 나무라니요.”

“이러면 사냥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더욱 희귀성이 부여될 수도 있습니다.”

“정말 엄청난 아이디어입니다. 뇌속성은 벼락 맞은 나무. 대지 속성은 지진을 견딘 나무. 화염 속성은 용암을 흡수한 나무. 뭐 이런 식으로 무궁무진하게 만들 수도 있겠군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확률형 아이템은 당장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열띤 반응에 내가 외려 당황해버렸다. 그냥 플레이했던 다른 게임의 콘텐츠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저 정도로 획기적인 메시지가 될 줄은 몰랐다.

‘또 아부하는 건가? 그렇다고 보기에는 진짜로 감탄한 기색 같기도 하고.’

극적인 반응이 자주 있다. 이래서 내가 곧잘 착각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다행이야.’

희소성 높은 아이템이라는 지금 언급한 방식은 어쩌면 라이트 유저들이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에 더욱 어렵게 만드는 조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확률이라는 시스템보다는 이쪽이 낫다고 믿는다.

“좋습니다. 다들 이해하셨나 보군요.”

“네.”

“그럼 지금 이렇게 앉아계시면 안 되죠. 신속하게 제가 말한 부분들을 다 수정해서 다시 가져오도록 하십시오. 시나리오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게임 플레이에서 자신의 스토리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면 몇 번이고 그 부분을 다시 살릴 수 있도록 하세요.”

단정적인 어조로 내가 말했다.

“제가 이 회의를 진행하기 전에 시나리오 담당자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고 오로지 개발자들이 책임을 가진 것으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시나리오 담당자 역시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회장님.”

절반은 협박과도 같은 말이었지만 시나리오 담당자들의 얼굴은 오히려 기분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일단 게임 개발 과정은 많은 지적을 당했지만, 시나리오는 칭찬만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서 시나리오를 제대로 게임에 넣으라는 것은 부담 가지만 또 그들을 뿌듯하게 하는 의미도 있다.

그렇게 넷젠은 진행하고 있던 작업을 거의 중단한 채 새로운 콘텐츠 개발보다 기존 콘텐츠를 수정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욱 활기가 넘쳤다.

‘좋아. 하나 해결이군. 그나저나 이제는 강남 사옥도 작게만 느껴지네.’

처음에는 이것만 해도 정말 출세했고 하염없이 으리으리하다고만 여겨졌었다. 그런데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한 게이머스 포럼은 이보다 훨씬 큰 사옥이 필요하다고 말해오고 있다.

“건물을 하나 지어야겠어.”

기왕이면 누가 봐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 기업이라고 생각할 만큼 웅장한 규모로 지어야겠다.

< 방임=자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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