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49화 (249/577)

< 방임=자유? >

흘끔거리기만 하는 저들에게 내가 물었다.

“창단 멤버말고 선수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인 거 같네요. 어때요 다들 선수 생활은 할 만 해요?”

“네!”

기합이 빡! 하고 들어간 다른 선수들의 모습은 초기 멤버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채진우 감독이 거들었다.

“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프로게임단의 선수들 사이에서는 우리 게임단이 천국과 같은 곳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맞아요.”

“다들 엄청 부러워해요.”

그냥 다른 곳에서 들은 말이라면 회장 앞이니까 하는 소리로 들렸을 텐데. 지금 이들의 표정을 보니까 그대로 믿어도 될 거 같다. 이들은 정말로 우리 게임단 소속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연습생 그만두고 테스터를 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는데, 테스터 생활은 어때?”

“회장님. 이건 제가 말씀 좀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채진우 감독이 조금 전과는 다르게 진지하게 물었다.

“말해보세요.”

“이 친구들과 우리의 사이는 충분히 좋습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 친구들은 여전히 우리 가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분명히 사이는 좋아 보이는데, 말하는 어투를 봐서는 긍정적이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연습생들이 보기에 이 친구들의 삶이 더 안정적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보니 선수보다 테스터로 전향할 생각을 가지는 연습생들이 계속 생겨납니다. 아직은 괜찮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 아무래도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테스터들의 처우가 좋으니까 힘든 선수보다 손쉬운 테스터로 마음이 가는 연습생들이 늘어나는 것이 감독의 입장에서 불편한 모양이다.

‘듣고 보니 그러네. 충분히 그럴 수 있겠어.’

테스터들은 선수들만큼 성적에 예민할 필요도 없고, 또 되는 방법도 훨씬 쉽다. 물론 연봉은 선수들보다 낮지만, 연습생의 처지에서는 문턱이 낮고 안정적인 데다가 어느 쪽이나 많이 받는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수긍하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테스터들은 뭐 의견 없어?”

“저희야 뭐 스튜디오랑 크게 먼 곳이 아니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게임에 관한 부분인데요. 이게 의견이 잘 전달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뭐가?”

테스터들이 왜 테스터인가? 직접 게임을 해보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을 위해서 있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의견이 전달이 잘 안 된다니?

“이걸 이렇게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괜찮으니까 말해 봐.”

“최근에 개발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이 있지 않습니까?”

“다이너스티?”

“네.”

“그게 왜?”

“스토리가 너무 부실한 느낌이 강해요.”

“스토리가 부실하다고?”

명색이 회장인 만큼 나는 하는 일이 매우 많다. 초안을 잡아주고 방향을 짚어주기는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끼어들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다이너스티 역시도 중간마다 보고서를 받으면서 충분히 검토해주는 정도만 신경 쓰고 있었다. 출중한 우리 개발자들의 실력을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스토리가 부실하다니? 이해가 안 되는데?’

보고 받은 바로는 게임에 잘 어울리는 좋은 스토리를 훌륭하게 만들어 낸 상태였다.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

하지만 듣다 보니 내 뒤통수를 자극하는 말이 들렸다.

“네. 설명을 보면 훌륭한 배경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막상 게임을 해보면 별다른 스토리가 없어요. 설명만 뭔가 있어 보이는 거고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느낌이죠.”

‘···보고서로만 받은 내 입장에서는 그 설명만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막상 게임을 플레이 했던 테스터의 입장에서는 부실한 스토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걸 넷젠에는 전달한 거지?”

“했죠. 하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아요. 이게 저희가 게임 개발을 몰라서 잘하고 있는데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전달이 제대로 안 되는 건지 이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거 봐라.’

그냥 심심풀이로 들른 곳인데 아주 중요한 정보를 하나 얻었다.

‘하긴. 넷젠이 원래도 게임에 스토리를 녹여내는 걸 못했지. 뉴 온라인도 그게 스토리가 있는 게임은 아니었으니까.’

나름대로 스토리를 잘 구상해서 나중에 녹여내기는 했으나 이는 유명 게임을 잘 베껴서 거기에 어울리는 스토리를 우격다짐으로 넣고 설정을 잡은 것뿐이었다. 아마 지금도 대충 그런 식으로 개발하면서 실수가 생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건 내가 직접 확인을 해봐야겠다.

“좋은 의견이었어. 넷젠의 개발 과정을 한 번 확인해 보도록 할게. 너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거라고 하더라도 너희는 테스터로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거니까 실수라거나 그런 생각은 할 필요가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혹시나 자신의 말 때문에 넷젠에 피해가 갈까 걱정하는 모습 때문에 해주는 말이었다.

원래는 하루 이렇게 땡땡이를 쳤으니 내일부터 LON에 집중해서 회의해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LON이 아니라 다이너스티로 스케줄을 바꿔야겠다.

‘그나저나 난 놀러 온 건데 나는 왜 이렇게 일하러 온 것 같냐?’

어째 일을 놓고 살기는 글러 먹은 성격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 * *

다이너스티에 대한 의견을 듣고 이튿날, 내가 한 일은 회의를 진행하거나 자료를 찾은 것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까지 완성된 것을 직접 플레이해보는 일이었다.

그러며 테스터들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오롯이 체험했다.

- 어이. 신입. 어딜 그렇게 두리번대는 거야?

- 그래 너. 너 말이야. 아··· 이거 좀 빠릿빠릿한 신입이 오기를 기대했는데, 뭐 이렇게 어리바리하게 구는 거야?

- 그렇게 두리번거리지만 말고. 저기 언덕 너머로 가면 여우들이 있을 거야. 다섯 마리 정도만 처치하고 오라고.

임무 : 토벌 퀘스트 언덕 여우 5마리 처치.

보상 : 경험치 101, 33코퍼.

이것은 게임을 조금 진행하면서 받는 퀘스트가 아니었다. 그냥 처음 캐릭터를 생성하고서 시작하자마자 받는 퀘스트였다.

‘완전 뜬금없네. 이게 뭐야?’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또 저 여우를 왜 사냥해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커녕 저 NPC가 왜 나를 신입이라고 부르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냥 RPG이고, RPG는 사냥을 해서 레벨업 하는 게 당연하니까 튜토리얼을 쑤셔 넣은 느낌이야.’

퀘스트가 이래서는 곤란하다. ‘내가 어떤 것을 어떠한 이유로 사냥해야 하는 것인가?’이런 부분에 대하여 명확하게 짚어주어야 동기부여나 당위성이 생긴다. 그래서 시나리오 작가를 붙여주어서 좋은 스토리를 쌓게끔 지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결과가 이 모양이어서는 곤란하다.

‘또 모르지. 내가 너무 빨리 결론 내렸는지도.’

게이머가 어디 소속의 신입인지는 초반 튜토리얼을 다 마치면 알려줄지도 모른다. 이어서 게임을 플레이했다.

- 뭐야? 벌써 오다니··· 고작 언덕 여우에게 겁먹고 도망친 거냐?

- 응? 언덕 여우의 꼬리잖아? 이렇게나 빨리 다섯 마리를 모두 처치한 거야?

- 대단한데? 오랜만에 실력이 좀 있는 신입이 들어온 모양이야. 좋아. 너는 여기서 더 할 것도 없겠다. 언덕 너머로 가면 길버트를 찾을 수 있을 거다. 거기로 가도록 해.

임무 : 일반 퀘스트 언덕 너머의 길버트 찾기.

보상 : 경험치 202, 33코퍼.

애석하게도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퀘스트에서 퀘스트로 이어지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름대로의 스토리가 존재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딱 그것뿐이었다.

그냥 유저가 나무를 베는 방법을 배워야 하니까 나무꾼에게 보내서 나무를 직접 베도록 하고 식물을 심는 방법을 배워야 하니까 또 그리 보내져서 식물을 심는 퀘스트를 준다.

‘내가 말해준 극한의 자유도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자유도를 최대한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느껴진다고도 볼 수 있었다. 현재 게임이 감당할 수 있는 부분 내에서 유저는 그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또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어서는 곤란하다.

‘대체 이 세계 속에서 나무꾼이라는 직업이 존재하고,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존재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내용이 전혀 조금도 없어.’

물론 이것만으로도 다양한 콘텐츠를 자랑하고 홍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래 봤자 사람들은 결국 사냥을 위한 클래스만을 플레이하고 대장장이 같은 것은 사냥을 잘 하기 위해서 추가로 플레이하는 수준밖에 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냥 아이템 파밍을 위한 존재. 아이템 제작을 위한 존재 정도로 끝이 나는 것이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조금은 더 해보자.’

아직은 게임 개발의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최고 레벨이 15에 불과하기에 마련된 모든 콘텐츠를 다 해치워도 레벨업 위주로 한다면 1시간 30분에 마무리를 볼 수 있었다. 천천히 게임 전체를 둘러보면서 해도 4시간이면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이해하고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퀘스트는 견습 대장장이네.’

그동안의 퀘스트 만큼이나 별다른 정성 없이 ‘그냥 까라면 까.’ 이런 형태의 연속이기에 딱히 내용을 읽을 필요도 없다.

‘안 그래도 한국 게이머들은 내용을 잘 안 읽어.’

과거부터 게임의 마니아들은 국내의 게임보다 해외의 게임을 많이 했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외국어 때문에 게임의 지문보다 공략집을 통해서 스토리를 익히는 것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런 버릇은 그 시대를 떠난 지금의 게이머들에게도 이어져 오고 있었다.

‘요즘은 굳이 지문이 의미가 없어서 안 읽는다라는 것이 더 맞겠지만.’

그걸 읽는다고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재미도 없다. 그래서 안 읽는 거다. 하지만 무작정 ‘한국 게이머는 이렇다’라고 할 수도 없다. 스토리나 대화, 퀘스트에 신경 쓴 게임의 경우 한국 게이머들이라도 반절 가까이는 지문을 읽으면서 플레이하기 때문이다.

“이건 99%가 읽지 않을 거야. 완전히 무가치해.”

핵심은 다이너스티의 퀘스트가 그만큼 불친절하고 흥미도 없게 구성되었다는 점이었다.

여기에 쓸데없는 요소가 보였다.

「날카로운 언덕 마을의 단검 제련에 성공하셨습니다.」

“제작 확률?”

아무리 대단한 게임 개발사라도 유저가 콘텐츠를 소모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콘텐츠를 개발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들이 콘텐츠의 소모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100%로 오픈한다면 콘텐츠는 130%가량을 개발하고 오픈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래야 유저들의 마음이 떠나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방식을 사용한다고 해도, 유저들은 언제나 개발사의 예상을 압도한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한국은 콘텐츠의 소모 속도가 엄청나기로 정평이 난 곳!

그래서 개발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다.

‘확률.’

최상위권의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어려운 희박한 드랍률을 뚫어야만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제작에도 이런 확률을 추가시켰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다이너스티의 화면이 그러했다. 방금 제작한 아이템은 ‘언덕 마을의 단검’이다. 그러나 완성품은 ‘날카로운 언덕 마을의 단검’이다. 즉, ‘날카로운’이라는 단어 하나가 더 붙음으로 일반등급의 단검이 아닌 고급 등급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제련에서 이런 아이템이 나온다면 당연히 기분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있으면 이 고급등급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제련 아이템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는 점이지.’

사냥을 통한 아이템 드랍률은 당연히 확률성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작에서까지 이런 확률을 넣어야 할까?

수십 년 게이머로서 살아온 내 심정을 말하자면 이렇다.

나는 이런 확률성 게임이 싫다.

‘힘들게 레시피도 구해야 하고, 제작을 위한 재료도 직접 발로 뛰어서 구해야 해. 그런데 그렇게 제작해서 만든 아이템 중 90% 혹은 95%가 버려져야 한다? 그게 대체 무슨 콘텐츠야?’

내가 싫은 방식을 우리 게임을 하는 유저들에게 강제할 수는 없는 법이다.

< 방임=자유?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