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47화 (247/577)

< 방임=자유? >

지훈은 그런 채팅을 보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잘하긴 하는데 1군과 비교하면 뒤떨어지는 게 사실이니까.’

절대평가와는 달리 세상에는 상대평가가 많다. 그는 전체 평균과 비교할 때 게임을 잘하는 축에 속했다. 하지만 게이머스 포럼의 최상층 게이머인 김요환을 필두로 한 멤버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기약 없는 1군의 길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더 밝은 미래라고 봐야겠지?’

씁쓸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가 방송했다. 다행인 점은 꼭 스타 드래프트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할 게임이 정말 많았고 소속사인 게이머스 포럼의 게임들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은근한 자부심마저 생길 정도다.

“챕터 1. 포효하는 파도 소리입니다. 초반 챕터의 경우는 정말 다양하게 하고 싶을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메인 스토리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이 진짜 이 게임의 목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죠.”

- 그렇게 많아요?

“네. 마음먹고 그것들 위주로 한다면 대충 20시간은 스토리 진행을 못 하시게 될 정도예요.”

- 그럼. 메인 스토리 라인이랑 엔딩도 달라지게 되나요?

“그 부분은 아직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대답하지 않았으되 대답한 것과 진배없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으니 말이다.

- 저도 구매해서 이미 해보고는 있는데, 이 게임은 도저히 목적을 잘 모르겠어요.

- 맞음. 스토리도 너무 많고 할 것도 어마어마해서 정작 하다 보면 내가 뭘 했는지를 기억하기 어려움.

-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게임은 이게 처음이었죠.

사람들은 높은 자유도와 방대한 세계를 가진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자유는 방관이 아니라 원하는 케이스에 예쁘게 잘 포장된 자유였다. 이는 아직 이만큼 방대한 자유도를 선사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차지훈은 자신이 예정했던 콘텐츠를 예정했던 시간에 맞춰서 진행하기 위해서 빠른 속도로 게임을 클리어 해 나갔다.

- 보스인가요?

“네.”

챕터 1 최종 보스인 마피아 간부.

아무런 서브 미션을 수행하지 않고 확고한 경찰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답 위주로 선택하면 적대 마피아의 간부를 만나게 된다. 역시나 일반 게이머에게는 난해한 상대지만 숙련된 지훈 같은 이들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물 흐르는 듯한 공략으로 단숨에 타파했다.

“부하들의 배치는 가위바위보를 잘 생각하시면 됩니다. 얘들마다 다 상성이 있어요.”

- 어어? 상성이 있다고요?

“네. 잘 보시면 덩치가 작고 민첩한 부하들이 있죠. 이 녀석들은 적들 가운데 숫자가 적으면서 하나하나가 강한 놈들에게 배치하면 됩니다. 효율이 잘 나오죠. 또, 덩치가 크고 체력이 강한 부하들은 약하지만, 적의 숫자가 많은 곳에 배치해야 효율이 잘 나오죠.”

게임 내의 어디에서도 설명을 볼 수 없는 것들이었으나 게이머스 포럼에서는 나름대로 유저가 스스로 찾는 공략으로 설계하고 넣은 요소였다. 그러나 친절한 게임에 익숙했던 시청자들에게는 불만스러운 팁으로 보였다.

- GF는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모르면 맞으면서 배워라 성향이 너무 강해.

- 완전 불친절!

- 저도 그래서 공략 없이 하면 그냥 계속 얻어맞다가 아 답답해. 나중에 누가 공략 올리면 그거 보고 해야지. 이러고 넣어두게 된다니까요?

- 맞아요. 그래서 저는 구매 안 하고 있어요. 지금 사봤자. 어차피 스트레스만 받을 테니까.

- 공략 올라오면 그때 플레이하는 게 후련하죠.

* * *

“그랬구나!”

게임은 즐기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는 것이지, 게임을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면 그 게임의 존재 의미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두 가지를 실수했었어.’

첫째는 지금의 내가 선보이고 강조하는 요소들이 대부분 미래의 관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엇이건 최초는 익숙해지는 데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좋은 것은 언젠가 인정받기 마련이라는 장인정신에 입각한 주장은 사업에서는 부족한 발언이었다.

시와 때를 잘 맞춰 고객에게 맞게끔 소문을 내고 수익을 높여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실수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명작 게임에 대한 내 착각이었다. 드래곤 소울을 비롯하여 내 뇌리에 깊게 각인된 명작 게임들은 하나같이 높은 난도를 자랑했다. 그리고 성공 요인으로 어려운 게임성이 한몫했다고 생각하였었다.

‘하지만 가장 많이 팔린 게임에 들어가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잖아.’

명작으로 인정은 받는다.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게임에서 도전을 즐기고 죽으면 다시 해보자는 의지를 불태우는 사람들에게만 한정되고 이들의 수요층은 좁고 얕은 편이었다.

더 많은 판매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적당히 할 만한 수준이어야 했다. 특히나 이런 누아르 장르에서는 더더욱 어려운 게임성의 원칙을 고수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난이도를 줄여야 하는 것일까?

‘아니지. 대중성을 위해서 장점을 애써 깎아버릴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대신 선택지를 하나 더 늘리면 될 거야. 이를 위해서는 미안하지만, 신과 같이 팀에게 줄 휴가를 조금 미뤄야겠군.’

슬그머니 방송 구경을 마치고 돌아온 뒤 나는 수고해준 팀원들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지령을 내렸다.

「신과 같이의 초급자 모드를 추가 개발합니다. 이 모드에서는 경찰의 추격이 벌어질 확률이 낮아지며 적의 공격력과 체력을 20% 정도 줄여야 합니다.」

여기까지는 어려울 것도 없었다. 난이도를 추가하는 것? 다운로드 컨텐츠를 통해서 한다면 그것도 아주 금방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이 뒤에 이어진 것이다.

「튜토리얼부터 엔딩을 보기까지 초급자 모드에서는 적의 약점과 성향을 유저가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추가해야 합니다.」

일반 난이도에서는 없는 기능이며 애당초 신과 같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마무리 지어야 하는 데드라인은 열흘이었다. 당연히 쉬울 리 없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스트레스를 받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그렇기에 달콤한 보상을 준비했다.

「9월 첫째 주 안에 성공적으로 완료할 시, 신과 같이 팀 전원 휴가 10일에 보너스 250만 원. 마지막으로 동남아 4박 5일 여행권.

9월 둘째 주 안에 성공적으로 완료할 시, 신과 같이 팀 전원 휴가 7일에 보너스 200만 원.

9월 둘째 주 이후에 완료하였을 시 신과 같이 팀 전원 휴가 5일, 보너스 100만 원을 지급하겠습니다.」

급히 무리해서 완료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휴가 5일에 보너스 100만 원은 보장해준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찌 안정적이며 보장된 3등을 바라겠는가.

지금까지 게임에 몰두하느라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아주 조금만 더 노력하면 거머쥘 수 있다! 휴가 10일에 해외여행권이라면 전부 만회할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무시무시한 의지력을 보인 팀원들은 문자 그대로 밤에도 눈에 불을 켜서 작업했고 2003년 9월 4일에 새로운 난이도 버전을 개발해내는 데 성공했다.

“의도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먹히니 기분이 묘하네.”

9월 5일부터 ZBox 라이브센터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세팅까지 마무리 지었다. 그 결과, 게임에 관련된 모든 곳에서는 이 업데이트에 대해 ‘드디어 GF가 인간미를 보인다’ ‘배려심이 생겼다’는 글들이 올라왔고 멈추었던 게임 판매량이 순식간에 수직 상승했다.

그리고 2003년 9월 8일.

신과 같이가 200만 장을 돌파하면서 팀원들은 절반의 인원씩을 나누어서 10일의 휴가를 떠났다.

250만 원의 보너스에 4박 5일 해외여행권을 내걸었을 때 회사 내에서도 너무 과한 포상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했으나 이렇듯이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좋아. 이게 내가 원하던 거였어.”

게임 발매 한 달째에서 4일을 남겨두고 신과 같이는 300만 장을 돌파했다. 대략 10억 정도를 쓰고 매출은 550억이 오른 것이다. 그리고 아직, 판매량 곡선은 멈추지 않은 상태였다.

113. 방임=자유?

“회장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게 뭐죠?”

고진환 부문장이 가지고 온 서류. 그 서류에는 미국의 한 게임사가 온라인 마켓을 열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쳤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스팅이 드디어 출시하려는 구나.’

90년대 말. 닷컴버블을 통해서 한순간에 흥했던 IT 분야는 또 한순간에 몰락하며 사람들은 더 이상 IT를 쉽게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2003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분야들이 온라인 전쟁을 시작했다.

‘장비를 정지합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모든 설명을 끝낼 수 있는 벨류 코퍼레이션. FPS 최고의 명작을 만들어낸 그 회사에서 스팅을 출시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본래의 미래였다면 원조는 저들이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우리의 포털 이름이 클로버 스팅인 이유 역시 바로 저 스팅에서 가져온 이름이었다.

“시장은 우리가 먼저 선점했습니다. 아울러 다이렉트 Z를 기반으로 개발했으니 ZBox와 함께할 게임들은 우리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죠. 흔들리지 말고 미국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됩니다.”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벨류 코퍼레이션은 본래 쿼터 라이프의 유명세와 파워. 그리고 해당 게임을 개발한 엔진의 공개를 통해 PC게임의 온라인 유통을 점령하는 회사였다.

‘연쇄 할인마라는 정책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실 그건 나중의 일이거든.’

그러나 미안하게도 지금의 현실은 그들과 우리가 경쟁하는 일은 생기지 않게 되었다. 이미 ZBox를 꽉 잡은 GF엔진을 넘어서는 건 최소 10년간 불가능한 일이라 감히 장담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플랫폼은 특성상 한번 자리를 잡으면 그 순위를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선발주자가 어지간히 방심하고 헛발질을 하지 않는다면 고정불변이라고 봐도 된다.

“시간 참 빨라.”

어느덧 8월을 넘어서 9월 초에 접어들었다. 바쁜 회사의 업무들을 정리하고 나니 오늘 날씨가 화창하고 좋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무더위가 다 가시지 않은 서울 날씨는 건물 안에만 있지 말고 밖을 좀 경험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미세먼지 없는 요즘 같은 때 미리미리 산책을 해둬야 할지도.’

공기청정기가 가구당 차량수처럼 1가정 1개 이상씩 자리 잡을 날이 머지않았다. 산책에 관심이 생긴 나는 회사를 벗어나 일상의 여유를 즐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놀아본 녀석이 잘 논다는 말처럼 막상 회사를 벗어나니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게임이라면 어느 타이밍에 어떤 퀘스트를 해야 할지 동선이 잘만 그려지는 데 말이다.

‘하긴 매일 하는 짓이라고는 운동, 일, 플레지가 전부였지. 도무지 다른 걸 한 적이 없으니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새로운 취미생활을 하나 만들어야 할까?

하지만 그것도 딱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야지 억지로 한다면 또 다른 일거리가 될 뿐이다.

‘간석 사옥이나 들러보자.’

게이머스 포럼의 시작을 알렸던 간석동의 빌딩. 이제는 게이머스 포럼 간석 사옥이라고 불리는 이 빌딩 주변은 초창기 게이머스 포럼이 들어섰던 당시와는 달리 인천의 IT 산업을 상징하는 사무구역으로 새로이 발돋움하는 중이었다.

자화자찬이 아니라 정말로 우리 회사가 자리를 잡은 덕분에 발생한 일이라고 봐도 된다. 그리고 초창기 멤버였던 진수와 성찬은 이 사옥을 벗어나서 현재 강남의 건물주가 된 상태였다.

‘치킨집 테크트리는 굳이 탈 필요가 없어졌지.’

50대,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무려 게임 속 아이템과 골드를 팔아서 현실의 강남 빌딩을 구매한 것이다. 물론, 메인 도로도 아닌 구석진 곳의 작은 건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려 강남 빌딩이다.

그 덕분에 간석동의 건물은 오직 게이머스 포럼만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주요 업무들은 강남 사옥에서 처리하고 나름의 중요한 몇 가지 업무들을 여기서 담당하는데 그중 하나가 게임 인큐베이팅 사업이다.

과거 현실과 타협하느라 어쩔 수 없이 게임성을 저버리고 사행성을 넣어야만 했던 개발자들의 피치 못할 선택! 이들을 줄이고 건전한 게임 산업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이제 가슴 쫙 펴고 ‘나는 부자다’라고 할 수 있게 된 만큼 하나씩 과거의 목표를 달성하는 중이었다.

‘소규모 게임 그룹의 사람들이 모여서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지.’

그 덕분에 이곳에서 지원을 받은 몇몇 젊은 개발자들이 모바일 게임 분야로 진출할 수 있었고 간석 사옥 주변은 젊은 게임 개발사들이 모여서 게임을 개발하는 구역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 방임=자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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