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응 >
[고민이 길어지시는 것 같아서 추가 조건을 붙이도록 하겠습니다. 이 계약이 완료된다면 이번 신작도 이전처럼 ZBox의 독점작으로 발매가 될 겁니다.]
일반적으로 한 콘솔에 독점되는 것보다는 두 개의 콘솔에 출시하고 판매하는 것이 더 많은 수익을 보장받는다. 그런데도 왜 독점작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첫째는 안정적인 마케팅이 보장된다는 것.
둘째는 개발 초기부터 회사는 개발비를 투자받으며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 때문.
셋째는 개발비를 플랫폼에서 투자를 했기에 다른 게임을 추가로 개발할 역량까지 가지게 된다는 이점이 있어서다.
물론, 이는 일반적인 사례일 뿐이다. 신과 같이는 우리 회사에서 100% 투자하고 개발한 게임이니 원하는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판매하는 쪽이 나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내 대답은 ‘그럽시다’였다.
‘장기적으로 봐야 하거든.’
톰 핸슨은 엔진 때문에 내가 이 조건에도 수락하는 것이라 오해하고 있을 것이다. 내 진의를 알지 못하도록 이를 의도했으니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독점으로 주는 이유는 게임 스테이션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ZBox가 주춤하면 안 돼.’
경쟁할 대상이 없는 플랫폼은 더 이상 게임개발사와 나란히 가는 것이 아닌 위에서 군림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내게 좋지 못한 결과였기에 그들을 견제할 ZBox는 아직 더 성장해야만 한다.
즉, 나는 엔진 때문이 아니더라도 원래부터 독점으로 줄 예정이었던 게임을 마치 엔진 때문인 양 포장해서 이득을 취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멀리까지 날아온 계약을 성공리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회장님. 여전히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김유천 과장은 계약을 마치고 돌아온 호텔에서 꾹 참았던 물음을 내게 던졌다.
“우리 엔진을 사용한 게임의 PC판권. 그것을 왜 요구하신 겁니까? 제 생각엔 그것보다는 신과 같이 가 게임 스테이션에서 판매되는 게 더 이익일 것 같은데요,”
“한 손으로 열 손은 막을 수 없는 법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PC 게임 시장은 완전히 끝났지 않습니까? 전혀 수익이 날 수 없는 구조인데요.”
“두고 보세요.”
그의 말대로 PC패키지 시장이 큰 역량을 발휘한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도 PC게임 시장은 어떻게든 생존해서 결국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내게 된다. 일반 대중에게는 어마어마한 묶음 할인으로 잘 알려지는 온라인 마켓이 바로 그것이었다.
‘스팅.’
이제 슬슬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도 온라인 게임 스토어를 운영할 능력을 갖춰가는 중이다. GF엔진의 계약은 그것을 위한 초석을 다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래 예측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나는 웃어넘겼다.
‘이제 본격적으로 신과 같이의 베타 테스트가 진행되겠군.’
기대가 된다.
112. 반응
신과 같이의 데모 버전이 출시되고 2달이 지났을 때, 드디어 정식 버전이 출시되었다. 학수고대하던 만큼이나 게이머들은 엄청난 호응을 보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 심리라는 게 극단적인 호(好)가 있다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불호(不好)가 있기 마련이다.
게임스테이션2 유토피아라는 친목 모임의 무리가 바로 이에 속했다.
[신과 같이? 진짜 웃기는 소리 아니냐?]
[맞아. 이 게임이 게임스테이션2로 발매가 안 되었다는 건 ZBox에서는 통해도 겜스에선 안 통한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잖아.]
미국에 위치한 한 소형 건물의 지하실. 그곳에는 8명이 소규모의 모임을 하는 중이었다. 게임스테이션을 사랑해왔다는 공감대를 가진 이들은 ZBox에 대해 매서운 품평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이지. 저놈들은 워낙 할 게임이 없으니까, 제법 할 만한 게임만 나와도 무슨 대단한 역작이 등장한 거라고 착각한다니까?]
[불쌍한 놈들이야.]
[예전에 나왔던 그 뭐더라? 샤이닝 로드? 그거도 플레이 영상 보니까 엄청 조잡하고 캐릭터도 그냥 어디서 다 본거 같고 그러던데.]
[프레임도 뚝뚝 끊기지, 대체 어떤 놈이 그딴 게임을 질다의 전설과 비교한 거야?]
부심.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자부심을 가지는 분야들이 존재하게 된다. 이 자부심이라는 건 때로 한 사람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러나 때때로 엉뚱한 곳에서 그 자부심이 발현하게 되는데 그런 것을 우리는 부심이라고 한다.
‘어디 ZBox따위가!’
지금 이들이 부리는 것은 일종의 콘솔 부심이다. 그들은 게임 스테이션에 관련 된 사람도 아니고, 게임사에서 근무 중인 직장인도 아니었다. 그저 게임 스테이션이라는 콘솔을 가지고 있었고 해당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이면서 자부심을 진 부류였다.
그러던 것이 게임 스테이션이 전성기를 구가하고 소모임을 자주 갖다 보니 게임 스테이션을 제외한 모든 콘솔을 마이너 콘솔로 분류하게 되었고 게임 스테이션으로 발매하지 못한 게임들마저도 마이너로 대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애초에 틀린 말은 아니잖아?’
전 세계 판매량 3,200만대의 게임 스테이션과 고작 900만대에 그치는 ZBox, 어디 이 둘을 경쟁사이자 콘솔의 양대 산맥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압도적인 1위와 한참 뒤처진 2위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던 이들의 평가가 요즘 들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GF라는 회사가 등장하면서부터 생긴 일이었다.
[그다음에 나온 게임도 봐. 몬스터 프레데터스? 야. 솔직히 그게 그 정도 게임이냐?]
[어? 음··· 그런데 그 게임은 까지 말자.]
[왜?]
[인간적으로 볼 때 몬스터 프레데터스를 까면 게임 스테이션에도 할 만한 게임이 몇 없는 거 같아.]
[뭐라고?]
[쟤 프락치다. ZBox 프락치가 하나 껴 있었네!]
[배신자다! 쫓아내!]
말 한마디를 잘못 했다가 모임에서 쫓겨난 남성은 황당한 얼굴을 하게 되었지만, 애초에 본인도 똑같이 다른 누군가를 몰아서 쫓아낸 적이 있는 인물이다. 그렇게 양심선언을 하는 인물을 첩자라고 낙인찍어 쫓아낸 뒤 그들은 본격적인 자신들의 행사를 시작했다.
[모두 알고 모이셨겠지만, 오늘은 우리끼리 2등 게임의 한계를 파악하고자 모였습니다. ZBox같은 2등 콘솔로 게임을 한다는 건 시간 낭비지만, 그래도 해보지 않고서 근거 없이 깔 수는 없죠.]
[옳소!]
[우리는 문명인이니까.]
[맞습니다. 즉, 게임의 특성을 미리 알아둬야 우리가 게임 스테이션에 진정으로 올바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는 취지의 모임입니다. 그러니 재미없을 줄 알면서도 성의를 가지고 플레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재미없다고 단언하고 들어가는 게임은 당금의 화제작인 신과 같이 였다.
[그럼 이제부터 다 같이 플레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 7인의 게임 스테이션 추종자들은 특별히 공수해온 ZBox 콘솔의 컨트롤러를 집어 들었다. 뒤이어 혀를 찼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얘네는 이런 걸 들고 게임을 어떻게 하는 걸까?]
[게임 컨트롤러가 아니라 무슨 곰 발바닥을 집어들은 거 같아.]
ZBox의 컨트롤러는 이전에 나온 그 어떤 게임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를 커다란 크기를 자랑한다. 디자인적인 결함인데 이는 처음 제작할 때 개발자들에게 ‘우리는 당신들에게 그 어떤 것도 침해하지 않겠습니다. 최대한 당신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담아서 제작해주세요.’라고 말한 데서 비롯했다.
그렇기에 완성된 컨트롤러를 보면서 ZBox 측에서는 이런 반성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 아! 크기를 정해줬어야 했구나!
서로의 상식이 달라서 생긴 촌극인 셈이다. 이런 진담 같은 우스개가 있을 만큼 ZBox의 컨트롤러는 정말이지 자비가 없도록 컸다.
물론, 초창기의 일일 뿐 현재는 크기를 축소화한 컨트롤러들이 시판된 상태였으나 이들은 의도적인 것 절반, 정말로 무관심해서 몰랐던 것 절반의 이유로 초창기 ZBox의 컨트롤러를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중이었다.
[역시 2등 게임기는 어쩔 수 없네.]
[너무 불편해.]
[이런 컨트롤러로 재미있게 즐기는 게임도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지.]
냉소와 함께 본격적인 게임을 플레이했다. 그리고 눈을 꿈뻑이며 7인의 추종자는 화면에 몰입했다.
캘리포니아의 최대 마피아 조직.
브룩스 패밀리산하의 브룩스 항만 사무실.
- 형님. 코넬리 놈들이 우리 창고를 급습했다고 합니다.
- 코넬리라······.
비식 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 그래. 그놈들도 슬슬 정리할 때가 왔지.]
자욱한 담배 연기와 함께 한 메시지가 화면에 새겨졌다.
「브룩스 항만 2인자. 캘리포니아의 투신. 더글라스 크랜스톤.」
그가 말했다.
- 몇 놈이나 와 있지?
- 숫자가 중요하겠습니까? 투신 더글라스 형님이 계신데? 그냥 다 쓸어버리면 되는 거죠!
긴장감 없는 부하의 말과는 달리 LA항구의 창고를 급습한 적의 숫자는 무려 30이 넘어간다. 반면에 브룩스 패밀리의 인원은 고작해야 10명 남짓이니 세 배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러나 긴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주인공인 더글라스를 신뢰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심정을 부하들이 강하게 어필하는 중이었다.
- 명령만 하시면 바로 정리 들어가겠습니다.
충성스러운 대답과 함께 미션이 나왔다.
「당신은 더글라스의 부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적들을 제압해야 합니다. 화면 내에 보이는 부하들의 스테이터스를 확인한 뒤, 이들에게 맞는 적들이 있는 위치로 투입하십시오.」
현장감 넘치는 영상미에 흠뻑 취했던 7인의 추종자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뭐야? 이거 RPG인 줄 알았는데 RTS였어?]
[그런가본데?]
단정 짓고는 마저 이어나가려다가 다시금 흠칫 당황했다. RTS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플레이하려 했더니 이제는 RPG처럼 플레이하도록 전투가 이어진 것이다.
[이게 뭐 하는 게임인지 모르겠는데.]
[뭐긴 뭐겠어? RTS요소랑 무쌍과 같은 액션 요소를 적당히 섞어둔 거잖아.]
[하여간 2등 게임들은 다른 게임을 표절하지 않으면 뭘 못 만든다니까?]
여전히 신랄하게 말하면서도 어느덧 그들은 서로의 표정보다는 화면에 몰입하고 있었다.
절대 기존 게임의 표절은 아니다.
게임 내부의 전투 요소들을 하나하나 빼서 본다면 이 게임에서 본거 같고, 저 게임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로 합쳐서 콘솔에 넣는다는 건 단순한 표절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새로운 걸 개발하는 게 빠르지 이런 시스템을 한데 모아서 잘 버무리는 건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7인의 추종자들은 이러한 의중은 절대 표현하지 않았다.
[유후~! 게임이 너무 쉽잖아? 나 벌써 깼어!]
[멍청하기는. 다들 이미 클리어했잖아. 네가 제일 늦었다고.]
[고작 튜토리얼 클리어해놓고 창피하게 그럴 거야?]
[튜토리얼이 중요하냐? 클리어한 게 중요하지!]
핀잔이 오가는 중에 게임은 본격적인 스토리로 넘어갔다.
마피아 대부의 장례식 장.
검은 정장을 입은 다양한 덩치들이 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경건한 모습으로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카메라 앵글이 전환되듯 화면은 두 명의 마피아를 비추었다.
큰 키에 말랐지만 뱀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성.
키는 작지만 다부지고 장난스러움과 고집스러움을 동시에 가진 남성.
그들에게로 손님들이 따로이 줄을 선 것 같은 모양이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적이라도 되는 양 살기를 띨 만큼 팽팽한 기 싸움 중이었다.
이윽고 키가 작고 다부진 남성에게로 화면이 잠시 머무르자 두 남성의 표정이 일순간에 엇갈렸다.
미간과 함께 일그러지는 날 선 불쾌감, 비식비식 웃으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도발에 이르기까지. 이는 비록 게임의 그래픽 영상이지만 양쪽의 차이가 완벽하게 묘사되면서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연출이 생각보다······.]
누군가가 ‘괜찮은 거 같은데?’와 비슷한 말을 하려다가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조금 전에 몬스터 프레데터스에 대해 호의적으로 발언했다가 첩자로 몰렸던 사람이 있지 않던가. 괜한 소리를 내뱉었다가는 바로 역적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가 실수할 뻔 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만큼 이들은 게임에 한창 빠져든 상태였다.
- 형님. 웬 놈들이 차량을 세워두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한 명의 마피아가 조심스럽게 들어와서는 뱀과 같은 눈매의 남성에게 귓속말을 전달했다.
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보라는 듯이 와락 소리쳤다.
- 감히 어디서 초대도 못 받은 것들이 남의 장례식에 와서 설치고 있어!?
과연 진짜 외부에 찾아온 불청객에게 하는 소리인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아닌 키가 작은 남성을 선택한 손님들에게 하는 소리인지 파악하기 힘들게 일갈하고는 뱀눈의 남성이 장례식장을 나섰다.
[뭐야? 아직 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왜 내가 다 긴장이 되지?]
이제 막 튜토리얼을 마치고 제대로 시작한 마당인 만큼 도대체 이들이 무슨 관계인지, 또 지금 이 게임의 스토리가 어찌 흘러가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초반에 느껴지는 기 싸움이 상당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잠시 후 장례식장에 찾아온 불청객들의 면면이 드러났다. 마피아들을 감시하러 온 경찰들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분쟁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지켜보는 한 사람이 보이더니 선택지가 나타났다.
- A. 끼어들어서 분쟁을 막는다.
- B. 모른 척 상황을 지켜본다.
- C. 상관하지 않고 다시 장례식장으로 들어간다.
< 반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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