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42화 (242/577)

< 타이틀 거래 >

다음은 숙박지다.

‘이건 훨씬 쉽지.’

회사 규모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사내 복지를 위해 계약한 업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 중 몇몇 업체들은 기업의 오너를 위한 이용권을 제공해준다.

“이미진 팀장님. 늦은 시간에 미안합니다.”

- 아닙니다. 회장님.

“내일 동생이 경포대로 MT를 가는데 문제가 생겼다고 하는군요. 혹시 40명 정도의 인원이 지낼 숙박지 하나만 잡아주실 수 있겠어요?”

- 문제없습니다.

“고마워요. 잡히면 전화해 주실 것 없이 어디인지 문자만 하나 보내주세요.”

- 네.

전화를 끊고 이미진 팀장이 숙박지에 관한 문자를 보내는 데에 걸린 시간은 고작 4분이었다. 이로써 전화 두 통으로 태희가 몇 시간 동안 고민하던 문제가 해결됐다.

“미션 클리어. 이제 내려가서 과일 같이 먹자.”

“진짜? 진짜 다 된 거야?”

“그래.”

“와! 역시 우리 오빠가 최고야! 세상에서 제일 멋져!”

만세를 외치다가 와락 끌어안는 것을 보면 정말 부담감이 컸던 모양이다.

“됐네요. 가서 사고 치거나 다치지 말고 잘 놀다 오기나 해.”

“응!”

*

이튿날, 회사로 출근하며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의 사업 보고서입니다.”

1년에 가까운 시간을 모아둔 보고서.

원래대로라면 방대한 사업내용으로 책 반 권 분량에 가까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압축하고 요약한 보고서인지라 A4 용지로 15페이지가량에 불과했다. 그중에 잠시 잊고 있던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무간계였다.

‘이게 왜 여기에 끼어 있지?’

지금 내가 읽고 있는 것은 GF의 보고서다. 무간계는 TS에서 다루는 것이니 함께 받을 내용이 아님에도 보고가 올라온 것이다.

“TS투자운용의 곽지원 전무에 의해서 보고서가 합쳐졌습니다.”

이를 고진환 부문장에게 물으니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GF는 법인이지만 회장님의 개인 자산으로 이루어진 법인입니다. 따라서 보고서가 합쳐져도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고서에 집중했다.

- 무간계 투자금 4,500만 홍콩달러.

- 무간계 홍콩 개봉 총 수익금 5,505만 홍콩달러.

‘이번에도 예상대로의 막대한 수입을··· 응? 가만있어봐. 홍콩달러? 아뿔싸. 내가 깜빡했었구나.’

내가 기사에서 봤던 5,500만 달러의 개봉수익은 거짓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냥 달러라고만 되어 있던 그 달러가 미국 달러가 아닌 홍콩달러를 의미하는 거였고 이 부분을 대충 넘겼을 따름이다. 덕분에 예상대로의 수입이 아니라 예상만 못한 수입이 되었다.

‘조금 아쉽기는 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홍콩 내의 개봉수익 뿐, 해외 판권 수익을 통해서 10억 정도는 남겼으니까 쪽박은 아니지.’

미래를 알아도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다음부터는 더욱 꼼꼼하게 잘 기억해보자고 생각해본다.

- 리얼팜 테마파크 2002년 10월 완공.

시간은 흐르는 물과도 같고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놓아도 간다는 말이 참으로 맞는 이야기다. 어느덧 이것도 완공의 시기가 다가온 상태였다.

‘우리 마스코드들을 활용하며 진짜 괜찮은 테마파크로 성장하게 될 거야.’

처음에는 그리 큰 기대를 하고 시작한 사업이 아니지만, 점점 회사의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이 테마파크에도 새로운 기대감을 가지게 됐다. 단언컨대 아시아 최고의 테마파크가 될 것이다.

‘게임 쪽은 얼마나 진행이 된 거지?’

재빨리 페이지를 넘겨서 관련 내용을 확인했다.

- 레전드 오브 뉴 어스 : 워드Ⅲ 유즈맵 점유율 45% 달성.

- 현재 워드Ⅲ 유즈맵은 MOS장르가 65%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의 장르에서도 MOS의 캐릭터를 활용한 게임들이 심심찮게 목격이 되는 중.

‘아주 순조롭네. 이제 사람들이 제법 MOS라는 장르를 인식하고 있어.’

국내에서는 당연하게 MOS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중이고 해외에서도 일부는 MOS라는 명칭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절대다수라기에는 아직 모자랐다. 대다수가 LON Like라고 부르며 MOS라는 장르 명칭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상황을 낙관하는 이유는 지금 정도만 인식되어도 충분한 수치였기 때문이다. 인식

‘더도 덜도 필요 없어. 딱 북미와 한국. 이 두 곳만 잡으면 돼.’

중국은 우리가 뭐라고 하건 자기들이 부르고 싶은 이름으로 부르는 국가다. 그러니 거긴 많이 팔아서 돈만 벌 생각을 해야지 MOS라는 명칭으로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성주환 팀장에게 유즈맵이 아니라 제대로 된 게임으로 LON을 만들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면 될 차례였다.

그 외에 드래곤 소울은 기존의 게임들과는 다른 생소한 형태 때문에 개발진이 많은 고충을 겪는 중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꽤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보고서가 있었다.

‘다이너스티도 잘 빠지고 있고.’

남은 건 ‘신과 같이’뿐이다.

- ‘신과 같이’ : 완성도 97%.

- 알파 테스터 4차 완료.

- 현재 5차 진행 중.

이건 굉장한 개발 속도다.

‘미국의 슈퍼컴퓨터 덕분에 국내 마이코닉스의 렌더팜을 ‘신과 같이’ 팀에서 독점했구나.’

아무리 낮은 사양이라도 렌더팜은 슈퍼컴퓨터다. 이런 장비를 회사 단위가 아니라 팀 단위에서 사용할 수 있었으니 개발 속도가 미친듯한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드디어 ‘신과 같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가 왔군.’

이 게임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 내 관심이 높은 게임이다.

사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우리 회사가 개발해 온 게임들은 순수한 오리지널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모두가 존재했던 작품들이었고 나는 그저 그것들을 베껴서 먼저 출시했을 뿐이다.

그러나 ‘신과 같이’는 다르다. 여기저기서 좋다고 할 만한 내용과 영화 스토리를 짜깁기하기는 했으나 게임으로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종류다. 그렇기에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첫 게임이었다.

그 작품이 가시화되었으니 내 입가에는 미소가 저절로 그려진다.

“제가 없으니까. 회사가 더 잘 돌아가는 거 같네요?”

웃으며 고진환 부문장에게 물으니 그 역시 아니라며 대답했다.

“회장님이 이미 토대를 다 만들고 미국에 가셨으니까 문제가 없었던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못 했을 겁니다.”

역시 아부는 언제 들어도 참 듣기 좋다. 크게 한바탕 웃어넘겼다.

“아주 좋습니다. 보고서는 잘 봤고 2시간 뒤에 ‘신과 같이’ 팀 간부들과 회의를 진행할 테니 소집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2시간의 여유 동안 나는 잠시나마 게임을 구경하기로 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각 잡고 밤샘 플레이를 해버리고 싶지만.’

완성도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플레이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 명의 미친 게이머로서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러나 이 길고 긴 게임을 직접 전부 플레이한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나는 핵심적인 부분만 추려낸 플레이 영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야~ 이렇게 오프닝이 들어갔구나.’

브룩스 패밀리.

‘신과 같이’의 배경이 되는 이 기업형 마피아는 금융, 보험, 항만, 카지노, 주류, 밀수, 마약을 통해 부를 축적한 캘리포니아 최대 마피아 조직이다.

오프닝은 각 분야의 보스들과 그의 부하들이 등장하면서 싸움과 추격전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다수의 조직원에게 둘러싸인 주인공이 강력한 크로스 어퍼를 날리는 장면으로 화려하게 끝을 맺었다.

‘영화랑은 느낌이 다르면서 영화적인 기분도 들어. 이만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고 봐도 되겠지.’

기본 골격으로 넣었던 영화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게임.

여기에 훨씬 방대하게 몸집을 불린 ‘신과 같이’의 풍성한 볼륨.

혼신을 다해 만들어낸 마이코닉스의 유려한 그래픽.

이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낸 것이다.

‘이제 튜토리얼인가?’

주인공은 브룩스 패밀리 내부에서도 꽤나 발언권이 높은 브룩스 포트베이의 2인자다. 거대한 규모만큼이나 적이 많았기에 시작부터 적대세력이 아군의 창고를 급습했다는 제보를 받으며 길 찾기와 싸움에 관련된 튜토리얼이 구성되어 있었다.

‘한국적인 정서를 생각하면 게임을 이렇게 구성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길을 찾기 위해서 달려가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일은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럴 때마다 NPC들은 제각각의 성격이 부여되어 시비를 걸어오거나 그냥 욕을 하고 또 다른 NPC는 인상만 찌푸리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갱스터와 같은 NPC는 곧바로 유저에게 주먹질도 했다. 일명 유교 탈레반이라고 부르는 한국적인 정서에서 이런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총이 생각보다 너무 덜 나오는데.”

체크 포인트다.

전투를 지켜보면 미국이라는 배경과 달리 육탄전이 중심이고 기대보다도 총의 빈도가 매우 낮았다. 그렇게 중간중간 의문 나는 점을 떠올리며 압축한 플레이 영상을 보았다.

총평하자면 ‘이건 무조건 된다.’였다.

“아주 잘 빠졌다.”

약 1시간 30분의 영상이었는데 몰입감 있었고 재미요소가 넘쳤다. 나는 기분 좋게 회의실로 향했고 ‘신과 같이’ 팀의 간부들과 회의를 진행했다.

언제나처럼 인사치레를 나눈 뒤 의문점들에 관해서 물었다. 첫 질문인 총기류의 사용빈도가 적은 이유를 물으니 이는 기기의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초기부터 구상했던 총격전 시스템은 콘솔에서의 표현 한계 탓에 게임 장르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판단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전부 표현하기 위해서 총보다는 주먹, 그리고 근접 무기를 주류로 설정해야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어차피 총이냐 칼이냐 그런 것들이 중요한 건 아니다. 어떤 것을 주류로 선택하든 그 게임이 재미가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외에도 몰라서 빠뜨린 것이 아니라 타당한 이유가 대부분이었기에 나는 처음과 같은 흡족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신과 같이’ 팀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앞으로 조금만 더 힘내 봅시다. 출시 후에는 모두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아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베타 테스트용의 데모 버전을 따로 빼내는 데는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데모 버전은 딱히 ‘어떤 부분을 추출해야한다.’와 같은 규칙이 없었다. 목적은 사람들이 플레이해본 뒤 ‘이 게임을 구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부분이면 된다. 목적을 위해선느 얼마든지 짜깁기든 초반이든 혹은 엔딩씬이든 사용해도 무방하다.

‘물론 정말로 엔딩 버전의 데모를 만드는 건 무리수지만.’

어떤 부분을 사용해도 전혀 무관하다.

“데모버전은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죠?”

“초반 부분인 경찰과의 마찰부터 내부 전쟁의 서막까지입니다.”

게임을 즐기기 위한 전투와 콘텐츠들에 대한 것들이 모여 있으면서도 게임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이해할 수 없는 파트였다. 분량도 적당하니 데모로는 안성맞춤이다.

“좋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세요.”

“회장님. 그럼 베타 테스트는 어떻게 진행하실 계획이신지요?”

“그건 따로 공지 받으실 겁니다.”

지금 단정 짓지 않는 이유는 이번 신작의 성공을 위해서 미국에 다시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였다.

*

‘시애틀 = 비’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이곳은 비가 잦은 도시다.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내가 도착한 날에는 맑고 푸른 하늘에 새하얀 구름이 기분 좋은 바람에 떠밀려 날아가고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이 나라는 정말 땅덩이를 큼직큼직하게 써.’

파라마운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큰 규모지만 그곳은 대부분이 영화 촬영을 위한 스튜디오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마이크루 빌리지는 그런 것 없이 통째로 회사였다. 자주 느끼는 규모의 차이를 실감하며 직원에 안내를 받아 상급 회의실에 들어갔다.

[음료는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시원한 아메리카노 가능합니까?]

[네.]

[그럼 저는 아메리카노로 하죠.]

김유천 과장은 그냥 주스를 선택했다. 받아서 한 모금 마시자 김유천 과장이 참았던 질문을 했다.

“회장님. 굳이 이렇게 직접 찾아오신 이유가 대체 뭡니까? 이제는 알려주실 수 있으시지 않습니까?”

‘신과 같이’의 독점 판매 계약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회장이 직접 마이크루 소프트까지 날아와서 미팅을 잡는 건 무리였다. 중요하기는 해도 이 정도의 비중은 아닌 것이다.

당연히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게 맞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은 상태였다.

“왜요? 걱정되세요?”

“회장님께서 진행하시는 일에 걱정이라니요. 단지 너무나도 궁금해서 그럽니다.”

“먼저 알면 재미없잖아요. 지켜보시면 다 알게 될 겁니다.”

“아이고.”

이런 내 태도에 그는 더 질문하지 못하고 그저 입맛만 다셨다.

그렇게 약속 시간 5분 전이 되었고 조용한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타이틀 거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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