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99년 게임 스타트-240화 (240/577)

< 나빠요 >

*

사람들 길드 연합은 이미 골든 성에 모두 집결해서 언제든지 출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11층으로 바로 가면 될까?’

성을 두고 싸우는 대규모 전쟁이 아닌 만큼 서로가 상대의 위치를 파악해서 타격하는 방식이 이루어진다. 무작정 돌아다니다가는 선제공격 당할 수 있으니 어느 쪽에서 급습하느냐에 따라 승패의 향방이 갈릴 것이다.

그렇게 사대룡 연합이 어느 사냥터에 있을지에 대해 고민할 때였다.

- [월드] pizical : 사람들 연합분들 계신가요? 지금 사대룡 연합 애들이 19층에서 막피합니다. 도와주세요!

- [월드] z오크공수z : 지금 쏘우어 젠 시간 되어가는데 그거 때문에 거만 19층에 간 모양이네. 이대로 20층에 자리 잡고 통제할 계획인가보다.

쏘우어는 거만의 탑 11층대의 보스 몬스터다. 일명 눈깔이라고 불리는 비홀더의 상위 호환으로 일반 몬스터와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을 주는 녀석이었다.

‘좋은 제보.’

사대룡에게 당한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우리에게 알려주기 시작했으니 게이머스 포럼에 글을 올린 것이 슬슬 효과를 보이는 셈이다.

- [연합] 구운몽 : 갑시다.

우리가 신속하게 움직이는 사이에도 월드 채팅은 이어졌다.

- [월드] 크레용 : 와 진짜. 이놈들··· 완전 개떼네. 도대체 몇 놈인 거야?

- [월드] 뚜비두밥 : 조심하세요. 이놈들 19층이랑 20층 나눠서 자리 잡았습니다. 20층에만 간 거 아닙니다. 그리고 19층에 있는 놈들 숫자만 해도 30명이 넘어요. 거만의 탑 한 층이 그냥 얘네로 가득 찬 느낌이네요.

- [월드] 역시나얌 : 20층도 만만찮게 많음. 오늘 11층대 영업 끝났습니다. 11층대는 오지마 세요. 영업 끝났습니다. 누가 보면 거만의 탑에서 공성전 하는 줄 알겠어요.

19층에서 30명이 넘고 20층에서도 30명이 넘으면 거의 70명 가까운 숫자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이야기였다. 이정도면 일부가 아니라 쓸만한 멤버들 대부분이 모였다고 보아도 된다. 호전적으로 ‘우리는 여기 있으니 그래도 덤빌 자신 있으면 와봐!’라는 대응을 한 것이다.

“재밌네. 진짜로 작정하고 기다린다 이거지?”

“우리는 지금 몇명이냐?”

“다 합치면 50명 정도 될 거야.”

50대 70.

이런 차이면 그냥 눈으로 봐도 수적 열세가 보인다. 그러나 나의 사기적인 강화가 더해진 만큼 스펙은 우리 쪽이 조금씩 높았다. 그중에서도 나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니 결코 열세가 아니었다.

그때였다. 대규모로 거만의 탑으로 순간이동하여 달려나가자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 [월드] pizical : 와아! 사람들 연합이 나섰다!

- [월드] replies : 사람들 거만 등장! 사대룡 너네 이제 클나따!

‘······.’

우리가 괜히 월드 채팅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출발한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가 올 거라는 걸 알고 대비를 하고 있을 상대에게 도착 시각이라도 예상하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아무 말 없이 움직인 거였다.

그런데 지금의 멘트 덕분에 사대룡 연합은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았고 지금부터 작정하고 대응할 만반의 태세를 할 게 틀림없었다. 진수와 성찬이 역시 헛웃음을 보였다.

“야. 저거 프락치 아냐?”

“그냥 이것저것 다 중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있잖아. 그냥 그런 거 같아.”

“덕분에 골 때리게 됐네.”

처음에 사대룡이 교만 19층에 나타났다고 알려왔던 사람도 저 사람이었으니, 프락치라고 생각하는 건 과한 감이 있다고 판단된다.

그즈음 사대룡 측에서 도발해왔다.

- [월드] 적반하장 : 오고 있네? 우리는 쫄아서 덤비지도 못하나 했지.

- [월드] 캬캬캬: 기다리느라 아주 목이 빠지겠다. 빨리 좀 와라.

적반하장과는 오늘만 총 세 번의 싸움을 가졌다. 첫 전투는 막피 팀 하나가 덤벼서는 나 하나에게 패배했고 그 이후에는 집단전에서 또 우리 길드 연합에 패배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내가 귀환하기는 했지만 8대1의 싸움이었고 죽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도발을 해? 이게 상황이 맞다고 생각하는 거야?’

상식적인 나로서는 영 알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어느덧 18층이다. 이제 곧 19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들에게 진정한 정의구현이 무엇인지 알려줄 시간이 된 것이다.

- [연합] 지옥검 : 나이트. 물약 세팅하고. 먼저 들어갑니다. 19층 올라가자마자 공격이 몰릴 수 있으니까 그냥 물약 먹으면서 올라가세요.

- [연합] 구도자의길 : 매지션들은 나이트가 올라가기 전에 먼저 뮨 걸어줍니다. 자기가 담당하는 나이트에 뮨 다 걸어주세요.

오래간만의 복귀유저인 만큼 나는 지휘보다도 강력한 전투요원으로 활동했다.

- [연합] 지옥검 : 뮨 먼저 받은 나이트들 순서대로 진입합니다.

- [연합] 지옥검 : 진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장 먼저 내가 올라갔다.

‘집중포화는 가장 강력한 내가 맞아주면서 시선을 끈다.’

일반적인 싸움이라면 집중견제를 받기 쉬운 강자를 전열이 아닌 중간에 섞는 편이 옳다. 견제를 어렵게 만들고 압도적인 데미지를 꾸준히 넣게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 장비가 어디 공격 하나에만 치중했던가.

더군다나 두 명의 블레싱 엘프와 한 명의 매지션이 내게 전속으로 배치된 마당이니 얼마든지 적들의 중앙에서 활개를 치는 게 가능하다.

‘온다.’

거만의 탑 19층에 돌입함과 동시.

예상대로 엘프들의 화살이 무더기로 날아왔다. 우리 쪽 네임드 유저들의 지휘가 막바로 이어졌다.

- [연합] 지옥검 : 블레싱 엘프 먼저 칩니다. 블레싱 사용하는 엘프 있으면 무조건 우선순위로 가겠습니다.

- [연합] 담덕 : 캬캬캬, 활지롱부터 갑니다. 좌군은 캬캬캬 우군은 활지롱으로 가겠습니다.

- [연합] 구도자의길 : 나이트웨인 붙습니다. 뮨이네요. 캔슬 갑니다.

게임에서의 싸움은 당연히 레벨, 장비, 숫자가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완성되어도 팀워크가 좋지 못하다면 집단전은 패배하고 만다.

- [연합] 구도자의길 : 가까이 붙는 나이트들 바로바로 캔슬 들어가 주세요. 총군주와 지옥검이 붙은 엘프. 뮨 계속 들어가잖아요. 바로바로 캔슬 들어가세요!

사대룡도 분명히 좋은 팀워크를 가지고 있다. 개개인 별로 싸움에 대한 경험도 많고 단체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잘 알고 있는 집단이다.

다만, 이들은 이렇게 큰 싸움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경험은 부족했다. 저들이 무시한 공성전의 경험이 제대로 빛을 보였다.

- 커헉!

- [연합] 담덕 : 천자 다이!

첫 목표는 매지션보다 엘프였다. 그럼에도 매지션이 처음으로 죽게 된 것은 엘프들의 블레싱만으로 위기가 생기자 힐올 마법으로 커버하겠다고 나선 덕분이었다.

‘힐올은 아군 길드원의 체력을 회복시켜주지만 정작 본인은 회복하지 못한 채 오히려 체력이 깎여나가지.’

그 타이밍을 절묘하게 노리면 체력이 약한 매지션은 순식간에 쓰러져 버릴 수밖에 없다. 사망한 상대편의 매지션 네임드인 천자가 기가 막힌다는 글을 올렸다.

- 천자 : 아니. 저놈들은 매지션들 마나가 무한이야? 숫자가 그렇게 많은 거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계속 뮨이랑 캔슬을 쓰는 거야?

‘그렇단 말이지?’

경솔한 행동이다. 황당해서 하는 저 말을 통해서 우리는 상대편 매지션들이 마나 고갈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우리 매지션들은 여전히 쌩쌩하다. 오히려 뮨과 캔슬을 넘어서 혹시나 캔슬을 당하는 나이트가 있으면 재빨리 헤이스트를 걸어줘서 더 편하게 싸울 수 있도록 서포트 해줄 정도였다. 양쪽의 이 차이는 바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센스에서 발생한다.

‘블레싱 엘프들은 블레싱과 소울의 연계로 마나를 회복하면서 블레싱을 사용하지.’

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나의 여유를 가질 수 있기에 나이트들이 최대한 괴롭혀주어야만 마나가 모자르게 된다.

반대로 상대편 나이트들은 우리 쪽의 엘프를 괴롭히기에는 그 힘이 부족했다. 따라서 우리는 여유가 충분했고 아군 매지션들은 엘프들의 마나를 흡수해서 마법을 계속 사용하는 전술을 보일 수가 있었다.

‘이걸 못하니까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승패가 갈리는 결과로 이어지지. 수치에 따른 데미지와 숫자로 찍어누른다? 고작 그 정도로 게임을 안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이거야.’

우리가 거만의 탑에 왔다는 것을 알고부터 사대룡 연합은 70여 명 모두 19층 입구에 모여서 대기한 상태였다. 하지만 수많은 공성전과 수성전 경험을 가진 우리 길드원들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크억!

- [연합] 지옥검 : 캬캬캬 다이!

드디어 블레싱 엘프들을 총괄하는 엘프가 쓰러졌다.

‘결론 나왔군.’

블레싱과 소울의 연계는 일종의 톱니바퀴와 같다. 모두 제 자리에 있을 때에는 안정적이고 흔들림이 없지만, 하나라도 빠지는 순간 그대로 고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캬캬캬가 쓰러지면서 한쪽 진영이 눈에 보이게 흐트러졌다.

- [연합] 구운몽 : 5시 방향. 집중 공격.

반대쪽에 자리했던 나 역시 바로 방향을 틀어서 적진의 흐트러지는 진형을 돌파했다. 결국, 견디지 못한 몇몇 블레싱 엘프가 그대로 귀환하고 말았다. 그렇게 하나씩 죽이고 귀환시켜가며 연신 칼을 휘두를 때였다.

- 어헉!

질펀하게 케첩을 만들며 한 엘프가 쓰러졌다.

- 적반하장 : 아 씨! 왜 다른 사람들 많은데! 굳이 나만 공격하냐고!

‘응?’

발밑에 쓰러진 시체가 채팅하길래 봤더니, 적반하장이었다. 그냥 가까이에 있는 녀석들을 열심히 때려줬을 뿐인데 적반하장한테는 그렇게 여기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 적반하장 : 존나 집요한 새끼 같으니라고!!!!

‘그것보다 너는 이런 컨트롤로 어떻게 활피단의 간부가 된 거냐? 남들 다하는 귀환조차 못 하다니?’

낙하산 인사가 아닐까, 싶을 만큼 묘한 녀석이었다.

- [연합] 지옥검 : 적반하장 다이! 이번에는 +8 잊혀진 보우건을 떨궈주네.

- [연합] 악마혈 : 이 정도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 수준인 듯?

원래 ‘잊혀진’ 계열의 아이템은 강화가 불가능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딱 하나는 강화할 수 있다. 바로 이 보우건이었고 덧붙여서 양손이 아닌 한손 활이라는 장점을 갖춘 장비였다. 당연히 값은 비싸다.

‘여기서 잊혀진 시대가 어떻게 보면 초창기 본토가 막 생기던 그 시절을 의미하는 느낌이기도 하니까.’

플레지 유저라면 기억할 테지만, 그 당시의 엘프들은 한손 활을 사용했다.

그즈음 따끔한 경고가 올라왔다.

- [연합] 담덕 : 나이트웨인! 불패검사! 둘 때문에 블레싱 무너진다!

기다렸던바.

- [연합] 구운몽 : 좌호법!

- [연합] 좌호법 : 존명! 준비완료. 텍!

이 타이밍을 위해서 끝까지 숨어 있던 네 명의 매지션이 디텍트 마법을 쓰며 등장했다.

호법과 마력의 사람들 멤버들이었는데 그들은 나이트웨인에게 빠르게 붙어서 플레어 버스트 마법을 연거푸 작렬시켰다. 순식간에 몰아붙인 화력에 막강한 두 네임드가 그대로 허물어졌다.

- [연합] 좌호법 : 나이트웨인 다이.

- [연합] 담덕 : 불패검사 다이.

체력 빵빵하고 방어력 높은 나이트의 약점은 마법이다. 나처럼 항마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매지션의 기습이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승기를 확실하게 쥐었고 최초의 혈전은 우리의 승리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이를 관전한 유저의 글이 올라왔다.

「사람들 vs 사대룡 이래서 사람들 사람들 하는구나」

혹시 오늘 거만의 탑에서 이 두 길드연합이 싸우는 거 보신 분 계십니까?

저는 운이 좋게도 끝까지 사대룡에게 안 걸리는 바람에 이들의 싸움을 처음부터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사대룡에게 걸려서 죽을까 봐 진짜 심장 졸이면서 지켜봤음 ㄷㄷㄷ)

대충 보면 사람들 길드는 30명이 조금 넘고 사대룡은 70명이 조금 넘더군요. 누가 봐도 사람들이 지독하게 부족하고 불리한 상황! 거기다가 어떤 멍청이가 사람들 연합이 오고 있다는 걸 월챗으로 알려줘서 사대룡 연합이 입구에 바리케이드 치고 대기까지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진짜. 사람들이 와서 학살당할 일만 남았구나, 이러면서 거의 낙담 중이었음. ㅜㅜ)

그!

런!

데!

가장 처음으로 19층에 올라온 캐릭터는 그 유명한. 구운몽이었습니다. (두둥! >0<)

네. 바로 그 구운몽입니다. 대체 구운몽이 언제적 구운몽이냐? 이딴 드립 친 인간들은 이제 닥치고 버로우할 시간입니다.

구운몽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알리려고 작정을 한 건지 사대룡의 활피단 전체의 활을 맞으면서도 뚫고 달려들더군요. (그거 보고 팬티를 갈아입었음 @[email protected])

이후에 지옥검, 검, 악마혈 등의 네임드들이 속속들이 19층으로 올라왔고, 그들 앞에서 사대룡의 바리케이트는 그냥 찾아다닐 필요 없이 한 자리에 모아둔 뷔페 음식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매지션들은 뮨을 걸면서 상대 뮨을 캔슬하고, 엘프들은 활을 쏘면서도 블레싱으로 회복하고, 또 소울로 엠 채우고. 양쪽 다 진짜 엄청나게 체계적으로 잘 해내긴 했는데···!

결국 뒷 라인도 승자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니. 사람들 길드의 매지션들은 엠통이 다른 매지션의 세 배 정도 됩니까? 엠이 마르질 않아요. (천자가 말도 안 된다며 막 한풀이했는데 그거 저도 공감했음)

결국 구운몽을 필두로 한 나이트들이 엘프들 진영을 다 무너뜨려 버렸고, 승자는 상대의 절반밖에 안 되는 사람들 길드였습니다.

우와··· 진짜. 왜 이 연합이 켄헬 서버가 생긴 이래로 성을 독차지하고 있는지 딱 알 수 있는 싸움이었습니다. 정말이지 안 본 사람은 몰라요.

솔직히 다른 서버 보면 좋은 사냥터들 통제하고 독점하는데 사람들 길드는 그런 거도 안 하잖아요. 그러면서 이렇게 강하다는 거. 그게 더 대단한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결론!

지립니다. XD

우리 쪽에서 사람을 써서 올렸다 싶을 만큼 매우 호의적이며 지극히 유리하게 써진 글이었다. 게다가 사실 곡해도 있었다.

‘우리 쪽 숫자가 좀··· 많이 다른 거 같은데?’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글에는 무수한 댓글들이 달렸다.

└ 혈마군림보 : 30대 70? 사람들 연합 알고 보니 언플까지 지리는데?

└ 광룡광천 : 치졸하다, 치졸해. 아주 웃기고 자빠졌어. 진짜는 사대룡이 50 정도고 사람들이 70명이었다. 알고나 떠들어!

└ Re 뾰롱망치 : 사대룡은 쌈을 못하니까 키보드로라도 해결해보려고 하나 봄?

└ Re 폭탄굴러간다 : 댁들이 70명 정도였던 건 당시 교만에 있던 사람들이 다 압니다만?

└ Re 하늘에서 : 222222. 얘네 숫자 진짜 많았음. 나도 사람들 길드가 올라가는 거도 봤고, 사대룡도 봤는데, 30명은 좀 오반데··· 그래도 사대룡이 숫자가 훨씬 더 많았던 건 확실함.

< 나빠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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